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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생존전략-20화 (20/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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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마력이 공간을 채우자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던 정령신들이 멈추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순수한 마기가 모든 공간을 가득 채웠고 자신들의 정령의 육신에

무한한 정기를 부여했다.

정기의 부여는 정령들에게 그것이 극도의 희열과 고양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자신들은 최고위의 정령신들이기에 거기에 휘말릴 이유가 없지만 저 흑마도사의 정기는 그런 자신들조차 매혹될 정도로 강했다.

태양의 정령신이 다른 정령신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어디선가 황금빛의 부채를 꺼내 상기된 얼굴을 가렸고 다른 정령신도 상황이 마찬가지인지 공격을 멈추고 몸을 추수렷다.

'이런 정말 무례하고 곤란한 계약자로다.'

정령이 계약자를 따르는 것은 정기 때문이다.

정기를 부여받는 정령은 정령계에서 스스로 수련하는 것보다 수백 배의 효율로 강해질 수 있다.

마계처럼 죽고 죽이는 무자비한 계급체계는 아니지만 강함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것은 같기에 귀한 계약자를 어떻게든 지켜 많은 정기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정기에 절실한 것은 건방지게 치고 올라오는 정령왕때문이 아니다.

정령신들은 과거 신이었기에 신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신앙을 잃고 인증전에 패하고 마계의 마신으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신체를 잃어 소멸 직전에 몰린 패배한 신들이 세계를 위해 최종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정령신인 것이다.

한때 자신들의 세계에서 섬나라의 국신으로 떠받들어져 신왕에까지 올랐던 자신이 개망나니 남동생의 반란 때문에 신격이 추락하고 결국 이 꼴이 되었다.

그 남동생도 신격을 잃을 정도로 망신창이가 되고 자신의 신계는 멸망했다.

남동생과 저 계약자는 항상 겹쳐 보였다.

'참으로 닮았도다.'

계약자는 강제 명령권이 있다.

물론 능력에 따른 제약이 있지만 자신들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저 정도의 계약자라면 어떤 수치스런 일을 명령해도 해야 될 정도였다.

처음 계약을 위해 소환되었을 때 아무리 몰락해도 빛과 태양의 국신인 자신과 계약하겠다는 사악한 흑마도사를 송두리째 태우려 했고 격전 끝에 패배해 계약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강제 명령권이 발동된 적이 없다.

끝없이 제공되는 정기와 가끔 무료한 정령계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더 할 수 없는 계약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빛에 속하는 신이었던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흑마도사를 도울 리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결국 일방적으로 흑마도사가 손해 보는 관계이지만 아무 말 없이 감수하고 있고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납득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날뛰는 철없는 계집아이들의 응석을 저렇게 잘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강하기에 묵묵히 전쟁터에서 살며 희생을 감내하던 동생과 닮았다

그런 흑마도사와의 계약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물론 다른 정령신들의 시선 때문에 도울 수 없지만 철없는 계집들의 감정을 내게 돌리는 정도는 해주고 십을 정도다.

무엇보다 과거 신왕까지 올랐던 신격이 흑마도사의 정기를 한없이 들이키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나의 신체가 회복되고 있도다.

반역자들은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재조차 남기지 않으리니!'

태양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주변에 있던 정령신들이 황급히 피할 정도로 하얗게 달아오른다.

정기 흡수로 밀려오는 쾌락도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흑마도사 따위와 계약까지 감수하며 타오르는 나의 복수의지를 둔화시키지 못한다.

저 강대한 흑마도사의 정기를 지금처럼 계속 받는다면 나의 세계의 국신으로 복귀하여 복수할 수 있다.

다만 아주 약간 계약자에게 걱정되는 것은 힘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무식하고 무례한 자신의 개망나니 남동생은 결국 쏟아지는 멸시와 비난 앞에 참다가 이성을 잃고 신계를 멸망시켰던 것이다.

설마 저 흑마도사까지 그런 운명에 처해지는 것이 아니겠지.

가급적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 세계의 멸망만으로 끝날 일이 아닐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내가 이 세계를 모두 불태울 것 같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도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조금 강한 계약자를 얻어서 강해졌다고 감히 내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건방진 정령왕들의 계약자들부터 몽땅 태워 주리라.

'저 여신이 또 왜 저래?

오늘이 그날인가?'

마법을 발현시키면서도 정령신들의 눈치를 계속 보고 있던 흑마도사는 갑자기 태양이 하얗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온도를 급격히 오르자 부채를 흔들며 싸늘한 표정을 짓고 소름끼치게 웃고 있는 빛의 정령신을 보며 외모만 보고 선택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는 먼저 마음이 착해야 된다.

외모는 그 다음이야.'

평생 독신이었던 스승의 말을 흘려듣고 빛나는 미모에 홀려 죽을 고생을 하며 계약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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