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리와 이익 -->
기뻐하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모를 회색빛의 웃음소리가 화면을 넘어 주신계에 끔찍한 압력으로 전해진다.
창조신의 권능조차 막아내는 주신계의 방어막도 지역우주 너머의 거리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자신을 보는 자들을 모두 무릎을 꿇릴 듯이 압력을 가해온다.
마치 창조주 앞에 하급신이 다시 되어 올려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떨리는 몸을 투기를 억지로 일으켜 진정시키고 이 사태를 다시 정리를 하는 전능의 휘였다.
‘이것이 10중심?
도저히 어떻게 할 존재가 아니다.
차원의 마도신이 10중심이라고?
영광의 심판을 통과하고 나서인가?
그런데 이런 사실이 왜 알려지지 않았지?
내가 그런 존재에게 주신장전을 신청한 것인가?
그래서 내 예지감각이 그렇게 위기를 전달해 온 것인가?
저........저건 주신장전의 계약서-!
어떻게 저것이 또 넘어간 것이지?’
갈수록 증폭되던 불안이 바로 앞에서 현실화되었다.
10중심이 상대라면 주우주의 전 전력이 달려들어도 승산이 없다.
그런데 어느새 주신장전에 대한 계약서가 상대방에게 넘어가 있다.
이미 주신장전에 대한 모든 사항은 기본적인 사항으로 계약서의 형식이 완성 되어있다.
그러나 관리주신이 어떻게든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보겠다고 조항을 흥정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가계약서이다.
물론 자신의 인증이 되어있다.
어차피 주신장전을 통해 차원의 마도신을 패배시키고 정령계로 보낼 생각이라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걸 절대계의 10중심이 된 차원의 마도신이 흩어보고 있으니 피가 차디차게 식는 느낌이다.
저대로 상대가 인증을 하면 바로 주신장전의 시작이 된다.
자신과 10중심의 전력차이는 절망적인 격차이다.
어떻게든 막고 토벌도 완전 재검토를 해야 한다.
허나 만족스러운 음성이 회색에게서 터져 나왔다.
“좋군―!
아주 좋아-!
개시시간과 장소도 이쪽에서 시작을 할 수 있다니 약자에 대한 강자로서 배려가 넘치는군.
그럼 지금 당장 시작을 할까?”
회색이 된 차원의 마도신이 가볍게 계약서의 하단에 서명을 하고서 투기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숨을 못 쉴 정도로 압박을 받고 있다.
자신이 이런데 예비 창조신들은 볼 것도 없다.
다들 원탁에 힘겹게 기대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전투를 벌이면 아무 것도 못하고 소멸될 것이다.
적어도 13써클을 넘보는 최고위 창조신 정도는 되어야 앞에 설 자격이 있을 것이란 예상이 터져 나왔다.
허나 그들조차 감히 10중심에게 덤비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인맥까지는 아직 없으니 그런 구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떨리는 몸을 추슬러서 투기를 끌어올리고 대비하려고 하는데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검을 어깨에 멘 남성이 공간을 가르고 화면 옆에서 나타난 것이다.
“쯧쯧-! 회색님이 주신계의 창조신들을 데리고 뭐하는 짓이냐?
절대계의 너의 영역에서는 무엇을 하든 발전의 카르마에 어긋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주신계에 직접 개입은 10중심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라도 해당 주우주의 창조주들에게 알리고 하도록 해라.”
“푸후후후훗-! 오래간 만에 보는 무척 그리운 얼굴이라서 장난 좀 쳐보았습니다.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오오? 등 뒤의 걸레는?
과거의 저입니까?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오른쪽 어깨로 넘긴 파멸유혼검에 걸쳐진 차원의 마도신이 보였다.
의복은 걸레수준에서 자동복구중이고 얼굴이나 모든 육체가 근원의 칭호를 가지고도 회복이 못 따라갔는지 엉망진창이다.
척 보아도 멀쩡한 곳이 아무 곳도 없다.
아직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숨을 쉬고 있지만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만한 상황이다.
“마도신이 힘이 부족해 자폭을 하는 수치스런 꼴을 또 볼 수는 없지.
신체를 완전히 다지고 다져서 어느 정도 쓸 만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미끼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쿡쿡-!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바람가의 교육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어떤 재능을 가져도 결국 절대에 도달시키고 만다.
그것이 이런 강제주입 방식인지는 상상도 못했지만 효과는 탁월하다.
슬쩍 파악해 본 결과 연산력과 신체의 내구도가 급상승되어 있다.
무엇보다 모든 분야에서 예비 창조신의 한계치까지 모두 도달해 있는 점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이 정도면 차원권능의 절반도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주신장전을 조금 더 확대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생각과 다르게 마도신의 오리진님이 손에 쥐고 있는 계약서를 쳐다보며 말씀을 하신다.
