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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생존전략-639화 (639/1,533)

<-- 이계(異界)와 허계(虛界) -->

아까 불법 입국자가 강제추방된 것처럼 쫓겨나서 결국 진리를 이렇게 마주보게 된 사실이 기억나자 저절로 이가 갈렸다.

‘으득-!’

물론 손에 주어진 정식 임명장과 부하들의 명부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진리에게 받은 칭호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면 약해빠진 이계라도 적어도 주신에 도달했을 것이다.

주신 수백 명에 자신의 권능이면 이계정도를 마음먹은 대로 주무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었다.

‘조금 칭호들의 상태가 이상하지만 제대로 활성화되어서 적혀진 인원수만 해도 수백 명이 넘는다.

나의 창조신의 군세로 강화시키면 이계의 세력을 전부 압도한다.

분명 이득인데 진리라서 엄청 불안하다.

그리고 방어막을 처리해보라는데 무슨 뜻이지?

치우라는 것인가?

아니면 강화하라는 것인가?’

방어막의 성향은 아까 튕겨지면서 확인이 끝났다.

절대계나 주우주의 존재들의 신체나 권능이 이계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봉인결계였다.

원거리에서는 잘 파악이 되지 않지만 접촉하는 순간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었다.

‘힘도 없는 주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는지 이 행성을 이계와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완성도가 부수기 아까울 정도인데 이걸 왜?’

봉인의 다른 의미는 보호이기도 하다.

이계의 신들이 필사적으로 만든 저 봉인결계는 또 다른 의미로는 바람가를 위한 최고의 방어막이기 하다.

잡스러운 이계의 존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효능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처리하라고 넘기다니 어떤 의미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슬쩍 진리의 눈치를 보았는데 얼굴에 미소만 가득하니 내심을 읽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새 진리의 오른쪽 옆으로 이동해 있는 자신을 인솔한 바람가의 일원도 웃고 있는 것이 엄청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진리가 혀를 차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쯧쯧! 주변 눈치를 보고 잡념이 많아서 대답과 판단이 늦는다.

강자인 지배층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그럼 맞아야지.”

“쿡쿡! 당연히 그렇습니다.”

‘아차-! 큰일 났다. 차원.......’

지적을 받고 당황해서 막 영창을 시작하려는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퍽-! 꽈아아아아앙-!

진리의 파멸유혼검에 가볍게 맞은 차원의 마도신은 바람가에 들어올 때 많이 들었던 굉음을 울리면서 똑같이 뒤로 날려진다.

퍼어어어억-! 쿠쿠쿠쿵-!

벽에 처박힌 차원의 마도신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납작해져 갔다.

진리의 파멸유혼검의 공격에 뼈와 근육이 전부 박살이 나서 몸이 완전히 펴진 것이다.

허나 벽은 특별한 재질인지 금조차 가지 않았고 주변이 떨리기만 한다.

투우우욱-!

종이처럼 얕아진 몸은 자연스럽게 벽에서 떨어지면서 대지에 서서히 놓여졌다.

불살의 권능을 가진 파멸유혼검에 당한 공격이라 숨은 붙어있으나 끝장이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리와 옆의 바람가가 흥미로운 눈으로 그 다음을 기다렸다.

자신들이 근원에 대해 아는 한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파아아아아아-!

과연 얇은 종이처럼 변한 신체에 근원(根源)의 칭호가 나타난다.

몸 전체를 덮는 빛의 원 속에 삼각형이 나타나면서 다시 몸을 부풀리면서 입체적으로 되돌린다.

뼈와 근육이 제자리를 찾자 황금빛의 차원의 권능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생명력을 되돌린다.

거기에 검은 진주의 빛과 같은 마력이 머리에서 흘러나오면서 온전히 권능과 마도를 발휘할 수 있는 상태까지 되돌렸다.

진리의 일격을 먹고 종이가 되어버린 차원의 마도신이 겨우 숨을 몇 번 쉬는 것으로 다시 회복하는 것을 본 오래된 바람가의 일원이 감탄을 내뱉었다.

“호오? 거의 말소 수준의 타격을 받고도 자력으로 원상 복구하는군요.

더구나 의지조차 필요없이 자동이라니 과거 근원을 능가하는 회복력입니다.

여기에 차원의 권능과 마도까지 동시 발동되어 회복하는 것을 보니 흥미로울 정도군요.

그런데 겨우 주우주의 창조신에게 근원의 칭호를 주셨다고요?

거기다 차원의 권능에 마도까지 허용하신다니?

이게 무슨 변덕에 재미있는 장난이십니까?

재미있는 일은 같이 하시죠.”

“오래된 네가 풍류(風流)를 어찌 알겠느냐?

