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마도사의 상황 -->
‘내가 사는 별은 창조신이 만든 주신성(主神星)이다.
일반적으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일반 행성의 만 배가 넘는 거대한 별 위에 대륙이 하나 있다.
그 거대한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이 존재하는데 중앙에 넓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밀림을 대수림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대수림 한가운데에 내 마탑이 있다.
칠 서클의 흑마법사 스승에게 물려받은 아주 자그마한 마탑이다.’
초장거리 공간이동으로 대수림의 외곽에 도착한 흑마도사는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을 바라본다.
‘누가 흑마법사가 아니라고 할까 봐 검은색의 돌로 지어진 3층 높이의 마탑은 처음에는 한숨이 나올 지경으로 남루하다.
대륙의 배꼽이라 칭해지는 대공동의 한가운데에 부유 마법을 걸고 띄어 올린 지금의 마탑은 내가 만든 것이다.’
세계수(世界樹)라 불리는 거목의 밑에 뚫려있는 대공동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파진다.
‘대공동은 기본적으로 마계와 연결된 차원 통로이다.
더구나, 대수림은 수목의 생명력과 마계에서 생성되는 마기가 충돌해서 마법의 발현이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저 마탑이 부유 마법으로 떠 있을 수 가란 질문에는 끝없는 노동의 산물이라 대답할 수 있다.
마법은 수많은 사전 조건 중에서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발동할 수 없으니 수많은 벽돌을 던져서 한 치의 틈도 없이 쌓아 올린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팔 서클이 되었지만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
그런데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과거 흑마도사의 스승은 마도제국의 황자로 태어난 갓난아기를 납치해서 이곳으로 도망치고 흑마법사로 키웠다.
‘도망치는 와중이니 자기 제자나 세력을 챙길 리도 없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던가?
추적을 피해서 어떤 탐지마법도 무력화가 되는 이곳으로 겨우 도망쳤다.
물론 준비하는 자가 마법사이니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해서 넘었지.’
마법도 잘 안되면서 강력한 이종족이 즐비한 대수림을 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고 듣게 된다.
대수림을 지배하는 종족 중 하이 엘프와 하이 오크와 충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칠 서클의 흑마도사이면 제국과도 결전을 벌일 수 있다.
그런데 겨우 엘프와 오크 부족 때문에 고생하냐고 물으니 이 대수림의 규모는 일반 밀림의 일만 배 이상이란다.
그래서, 숲의 생명력의 힘에 따라 강해지는 높은 엘프의 힘은 여기서 최대한 발휘된다.
대수림에 있는 엘프들이 전부 힘을 합치면 어지간한 인간 제국은 우습게 처리한다.’
수백 미터의 거목이 잡목으로 취급되고 세계수의 아종으로 유추되는 수 킬로미터 이상의 괴물과 같은 크기의 나무들은 수십만의 하이 엘프를 가뿐하게 부양한다.
‘하이 엘프 일족의 수는 십억 명 이상이다.
더구나 대수림의 엘프들은 마계의 차원 통로에서 유입되는 마물들과 영겁의 세월을 싸워왔고 진화해 왔다.’
대공동 주변의 다섯 개의 거목은 이미 세계수를 뛰어넘는 크기와 이성을 갖추고 엘프들의 제국으로 발전해왔다.
‘인구가 일억이 넘는 세계수 제국이 다섯이나 공동을 포위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흑마도사가 그 마기를 목표로 공동으로 접근하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결사적인 돌파 끝에 겨우 포위망을 뚫고 대공동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와중에 당연히 희생자가 나오고 엘프들의 원한을 얻게 되었다.’
정해진 수명이 없고 망각도 없는 하이 엘프 제국과 원한을 사게 된 것이다.
물론 흑마법사는 중간계의 공적이니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었다.
‘처음 공동에서 나오면서 나는 그때 갓난아기였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오라로 강화된 화살 수십 만발과 모든 종류의 최상급 정령들의 수십만의 군세였다.
‘하이 엘프 퀸들이 정령왕과 같이 달려드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지.’
