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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213화 (1,993/2,000)

< 2213화 > 2213. 다크 문

유리아는 신시아 비서실장을 따라 비서실로 향했다. 회사 사무실처럼 꾸며진 비서실은 절반이 빈자리였다. 책상 위에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출장을 나간 듯한 모양새다.

"유리아 양. 공주 전하께서 몇 개의 사업을 운영하시는지 아시나요?"

“아뇨.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알 리가 있나. 당연히 따로 조사해 본 적도 없었다.

“공주 전하는 크고 작은 사업체 14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6개는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사업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유리아 양에게도 알려줄 수는 없겠네요. 유리아 양이 정식으로 비서실에 온다면 모를까.”

"유감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기밀을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비서실에서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나요?"

“그럴 인력이 없습니다. 비서실은 공주 전하의 뜻에 따라 사업체를 운영에 관여하는 방식입니다. 그 외에도 공주 전하께서는 인재를 중요히 여겨 13명의 예술가와 75명의 학생을 후원 중입니다. 그들의 관리도 비서실의 업무입니다. 또한 엘자 공주 전하와 관련된 유언비어를 정리하는 것도 일입니다.”

"...공주 전하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주 전하를 위해 일합니다. 능력만큼 충성심도 중요하지요. 유리아 양은 공주 전하를 위해 일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은 공주 전하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닙니다만, 좋습니다. 우선 서류 확인 작업부터 시작하죠.”

“어떤 기준으로 서류를 확인해야 하나요?"

“공주 전하의 시간은 귀중합니다. 유리아 양이 생각하기에 공주 전하의 판단이 필요한 서류와 공주 전하의 판단이 필요 없는 서류. 두 개로 나눠주십시오."

총 150장의 서류.

유리아는 3분 만에 서류를 나누었다. 유리아의 서류 작업을 입을 벌리며 보고 있던 신시아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하마 터면 입에서 침을 흘릴 뻔했다.

“크흠. 서류를 보지도 않고 막 넘기시던데....”

“속독입니다.”

“...부러운 능력이군요. 물론 제대로 서류를 확인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런 일은 속도보다는 정확도가 중요하니까요.”

신시아가 분류된 서류를 확인했다. 150장 중 공주 전하께 올라가는 쪽으로 분류된 서류는 7장.

“...제 분류와는 상당히 다르군요. 저는 50장 정도는 공주 전하께서 직접 판단하셔야 된다 봤습니다만."

“처음이라 제가 실수한 것 같군요.”

실수라기보다는 판단 기준이 신시아와 달랐다.

유리아는 서류를 분류를 하면서 유진을 떠올렸다. [백환]에서 유진이 서류 작업을 전혀 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서류 작업은 유리아의 몫이었다. 유리아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모두 처리한다.

“...예능 방송에 공주 전하의 게스트 초청 제안. 공주 전하께서 직접 처리해야 할 서류는 아닌 것 같은데요.”

"공주 전하께 전해진 제안이니 일단 서류를 올려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천박한 예능 방송 따위에 나갔다가 공주 전하의 이미지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공주 전하께서는 대외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계시니 이런 건 자동으로 커트해야 합니다.”

유진이라면 예능 방송에 흥미를 보였을 것이다. 연예계에는 미녀들이 상당히 많으니까.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횡령과 관련된 서류는 왜 남기셨습니까? 이런 중요한 서류야말로 공주 전하게 올려야지요.”

3억 크레딧 횡령.

한화로 따지면 30억 정도. 유리아가 볼 때 적은 금액이었다. 굳이 최종 결정권자에게 올릴 필요가 있을까? 휘하의 부하들에게 명령해서 횡령범을 잡아 횡력액을 회수하고 고문하고 죽여버리면 일은 끝이다. 보고는 티타임때 구두 보고를 하면 끝.

“딱히 대단한 범죄는 아닌 듯했습니다만.”

“...여기 신사업 보고서는요?”

“잘하고 있다 판단 했습니다.”

“……이 투자 제안서는 왜 무시했죠?”

“투자액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할 투자입니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제안서를 넣은 게 아닌지."

“공주 전하의 재산관리인 중 한 명의 투자 제안서입니다.”

"아.”

“유리아 양은 비서가 아닌 전권대행처럼 서류를 분류하셨군요. 기준을 알려드릴 테니 그에 따라 분류해 보십시오.”

“네.”

다시 서류를 분류했다. 이번에는 신시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드리니 잘하시는군요. 다음은 정보 관련 서류입니다. 비서실에는 따로 정보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밀인지라 자세히는 알려줄 수 없습니다.”

신시아가 새로운 서류들을 가져왔다.

“그 서류들은...?"

“정보부에서 올라오는 정보들입니다. 하루에 수십 건 이상의 정보가 올려옵니다. 이 중에서 공주 전하께 보고할 정보를 선별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관련 있습니까?"

“최우선은 공주 전하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그 외에는 판단했을 때 알아둬야 할 정보.”

유리아는 3분 만에 서류 분류를 끝냈다.

