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념(信念)과 오기(傲氣) -->
신계주신이 신의 생사를 주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계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예외가 둘이 있다.
하나는 전시이다.
신계가 위험할 정도의 거대한 전쟁을 치러야 되어서 완전한 통제가 필요할 경우이다.
또 하나는 신계주신의 힘이 신계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커야 한다.
모든 신의 총력이 신계주신보다 못하다면 하급신의 운명정도야 얼마든지 비틀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신계에 아직 편입되지 않은 하급신이지만 죽여도 좋다는 말에 신계자아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명백하게 후자라는 뜻이다.
‘하긴 신계 수호신으로 숨겨진 주신인 나를 처단하려고 해도 아무 말도 안했는데 하급신 몇 명 정도야.’
이미 신계주신의 힘이 모든 신계의 신들의 총력을 넘어섰다는 것을 눈치를 채기는 했는데 이걸 직접 경험하기까지는 누구도 믿지 못할 사태다.
지금 차원 신계의 주신들의 숫자만 쳐도 주신계를 능가할 지경이다.
어지간한 창조신계도 이 정도의 주신을 채울 수 없었고 부족한 하급신도 일단 저들만 들어오면 보충이 된다.
물론 충성심이나 안정면에서 최하지만 신계주신이 저렇게 강력한 이상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신이 반란을 해도 그대로 제압할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 반란으로 정당한 숙청 기회가 왔을 때 여주신들을 제압하지 않았다.
다음에 정령계에서 주신들을 싹 쓸어오고 신들의 과거 숙적이었던 거신족까지 고위직을 주었다.
여기서 바로 주신장전을 벌인다고 했을 때는 정말 이 신계가 안 망하는 것이 용하다고 생각을 했다.
단 하나만 벌어져도 다른 신계라면 지배층들이 몇 번이나 뒤집어질 사항인데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포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조용하다.
거기에 전투계열이 아닌 새로운 주신들이 드디어 왔다고 축제만 며칠째 벌이고 있다.
물론 지긋지긋하던 정치적 대립도 없이 말이다.
발전은 고사하고 망해가는 신계가 극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 최선의 방책이라니?
손댈 수 없는 중환자에게 극약을 마구 부어 넣은 꼴인데 살아나고 있다고?
하긴 차원의 마도신이 신계주신으로 있는 이상 완전히 망할 염려가 없으니 극약들로 그동안 문제가 되던 암들이 모두 녹아내린 꼴이로군.’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이 극약들의 투입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 초월자들로 구성된 하급신들이 말이 좋아 백만이지 모두 중간계 출신의 지성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유한한 생명체출신의 신들이 어느 정도로 불안정한지는 이미 몇 차례의 사례로 검증이 끝났다.
그래서 신계에 정식으로 편입된 적은 거의 없는데 이건 구분을 하지 않고 아예 바닥까지 긁어서 채울 분위기인 것이다.
주신급의 마신들까지 직속세력으로 수백 명이 있으니 그러고도 남는다.
더 골치 아픈 것은 바로 저 금속괴물들이다.
‘저 기계덩어리들은 또 뭐야?
기계 마도신?
초월자와 융합한 기계문명인가?
행성파괴병기?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저것들이 신계에 정말 쓸모가 있을까?
다른 신계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개판에서 난장판이란 평판인데 이제 뭐라고 할지 겁이 난다.
생각만 해도 정말 암담해지지만 그렇게나 신계 명예에 까칠하던 여주신들이 새로 유입된 과거의 숙적들을 신경을 쓰느라 신계주신에게 딴죽을 걸지 않고 가급적 넘어가는 분위기이니 자신이 나서기도 곤란하다.
아니 지금 그랬다가는 신계주신의 성격상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신계의 안정을 위해서 꾹 참기만 하더니 갑자기 무슨 의뢰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성격이 완전히 변해서 전부를 몰아 부치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다른 신들은 필요 없다고 방치되어서 축제분위지만 신계에 혹시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될 까 두려워 감시하려고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찍힌 모양이다.
게다가 신계수호신으로 신계 주신을 수호 및 감시하는 강력한 주신이라는 것도 들통이 났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부려 먹히게 생겼다.
갈수록 암담한 생각만 드는 야수신이었다.
“빨리 주신의 숲으로 가시죠.
여기서 지체하면 또 혼납니다.”
용사신이 치욕적인 대면보고를 벗어나서 그런지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어느새 옆에 서있었다.
