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신과의 협상 -->
그런데 왜 마왕과의 계약서가 안 나타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그마치 주신의 양위를 걸었는데 반응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주신의 반응도 뭔가 이상했다.
"신도 10억이라는 기본 자격을 갖추면 모든 신은 주신이 될 기회를 가지네.
신위전에서 다수결로 지지를 받으면 주신이 되지.
양위하는 직위가 아니기에 물려줄 수 는 없지만 나의 권위로 일단 신위전의 자격은 부여하겠네."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수결로 지지를 받으면 주신이 된다고?
신위전?
이게 무슨 소리야?
"신위전은 말 그대로 주신이 되고 싶은 후보가 나와서 앞으로 어떻게 신계를 이끌겠다고 이야기하고 과반수의 지지를 받으면 이긴다네.
부끄럽게도 아직 내가 계속하고 있지만 자격을 갖추고 지지를 받는 신이 나오면 그가 주신이지.
힘만이 아니라 인덕을 갖추고 이끌 수 있는 자야말로 강한 자니까."
"......"
이건 완전히 사는 세계가 달라서 이야기가 안 된다.
주신의 친절한 설명에 머리가 찌근찌근 아파져 대화를 포기하고 카르마를 무시하고 싶다.
저기 잠시 멈춘 '크레쉬 플랜트'를 발동시켜 신국과 함께 신계도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이계에서 '자유 민주주의'라는 사상과 비슷한 것을 저 주신이 신계에 구축한 모양이다.
마신이 이를 갈며 항상 '주신? 곱게 미친 놈-!'이라고 욕을 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마신의 입장에서 저만큼 불쾌한 사상도 없을 것이다.
중간계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모든 권위를 가진 신의 자리를 인기도로 뽑는단다.
이 기생오라비도 주신이 될 수 있고 신도 10억만 넘으면 주신의 자리를 노린다니 개나 소나 다 주신이 될 수 있는 거냐?
그러니 전쟁신 주제에 꽃단장을 하고 다니고 여신들에게 인기를 얻는다고 전쟁에서 제외하는 미친 짓을 하는 것 아니냐?
내게 이런 식으로 쉽게 당하는 주제에 주신이라니 가당치도 않고 삼일 안에 신계가 멸망할 것이다.
이러니 주신을 양위하라는 소리에 마왕의 카르마 계약서가 미동도 안한 거다.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을 달라고 이 귀한 카르마의 계약서를 쓰다니 자괴감이 밀려온다.
정말 이번에는 포기해야 하나?
신들이 나만 보면 죽이려고 하는 통에 조사를 덜했더니 신계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설마 이것도 통과되는 것 아니겠지?
"셋째, 나를 최상급신으로 올리고 중간계에 대한 신의 행사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어떤가?
주신이여 이것도 다수결로 통과 시켜보아라.
이 내용은 마왕과의 계약을 수호하기 위해 신의 간섭을 배제하는 내용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신계를 방금 전까지 멸망시키려 했고 지금도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다.
최상급 신을 둘이나 죽이고 비록 죽어 마땅한 흑마법사이지만 수백만의 인명을 잔인하게 학살한 사악한 흑마도사이다.
그런 나를 빛의 최상위 신으로 임명이 가능할 리 없다.
"다행이군. 자네가 거절할 것 같아 제안을 못했는데 말이야."
"뭐가?"
엄청 불안한 느낌이 몰려온다.
저 놈의 주신과는 정말 말 할 때마다 손해보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러니 마신이 틈만 보이면 죽인다고 이를 가는 것을 십분 이해하겠다.
"자네의 현재 카르마는 최고위 최상급신에 해당하는 '극선'에 올랐네.
자네는 이제부터 그랑조아를 대신해 10인의 최고위 최상위신이네.
중간계 관리를 잘 부탁하네."
"야이-! 곱게 미친 것들아-!"
결국 전 중간계가 보는 앞에서 주신에게 욕이 나오고 말았다.
정말 눈물 나올 정도로 힘들다.
아무리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학살에 대한 감소가 안 되었다지만 설마 '극선'까지 올랐을 줄은 몰랐다.
또 긍정의 카르마가 수백만의 흑마법사들을 '안티 카르마'로 잡아 거의 최고까지 올랐다지만 신계가 백팔십도로 달라져서 이렇게 나올 줄도 몰랐다.
단지 긍정의 카르마가 높다는 것이 최고위의 최상급신이 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수백만을 죽인 학살자가 아니었던가?
그게 올바르다는 것인가?
그럼 부정적인 카르마가 높아 그랑조아가 나를 그렇게 죽이려고 하고 몰아 붙였던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 아닌가?
단지 카르마란 기준 때문이라면 백년간 그 고생을 하며 나를 고생시킨 신계를 멸망시킨다고 필사적으로 마법을 쌓아 올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원한에 찬 나만 바보가 된 꼴이 아닌가?
'그냥 나쁜 놈들이나 때려잡을 걸…….
아니 사악한 흑마도사였으니 잡아보았자 별 소용없나?
이젠 정말 피곤하다.'
내 따뜻한 마탑이 너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