계획은 이렇게 변수를 만들어야 예측불허하고 재미도 있고 계속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톡 쏘는 것 같은 진리의 대답에 바람가의 오래된 일원은 부드럽게 받았다.

“허허-! 지금의 할아버님에 비해 제가 조금 더 늙기는 했지만 아직 그런 면에서 어린애들에게 안질 자신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미라면 바로 접니다.

제가 농담을 한번 하면 주변의 모두가 자지러질 정도입니다.

재미있게 해드릴 것이니 한번 맡겨주십시오.

저의 유머는 바람가 최고로 뛰어납니다.”

“유머가 아니라 유모겠지.”

바람가 초창기에 절대계를 평탄하기 바쁜 진리가 싸우고 있을 때에 자신은 태어나는 후손들을 기르고 가르치며 세력을 일구느라 바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유모였다.

허나 유모라는 말이 남자입장에서 좋을 리가 없다.

“유모가 아닙니다!

이계에서 요즘 멋있는 남자들의 필수라는 유머입니다. 유머-!

여기 누워있는 애들도 모두 저의 말이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니까요.”

가장 꺼리는 말을 들어서 진리의 대련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실신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10명의 후손들까지 가리키면서 강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아아-! 그래 넌 존재 자체가 유머다.

아니 썰렁한 농담만 아는 화석이지.

이런 소리만 하니 네가 오래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오래되었다는 말도 이제 그만하시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젊고 지금도 충분히 통합니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서 다시 일을 하라고 했더니 어린애들 데리고 과거의 자기자랑만 하면서 무슨 일을 맡겨?

더구나 바쁜 애들 데리고 몇 년씩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슬쩍 떠 넘기냐?

알아서 대신 하겠다고 할 때까지 같은 소리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나이 먹은 증거라는 것이다.”

추궁은 날이 서있었지만 대답은 아주 청산유수로 나왔다.

“현실은 과거의 반복입니다.

노인의 말은 오랜 삶으로 터득한 지혜의 산물로서 젊은이의 시행착오를 줄여주죠.

처음 해보는 어린애들은 직접 해봐야 실력이 느는 법입니다.

저는 이미 다 해보았으니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도움은 직접 주지 못하지만 조언은 한다 이거냐?

도와줄 수는 없어도 훼방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이런 뒷방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네가 젊으냐?

너의 지위와 능력에 걸맞게 다시 미래의 이야기와 일을 좀 하란 말이다!

애들 데리고 장난치면서 훈계만 하지 말고.”

진리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목소리가 높였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팰 수가 없었다.

누명을 쓰고 1대 10중심에게 절대계에서 쫓겨나서 정처 없이 방황하던 아무것도 없는 시절에 자신을 쫓아온 유일한 손자였던 것이다.

아들인 유일용신제조차 험한 세상을 같이 유랑하느니 자기 어머니와 일족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 손자만은 절대계 전부의 적이 되는 고난을 자처했다.

그리고 1대 10중심과 단독으로 결투를 벌일 때에도 결혼조차 정략결혼을 선택하면서 절대계에 뒤지지 않을 세력을 만들고 유지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절대계를 평탄하던 시절에도 집안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공은 너무나 크지.’

그래서 절대계의 통제가 완전해진 뒤에 다음 세대에게 모든 의무와 업무를 이양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려서 너무 고생을 한 탓인지 쉬기 시작하자 성향이 이상해진 것이다.

그 처신이 절묘하게 그 당시 상황에 딱 알맞아서 내버려두었는데 점점 심해졌다.

‘어려서 나를 따르다가 너무 고생을 심하게 해서 자리를 잡고 나서는 풀어주었더니 아주 통제 불능이 되었어.

가만 두자니 아깝고 또 부려먹자니 불쌍하니 이걸 어쩐다.

1,001번째 주우주를 초창기에 맡아주면 좋겠지만 이래서는 힘들겠군.’

서열은 109대인 자신과 110대인 유일용신제 바로 다음인 111대이다.

집안을 건사하느라 직접 싸운 경험은 거의 없지만 10중심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강자이다.

지금 바람가의 기초의 대부분을 만들었으니 운영이나 창업능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최고수준이다.

그런데 하는 일없이 아주 유들유들하게 혼자 놀거나 아이들의 간섭만 했다.

물론 바람가가 자리를 완전히 잡고 나서는 창업세대는 불필요했다.

최고위 지배세력으로 제대로 교육받은 다음 세대에게 권력을 자연스럽게 넘기기 위해서는 오랜 후손들의 이런 방관자적인 태도는 필요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고 두들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하자니 1대 10중심들에게 치명상을 입은 나를 부축하면서 같이 도망을 치던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군.’

