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의 주신 -->
주신전에서 그랑조아는 이미 계약을 위해 출발했고 최상위의 최상급신이 9명 남아있었다.
나머지 최상급신은 주신살의 창의 결계가 풀리자 황급히 자기 신전과 신도들을 점검하러 분주히 떠나서 아무도 없었다.
주신은 흑마도사와의 계약한 카르마의 계약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하게 말했다.
"정말 욕심이 없고 정직한 자이지 않은가?
신계의 반을 달라고 해도 줘야 하는 상황에서 단지 화해할 명분만을 취하다니 주신으로서 이런 관용적이고 겸허한 최상급신을 영입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네."
"……."
주변의 최상급 신들이 표정이 이상하게 굳어갔지만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감상에 흠뻑 젖어 들어가는 주신이었다.
지식의 신은 이마를 오른 손으로 누르고 있었고 야수신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었다.
주변의 최상급 신들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인상을 약간 쓸 뿐이었다.
어차피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상이 마신에서 흑마도사로 바뀐 것뿐이다.
신계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한 번도 해가 된 적이 없으니 가만히 있는 거다 되뇌면서 말이다.
"더군다나 그랑조아를 배려해서 아이를 주신의 직위를 물려받게 하겠다는 포부가 정말 감동적이더군."
지식의 신이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는데 야수신이 맞장구를 치고 있다.
"그렇습니다.
아이라면 야망을 가지게 길러야 하지요.
그걸 전 신계에 보이다니 대단했습니다."
'그건 아니거든. 그러니 왕따 당하지!'
주변의 여신의 눈이 점점 도끼눈이 되어가자 지식의 신이 닥치라는 듯 신력을 올리며 야수신 을 노려봤지만 저 주신 밖에 모르는 애완동물신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카르마가 많이 떨어져 힘든 그랑조아와 나의 불민한 자식 때문에 전쟁이 힘든 것을 알고 최상급신의 중임을 자처하는 것을 보게.
더구나 중간계의 관리까지 맡겠다니 그때 나는 정말 감동했네."
"아드님이 아직 어려서 험한 전쟁터에 가기 힘들었지요.
저 정도의 힘이라면 경계는 걱정 없습니다. 허허허!"
'곱게 미친놈들 이라고 외친 것은 기억 안 나냐?
하긴 남자의 기백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도 저 흑마도사 입장이라면 욕하겠다.'
이제 지식의 신이 손톱으로 탁자를 긁고 있었다.
정말 미치고 환장 하겠는 것이 저 둘의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영겁의 세월동안 보아온 자신도 구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주변의 최상급신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딴 세상에 가려 했다.
어차피 저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할 것이다.
저 꼴이 보기 싫어 떼어놨는데 이제 명분도 없다.
새로운 전쟁신이 경계를 맡게 되면 주신의 가슴에 또 바람만 잔뜩 집어넣어 또 황당한 무슨 짓을 벌릴 것이다.
다른 신계나 마계에서 우리 신계를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상한 신계'라 하고 간단하게 '개판'이라 한다.
'곱게 미친 놈들'이 그나마 나은 표현이다.
그나마 정말 좋은 별이라서 신의 수가 압도적이라 다행이지 아니면 진작 망할 뻔 했다.
그래서 조금 성질이 독하지만 강단 있는 그랑조아를 주신으로 밀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카르마가 거의 바닥으로 떨어져 주변까지 위험할 지경이라서 그것도 끝났다.
저 정신 나간 주신이 왜 신위전을 하면 항상 과반수를 얻는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뒤에서 욕하던 여신들도 반 이상 몰래 지지를 하니 비결이라도 알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까지 카르마를 확인하고 나의 불민한 자식을 교육하겠다고 창을 꽉 쥐는데 어찌 내가 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아들이 이번에는 임자를 만난 것이야. 얼마나 발전할지 기대되네."
"반드시 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드님께서 훌륭한 전쟁의 신의 모습을 보일 그날이 기대되옵니다."
'전쟁의 신 가지고 협박하려고 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게 저렇게 해석이 되나?'
주변의 신들이 이제 억지로 졸려고 하는 듯 고개가 앞뒤로 흔들거리자 지식의 신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상기된 얼굴로 일어났다.
"주신이시여. 많은 일이 있어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만 마쳐야 할 듯합니다."
"그래? 내가 바쁜 신들을 붙잡고 있었군.
수고들 하게.
난 놀란 부인을 안심시켜 주어야 하지."
'당신 탓이거든요?
자식이 죽어 창에 봉인되어도 한없이 긍정적인 당신 때문에 쓰러진 것이거든요.
아무리 나중에 손실 없이 복원 되도 어머니에게는 충격이거든요.'
여신들의 표정은 이미 무표정에 가까워졌고 그런 속도 모르고 야수신이 주신을 냉큼 따라나섰다.
"놀란 속에 좋은 음료와 음식을 가지고 가겠습니다."
"같이 가세나.
오래만이라 정말 좋아할 거야."
'절대 아니거든요.
그 순한 농경의 신께서도 언젠가는 혼쭐 내준다고 벼르고 있거든요.'
쿵-! 쿵-!
주신과 야수신이 멀어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지식의 신이 자기 자리에 걸터 앉았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