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絶望)과 희망(希望) -->
머리를 울리는 것 같은 미래의 음성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조사를 하는 듯 몸이 몇 번 짜릿해졌고 바로 말이 이어졌다.
“왜 이렇게 간이 부은 상태인지 이상했더니 차원공통원소(次元共通元素)인가?
이계의 재구현의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식했군.
이러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차원의 오리진의 솜씨인가?
정말 대단하군.”
당장 가서 이계 10중심들을 전부 찾아서 각개격파 하라고 몰아붙이지 않으니 나름대로 안심은 되었다.
큰 소리는 쳤지만 불안은 했다.
“충고는 잘 받았다.
최대한 쓸 만한 전력들을 챙겨서 이동하겠다.
이계에서 소모한 신력과 정기를 충전해야 하니 당장은 안 돼.
그리고 선택권은 이계의 신족에게 주고 왔다.
나는 자비롭고 관대한 빛의 신이니까 말이야.”
이계의 최고위 창조신들이 만장일치로 자신의 절대적인 독재를 허가하면 적극 돕겠다는 아주 바람직한 계약이다.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식이었다.
허나 자신의 미래인 회색의 절대자는 차가웠다.
“쯧-! 또 명분이로군.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절차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 따위는 주지 않았겠지.”
역지 자신답게 너무나 잘 알았다.
이계에 잠재하고 있던 모든 위험과 불안요소에 불을 붙여놓아서 몽땅 터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습할 힘이 없는 나약한 이계의 신족에게는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너무나 좁은 지역에서 갇혀서 동족에게 억압받던 신족.
그리고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투만을 계속 준비하면서 오히려 전쟁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투신들.
대부분의 신족 모두가 전쟁을 바라고 있었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영광된 승리를 갈망한다.
허나 적들은 신족보다 강하다.
최고위원회의 창조신들이 그들 전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내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신자들의 영역과 본성을 유린하고 군세를 전진시켰다.
비록 핵을 자신이 빼왔다고 하나 본성이란 지리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핵심장소다.
거기에 수도라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부여하면 배신자들은 본성을 되찾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전협상을 주재할 수 있는 배신자들의 지배층들은 모두 자신이 잡아왔다.
증발된 지도층대신 신족의 자멸을 바라는 초월자들의 세력이 가세하면 전쟁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결코 나약한 이계의 창조신들 따위는 견딜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커질 것이고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킬킬킬킬킬-! 당연하지.
내가 주도권을 남에게 넘겨줄 것 같으냐?
나를 제외한 신족과 반대세력의 차이는 거의 절망적이다.
그걸 타파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강자뿐이다.
그런데 지역우주 규모의 광역파괴를 할 수 있는 창조신이 어디 흔하겠나?
자력으로 버티어보려 해봤자 희생자와 피해만 더 늘어나니 결국 나에게 부탁하게 된다.
이계의 모든 미래의 운명은 마도신인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생명체들의 초월자들을 모두 처단하고 다시 모든 영역을 신족에게 돌린다.
그렇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해 준다면 자신의 명성은 불멸의 것이 된다.
그리고 잔혹 무도한 마도신이라는 악명(惡名)도 무명(無名)보다는 좋았다.
이계의 모든 신과 초월자들이 진리를 두려워하여 마지막의 종족 전멸 전까지 가지 못한 것처럼 존재만으로 의미가 새겨진다면 자신의 바람은 분명 이루어진다.
진리에게 정식으로 10중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자계열 최강이 된다.
그러려면 권능만이 아니라 실적도 중요해.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계를 주우주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면 누구도 나의 회색의 자격을 의심하지 못한다.
이 길을 방해한다면 이계 10중심이든 뭐든 박살을 내주리라.’
믿는 구석도 물론 있었다.
자신의 과거에 사기를 쳤지만 현재 회색의 절대자인 미래의 자신은 미우나 싫으나 결국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아군이면서 말이 필요가 없는 전우와 같았다.
절대계 회색의 절대자의 조력을 얻고도 겨우 이계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조용히 자신의 마탑으로 돌아가서 은거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회색영역은 어떻지?”
“대부분 정리 끝났다.
서로 전력이 백중세인 것을 안 이상 더 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지.
대신족과 회색영역의 오리진들과의 전투로 박살난 행성들은 성멸(星滅)을 이용하여 모두 창조신성으로 교체하고 있다.
남은 것은 이제 누가 더 많이 나에게 창조신성을 받아 발전시켜 우위를 점하느냐는 정도겠지.”