“그게 주신장전의 계약서냐?”
“예. 기본내용은 이상은 없습니다.
또한 회색으로서 공증까지 했으니 이제 과거의 제가 서명만 하면 끝입니다.
그런데 주신장전에 대한 도전권을 얻는 대가가 과거의 제가 절대 납득할 수준이 아니라서 문제입니다.”
“얼만데?”
“16조입니다.”
“정말 싸군.
그걸로 주신들의 수장이 될 수 있다면 아낄 것이 없지.
안 그러냐?”
부르르르르-!
그 말에 흠칫 거리며 바들바들 떠는 차원의 마도신이 보인다.
말은 못하지만 미칠 노릇일 것이다.
회색인 자신과 바람가의 오리진들에게 정기 16조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우주의 예비 창조신인 과거의 자신에게는 비할 데가 없는 거대한 가치다.
몇 개의 창조신계를 통째로 살 정도인 것이다.
더구나 용병신으로서 목숨을 걸고 벌어들인 정기다.
휘하 주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구 베풀고 살았지만 자신이 직접 쓰는 것은 거의 없던 과거의 자신은 악착같이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마도신의 오리진이 다음 말을 하자 벌이는 차원의 마도신의 행동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서명한다. 실시.”
“실시-!”
신병이 장군에게 구호를 붙이는 것처럼 잔뜩 긴장서린 대답이다.
거기에 자신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초고속으로 파멸유혼검에서 뛰어내려서 서명을 끝내는 과거의 자신을 쳐다보며 잠시 후 한마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너 많이 변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윗분들 말을 잘 들었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바락바락 대들더니?”
“아하하하하.......제길-! 닥치지 못해.”
아직은 기가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쏘아붙인다.
그리고 척 보아도 비참한 심정으로 이미 서명을 끝낸 계약서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내 정기.........이계로 가도 창조신계를 구매할 정도의 정기가........그걸 내 손으로 날리다니?
뭐가 이러지?
내가 도움을 받는 것 맞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상과 벌이 공존하는 진리의 혈족이라고 너무 공정하신 것 아닌가?’
서명 한번에 16조가 날아갔다.
몇 번이나 죽음에서 부활하며 겨우 얻은 정기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간다.
벌어들일 때는 죽을 맛인데 쓸 때는 아무 흔적이 없다.
이렇게 주신장이 된다고 해도 정상적인 권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이전까지의 범죄행위는 말소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불가해의 팔시조를 익혀서 대부분의 마도가 안 먹히는 전능의 휘다.
어떻게든 이기면 다행이지만 패배하면 범죄자로서 다시 토벌당할 것이다.
그래서 계약서를 당장 찢어버리고 싶지만 결코 주변에서 용납안할 것이다.
이들에 비해 약자라서 자기가 번 것도 마음대로 못 쓴다.
이러려고 남의 용병전투에 최악 최흉의 마도신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최선을 다해 싸웠는지 자괴감에 한참을 몸을 떨었다.
그런데 미래의 자신이 격려라고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이기면 돼.
절대 그냥 날린 것이 아니야.
전능의 휘에게 이기기만 하면 바로 주신장이다.
빛의 신의 금기를 무수히 어긴 흉악범이 단숨에 주신들의 수장이 되는 것이라고.
이것이 엘리트 코스에 고속 출세의 정도지.
이게 바로 왕도(王道)이며 패도(覇道)!
이제 넌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생(神生)의 주인공-!
힘내라!
힘-!
과거의 나.
푸하하하하핫-!”
결국 폭소를 터트리는 회색을 보며 차원의 마도신의 눈이 서서히 분노로 물들어 갔다.
미래의 자신은 분명히 현재의 자신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을 즐기고 있다.
도플갱어처럼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지 않는 것은 감사하지만 왜 자신의 고난에 기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더욱 열이 받는 것이다.
“으드드드득-! 닥쳐라-!
하필 떡밥이 전능의 휘냐-!
불가해의 팔시조 덕분에 마도신과 상성이 최악이라는 것을 몰라?”
“카하하하하하핫-!
나도 이 틈에 과거의 빚을 갚아야지.
그리고 전능의 휘만큼의 떡밥도 없다고.
불가해의 팔시조를 익혔잖아?”
말은 그렇지만 다른 상대를 고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과거에 죽여 정령계로 보낸 전능의 휘가 눈앞에 얼쩡거리고 있는데 참기 힘들었다.
‘나는 회색이다.
선도 악도 아닌 근원이다.
용서와 관용보다는 심판과 선택이 나의 권능이다.
