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216화 (1,996/2,000)

< 2216화 > 2216. 경성 2033

[유희를 종료합니다.]

다크 문 세계에서 돌아온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마나를 움직여 마법 술식을 짠다.

"……."

아무 반응도 없었다.

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법적 기억에 있으나, 이 세계의 지식이 아닌 만큼 쓸모없는 것들로 전락했다.

'아, 몰라. 포인트부터 확인하자.'

[성유진

레벨: 93

근력: 13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30 정력: 140 마나: 140]

[사용 가능 포인트: 22,590]

생각보다 포인트가 크게 모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혀를 차면서도 능력치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성유진

레벨: 93

근력: 140 체력: 130 민첩: 130 지능: 130 정력: 140 마나: 140]

[사용 가능 포인트: 7,590]

남은 포인트는 7,590. 애매했다. 이걸 능력치에 써봤자 130대 능력치에서 5개밖에 올릴 수 없다. 140대 능력치에선 3개고.

능력치에 투자할까? 뭔가 딱딱 떨어지지 않는 숫자의 능력치를 보면 불편할 것 같다.

'그리 급한 것도 아니잖아. 포인트는 남겨두자.'

랜덤 뽑기에 사용하면 어떨까?

불현듯 찾아온 악마의 유혹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쓸만한게 나오지 않고 포인트를 죄다 날려버리면? 다시 벌면 되긴 해도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건 변함 없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뽑기가 하고 싶다.

나는 뽑기의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럴 때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게 낫다.

'어? 경성 2033. 이거 완결 났네.'

최근에 눈여겨보고 있던 웹툰이었다. 인기는 중하위.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 내용과 그림체라 호불호가 좀 많이 갈렸다.

'내용은 뭐, 그럭저럭인데 여캐 하나가 마음에 든단 말이지.'

I컵 가슴의 여캐.

아쉬운 건 히로인이 아니라는 거다. 내용이 연애와 관련이 없어서 서비스씬이 적었다.

'시발. 서비스 신 적게 그릴 거면 왜 I컵 여캐를 설정했냐고.'

답은 알고 있다. 어그로를 위해서겠지. 실제로 나도 I컵 여캐의 그림에 홀려 이 작품을 보게 됐으니까.

'아, 존나 따먹고 싶네.'

따먹을 능력이 있었다. 문제는 내 마음대로 유희 슬롯이 없어서 지금 당장은 들어갈 수 없다는 거지만.

“어, 씨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마지막에 I컵 여캐가 죽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마지막에 죽인다고? 작가 돌았나?"

내 머릿속에서 I컵 여캐가 주인공이었다. 진짜 주인공은 살인을 망설이며 개소리로 정당화하는 병신이었고.

'작가 새끼 뒤지고 싶나.'

마무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은둔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결국 토사구팽당한다.

경성에는 새로운 혁명이 바람이 불고 끝이 난다. 혁명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토사구팽당하는 건 관심 없는데, 한국의 독립은 어떻게 되는데? 시발. 결국엔 열린 결말이잖아.'

좋아하지 않는 엔딩 중 하나다.

가장 싫어하는 엔딩은 아 시발 꿈 엔딩이다.

'1컵을 마지막에 죽이다니. 진짜 미친 건가.'

댓글도 난리다. 대다수가 작가는 욕했다. 나처럼 1컵 여캐 때문에 이 웹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주인공이 죽은 것 때문에 화난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 씨. 마음에 안 드네.'

괜히 유희 생활 어플을 둘러봤다. 창작물 속으로 들어가 여캐를 따먹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죄다 죽여버릴 텐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갱신된 퀘스트를 확인했다.

[경성 2033

제국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현대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연합국은 패배했으며, 추축국은 승리했습니다.

한국은 독립에 실패했고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20세기를 보냈습니다.

2033년.

발전한 문명 속에서도 잔혹한 제국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독립의 불꽃은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경성 2033의 주인공으로서 독립운동 가문의 살아남은 후계자입니다.

대한민국을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하거나, 일본제국의 총리를 죽이십시오.

퀘스트 성공 조건: 대한민국 독립 혹은 일본제국 총리 살해.

퀘스트 성공 보상: 컴온 베이비. 30,000 포인트.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성공 조건이 대한민국 독립이었다면 머리가 빠개졌을 테지만... 일본 총리 죽이기? 쉬운데?'

평화에 찌든 일본 총리를 죽이는 건 쉽지 않을까?

'컴온 베이비. 이것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야.'

[컴온 베이비

대상을 자신의 앞으로 소환합니다.

가격 : 70,000 포인트

※주의

대상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대상을 강제로 자신의 앞으로 소환한다? 활용하기에 따라 필살기도 될 수 있다.

'추가로 3만 포인트까지 얻을 수 있지. 고작 일본 총리를 죽이는 거 하나로.'

일본 총리라면 급조 총기로도 암살할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정도 난이도면 거저먹는 퀘스트가 아닌가.

나는 퀘스트를 클릭했다.

['경성 2033' 퀘스트를 선택합니다.]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비율에 따라 조정됩니다.]