10명이 넘는 창조대신들과 대신족의 주신들 전원을 상대로 회색영역의 오리진을 비롯한 신력 1조이상의 강자들이 전부 출동했던 엄청난 전쟁이었다.
당연히 파괴 여파로 피해가 엄청날 것인데 복구에 성멸을 이용하여 창조신성들을 제조해서 마구 던져준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대안을 생각하고 실행한다.
모든 권능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마도신 출신이면서 빛의 신으로서 창조력이 절대에 도달한 회색의 절대자의 장점이 극명하게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허나 본인인 미래는 그런 장점을 아주 좋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잖아?
왜 일단 부수고 고치는데?
이건 정말 구제불능이다.’
허나 본심은 바로 자기 입으로 나온다.
“킬킬킬킬-! 감히 황금의 비호를 믿고 내게 덤빈 놈들과 일족들을 두고두고 괴롭힐 좋은 수단이지.
복구에 필요한 대규모 지원은 나만 가능하니 모두 마음껏 휘둘러주지.”
창조신성 하나를 줄때마다 정말 다양하게 괴롭힐 생각인 모양이다.
물론 목적은 회색영역의 발전이니 거역할 수 없다.
막말로 다른 10중심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라고 해도 해야 할 판국이다.
말려든 창조대신들과 절대계의 오리진들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또 회색의 절대자의 악명이 절대계를 울리겠군.’
어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기분이다.
이계의 창조신들이 자신을 처음 보았을 때 초대형 폭탄을 보는 것 같은 눈초리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자신은 이계에 알려질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으니 분명 회색의 절대자의 평판을 현재인 자신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덕분에 일을 마음대로 진행하기는 편했지만 아주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이미 주우주와 절대계에 쫙 퍼진 최악의 미래의 평판이 곧 자신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뇌계에 쫙 퍼진 회색의 절대자의 호칭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가장 위대한 현자인 회색의 절대자의 호칭이 미친 회색이나 광기의 현자라니?
이게 도대체 뭐냐?
아니 그 정도로 강해졌는데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 와서 덤볐으면 나도 똑같이 했을 것 같으니 할 말은 없지.
이계에서도 그렇게 처리했고.......’
모두가 욕해도 자신만은 미래를 비난할 수 없다.
이미 창조신으로서 실패하고 소멸되었다가 마도신의 오리진님에 의해 현재에 존재하면서 회색의 절대자를 맡고 있다.
과거의 실패로 인하여 다른 존재의 도움이나 믿음을 바라지 않는다.
혼자서 일을 한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벅차다.
결국 효율성만을 선택해야 하는 마음속에 흐르는 분노와 고뇌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마디만은 해야 했다.
미래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현재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참을 이유가 없었다.
“좀 작작 해라.
네 악명 때문에 나도 슬슬 힘이 들려고 한다.
처음부터 창조신성을 그렇게 뿌렸으면 존경을 받을 수도 있잖아?
왜 성질을 못 이기고 부수고 난리야?
회색의 절대자가 되었다면 자제해야지.
그럴 능력도 되잖아.”
창조력은 거의 사용을 안 하고 파괴만 하고 있으니 소문이 전혀 안 났다.
하지만 창조력만을 따지면 10중심 중 최강이다.
정기만 있으면 절대계나 주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다.
그렇게 정말 존경받을 수 있는 쉬운 길을 두고서 감정을 못 이기고 이 짓이었다.
허나 다음 말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허어어어어어어-! 내가 나에게 웃기고 있네.
너는 이계에서 어떻게 했는데?
계획이고 뭐고 그래도 진리대리인데 이계의 신족들이 처음부터 제대로 대우를 안 해 준다고 날뛴 것 아니냐?
너야말로 조금만 참고 이계에서 주신성이라도 하나 만들면서 신족에게 주었으면 아주 구세주로 떠받들었겠지.
그런데 성질대로 다 부수다가 최악최흉의 마도신으로서 악명만을 드날렸겠지?
아주 잘하는 짓이다.
차원의 마도신 대신 회색현재(灰色現在)라고 서서히 불리고 있는 네가 그러면 회색의 절대자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모르냐?
무엇보다 겨우 주우주의 창조신이면서 10중심인 나 때문에 힘들어?