정말 중요한 정보는 보여주지도 않았겠지만, 꽤 흥미 있는 정보들도 있었다. 유진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유진에게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 후에도 서류 작업을 진행했다. 유리아는 신시아로부터 부담스러운 눈길을 받아야 했다.

“유리아 씨. 오늘 당장 비서실에 취직하실래요? 차기 비서실장으로서 일하게 될 겁니다.”

“저는 실습생일 뿐입니다.”

비서실의 일상 업무는 서류와의 전쟁이었다. 서류를 솎아내고 공주 전하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서류를 작성해 사업체에 전달한다.

엘자 공주와 정치가의 모종의 거래라도 있으면, 그 실무는 비서실에서 행하게 된다. 유리아는 서류를 바탕으로 엘자 공주와 마주하고 보고를 나눴다. 오후에는 엘자 공주의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시중이라 해봤자 이야기 상대가 되는 것이 전부 였지만.

"관리실장과 비서실장이 유리아 양을 그렇게 칭찬하더군요. 특히 신시아 실장이 그대를 스카웃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할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군요."

“저는 그대에게 아무 제안도 하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거절 당할 게 뻔하니까요. 일정에 대해 이야기 하죠. 내일은 비서 실장과 함께 사업체 2곳을 둘러본다면서요?”

“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그 두 곳은 이미 검증된 곳이에요. 가서 대접받고 오면 되는 일이죠. 그다음 날은 경비실에서 일하는군요.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다크 문이 뜨는 날. 그리고 공주 전하께서 네오 런던 시민들을 위해 몬스터를 사냥하시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다크 문이 뜨는 날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평범한 몬스터도 다크 문이 떴을 때는 어떤 괴물로 변이될지 모르니까.

엘자 공주를 비롯해 귀족들이 다크 문때 사냥을 나가는 것은 선전을 위해서다. 시민들을 위해 목숨 걸고 몬스터를 처리한다! 그 선전 문구를 위해서.

“많은 귀족과 왕족들이 다크 문이 뜬 사냥터에서 죽었어요. 그들이 죽은 건 몬스터가 아니에요. 유리아 양, 항상 주의하세요. 다크 문이 뜬 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예. 공주 전하. 주의하겠습니다.”

다크 문이 뜨는 날, 유리아는 경호실장 리타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했다.

“뭐,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경호 방법이나, 전투 훈련을 받았을 테니 내가 따로 교육할 필요는 없겠지? 창고로 가자. 우리가 쓰는 장비를 빌려줄게. 아카데미로 돌아갈 때는 돌려줘야 해.”

경호실 무기고에는 온갖 무기들이 있었다. 총에서부터 미사일, 강회 외골격, 마법 무기 등등.

“일단 전투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어. 특수 마법 섬유 소재라 5급 수준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아도 2~3번은 막아줄 거야."

“어마어마한 전투복이군요."

“공주 전하를 지키는 게 임무인데 이 정도야 기본이지. 달리 말하면 경호실이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린다와 신시아는 널 좋게 평가한 모양이지만... 난 널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할 수 없어. 지금 네 경지는 4급이잖아. 경호실에 들어오려면 최소 5급 이상에 전투 경험도 확실해야 해. ...내 말에 기분 상했어?"

“아니요. 옳은 말을 들었는데 기분 상할 리가요.”

“성격은 좋네. 무기도 골라봐.”

유리아는 총 7자루의 단검을 골랐다.

“단검? 부무장이 아니라 주무장으로 쓰는 거야?”

“아무래도 가장 손에 익은 무기는 단검이라서요.”

유리아가 단검을 선호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감추기 쉬우니까. 주인님의 시중을 드는 메이드가 검이나 창 같은 눈에 띄는 무기를 무장했다? 주인님의 품격이 떨어진다.

리타는 무장한 유리아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이번 다크 문에서 너와 나는 다른 임무를 수행할 거야."

“공주 전하의 경호는 다른 사람이 담당하나요?"

“맞아. 우리 애들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공주 전하를 지킬 거야. 공주 전하는 다른 귀족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사냥할 예정이니 위험은 딱히 없을 거야. 말이 사냥이지. 실제로는 사용인들이 다 하거든.”

“사냥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너도 알다시피 다크 문이 뜬 날에는 작은 소문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지. 소문이 영향을 받아 실체화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뜬금없는 소문이군요. 누군가가 일부러 퍼뜨리는 것처럼. 이상함이 느껴지니 사냥터를 바꾸는 쪽이 더 낫지 않나요?"

"공주 전하께서 정하신 사냥터야. 소문 때문에 사냥터를 바꾼다? 사람들이 공주 전하를 겁쟁이라고 비웃겠지."

체면 문제였다. 정치인들에게 체면과 이미지는 아주 중요했다. 유리아는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을 무서워하진 않지?"

“네.”

귀신도 죽일 수 있는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그럼 이동하자. 아직 낮이지만 먼저 사냥터에 도착해서 지형을 익혀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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