그런 나에게 죽음을 경험 하게한 놈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조금만 늦게 나오셨으면 직접 주신장전을 받아들이고 다 쓸어버릴 수 있었는데 어렵군.
역시 나의 감정은 구현하신 마도신의 오리진님께 직접 전달되는 모양이야.
이거 복수를 하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밀어야 하겠군.
그것이 회색에게 맞는 길이기는 하지.’
이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는 회색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전능의 휘와 전지의 성의 합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죽었던 과거가 떠올라 직접 보는 순간 정말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아마 마도신의 오리진님께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감지하고 나오지 않으셨다면 정말 그렇게 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은 회색의 복수가 아니다.
너무 쉬운 복수는 미련이 남고 후회가 길다.
그래서 복수를 하고나서 허탈하고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신이 전능의 휘를 정정당당하게 꺾는 것만이 지금도 갈기갈기 찢겨져 불길에 타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킬 것이다.
그 전에 과거의 자신을 놀리는 것은 여흥이다.
어찌 표현할까?
대부분은 전능의 휘에 패배해 죽어 정령계로 끌려가다 황금의 절대자에게 매도당하고 소멸당하고 잔재조차 흑염의 절대자에게 말소된 자신과는 다르게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허나 그 반대의 마음도 있다.
과거의 자신이 잘 나가는 것을 보니 자꾸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도플갱어의 저주 따위는 가뿐하게 말소한 자신이기에 그런 하찮은 본능은 아니다.
사실 지금의 예비 창조신에 도달한 차원의 마도신과 회색인 자신이 동일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지금의 차원의 마도신은 단순한 힘뿐만이 아니라 성향 또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라면 절대로 주신장의 도전권을 얻기 위해 16조의 정기를 한 번에 날리는 통 큰 계약 따위는 죽어도 안했다.
자신은 잘 활용도 못하는 바람성조차 주기 싫다고 당장 사용 못하게 성멸에게 일체화 시킨 욕심 많은 멍청이다.
그런데 비록 강제는 있지만 자신 스스로 서명을 했다는 것은 정말 큰 변화다.
저런 변화가 모이고 모여 운명을 늦추거나 약화시킨다.
이미 계약을 하고 나서도 아까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직전인 것을 보니 아직 말소를 벗어가기는 한참 멀었다.
잘 되어야 황금에게 걸려 소멸될 정도이니 더욱 주변의 도움과 변화유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울수록 변화의 폭이 커지니 멈출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주었지만 결론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가 대다수의 감정이다.
‘도움은 주되 결코 공짜는 안 되지.
그럼 죽도록 고생하다 말소된 나는 뭐가 되나?
단순한 병신이 아닌가?
회색과 진리의 혈족의 도움은 혹독하게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쿡쿡-! 이래서 진리께서 상과 벌을 같이 주셨군.
동정도 공짜도 아니니 어떤 일을 해도 아주 부담이 없어.
강해질 만큼 강해져서 말소될 운명을 어떻게든 약화시켜봐.
네가 10중심이 되어야 나도 이 지옥 같은 현세에서 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전장에서 생존을 위해 악몽처럼 날뛰는 최흉의 마도신이 죽음을 바라는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적뿐이고 죽도록 일해도 대가는 현상유지도 힘들었다.
아마 진리께서 자신보다 먼저 죽으면 전 우주에서 가장 비참한 몰골로 만들어 주겠다는 제한이 없었으면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미래의 자신이 10중심이 된 지금 그런 약속은 성취되어 풀렸으나 그걸 알려줄 필요는 없다.
단지 악동과 같은 미소를 띠우며 차원의 마도신이 꽉 쥔 채 세상이 멸망을 한 듯 절망서린 표정을 하고 있는 주신장전의 계약서를 뺏어서 신청대가인 정기 16조에 밑줄을 치고 확대해서 놀릴 뿐이다.
“와-! 이제 조 단위로 노네.
쪼잔 했던 주제에 많이 컸어.
역시 출세하고 볼일이야-!
전능의 휘에게 이기면 주신장-!
당연히 명함뿐이겠지만 범죄신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디냐?
그런데 대가가 16조-! 16조-! 16조-! 16-조-!”
“으아아아악-! 치워-!
이 자식아-!”
절대로 정기를 그냥 날린 것이 아니다.
이겨서 주신장이 된다면 가치가 있다고 애써 자신을 필사적으로 납득시키던 차원의 마도신이 발작하며 회색에게 달려든 것은 조금 후였다.
물론 회색에게 상대가 안 되니 바로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입고 바닥에 널브러진 것은 당연했지만 다시 순식간에 회복하고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서 덤벼들기를 반복한다.
그런 촌극 같은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니 전능의 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