이런 절대적인 배경과 이점을 가지고도 안정은 고사하고 위태위태한 짓만 골라서 하는 과거의 나로 골치가 아프고 손해가 나는 것은 바로 미래인 나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나오면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지금 하는 짓을 보아서는 더 바닥에 떨어질 명예가 있는지 모르지만 사실이기는 했다.
“.........쉽게 은혜를 베풀면 감사를 모른다.”
“하아? 직접 해보지도 않고 어디서 들은 소리만 내뱉지 마라.
아주 없어 보인다.”
나름대로 변명 아닌 말로 응답하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이계를 뒤집어엎었다.
나가자마자 진리에게 강제로 신고를 가게 되었다가 죽다 살아났으니 그 정도면 아주 자비롭고 관대하게 처리해 준 것이다.
무엇보다 신족 부흥이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나도 그런 이유이기는 하지.
하여간 일단 나는 바쁘다.
네가 주문한 것은 나중에 내가 이계로 직접 가져다 줄 것이니 재촉하지 마라.”
바람성과 동화한 창조대신 성멸을 빌려주는 대신 받기로 했던 대가 문제였다.
그것이 없으면 이계 부흥계획은 한참 늦어진다.
당장 필요는 없지만 손에 넣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건 좀 빨리.........”
“이걸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들키면 너나 나나 다른 10중심에게 끝장이 나는 수가 있어.
지금처럼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
역시 이빨도 안 들어간다.
연락이 일방적으로 끊어지자 굉장히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광의 자리의 등받이에 기대서 이마를 오른손으로 눌렀다.
방금 들은 회색의 절대자의 상황유추는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던 이계 부흥계획에 굉장히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계 10중심이라고?
확실히 가능성은 있군.
허나 고래는 우물에서 살지 못하지.
겨우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일 것이니 수가 얼마이든 큰 문제는 아니다.”
혼잣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은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
직접 이계의 상태를 보고 절대거리 코아로 전 영역을 관통시켜 조사한 결과다.
지극히 희박한 정기 농도는 생명체와 정신체의 약화를 필연적으로 부른다.
이계에서는 급속한 성장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건 재능으로도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환경의 벽이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강자는 이계에서 없다고 단정을 지었다.
더구나 10중심 정도의 절대권능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지만 그에 합당한 신력과 신체를 가져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이계의 10중심이 절대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자신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10중심의 이름은 너무나 높다.
흑염의 절대자와는 몇 번이나 의뢰 때문에 대면한 자신으로는 무조건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설마 이계에 10중심이 전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야.
이계의 현재 상태를 보면 많아야 하나나 둘 정도?
허나 만약 그자들이 황금이나 흑염의 절대자라면 아무리 약해도 방심할 수가 없다.
내가 그들에게 발목이 잡히면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해.
이러면 가용전력을 전부 동원해야 하겠군.’
결국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계의 정령신들을 동원하는 방법까지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고민을 하게 되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이계의 정령신들은 본래 자신들의 영역이 아닌 주우주에서도 강력한 주신들이다.
‘원래 출생지인 이계로 돌아갔을 때 어느 정도로 강해질지 예상이 전혀 안 되는군.’
더구나 굽힐지를 모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이 가장 큰 문제다.
대등한 주신들이 넘치는 차원신계에서도 제멋대로 하려다가 징계를 주고 제압한 상태다.
지금도 이런데 더욱 강해져서 바로 옆에서 통제할만한 상대가 없어지면 어떻게 날뛸지는 너무나 뻔했다.
기고만장해져서 아군이고 적군이고 뭐고 전부 쓸어버리려고 날뛸 것이다.
‘그러나 강하지.
나와 계약한 환수주신들과 이계의 정령신만으로도 배신자들에 대한 대응전력은 충분할 정도로 말이지.
그러나 이 양아치들을 어떻게 얌전하게 해서 데리고 간다.
아니 지금 나의 힘으로는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주변이 남아나지를 않을 것인데 어쩐다?’
톡톡-! 톡톡-!
생각이 깊어져서 그대로 영광의 자리의 손잡이를 오른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아무도 없는 주신전에 그 고민의 정적은 깊어져만 갔다.
“아군이 너무 강하면 문제이고 너무 약하면 고민이로군.
그리고 이계에 10중심들이 전부 있다고 판단하면 전력이 부족해.
아예 내가 없어도 버틸 정도로 만들어야해.
그럼 이 이상의 전력을 어디서 끌어온다?
휴우우우우-! 신생에 쉬운 일이 없어.”
차원의 마도신의 긴 한숨소리가 고요한 주신전에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