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신들의 신계로 출근 -->
화려한 건물 안쪽의 가장 화려한 자리에 앉은 인영의 황금빛 머리카락에 태양빛이 닿자 찬란하게 반짝인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와 그린 것 같은 얇고 진한 눈썹은 호수보다 푸른 눈동자를 장식한다.
단정하게 뻗은 코와 여인처럼 붉지만 꽉 물린 입술이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
그림에서 나온 동화 속의 왕자님과 같은 미남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목 아래에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근육이 약동하며 전사의 패기가 넘쳐흐른다.
검은 빛이 영롱한 갑옷이 전신을 감싸고 있고 최상급의 와인보다 붉으며 맑게 빛나는 망토가 그 갑옷과 앉은 의자를 감싸고 바람도 없이 일렁인다.
오른 손에 들린 화려하게 장식된 은회색의 성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사나이의 얼굴은 무엇인가 고심에 빠진 듯 굳어있다.
그리고 방의 정문이 조금 열리며 정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예하."
"혼자 있고 싶다."
목소리도 다시 듣기 힘들 저음의 청명한 음색으로 답하자 대답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임시 추기경들께서……."
꽝-! 퍼어어어억-!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며 일단의 노인들이 식식거리며 방으로 난입한다.
"오 때깔 좋다-! 친구들은 몽땅 사지로 몰아넣고 지 혼자 말이야."
"왜 여자 후리러 안가고 분위기 잡고 있냐? 안 쓰려면 반지나 내놔-!"
"........"
순식간에 노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당장에라도 목을 잡고 흔들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전대 용사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다른 초인들과 백금신용 에렌드라님과 죽어라 싸우다 순식간에 2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악에 받쳐서 일찌감치 탈락한 현 용사에게 성검을 다시 받아 싸워서 결국 동료와 같이 살아남았다.
숨을 돌리기도 전에 교황선출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만명 중에 살아남은 일천 가량의 초인들은 정말 지독한 전투광들 이었다.
일격이 치명타이지 않은 것이 없었고 무아지경의 싸움 끝에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악신이 자신을 교황으로 인정하고 전 중간계에 선포했다.
"전 용사의 전쟁신의 교황의 취임을 축복하노라.
3년 후 다시 교황선출이 벌어질 때까지 '전신의 가호'를 수여하고 '전신의 맹세'를 영구히 주노라."
전신의 가호라는 검은 갑옷이 자신에게 입혀지고 자신은 가장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동시에 8서클에 도달하며 하급신으로 힘과 위엄을 갖추었다.
자신의 손에는 황제가 가져오면 왕국을 수여하겠다는 불노불사의 보물이 주어졌다.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얼이 빠진 자신의 동료들과 천명의 초인들 중 다수가 개종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 후 임시교황을 부교황으로 바꾸고 신계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백금신용 에렌드라님을 중간계의 총 관리자로 임명하였다.
바로 자신의 상관으로 말이다.
"앞으로 잘하렴. 알겠지? 알아야 한다."
신전보다 거대한 백금신용의 머리가 살기가 가득한 채 자신의 눈앞에서 이빨을 번득이며 노려보는데 오금이 저려 왔다.
8서클의 하급신이 되자 자신보다 수십 배로 강한 9서클의 위대함이 보이는 것이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신녀들의 손에 이끌려 성대한 취임식도 벌어지고 잔치도 벌어졌다.
저 부교황은 임시가 아닌 것이 어디냐면서 연신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새로이 임명된 초인 추기경들은 연신 자신의 손의 반지를 노려보며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료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고 있고 특히 통합교황은 세상 다 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신이시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진작 말해주셨으면 좋았잖습니까. 주신이시여!"
저 소리만 미친 듯이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진퇴불가의 나락에 빠졌다.
교황을 그만두자니 저 천명의 초인 추기경들의 굶주린 늑대와 같은 표정이 두렵다.
그렇다고 하는 척하자니 에렌드라님의 브레스에 먼지가 될 것 같다.
자신은 이 갑옷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
세상이 싫어 피해 있으면 동료들이 찾아와서 죽일 듯이 갈 구어 댄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결국 전대 권황에게 멱살이 잡혀 흔들리며 포기가 무엇인지 드디어 배우는 전쟁의 신의 교황이었다.
전대의 용사를 교황으로 임명하고 백금신용으로 목줄을 채운 흑마도사는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천계로 이동했다.
"카하하하하-! 이 맛이야!"
연신 웃음을 흘리고 공간이동으로 신계의 입구에 도착한 순간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중간계도 깔끔하게 끝났고 신력도 하이엘프의 제국에서 거의 날렸지만 전쟁의 신국에서 몇 배를 벌어들인 것이다.
그랑조아를 치료하고도 남을 신력이 넘쳐나 자신을 휘광으로 감쌌다.
누가 보아도 자신은 최고위의 최상급신이었다.
"이래서 신이 인간들을 선호하는군.
쉽군! 쉬워-!"
거대한 신계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직선의 긴 계단을 따라서 옆으로 도로가 있고 황금빛의 건물이 세워진 방사형의 구조였다.
중앙의 계단을 따라 횡으로 펼쳐진 건물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직선의 계단 끝에 저 멀리 가장 크고 화려한 주신전이 있었다.
화려한 계단에 역사적인 한 발을 내디디려는 흑마도사는 입구에서 제지 받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상급천사가 황급히 고개 숙이며 말을 하는 것이다.
"처음이신가요? 이 계단은 여신전용입니다.
남신은 저기입니다."
그리고 저 멀리 조그만 문을 가리켰다.
수수한 그 문 뒤로는 직선이 아닌 나선으로 신계를 끝없이 감싸면서 펼쳐진 좁은 도로가 보였다.
"여신전용?"
"예. 치마를 계단 밑에서 쳐다보는 성회롱 사건이 일어나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보석과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신계의 대문과 아무 장식도 없이 허름한 문을 번갈아 보며 흑마도사는 혼란에 빠졌다.
'성희롱은 뭐야? 여신 전용?'
좋았던 기분이 싹 가라앉고 처음 듣는 용어에 고민하는 흑마도사였다.
혹시 자신을 또 엿 먹이려는 신들의 음모인 것인가 생각했지만 몇 명의 여신이 계단 앞에 선 자신을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지나가는 것과 긴 나선의 길 위에 몇 명의 남신들이 달리는 것을 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여신들이 문에 오르자 계단이 자동으로 빠르게 움직여서 편하게 이동하는 모습과 저 멀리 남신들이 달리는 모습이 겹쳐져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급천사의 말은 진실이었다.
‘뭐야? 여긴.’
신계의 첫 인상은 혼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