양아버지와 아버지의 합공에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자신을 등에 업고 도망쳐서 1대 10중심과 절대계 전부의 필사적인 추격을 따돌린 것도 이 아이였다.

이미 아주 먼 과거의 추억에 진리가 말이 잠시 없자 가슴을 쫙 펴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얼씨구?”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잘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너 정말 오래간 만에 맞고 싶으냐?”

가만 두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궤변의 연속에 결국 참다못한 진리의 파멸유혼검이 떨리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부르르르-!

거기에는 긴장을 하는지 과장된 표현으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합-! 귀여운 손자에게 말도 못하게 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가장 늙어서 누가 귀여워!

어린애들이 야망을 가지면 당연히 높은 자리로 기존의 상급자들을 치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그걸 뻔히 아는 높은 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으냐?

거의 전부가 시도는 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끝장이 난다.

그리고 힘 있는 젊은 시절에 고생하면 힘없는 노인시절에는 더 고생하는데 무슨 희망이 있어?

무엇보다 강해지기 위한 수련도 아닌데 뭐 하러 고생을 자처해?

쓸데없이 애들을 현혹해서 고생을 시킬 셈이냐?”

이번 추궁에는 정말 억울하다는 답변을 한다.

“어릴 때 고생해봤자 커서 능력만 떨어지는데 설마 제가 귀여운 후손들에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계에서 자신의 애가 아닌 남의 애들에게 하는 덕담이라고 합니다.

이런 허튼 소리가 덕담으로 통한다니 이계는 정말 재미있지요?

이계조차 섭렵한 이게 바로 저의 유모.......유머입니다.”

“.......그만 해라.”

끝까지 통하지도 않는 썰렁한 농담을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손자를 보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려고 하는 진리였다.

자신을 구하고 절대계를 세운 과거의 공적과 바람가를 위해 치룬 희생 때문에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그 순간 차원의 마도신이 신음을 지르면서 일어서며 외쳤다.

“커어어어억-! 차원천라(次元天羅).”

기절 전에 하려던 영창이 신체의 회복을 완료하자마자 하려던 영창이 완료된 것이다.

완전히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덕분에 비명인지 영창인지 모를 괴음이 울려 퍼졌지만 확실히 차원의 권능은 발동되었다.

차원의 마도신의 등 뒤에서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빛의 날개가 펴지면서 방어막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바람가의 가장 오래된 일원은 이계의 방어막에 공간의 개념을 무시하면서 거대하게 확대된 빛의 날개들이 충돌하려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 제정신이 아닌데도 저 정도의 권능을 발동시킨 차원의 마도신을 번갈아 보면서 감탄했다.

“거참-! 처절하구나-!

혼이 났으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지 그대로 이어서 하다니?

2대 흑염이 된 아이가 자랑하던 영원영창(永遠詠唱)인가?

들은 대로라면 신체가 죽거나 소멸되어도 신령이 존재하는 한 권능과 마도의 발현을 멈추지 않는다는 절대급의 현자의 권능중 하나인데 왜 저렇게 허접하지?”

주우주의 창조신치고는 대단한 위력이지만 아무리 보아도 절대급은 고사하고 초월정도였다.

여기다 분명 의식이 완전하지 않았는데도 부지런히 입을 놀리면서 추가 영창을 계속하는 차원의 마도신을 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은데도 영창을 계속하다니 정말 신기한 녀석이군요.

굶어 죽거나 잡혀죽을지라도 입만은 살아서 자기 마음대로 울부짖어야 속이 후련하다는 촉새의 화신 같습니다.”

“........촉새가 아니라 이계 어디의 어리석은 국민이겠지.

비유가 잘못되었다.”

“동물이나 곤충에 대한 비유는 이계 유머의 기본입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진리의 머리 위로 치켜 올려진 파멸유혼검을 보면서 황급하게 말을 마무리하자 진리도 목검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래도 아무 공적도 없이 마구 날뛰려는 다른 이들처럼 팰 수는 없었다.

“나도 농담이었다.”

“농담 반에 진담 반을 섞으면 그게 바로 진리(眞理)이고 본심(本心)이죠.”

“.......”

단 둘이지만 중요한 진리의 신성까지 제멋대로 판단하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하는 손자를 어떻게 해야 다시 과거처럼 철이 들게 할지 고민이 되는 진리였다.

그렇다고 본인의 감정과 입장을 도외시하고 자신과 가문을 위해 희생만 하는 모습을 다시 보기는 싫었다.

‘그래서 넘겨왔지.

앞으로도 넘기자.’

그 동안의 공로를 생각해보면 정말 작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 일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인연을 가진 손자와 하는 의미가 없는 대화도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은 일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방어막과 충돌한 차원천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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