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絶望)과 희망(希望) -->
하지만 지금 고민을 할 일은 아니다.
신족의 시간관념은 1만년을 1년 정도로 볼 정도로 지나치게 길다.
더구나 영원체이신 진리의 일이라면 1억년을 1년으로 보아야 했다.
지성체의 감각으로 바로 벌어진다고 생각해도 아주 먼 미래의 일인 것이다.
지금 당장도 아슬아슬한데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적어도 1만년이후의 일을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지요.”
“최소 1만년 정도로 보나?
너무 짧은데.”
역시 전율의 진군과 고위마신들은 정신체라서 걱정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진리가 나선다고 하면 어떤 준비도 의미가 없으니 피난준비나 하면서 말이야.’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지요.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이것도 보아주십시오.”
상의할 수 있는 자신과 동급의 마신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위안이 된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오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웅-!
허공의 화면에 떠오른 것은 행성의 일부가 둥글게 뜯겨져 나온 것 같은 원통의 구조물이었다.
가운데에 박혀있는 거대한 검은 진주와 같은 포구와 주변에 도시와 같은 구조물을 보면서 의문을 표현하는 전율의 진군이었다.
보기만 했는데도 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느낌이 아주 익숙했던 것이다.
과거 신족과 악착같이 싸울 때 항상 마지막에 나왔던 거대 신력포대였다.
물론 보기만 하면 바로 신계와 같이 날려버렸지만 말이다.
“.........정령계의 유격화산인가?
물질만으로 구성되었다니 굉장히 구식인 걸.
저런 고물을 왜?”
오랜 신족과의 전투 중에서 많이 보았다.
신족이 신계의 화력보강용으로 쓰다가 포격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강력한 적들이 늘어나면서 폐기 된 것이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진리 대항용도까지 가능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가 대신족의 주신은 물론 마신들에게조차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 조금의 공격만 받아도 자폭하여 신계까지 날려대니 저런 낭비도 없었다.
“이계에서는 아르카나 시스템이라고 부르더군요.
최종병기급이라고 합니다.”
“하아? 겨우 저게 최종병기?
진리 대항으로 만들었다가 대신족의 주신의 신멸포에도 밀려서 버려진 쓰레기 아냐?
고정된 포대로는 장거리 공간이동을 하는 대신족이나 생각이상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투신에게는 상대가 안 돼.
더구나 저 쓸모없이 크기만 했던 포가 연속발사로 과열되거나 약한 공격에도 충격을 받아 폭발하는 바람에 신계가 몇 개나 날아간 줄 알아?
덕분에 동맹이던 마신족까지 엄청나게 당했다고.
신계를 통째로 날릴만한 자폭탄을 내부에 만드는 멍청한 신족 놈들 같으니라고-!”
굉장히 흥분한 것을 보니 포대의 폭발에 당한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조금 감정이 가라앉은 보고나서 다시 설명을 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게 왜 이계에 있냐는 점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구조의 포대로 보여 지는데 이것이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네. 제작연도가 거의 500억년 이상인가?
주우주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군.”
“그렇습니다.
이계 쪽이 원조입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계와 교류는 끊어진지 오래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물건의 비밀정보가 오고갈 리가 없다.
더구나 낙후된 이계의 것을 주우주가 따라서 제작할 리가 없다.
‘권능을 추가하여 안정성을 확보하는 운용방식도 499주우주가 훨씬 낫다.
허나 주우주에 있는 것이 이계에는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계의 신족들이 악착같이 허계라고 낮추어 부르고 있다.
그걸 알고도 진리는 무시하고 가만히 둔다.
더구나 이계로 가면 1만분의 1로 능력이 하락하는 재구현의 제약까지 있다.
이건 뭔가 굉장히 무서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거의 진실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의식적으로 해답을 내는 것을 억제했다.
‘이건 알아서 좋을 것이 전혀 없군.’
몰라서 좋은 일은 얼마든지 있다.
과거가 파란만장한 상위자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모르는 것이 낫겠군요.”
“맞아. 모르는 것이 좋겠다.”
전율의 진군도 바로 동의했다.
어차피 이계의 일 따위는 주우주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가 어떻든 진실이 그따위든 최대한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일단 개조하고 복제해서 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응? 이걸 어디다 쓰려고?
신계에 붙여보았자 표적과 위험요소 밖에 안 되는데?”
이런 불안정하고 위험한데다 이동도 안 되는 포대를 신계나 주변에 붙여놓았다가는 정예투신이 침투해서 폭파하면 그 여파로 신계까지 통째로 날아간다.
괜히 정령계로 보내져서 방치된 것이 아니다.
“신계의 있는 신들의 신력과 권능을 하나로 모아서 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허나 말씀대로 표적이 되고 자폭우려가 있는 고정적인 포대로는 의미가 없지요.
쿡쿡-! 그래서 조금 개조는 해야 하겠군요.
다행히 이런 쪽의 전문가들이 저희 신계에 있지요.”
아공간에 있던 아르카나 시스템을 그대로 주신계에 구현시킨다.
본래대로라면 구성요소 자체가 다른 이계의 물질을 주우주에 구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차원공통원소가 이런 기적을 이루게 해준다.
그것도 전혀 부담이 안 될 정도로 안정적으로 말이다.
‘차원공통원소(次元共通元素)의 자동보조인가?
이계의 물질의 재구현조차 아무 제한 없이 되는군.
정말 본래 용도가 뭔지 궁금한 권능이다.’
우우우우웅-!
허나 회색의 절대자조차 감탄만 했지 정확한 정체를 모르니 지금 자신의 수준으로는 매달려보았자 시간낭비였다.
나중에 연구하기 하는 것이 옮았다.
