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219화 (1,999/2,000)


< 2219화 > 2219. 경성 2033





의화단 본부는 넓었다.


독립투사. 즉, 실행팀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기에 훈련장을 비롯한 인프라가 만들어져 있다. 한국이 멸망해도 몇 년은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원작을 떠올리자. 위도우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지.'


위도우는 의화단 내의 영향력이 크다. 실행팀이면서도 간부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그녀가 10년 이상 의화단 을 위해 일해온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의화단의 단장이 그녀의 조부라 그렇다.


그녀를 강간하면 의화단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아니, 의화단이 날 죽이려 할 것이다.


의화단을 이용한다는 내 계획도 사라지겠지.


'씨발. 어쩌라고. 1컵 가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산이 있어서 그런지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장용 공장이 보였다.


'같은 팀이니 멀지 않은 곳에 건물이... 저기 있군.'


2층짜리 숙소로 보이는 건물. 30명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숙소지만, 실제로는 단 한 명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CCTV는 없었다. 편하게 침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문으로 가자. 난 쥐새끼가 아니니까.'


창고처럼 보이는 입구로 간다. 저기 있는 다른 문들은 가짜다. 문을 열어도 보이는 건 두꺼운 벽뿐이다.


‘비싸 보이는 바이크 3대에 슈퍼카 2대. 취미도 참 고상하시군.'


숙소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비싼 차량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위장할 마음이 아예 없는 것 같다. 뭐, 굳이 여기까지 와서 건물을 구경할 사람도 없겠지만.


다음은 문이었다.


이 커다란 문을 어떻게 열까. 총은 가져오지 않았다. 방탄복도 없이 칼 한 자루가 무장의 전부. 아무리 나라도 두꺼운 철문 을 칼 한 자루로 벨 순 없다.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전자식이겠지? 해킹으로 열 수 있을 거야. 그게 아니면 다른 입구를 찾든가 해야겠지.'


건물의 창문들을 떠올리며 문으로 다가간다.


철컥.


문이 열렸다. 창문을 부수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더 긴장하고 있었다. 문이 잠겨 있지 않다? 위도우는 의화단에서 실행팀으로 10년 넘게 킬러로 활동했던 여자다. 그런 여자가 문하나 간수하지 못할 정도로 어설프다고?


나는 문안을 노려봤다. 넓고 어둡다. 이 서늘하면서도 익숙한 텁텁한 냄새.


'...1층은 수련장. 2층이 위도우가 생활하는 곳이지.'


위도우는 1층에 있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나는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내 직감을 높은 적중률을 자랑했다. 직감은 경험을 토대로 한 무의식의 계산이었다.


감각을 집중했다.


마침 등 뒤에서 달빛이 들어와 내부를 비춘다.


반짝.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와이어가 반짝거렸다. 강화 인간인 위도우의 머리카락을 가공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와이어. 콘크리트는 물론이고 철까지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선이다. 함부로 들어갔다가 내 몸이 와이어에 걸려 잘렸을 것이다.


'내가 올 걸 알고서 거미줄을 쳐뒀나? 어떻게 알았지?'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내 방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고, CCTV도 발견하지 못했다. 꼼꼼하게 설치 된 와이어를 보니 몇 시간 전부터 준비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기세 좋게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거야?"


어둠 속에서 위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비웃는 듯한 목소리. 근데 색기가 담겨 있어서 오히려 나를 흥분시키는 목소리였다.


“...내가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낮에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날 봤잖아. 너무 뜨거워서 내 가슴이 타는 줄 알았어.”


"……."


들켰었나. 연기 특성이 없어서 그런가? 너무 노골적으로 가슴을 보긴 했었지. 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다. 그런 폭발적인 가슴을 숨기지 않는 위도우의 탓이다.


“진카66에 적응해서 강화 인간이 되면 성격이 변한다는 말을 들어봤어?”


“들어보기만 했을까. 내가 딱 그 케이스거든.”


“어머, 그래? 근데 난 다르게 생각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힘을 가지게 되니 억눌려 있던 본성이 나온 것뿐이야.”


소리를 통해 위도우의 위치를 가늠한다. 아마 10m 거리. 목소리가 울리는 것까지 계산하자면 1층 중심에 있을 것이다. 그 주변에는 미리 깔아둔 거미줄로 가득하겠지.


“...내가 올 거란 걸 알았으면서 왜 문을 잠그지 않았지. 내게 마음이라도 있었나?”


“문을 잠가놓아도 창문을 통해 억지로 들어왔을 거잖아?”


“아, 그래서였나. 일부러 대주려고 문을 열어 둔 줄 알았는데.”


“난 값싼 여자가 아니야. 그런 여자가 될 생각도 없고. 지금까지 날 노린 남자가 한 둘인 줄 아니? 너처럼 실행팀으로 들어와서 날 노린 남자가 총 7명이야. 그 7명은 어떻게 됐을 것 같니?"


"과부 거미에게 잡아 먹혔나?"


"후후. 고깃덩어리가 돼서 땅에 묻혔어. 너는 특별히 봐줄게. 오늘 보여준 그 실력은 의화단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게다가 목줄까지 차고 있잖니? 미친개가 미친 짓을 했을 뿐이니 한 번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 줄 수 있어.”


“설마 기폭제를 가지고 있는 거냐?”


“아쉽게도 기폭제를 가지고 있는 건 단장님이야. 의화단 간부들이 널 죽이라고 해도,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단장님이야. 그리고 그 단장님은 내 할아버지고. 마지막 기회야. 돌아가서 잠이나 자. 첫 임무였으니 피곤하잖아. 그리고 내일은 얌전한 사냥개로 돌아오는 거야.”


