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絶望)과 희망(希望) -->
행성주변을 완전히 포위한 형태로 배치된 군세의 위에는 ‘진리(眞理)’라고 적힌 거대한 깃발들이 수천 개가 휘날리고 있었다.
서류대로 진리 친위군을 하라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강요로 본의 아니게 깃발을 든 투신들의 얼굴은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줄을 세운 대열에서 10명씩 끊어 깃발을 만들어 하나씩 쥐어주는데 거부할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항의하던 총책임자는 말이 많다고 입술이 퉁퉁 붓고 턱이 박살나서 뻗었으며 다음 서열로 나선 투신은 꼬리 내린 강아지 꼴로 대답을 아주 잘하고 고개만 끄덕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엄청난 창조력으로 10만이 넘는 투신들의 신의와 신기를 동시에 복구시켜주고 깃발까지 만들어 주는 힘에는 정말 기가 질려 버렸다.
문제는 그렇게 하고서 바로 차원권능으로 강제 이동시킨 장소였다.
현세계의 본성인 ‘서우리나’가 발밑에 펼쳐져있었다.
“뭐야!”
“여긴 본성?”
“설마 방어선 내부인가?”
“말도 안 돼-!”
다급하게 주변을 확인하다보니 자신들의 뒤에 2개의 위성으로 만든 행성방어막이 보였다.
방위군을 제외한 외부 군대는 결코 침범해서는 안 되는 본성 위성방어막의 안쪽을 강습하고 완전 포위한 형국이었다.
‘위원회의 지시도 없이 무단으로 본성을 포위한 10만의 군세를 뭐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반란군이었다.
더구나 허계의 창조주인 진리의 깃발까지 들었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컥-! 반역한 셈이잖아?”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완전히 반란군이 되어 공황상태에 빠진 진리 친위군이라 읽고 실제로는 허계 봉쇄군 인 군세 10만을 차원의 권능으로 한 번에 이동시킨 차원창세신 코아는 이계의 본성 ‘서우리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신족 최종방어요새인 주신계와 비교해보니 지극히 방어체계가 우스웠다.
‘본성방어가 차원권능을 방어하기는 고사하고 겨우 하위의 공간이동과 주신급의 권능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이 전부다.’
결론적으로 주신들의 침입을 막는 것도 힘든 행성방위였다.
그러니 2개의 위성을 핵으로 펼쳐진 방어막조차 무인지경으로 돌파하고 전 군세를 이동시킬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투신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약한 병력들과 놀라서 도망치기 바쁜 허약한 하위신들 뿐이었다.
신속한 대응은 고사하고 우왕좌왕하는데 정말 보기가 딱할 정도였다.
그리고 속에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를 막을 만한 강자도 제약도 아무것도 없다.
이러면 살기가 너무 쉽고 좋잖아?’
자기 살기도 힘든 약자들이 용병신에게 보상을 좋게 줄 수는 없다.
언제나 보상이 더 좋은 계약을 따기 위해 자신보다 강자에게 치여서 살았던 세월이다.
당연히 위험도는 급상승하고 카르마의 부정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 움츠리기 바쁘던 과거까지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쁘고 쉬운 진행이었다.
“카하하하하하하-! 겨우 이게 이계 본거지의 방위인가?
속이 확 풀리면서도 아군이 이 꼴이라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깝구나.
나야 아주 좋기는 하지만 이건 아니군.
최악인가?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자꾸나.
그럼 기준이하의 쓰레기 정리와 청소부터 해볼까?
세계폭탄 코아-!”
이제 단 하나라면 자유자재로 발동시킬 수 있으며 위력만이라면 현자계열 최고인 ‘이그드라실’을 능가하는 코아를 불러들였다.
꽈우우우우우웅-!
차원의 오리진님께서 부여하신 차원의 권능과 ‘10중심의 서명’으로 처음 발현할 때는 압축되어서 집채만 한 크기의 검은 구슬이었던 코아였다.
하지만 본래의 힘으로 불러내자 위성크기로 확장되어 발밑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이러면 압축을 할 여력이 되지 않아 위력은 약화되겠지만 최소한 이계의 본성을 전부 먹어치울 힘은 충분했다.
물론 코아를 막을만한 권능을 가진 창조신이 있다면 상황이 있으면 또 다르겠지만 말이다.