언제 선별전의 전장에서 이탈을 했는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슬쩍 뒤를 보니 신력으로 꽁꽁 묶어서 짐짝처럼 끌고 온 하급신들이 3명이 보인다.
아까 신계주신이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떠들던 하급신들이다.
과거 평생을 같이한 동료라더니 신뢰를 배신당하고 아예 사정을 보지 않을 모양이다.
이것들은 또 어떻게 해야 중급신으로 만들어 권능까지 깨울지 걱정이다.
자신의 그런 기색에 눈치 빠르게 바로 반응을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들 성향과 약점은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백년을 동료로 지내서 숨겨진 마음은 몰랐지만 들어난 겉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이야 아무 사정을 모르니 반항은 하겠지만 사정을 알면 결국 저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 수 있는 놈들이면 그런 불만을 가지고 저한테 백년간 붙어있을 리가 없지요.
그럼 권능을 만들고 중급신이 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제가 일을 다 할 것이니 이 자식들이 못 참고 덤비면 가끔 사정 보지 마시고 패주시면 됩니다.”
용사신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옮기는 야수신이었다.
눈빛도 살벌해진 것을 보니 이대로 임무에 실패하고 물러날 기색도 없었다.
그리고 깨우면 될 것인데 정신을 잃은 채로 끌고 다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다.
용사신이 과거 동료들을 바닥으로 끌고서 따라오는 소리가 울린다.
질질질질-!
되든 안 되는 강제든 자의든 신계주신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신계주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신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따라야 하는 것이 신계 수호신의 주 임무이기도 했다.
최소한 신계발전에서 지금 차원의 마도신을 능가하는 신은 신계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감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신계주신의 마련해준 수련공간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권능으로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일단은 되었다.
본인의 한계와 동료의 필요성을 알았으니 말이야.
용사신이 과거 용사 중의 용사이고 재능이 뛰어나서 나 역시 착각을 했어.
용사 혼자가 아니라 용사의 동료가 있어야지 그 능력이 완전히 발휘되는 것이었군.
결국 목숨을 걸고 뒤를 받쳐주는 동료가 없으면 상위의 신격을 가진 마왕토벌을 불가능했지.
그러나 그 동료들이 이미 세파에 닳고 닳은 늙은이들이라서 이것 참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
‘불굴’의 광역권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것은 목숨조차 맡길 수 있는 ‘신뢰’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의리와 신뢰는 피가 끓는 젊음을 가진 자들의 특권이다.
젊은이들은 가진 것은 자신의 육체뿐이고 미래의 가능성을 확신하기에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다르다.
이미 삶의 쓴맛과 단 맛을 다 보았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기에 결코 무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노인의 현명함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급격한 역량의 강화를 필요로 하는 지금은 방해다.
결국 추가 전력이 개발이 필요했다.
지금 다 드러나 있는 신들을 사용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혹한 선별전의 예선전을 끝내고 대부분 널브러진 초월자들에게 향했다.
멀쩡하게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하이엘프 퀸들이 단연 돋보였지만 어차피 그랑조아의 종속신들이다.
여주신들의 후계자인 그랑조아는 이제 신계 세력의 3할의 전력을 가진 세력의 대표가 되어서 저들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니 일단 배제다.
다른 신들의 종속신까지 주력으로 동원할 정도면 안 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다.
그리고 조금 살펴보니 바로 시선을 끄는 존재들이 보였다.
전방에는 검을 든 검사와 중간에는 용사, 가운데에는 마법사다.
뒤에는 권사가 경계를 하면서 휴식시간에도 한 치의 긴장도 풀지 않았다.
완전 녹초가 되어 헐떡이면서도 철저하게 방어대형을 갖추고 대기 중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종족처럼 군대를 만든 것도 아닌데 소수의 인원으로 용케도 잘 버티었는지 죽음을 경험한 횟수도 극단적으로 낮았다.
상위 존재와 싸워보았던 과거의 경험이 이렇게 우열을 나눈 것이다.
‘과거 용사들의 제자라고 했던가?
저들은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으니 권능 개발을 하면 가능은 하겠군.
그런데 뭐지?
저 거대한 가슴은?
정말 자연적으로 저게 가능한가?
이계처럼 가슴 성형을 했을 리는 없고?
하급신이 되면서 마력이 다 저기로 모였나?
화염계열의 마도사 중에 저런 경우가 있던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차원의 마도신조차 잡념 같은 의문이 끝없이 생길 정도의 하급신이 된 적마도사의 가슴의 크기였다.