바로 차원신계 외부에 아르카나 시스템을 구현을 완료하고 담당자들을 불렀다.
“기계 여주신들을 부르라.”
신계자아에게 차원의 마도신의 명령이 전해졌다.
그러자 바로 공간이동으로 불려나온 기계 여주신들은 조금 당황하다가 영광의 자리에 앉아있는 차원의 마도신을 보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기계제국을 순식간에 제압한 차원의 마도신의 힘과 과격한 성향까지 알고 있으니 신계관리주신이 되었다고 무례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수십억의 생명조차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잔혹한 절대자였다.
기존의 신계관리 여주신들이 도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기계 여주신들의 공손한 태도를 차원의 마도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마에서 신령연옥을 뽑아내서 던지면서 지시했다.
“저것은 유격화산의 기계적인 원형이다.
이것으로 포격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초고속 이동과 장거리 공간이동도 가능하게 개조하라.
할 수 있겠는가?그것부터 판단하라.”
허공을 날아서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신령연옥과 신계 공중에 떠 있는 원통형의 구조물을 보면서 서둘러서 여러 가지 조사를 하는 기계 여주신이었다.
그리고 내부를 확인하고 기겁을 했다.
‘창조신의 보석에 수백만의 신들의 신령이 갇혀있어-!’
‘이게 뭐지? 그러나 일단 출력은 충분해.’
‘권능도 거의 신계와 동등해요.’
사정은 모르지만 일단은 지시 받은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곧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기계구조물만을 대량으로 투입하여 만들어진 신력포라고 여겨집니다.
자재는 충분하니 말씀하신대로 개조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동력원도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계의 이백만이 넘는 신족의 신령을 잡아넣은 신령연옥이었다.
신력은 낮았지만 권능만이라면 충분히 사용할 만 했다.
물론 쉬울 리는 없다.
곤란한 어조로 기계 여주신들이 보고를 한다.
“다만 이걸 현재의 유격화산 수준으로 위력을 올리고 이동요새로 개조하려면 많은 시간과 정기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제한되는 것은 시간과 정기이다.
그러나 차원의 권능을 가진 자신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서 아르카나 시스템을 통째로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게 별개의 공간으로 격리시켰다.
위성크기의 영역의 시간을 이렇게 완벽하게 통재하는 것은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이미 신계주변까지 차원공통원소가 점유하고 있는 탓이다.
“원하는 만큼의 시간과 정기를 주겠다.
내가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내라.” “.........알겠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권능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기계 여주신들은 신령연옥을 가지고 주신전 외부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또 다른 신체이기도 한 여신모습의 거대한 기계신의 몸체를 끄집어내서 바로 이동을 한다.
쿠쿠쿠쿠쿠쿵-!
위성 크기지만 화려한 기계여신들의 몸체가 이동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차원의 마도신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탈취 당했지만 그래도 이계에서는 공포의 상징인 최종병기 아르카나 시스템이다.
자신이 전장에 없어도 정예 투신들이 운용하여 마치 대신족처럼 공간이동을 하면서 신멸포를 쏘아대기 시작하면 거의 공황지경에 빠질 것이다.
‘어차피 무기는 쓰기 나름이다.
이계의 건방진 초월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보여주지.’
앞으로 저걸로 벌일 일을 생각하면서 아주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신계자아가 새로운 소식을 알려온다.
“신계관리주신들이 면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바로 비추어 주는 정문에는 여주신들과 정령주신들이 있었다.
여기에 이계의 창조신들의 신령을 손에 쥔 500주우주의 오리진들까지 구석에서 우글거렸다.
아마도 이계 배신자들의 창조신들의 군기를 잡는 것이 끝나서 돌아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신계관리주신들이 밀려오니 당황하여 구석으로 빠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일만 하다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알았다.
‘주신전 주변에 공간이동의 제한과 유격화산, 거기에 행성결계까지 걸어놓은 이상 찾아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인데 악착같이 왔군.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오고 난리지?
모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또 뭔 고민거리를 안겨주려고?’
강력한 주신들답게 정말 용케도 유격화산을 깔아놓은 주신전의 통로를 돌파하고 왔다.
그런 이들이 처리를 못하고 가져오는 문제가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호의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경계조차 놓치지 않으니 해결도 쉽게 해줄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기본적인 신계운영은 저들이 자신보다 나았다.
신계에는 도움은 되지만 자신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딱 중간 그 수준이었다.
더구나 찾아오는 이유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다.
‘아마도 상대방의 급격한 세력 확대에 제동을 걸고 싶은 것인가?
평화조약이라도 주선 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지?
아니면 세력 간의 문제라던가?
나보고 자신들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인가?
내가 왜?’
그럴 수는 없었다.
서로간의 경쟁구도가 멈추면 다음 공격목표가 자신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알았다.
더구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강제로 말리면 원망의 대상이 바로 중재자가 된다.
그래서 영 내키지는 않지만 단체로 찾아온 신계관리주신들을 외면할 명분이나 이유는 없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나름대로 차분하게 말했지만 생각은 딴 곳으로 흘렀다.
‘너무 신계에 오래 있었다.
500주우주의 창조신장에게 몸값이나 뜯으러 갈까?”
500주우주의 창조신장이야 자신을 보면 당연히 가만히 안 있겠지만 저런 식충이들을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라면 500주우주의 창조신계방문은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다.
‘아니면 창조신계에 가서 주신성의 개발사례라도 열람하러 가볼까?’
골치 아픈 신계운영은 너무 유능해서 말 안 듣는 부하들에게 떠넘기고 외부의 일만 생각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차원의 마도신이었다.
그러려면 신계에 오래 머무는 것은 지금처럼 아주 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