“개, 개. 시끄럽네. 아! 개처럼 따먹어 달란 뜻이었어?"


앞으로 걸어간다.


머릿속으로는 위도우의 정보를 떠올린다. 위도우. 본명은 하서정. 히로인... 이라고 하기에는 원작에서는 러브 라인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캐릭터가 위도우였다.


진카66에 적응한 강화 인간이며, 신체 능력은 강화 인간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특수 능력은 뛰어난 오감. 그 뛰어난 오감을 활용한 와이어의 정밀한 제어. 그녀의 머리카락은 가공되기 전까지는 조금 질긴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 전투 능력만 놓고 봤을 땐 세계관 최상위권이야. 10년 넘게 킬러 생활을 했으니 경험도 부족함이 없지.'


거기에 전투를 대비해 만전의 준비를 한 상태. 반면에 이쪽은? 칼 한 자루가 전부.


'존나 불리하네.'


한 발자국 더 걸어가서 멈춘다. 바로 앞에 와이어가 있었다.


‘그래도 반드시 따먹는다.'


와이어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강철을 자르는 와이어라고 해도 무작정 강철을 자르는 게 아니다. 단순히 설치되어 있을 뿐이라면 칼로 벨 수 있다.


'이 칼도 의화단이 지급한 무기다. 단순히 강철을 두들겨 만든 금속이 아니란 거지.'


뚝.


와이어 한 줄이 끊어져 떨어졌다.


“아쉽네. 실력 좋은 사냥개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니 말이야.”


위도우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소리가 묻혀 있었다. 와이어를 휘두르는 소리다.


일종의 잔재주. 하지만 이 잔재주가 곧 실력이었다.


감각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바로 가속을 사용했다. 완전 회복이 없으므로 죽거나, 심각한 중상을 입으면 회복할 수 있다. 방심 따윈 갖다 버리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옆으로 움직여 와이어를 피한다. 칼로 막기엔 부담스러웠다. 칼날에 와이어에 휘감기기라도 하면 골치아파 질 테니가.


“반응 속도 좋은걸? 신입이 신입 같지 않다니까. 아무리 훈련받았다고 해도 실전과는 엄연히 다른데.. 혹시 의화단에 들 어오기 전에도 킬러였니?”


이번에도 목소리 속에 와이어를 숨겼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내 뒤에는 문이 열려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달빛 덕분에 날아오는 와이어가 보였다. 보법을 이용해 와이어를 피한다. 눈에 보인다면 못 피할 것도 없다.


“와. 반응 속도는 최상위에 몸놀림도 범상치 않네? 근데 여기로 들어올 수 있어? 계속 입구에 서 있을 거야? 시간은 네 편이 아니야. 해가 뜨면 사람들이 몰려올 테고, 주인을 무는 미친개는 처분될 거야.”


“그러고 보니 의화단에 연락하지 않는 거냐?"


"후후. 내가 이길 건데 지원이 왜 필요해? 자, 빨리 들어오렴. 날 범하고 싶지 않니? 네게만 특별히 말해주는 건데... 지금 난 알몸이란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안쪽을 노려봤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씨발년. 진짜 개처럼 따먹어 주마!”


진자 벗고 있을까? 아니면 날 흥분시키기 위한 도발일까? 어느 쪽이든 날 흥분시켰다.


흥분한 나는 앞으로 달려가는 대신 뒤로 나와서 빠져나왔다.


“하? 여기서 꼬리를 만다고?"


“누가 꼬리를 만다고 했냐."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바이크 3대와 슈퍼카 2대. 나는 바이크 1대를 들고 안으로 내던졌다.


“안 돼! 그거 전 세계에 천대밖에 없는 한정판이야!”


위도우가 와이어를 조작해 허공에서 바이크를 낚아챘다. 바이크에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섬세한 조작.


“두 대 더 간다.”


“멈춰!"


안 멈춘다.


연달아 바이크 2대를 던진다. 이번엔 섬세한 조작으로 바이크를 받아내는 게 힘들었는지, 바이크 한 대가 와이어에 베였 다. 연료통이 베였는지 휘발유 냄새가 진동한다.


나는 낄낄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드르르륵.


칼끝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와이어 풀어라. 와이어랑 칼이 마찰해서 불똥이라도 튀면 좆되는 거야.”


“...지금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이 거리에선 너도 영향을 피할 수 없어. 그리고 고작 이 정도 휘발유로 여기 전체가 불탈거라 생각해?"


“와이어에 휘발유 묻었잖아. 와이어도 여기저기 겹쳐 있을 테니... 불붙으면 다 타는 건 확정 아닌가?"


휘발유에 젖은 와이어 한 줄이 내 앞길을 막아선다. 나는 칼을 들어 올렸다.


물론 위도우와 같이 죽을 생각은 없다. 위도우를 죽일 생각도 없다. 휘발유에 불이 붙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잘 보이게 되겠지. 그 후에 가속을 사용해 위도우를 다른 곳으로 옮겨 따먹을 계획이었다.


위도우가 내 계획을 안다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근데 위도우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과 지금의 일로 진짜배기 미친놈으로 알고 있다. 나는 미친놈이 아니지만, 그 착각을 이용할 것이다.


"거미집이 네 무덤이 됐군. 크크.”


칼이 떨어진다. 칼은 허공을 획 갈랐다. 와이어는 칼에 닿기 전에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투툭.


사방에서 와이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미집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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