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異界)와 허계(虛界) -->
그렇게 당했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 타령하는 꼴을 보니 열이 받아서 알몸이고 뭐고 붙잡아서 무릎에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가 부풀도록 때려놓았다.
당연히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겨우 주신정도로는 이제 자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힘과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 히메지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침묵을 한다.
이것이 영광스런 과거로 돌아갈 유일한 기회임을 아는 까닭이다.
‘인증전 상대의 예비 창조신의 미남계에 넘어가서 신족이 되었으니 일족의 기대주이든 희망이고 뭐고 절대 돌아갈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다시 싸워 이기는 수밖에 없지.
승리하여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만이 그나마 일족에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잡는다.’
하지만 지금 반응을 보니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연인인지 원수인지 모르겠으면 이번 주신전에 박살내놓고 자신의 위치를 찾은 다음에 다시 시작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말에 망설이는 리아스나였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패배하면 두고두고 엉덩이를 칠 것이라는 말에 두려운 눈빛으로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힘에 굴복했으니 여유가 생기면 다시 사랑 놀음을 하려 하겠지.
이런 철부지를 전쟁에 써먹으려니 지극히 불안하고 심란하다.’
이 상태로는 보나마나 전장에서 무슨 짓을 할지가 당연하니 한숨을 푹푹 쉬면서 훈계에 들어갔다.
아니 살살 달래는 중이었다.
“휴우-! 다시 말하겠는데 연인인지 원수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번 배반한 놈은 또 하게되어있다.
만나서 오해라고 밝혀져도 네가 정령계에 처박힌 사실은 바뀌지 않고 또 그렇게 된다.
이것이 운명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어차피 원수 될 놈은 네가 아무리 잘해도 어차피 원수가 되니까 유리할 때 끝장을 내야하고 불리하면 피하라는 이야기이다.
마신족에서 신족으로 전직이 되어 권능이 하락된 넌 지금 아주 불리한 상황이고 상대는 주신장이 된 지극히 유리한 상황이지.
갈수록 너와의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에 그 놈을 완전히 죽이고 관리하는 주신계까지 박살을 내면 신계의 징계로 다시 예비 창조신이 될 수도 있어.
그럼 대등해지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훌쩍거리면서 손자국모양으로 빨갛게 부풀어 오른 엉덩이를 손으로 가린 리아스나의 눈에서 언뜻 빛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해답을 찾은 것 같은 표정이고 눈물도 멈추었다.
‘사랑이 아무리 숭고해도 결국 상대를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대가 창조신으로 까마득하게 위로 올라간 이상 겨우 중급 주신인 자신도 올라서지 않으면 대등한 관계가 형성될 리가 없지.
허나 창조신이 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올라갈 수 없다면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도 계략의 좋은 방편이지.
이걸 보니 분명히 어리석지는 않군.
하긴 마신왕 후보가 되는데 머리가 나쁘면 가능할 리가 없지.’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었다.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할 정도의 결단력이면 반대로 상대방을 포기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릎 위로 제압했던 몸을 그대로 다시 치료실의 욕실로 이동시키고 히메지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승산은?”
“창조신으로 승급시켜 주신다면 절반정도예요.
하지만.......”
차마 말을 못하지만 리아스나가 들어간 치료실 쪽을 바라본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만약에 리아스나가 상대를 보고 지금처럼 흔들리는 날이면 싸우지도 못하고 패배한다.
그렇다고 철이 없는 리아스나지만 고집은 엄청나기에 억지로 싸우게 했다가는 합동권능을 제대로 발동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본래의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할 것이 당연했다.
이것이 그녀들의 합동 절명기 멸신 폭렬뇌염(滅神 爆裂雷炎)의 최대장점이자 단점이다.
혼자서는 약간 뛰어난 정도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차원일족의 오리진이 되기 전의 나도 무서울 정도로 강력해진다.
그러나 합동권능으로서 거의 최상급의 위력을 발휘하는 대신에 단독으로 싸우거나 협동이 안 되면 엄청나게 약해진다.
‘둘의 호흡이 어긋날수록 약해진다는 점이 약점이다.