“자아-! 가급적 막아보아라.
나는 강자에게는 지극히 관대한 빛의 창조신이로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후우우우우우우웅-!
차원창세신 코아가 위성크기의 검은 구체를 발밑에 두고서 서우리나로 강하하기 시작한다.
물론 어떻게든 막으려고 발동되는 방어막과 권능들을 무참하게 집어삼키고서 무인지경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행성표면에서 발사되기 시작한 무수한 신력포와 방어권능조차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계폭탄 코아에 흡수되어 덩치만 키워질 뿐이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초 긴급사태입니다.”
“커허허헉-! 턱.......턱이........”
그때 정신을 잃은 동안 자의와는 전혀 무관하게 행성을 포위한 반란군의 수괴가 된 총책임자는 이제 부책임자가 된 투신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정신을 찾았다.
“뭐.......뭐야? 여긴 본성?
왜 여기 와 있어-!”
그리고 위치가 본성이라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당연히 기절초풍을 하면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차원창세신 코아를 찾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를 복귀시켜 주셔야 합니다.”
허나 원하는 대답은 고사하고 잔혹한 현실을 알리는 충격적이고 무책임한 말만 들려왔다.
“삶이란 항상 예측불허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지.
진리의 깃발을 들고 본성의 방위선을 무단 침입한 너희들은 이제 저들에게는 반란군이다.
설명을 한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줄을 서라.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뒤를 조심해라.
벌써 오는구나.
약한 만큼 대응은 빠르군.
잘해봐라-! 푸하하하하하하-!”
끝없이 올라가는 광기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뒤에서 공간의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본성의 비상사태를 연락받은 다른 군세가 긴급 공간이동을 해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실전을 겪은 투신이라서 기세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총책임자는 단숨에 정체를 눈치를 채고 신음했다.
일부는 자신이 지휘하기도 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전선 방어군-! 3군 전체가 동원되어 오는가?”
배신자들의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20만의 군세를 제외한 예비병력 전 병력이 긴급동원 된 것이다.
전선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투입되면서 본성 방위까지 맡고 있기에 대처가 지극히 빨랐다.
무수히 열린 공간의 문으로 해일처럼 쏟아진 투신들이 순식간에 포진을 시작하는 발걸음 소리가 우주공간을 진동시킨다.
쿠쿠쿠쿠쿠쿠쿠쿵-!
비록 자신들보다 수준이 떨어지지만 정예 투신들이 우주공간을 가르고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에 총책임자는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는 것이지?’
이미 망설이거나 고민을 할 여유는 없었다.
얼마가 되는지 모르지만 분명 자신들의 머리수를 능가하는 숫자의 투신들이 자신들을 반란군으로 보고 포위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평균적인 수준은 당연히 현세계 최강인 허계 봉쇄군보다 못하니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만 결코 싸울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장차 위원회의 수장이 될 내가 반란군이라니 말도 안 돼-!
허나 이건 넘어갈 수 없는 사태다.’
가문과 인맥을 총동원하면 대부분의 실수나 잘못은 용서된다.
허나 본성을 명령이나 연락도 없이 무장병력으로 포위한 사실은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중죄다.
이미 자신들을 허계의 진리에게 붙은 반란군으로 보는지 상대편 투신들의 살기와 투기의 발산에 반응한 몸이 저절로 신기에 손이 가고 쥐어졌다.
그것은 다른 아군들도 마찬가지라서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상황이지만 일생일대의 위기에 극한까지 냉정해진 이성이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이렇게 방위군과 싸우면 반란군으로 확정이었다.
‘오해를 풀기에는 이미 늦었다.
위성 방위선 안으로 차원이동한 허계 봉쇄군은 본성의 턱밑에 칼을 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대로 저 허계의 창조신의 의도대로 반란군이 될 수 없으니 무장을 해제하고 설명을 하면 통할 수도 있다.’
무방비로 투항을 하고 설명을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자 신기를 잡았던 손에 힘이 저절로 풀어졌다.
상대의 투기에 반응하여 피어오르던 살기도 사그라지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딱-!
시선을 소리 난 쪽으로 향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가슴에 정식 계급장 대신 ‘2’란 숫자가 적힌 투신이 있었다.