[신체 능력이 10%로 줄어듭니다.]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드밴티지로 전투 재능이 주어집니다.]

[스킬과 특성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딱 하나? 그럼 해킹을 선택해야지. 완전 회복도 좋지만 세계관이 세계관이다 보니 해킹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아.'

[스킬 해킹(Lv.20)을 선택합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나는 병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바로 몸을 일으켜 몸 상태를 확인한다. 현실의 내 신체 능력보다 90% 약한 몸이지만,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훨씬 뛰어난 신체 능력이다.

'목에 위화감이 있어.'

손으로 목을 만진다. 강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내가 원작 주인공인 설정이라면… 이건 폭탄 목걸이겠군.'

날짜를 확인한다. 2033년 3월 1일.

원작 1화 시점이란 걸 깨달았다. 폭탄을 착용하게 된 경위는 과거 회상으로 나오게 된다. 별거 없었다. 독립운동가 가문의 후계자인 주인공의 친동생이 가족과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 매국노라 그렇다. 독립운동 단체인 의화단(義花團)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에 스스로 사냥개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 목걸이를 중간에 풀어도 토사구팽 엔딩으로 끝나버리지.'

목에 폭탄을 달고 행동하는 건 성가셨다. 바로 해킹을 사용했다.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폭탄 목걸이를 2시간 동안 해킹할 수 있습니다.]

철컥.

폭탄 목걸이에서 캡슐이 떨어졌다. 중간에 낚아채듯 받았다.

'액체 화약 캡슐.'

캡슐을 제거했으니 기폭제를 눌러도 터질 일은 없다. 폭탄 목걸이는 이제 그냥 목걸이였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1시간 정도 지나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장을 입은 여자 1명과 남자 4명이었다. 여자는 중년으로 체구가 작고 깐깐해 보이는 아줌마였다.

“성유진. 몸은 어떻지?"

“아프다 하면 휴식 시간이라도 줄 텐가?"

“네 몸이 정상이란 건 이미 알고 있다. 진카66을 적응했으니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했을 거다.”

진카66.

일종의 진화 혈청이다. 몸에 투여하고 살아남으면 범인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과 약간의 초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용건은?"

“임무다. 네가 의화단원으로서 처음으로 수행하는 임무로군. 의화단의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대부분이 너를 좋지 않게 본다는 것도.”

“아줌마. 잡소리는 됐어. 임무나 설명해."

"종로에 구일파라는 친일 조폭이 자리 잡았다. 구일파의 두목을 죽여라. 수국팀이 너를 감시할 거다. 진카66을 맞고 조폭 두목 하나 죽이지 못하면 쓸모없다는 뜻이니, 넌 실패 즉시 그 자리에서 처분당할 것이다.”

아줌마가 눈에 힘을 팍 주고 노려본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가소로움을 느끼며 아줌마에게 물었다.

“설마 맨손으로 가라는 건 아니겠지?”

아줌마가 손짓했다. 뒤에 있던 남자들이 가방을 가져와 열어젖혔다. 권총과 탄약, 칼과 비수에 방탄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네가 요청한 베레타 92와 특수 합금으로 갈아 만든 칼과 비수들이다. 수류탄은 기각되었다. 방탄복도 최신형이다. 1시간 내로 무장하고 나와라. 너는 수국팀과 함께 밴을 타고 임무 장소로 이동한다.”

"알았어. 가 봐.”

“...버릇이 없군.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진카66을 맞고 난 뒤에 성격을 변하는 놈들이 있다며?”

"……."

아줌마가 날 노려보고는 부하들과 함께 떠났다.

권총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겨눠봤다.

'사격이 특성이 없어서 총은 포기할까 했는데... 감각이 있잖아. 전투 재능이 생긴다더니 이런 뜻이었나?'

이러면 총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나이프를 챙기며 무장했다.

이후 아줌마가 말한 밴에 올라탔다. 널찍한 내부에는 여자 2명이 앉아 있었다. 키와 체구가 작은 여자는 껌을 질껑질껑 씹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여자는 I컵 가슴 여캐로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야, 신입. 빨리빨리 좀 다녀라.”

작은 여자가 풍선껌을 터트리며 타박을 줬다.

“딱 맞춰서 왔네. 딱히 늦은 건 아니지만...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오면 좋겠지?”

I컵 가슴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곁눈질하며 자리에 앉았다.

곧 밴에 시동이 걸리고 어딘가로 출발했다. 창문은 커튼이 쳐져 있었기에 밖을 볼 수 없었다. 반대로 밖에서도 내부가 안 보일 거다.

“처음 만났으니 자기소개부터 할까? 난 위도우. 당연히 진명은 아니야.”

I컵 가슴 여캐가 말했다.

지금 덮칠까? 아니야. 사람이 있잖아. 강제로 덮칠까. 시간을 들여 꼬실까. 갈등 된다. 꼬시기에는 귀찮으니 강간 쪽이 끌린다.

“아직 데뷔전도 안 치렀는데 자기소개는 무슨. 일단 첫 임부터 완수하고 와.”

여자 꼬맹이가 톡 쏘듯이 말했다. 그녀가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하회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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