여주신들의 풍만의 극치를 다툴 정도로 완벽한 육체도 경험했던 자신이다.
그런데 현재 용사와 동료들이 만든 방어진형 가운데서 몸에 빈틈없이 달라붙는 비단 옷을 입은 여마도사의 젖가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커다랗다.
더구나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처지는 느낌도 없이 숨을 쉴 때마다 부드럽게 아래위로 율동을 하는 모습에 저절로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젖가슴이 너무 크면 기형적으로 느껴져야 하는데 늘씬하게 쭉 뻗은 팔 다리와 더불어서 엉덩이까지 젖가슴에 비할 정도로 커서 절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이건 남성이라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이었다.
신이라기보다 마신과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풍겼다.
‘써큐버스의 혈연이라도 받았나?
보기에는 써큐버스 퀸인 엘레노아보다 더 자극적인데?
아니 순수한 인간인데?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생명체에서 하급신이 되면서 생긴 신체의 변화가 어떻게 저렇게 극단적으로 표현이 가능한지 정말 연구대상이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중에 하자.
생존마탑에 있는 영령들도 준비를 시켜야 하고 성녀들도 대기시킨다.
이제 총력전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주신전이 진동을 하며 달에 쓰러져 있던 하급신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고 신기만이 놓여있던 빈 자리위로 모두 이동을 시켜 자연스럽게 착석을 시켰다.
물론 의식을 잃은 초월자들이 대부분이라서 거의 소동도 없고 의식이 남아있는 존재도 뭐라고 할 여력이 없었다.
다만 주신전을 가득 채운 자신의 권능과 신력이 신력과 고갈된 그들의 신체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더욱 잘될 것 같다.
내가 인간출신이라서 이들과 더욱 잘 맞아.’
이제 이대로 내버려두면 알아서 과거보다 더욱 강해져서 완치가 될 것이다.
생존마탑과 연결된 차원의 문을 열었다.
“차원의 교황이여. 그리고 차원의 성녀여.
준비는 모두 되었는가?”
열려진 차원의 문 너머에서 교황들의 목소리가 울린다.
“전쟁의 성녀를 7써클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성녀들도 거의 6써클입니다.
영령들도 이번 참전에 동의했습니다.”
“영령들은 지금 준비시켜라.
성녀들은 자신들의 신전에서 대기하라.
이번 주신장전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을 세운다면 하급신이 되는 길을 열어주겠다.”
“목숨을 걸고 따를 것입니다.
아니 영혼을 걸고서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환생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영령들이다.
그런데 바라던 인간의 부활만이 아니라 신으로서 승급될 기회가 열렸다.
수많은 역사 중에서 이런 호기는 없었다.
잠시 신기의 자아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인간 출신인 차원의 마도신이 자연스럽게 창조신이 되는 길목인 주신장이 되기 위해 파격에 파격을 하고 있어서 온 행운이었다.
차원의 문을 넘어서 영령들이 주신전에 밀려오면서 하나하나 신기에 깃들기 시작한다.
이제 단순한 하급 신기가 아니라 영령이 보좌하여 스스로 움직이고 강화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겨라.
승리만이 너희들의 미래를 불러올 것이다.
승자에게 영광 있으라-!”
“승자에게 영광 있으라-!”
무엇인가 광신적인 분위기까지 보이는 차원의 마도신과 영령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의지와 계획은 다르게 은밀하게 교황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들도 중요하지만 성녀들이 가장 중요하다.
또 왕녀들도 준비시켜라.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바로 폭파 스위치를 누르고 이계로 피하도록 해라.
망설이면 안 된다.
어차피 지면 끝장이다.’
‘예.’
폭파 스위치는 바로 생존마탑을 기폭장치로 하여 차원의 창조신성을 파괴하고 성단까지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자폭장치였다.
영원의 심판을 치루기 전에 맡겨놓았던 자폭장치를 아직 회수를 안 하고 이렇게 최후의 공멸수단으로 준비한 것이다.
만들어진 신기에 자아로서 안착이 되고 있는 영령들과 생존마탑의 각 신전에 위치하고 있는 성녀들, 거기에 따로 지시를 받아서 준비 중인 왕녀까지 전부 확인한 차원의 마도신이 최종적으로 생존마탑의 자폭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전혀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폭파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마력을 더 집어넣었다.
‘내가 어찌 살았는데 나 혼자서 곱게 죽을 것 같으냐?
실패하고 망할 때는 다 같이 함께이다.
같이 죽어보자.’
용병신으로서 자존심과 독기가 완전히 살아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