다행히 대수림의 일족은 접근할 수 없는 마기가 가득한 대공동 안으로 도망쳐서 살았다.
‘그때 나무 위에 사는 엘프들은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다.
땅도 문제야.’
대수림의 나무 위가 모두 하이 엘프의 영역이라면 나무 아래는 하이 오크들의 영역이다.
대수림은 너무나 기름지고 생명이 넘치는 땅이기에 오크 일족에게 식량을 무한대로 제공했다.
‘무한대의 식량을 바탕으로 오크는 한때 일백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최대부족으로 부상했다.
그러다 엘프 일족과 전쟁을 벌였는데 처참하게 패하고 중앙밀림에서 쫓겨나 숲의 외곽에서 살지.’
종족 전체로 보면 오크가 압도적이었는데 문제는 오크는 대수림의 나무를 못 탄다는 것이다.
짧은 다리와 팔, 힘은 있으나 떨어지는 순발력으로 인해 나무 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대수림의 나무들은 초인들도 상처 입히기 힘들 정도로 강건하다.
식량의 기반이기도 하니 함부로 자르거나 쓰러트릴 수가 없지.’
결국, 오크들은 나무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정령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높은 나무가 없는 주변 숲으로 도망치게 된다.
‘그 이후로 먹을 것이 부족해져 인구도 십억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풍요로운 중앙 숲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금도 엘프 일족과는 수시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주변 숲을 통과하면서 인간이라는 별식에 눈이 뒤집힌 오크들과 사투를 벌인 스승의 경험을 들으면 기가 막혔다.
아직 숲의 초입이라 마법에 제한이 없는 칠 서클의 대마도사가 전력으로 부딪쳤는데도 죽을 뻔했다고 한다.
‘하이 오크들은 어떤 은신 마법도 안 통하고, 개처럼 냄새로 따라오는 능력을 갖췄다.
더구나 아무리 죽여도 겁을 먹지 않으니 웬만하면 싸우지 마라.’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나쁜 오크라도 잊을 수 없는 참상을 스승이 벌였으니 하이 오크들과도 원수가 되었다.
대수림의 나머지 세력인 종족은 늪에 사는 나가 일족과 지하에 사는 드워프 족이다.
‘다른 특이한 이종족 세력도 있지만 매일 치열하게 싸우는 네 종족의 틈바구니에서 연명하는 소수부족이라 생략한다.
물론 소수부족이지만 기본적으로 일천 만 명 이상의 왕국 급이다.’
가장 큰 세력은 하이 엘프족이며 오크와 나가들이 연합을 맺어 영역확장을 위해 싸운다.
드워프 일족은 식량과 원료를 받는 대신에 다른 종족에게 무기와 물품을 제공하면서 여기저기 붙었다 떨어졌다 싸움을 부추기면서 살아남고 있다.
‘그들도 제국이라 칭할 일억에 가까운 인구와 금속기술을 가졌다.
하지만 세 종족의 치열한 대전쟁 속에서 언제 노예종족으로 떨어질지 모를 살벌한 전쟁터가 이곳 대수림이다.’
그 두 종족과 원한을 맺었으니 공동 한가운데 마탑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나의 스승도 몰랐는데 이 공동은 일백 년에 한 번 정도 마계의 문이 열린다.
거기서 마물과 마족들이 튀어나오고, 대수림의 모든 종족이 연합해서 그들을 막는다.’
평범한 엘프나 오크보다 괴물같이 강한 대수림의 종족들이니 마족을 이기기는 하지만 피해가 엄청나다.
‘여기서 문제는 마계의 문이 사라지면 한 달 정도 마기가 안정화 되면서 대수림 일족도 대공동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 내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대수림 일족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승이 갓난아기인 나와 대공동에 정착한 지 이십 년째에 마계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칠 서클 마스터인 스승과 칠 서클 유저인 내가 무한대의 마기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악전고투 끝에 겨우 살아남았다.
그 후에는 안전하게 마기가 뭉쳐져 있는 허공 중앙에 마탑을 만들어야 했지.
수십억이 넘는 적들로 돌러 싸인 이곳이 나의 집이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