개인으로서 그녀들은 약간 우수한 정도이기에 따로 싸울 수는 없다.
이제 이 이상은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다.’
남은 것은 히메지나와 리아스나가 어느 정도로 의사를 통합해서 과거의 연인과 싸울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것만은 윽박지르거나 혼을 내서 어쩔 수 없기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의문이 생겨서 물어보았다.
아무리 망각을 모르는 신이라고 해도 영원한 사랑 따위는 없었다.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거의 광적인 집착에 가까웠다.
“상대가 어떻기에 저 꼴이 되고도 이렇게 죽고 못 사는 것이냐?”
그 말에 히메지나가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대답을 했다.
“외모만을 따지면 정신체 중에서 가장 상위에 있을 정도로 잘생겼지요.
다른 여마신들도 얼굴만 보고 신족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호감을 표시할 정도였으니까요.
아직 어리시고 남성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리아스나님이 첫눈에 반하시는 것이 당연할 정도였습니다.
전 지금의 저런 행동도 이해합니다.”
“.......”
완전히 배신당하고도 저렇게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히메지나가 담담하게 과거를 기억하면 말을 계속한다.
“키도 크고 이상적인 몸매에 여성을 먼저 고려하고 배려하는 너무나 자상한 성격이었습니다.
물론 출신도 최고위 창조신의 직계로서 정신체 중에서 가장 상위의 신분이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예비 창조신이었고 권능역시 거의 절대급의 강자였기에 마신왕 후보 중에서 최상위였던 저희들이 인증전의 상대로 배정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창조신으로 올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마신왕님들의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
듣고 있자니 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전형적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가고 있었다.
“더구나 악기를 들고서 노래를 하면 주변의 신들이나 마신들이 행동을 중지하고 들을 정도였고 춤 또한 따라올 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춤의 신이나 노래의 신들조차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할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가끔 연회에서 만드는 요리를 맛을 보면 마신들도 칭찬이 자자할 정도였습니다.”
“.......”
여기쯤 되자 슬슬 화가 치미는 것을 넘어서 궁금증이 생겼다.
‘뭔가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왜 투신이 악기와 춤을 배웠지?
전투에 도움도 안 되는 유혹계열의 권능을 배울 리는 없는데?
더구나 요리까지 전문가 이상으로 했다고?
뭐에 쓸려고 그런 시간낭비를 해?
잡기에 능해도 본질적인 힘이 부족하면 그대로 끝장이 날 것인데?
이거 정상적인 신이 맞아?
권능에 대한 자료도 뭔가 이상하기는 했어.’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런 존재가 있을 리가 없다.
의문이 자꾸 생기는 차원의 마도신을 살짝 쳐다본 히메지나가 꿈꾸는 것 같은 시선까지 보여 가면서 상대를 회상한다.
“더구나 여성의 일이라면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종족의 구분 없이 희생적으로 도왔지요.
그리고 여성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음을 지으면 모두 넋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예비 창조신이었으니 신족과 마신족들 여성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
저절로 할 말이 막혀지는 설명이었다.
겉은 요염한 척 하지만 지극히 냉정한 히메지나였다.
그런데 저렇게 찬사를 할 정도면 언급한 사항들이 모두 보통의 수준이 아니란 뜻이다.
‘한 마디로 여성들의 이상형이라는 소리네.
얼굴도 신족 최고로 잘 생기고 강하면서 키도 크고 몸도 좋으니 기본은 완벽하군.
여기에 출신도 좋고 가무에 능하고 요리까지 잘한다면 할 말이 없네.
여기에 여성의 문제라면 종족구분 없이 최우선으로 도와줘?
이건 뭐 어디 연애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이렇게 완벽하냐?
이런 비합리적인 놈을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보았으니 홀랑 넘어가서 저 꼴이지.’
듣고 보니 과연 저렇게 당하고도 포기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가지고 온 서류에 사진은 없었는데 나중에 직접 면상을 보면 더욱 납득이 갈 것 같았다.
그라고 약간 이상했던 권능도 이해가 갔다.
‘리아스나가 전투를 거부할 가능성까지 포함시켜야 하겠군.
이런 결과면 미남계도 무시를 못하겠어.’