방금 자신을 깨우기도 했던 투신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오른손을 들었다.
“.........”
마치 협상은 포기하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주변을 여기저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보았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커다란 군기들을 말이다.
“뭐야-! 저 군기(軍旗)들은-!
더구나 진리라고-!”
허계의 창조주인 ‘진리’의 이름이 커다랗게 적혀진 깃발들이 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거의 1만개가 넘는 깃발을 들고 있는 투신들은 분명 허계 봉쇄군 이었다.
군세 전부를 뒤덮는 진리의 깃발과 본성을 포위한 포진은 설명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자신이라도 저런 깃발들을 들고서 본성을 포위하고 있으면 반란군이 아니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신생 처음으로 겪은 통제할 수 없는 사태에 순수한 분노의 욕설을 남이 보는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제기랄-! 다들 미쳤나? 돌았나?
왜 저런 걸 여기서 들고 있어?
이러면 꼼짝없이 반란군이잖아-!”
울화통을 터트리는 총책임자의 곁에서 나직하게 보고를 하는 넘버 2였다.
“.........안 들었으면 그때 다 죽었을 겁니다.”
여기로 끌고 와서 반란군으로 만드는데 자세한 설명이나 설득, 보상은 고사하고 몰아붙이기만 했다.
주신이 다수 포함된 10만이 넘는 최정예 군이 단 1명의 창조신의 투기에 견디지 못하고 사자에게 쫓긴 토끼들 꼴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반항심이 넘치는 몇몇은 불길함을 느끼고 깃발을 안 들려고 했다가 말 그대로 팔다리가 눈앞에서 잘려나가는 처벌을 받았다.
마치 순진무구한 아이가 벌레의 팔다리를 재미삼아 떼는 것처럼 여기저기 날려대고 거기에 바로 회복시켜서 순순히 말을 들을 때까지 반복하니 견딜 도리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시겠습니까?
무저항으로 투항을 해도 진리님의 깃발을 들고 본성을 침입했다는 이유로 극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니 무단 부대이동만으로도 직위박탈입니다.”
“.......”
당연했다.
군대는 결코 위원회의 통제 없이는 움직여서는 안 된다.
만약 지휘관의 의사대로 마음대로 운영이 된다면 그건 군대가 아닌 군벌이다.
바로 반란세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군대 지휘관들의 부임지는 수시로 순환 이동시킨다.
짧은 부임기간으로 해당지역을 숙지하지 못해서 임무능력이 떨어지는 것까지 감수하고 전 지휘관들을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여 군벌화를 막는 것이다.
더구나 하위 투신들이 대부분인 배신자들로 인하여 거의 망한 꼴이 된 현세계는 특히 군대의 관리가 심했다.
이렇게 강력하게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어떠한 부대이동도 위원회에 사전보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타의로 어쩔 수 없이 모르게 이동을 했다고 변명한다고 용서받을 수준은 한참 지났다.
‘그것도 부대이동을 한 곳이 본성이라면 바로 반란죄다,’
진퇴양난이었다.
허나 이대로는 자신과 상층부는 모두 사형을 면치 못한다.
본성에 피해가 발생하면 일족까지 이미 사라진 연좌제로 처벌을 받을 상황이다.
전투자체를 막아야 했다.
간단한 설명으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니 사정설명을 해야 했다.
일단 덤비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총력 전투태세-! 어떠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최강의 허계 봉쇄군 이다.
방위군 따위가 감히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라-!
시간을 벌면 내가 대화를 해보겠다.”
추태를 좀 보이기는 했지만 총책임자인 자신의 말은 아직 군세에 분명 통했다.
최정예답게 단숨에 전투태세를 끝낸 군세는 강력한 투기로서 전선방위군을 압도한다.
대치상태로 변한 양쪽 군세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 같군.
찬란한 미래가 보장된 내가 반란군의 오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쓸 수 없다.’
허나 옆에서 들려오는 세상을 다산 것 같은 피곤한 목소리가 또 현실을 일깨운다.
“이미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은 지났습니다.
극형은 면해도 이제 군대나 사회에서 출세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서류상 명칭대로 진리 친위군의 임무를 수행하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축하드립니다.
당신만은 차원창세신 코아께서 직접 손으로 쓰시더군요.
넘버 1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