그러나 뭔가 계속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의자에서 일어나 치료실 밖으로 이동을 하려던 차원의 마도신의 뇌리를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여성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불합리하다.’
주우주에는 완벽한 권능이란 없는데 어긋나 있었다.
이것이 계속 꺼림칙한 원인이었다.
“잠깐-! 여성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남성들은 어떻지?”
여기에 모든 문제가 있었다.
“......”
이 질문에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은 히메지나가 조금 말을 돌려서 말했다.
“평판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여성 위주로 배려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성들에게는 소홀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비교가 되어서 다른 남성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어서 악의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변호와 같은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차원이 마도신이 칼날과 같은 기세로 자른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라-!
아니 최악의 평가로 말하라.”
필요하면 신계주신의 절대 명령권까지 동원할 기세에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신성이 새로운 남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 손해를 받은 남성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들은 여성의 노예이자 애완동물이며 극단적으로 남성의 적이자 배신자라고 하더군요.”
“허-!”
차원의 마도신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쪽 편에서 찬양을 받는다면 다른 쪽에서는 저주를 받는다.
어딘가의 아군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적군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강자라면 자신의 주관과 기준을 세울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적이 생기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적을 만들지 않고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코 자신의 기준을 밝히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무시하고 하나의 신성으로까지 끌어올렸다면 보통의 상대가 아니다.
아니 전 세력의 절반인 남성을 적으로 돌리고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경시하는 마음을 버려야 했다.
“좋은 정보 아주 고맙다.
리아스나가 복수의 직전까지 저렇게 흔들린다면 너희들은 다른 주신계를 맡아라.
그 놈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예?”
갑자기 주신전에서 빠지라는 말에 당황한 히메지나를 쳐다보면서 추가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마신왕 후보일 때의 너희들은 일반 창조신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비 창조신에게 너희들이 당했는지 알겠다.
놈의 예비 창조신 때의 이름은 ‘레이디 퍼스트’다.그 신성은 약한 여성의 보호를 우선으로 하여 보호하는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보호의 전제조건으로서 여성을 약자로서 규정한다.
즉 여성은 이 신성 앞에서 영원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여신도 어지간한 각오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너도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
그래서 리아스나가 마신을 포기하고 신족이 되자 혼자서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같이 신족이 되어 다시 싸울 기회를 노린 것이 아닌가?
인증전에 싸우지도 못하고 패배해서는 돌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불완전한 신족전환으로 문제가 생겨 바로 정령계로 보내지는 바람에 기회도 잡지 못했다.
상대는 부전승을 거둔 덕분에 주신장이 되고서 권능을 강화까지 했다.
이러한데 과거의 힘조차 되찾지 못한 너희들만으로는 이길 도리가 없다.
아니 접근조차 곤란하겠지.
이 신성은 철저하게 여성인 너희들 편이니 싸우기는 고사하고 바로 배신할 확률조차 있다.’
“.......”
끼이이이익-!
회복실의 문을 열어젖힌 차원의 마도신이 서류 몇 장을 추가해서 히메지나에게 던졌다.
그 내용을 본 히메지나의 눈이 커졌다.
주신장들에 의해 분석된 상세 내용이라 거의 비밀인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과거 너희들을 속였던 예비 창조신‘레이디 퍼스트'는 지금은 주신장 서열 2위 ‘페미니스트'다.
과거에는 단지 여성인 적을 약자로서 규정하여 힘을 약화시켰다면 지금은 그 약한 여성의 보호를 신성으로 하여 주변까지 영향을 끼치는 광역권능으로 진화했다.
자신이 이끄는 여성은 투신으로서 남성과의 싸움에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또한 적군인 여성은 배신하게 하고 내부에서 남성들과 싸우게 만든다.
신족과 마신족을 가리지 않고 여성에게 절대적인 이 권능으로 서열 2위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여성만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마신왕들이 철저하게 남성마신 만으로 압박을 해서 현재의 서열만을 유지하고 정식 창조신이 못 되고 있다.
이렇게 당해도 싸다.”
자신들을 속여서 정령계로 보냈던 과거의 적은 너무나 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