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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생존전략-713화 (713/1,533)

<-- 절망(絶望)과 희망(希望) -->

자신의 투기에 창백하게 질려 식은땀만 흘리는 흑염의 절대자에게 태극천검을 들어 올린 한진안은 과거의 생각에 젖어 들어갔다.

‘모든 상식을 파괴하는 힘에 질겁한 나의 표정 또한 저와 같았다.’

한없이 올라가는 기세는 과거를 생각해서 저 멀리 피한 바람가의 오리진들조차 목을 움츠릴 정도다.

영원체의 심혼조차 뒤흔드는 기세에 이어 자부심과 열정이 꿇어 넘칠 것 같은 한진안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무사는 죽음도 삶도 모두 적의 주먹과 검 끝에 두고 산다.

패배하면 죽고 승리하면 산다.

그래서 약자는 사라지고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수련을 멈추지 마라.

바람가의 후손이 약해지면 용서는 없다.

내가 직접 처벌하겠다.”

가주 인정식에서 처음 보게 되는 진리가 아닌 한진안 할아버님은 정확하게 무사였다.

약해지면 죽인다는 협박을 하면서 자신들을 쏘아보는데 정말 진심이었다.

직접 나서지 않으시고 바로 윗대의 선조가 계승식을 한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는데 그걸 저 멍청한 흑염이 자청해서 끌어낸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쉽게는 죽지 않는 흑염의 절대자라서 아주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진심으로 손을 봐줄 모양이시다.’

‘저 흑염 놈.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요?’

‘1대처럼 혼자면 죽어도 상관없는데 오리진이 사라졌다고 흑염일족들이 날뛰면 골치가 아픕니다.’

정말 혼자면 죽는 말든 상관없다.

다른 강자나 자신들이 나서서 대체하면 끝이다.

허나 문제는 이끌고 있는 1조이상의 신력을 가진 흑염 일족이 1억이 넘는다는 점이다.

오리진을 잃고 제어력을 잃은 흑염일족이 날뛰기 시작하면 흑염의 영역은 단숨에 재로 변해버릴 것이다.

‘흑염일족의 제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

그런 바람가의 오리진의 걱정과는 전혀 다르게 사태는 진행되고 있었다.

진한 미소를 띠우면서 한진안은 계속 검을 소중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그리운 아버지와의 추억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람가의 힘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람가의 선조들에게는 이런 힘이 없었지.

초월적인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완력만 쓰는 일반적인 인간의 무인 수준이었다.

허나 강함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가졌던 선조들은 영혼의 안식조차 포기하고 후손에게 힘을 계승하는 길을 선택했다.

나의 윗대의 모든 선조가 태극천검에 모두 영혼으로 남아서 강해지는 수련만을 생각하고 후손들에게 실현시켰다.

혈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영혼이 모여 연구하면서 우리 바람가의 힘은 대대로 자손들에게 계승되어 발전되어 왔다.

처음에는 약할지라도 대를 이을수록 강해진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바람가의 힘이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태극천검 절대참의 실현모습이었다.

절대계가 통째로 두동강이 났다가 점점 복구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런 힘을 발휘하도 숨 하나 고르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창조주가 권리를 이양할 수밖에 없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1대 10중심들은 영원체들조차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힘 자체였다.

“나도 오로지 혼자서 세상 전부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를 갈망했지.

그리고 마침내 황금의 절대자 아리오리나 라마세스님을 뵙고서 여기까지 도달하였다.

꿈을 이룬 것이다.”

거기까지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우우-! 꿈을 이루고 나면 현실이 다가온다.

10중심이 되어서 창조주의 권리와 영역을 나누어 지배권을 받았으나 의무도 받았지.

절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창조주의 의무는 너무 막중하구나.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고 싸워 승리하기만 했던 과거가 차라리 나았다.

영역관리는 무리이고 남을 시킬 수도 지배할 수도 없구나.

그리고 나는 수련만 한 무사이기에 가진 것은 힘뿐이다.

그래서 절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조차 너무나 힘들다.

지금도 나의 의식은 수많은 지성체와 정신체의 갈망으로 흔들린다.

아마도 다른 분들도 거의 상황은 같겠지.

수를 셀 수도 없는 의지의 외침을 듣고 그 중 가장 옮은 길을 선택하여 이끈다.

방해가 되면 설사 자신이라도 배제한다.

이건 영원체가 아니라면 어떤 힘을 가진다고 해도 무리였다.

사이안님은 처음부터 이걸 예상하신 것인지도 모르지.

도전자인 우린 끝까지 싸워 이겨야지 어떤 유리한 협상도 결국 패배라고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영원체들과의 전투는 아무리 이겨도 끝이 없어 지쳐가고 있었다.

그 분의 냉소대로 우린 끝없는 승리에 지쳐서 최종적인 패배를 선택한지도 모른다.

지금은 확신한다.

직접 싸워 이길 수 없는 영원체들은 승산이 없는 전투대신 창조주의 승부를 걸어온 것이다.

이 창조주의 승부는 영원체가 아닌 우린 아마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패배를 예측하고 인정한다.

허나 자신은 10중심의 패배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 10명으로 모든 신족과 창조주, 영원체들의 군세까지 물리친 절대적인 강자들이 그들이다.

계속 반복되는 전투로 한계 없이 강해져 나중에는 어떤 악조건의 전쟁터에서도 작은 부상조차 입지 않고 승리를 거듭했다.

그런데 이렇게 패배를 예상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너만은 힘보다 먼저 지혜를 가지게 했다.

또한 너는 어머니에게서 영원체의 자격까지 얻었으니 창조주의 의무도 아무 부담이 없다.

그러니 너의 대에서 우리 가문은 마침내 세상 전부를 초월할 것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아-!

너는 10중심의 세력 다툼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회색의 절대자님과 대등할 정도로 현명해졌다면 이제 나만큼 강해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도 10중심도 세력조차 필요가 없다.

너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앞으로 네가 이끌 너의 아들과 혈족으로 이루어질 바람가의 힘이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절대계와 세계 모두가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저기 너를 위해 준비한 목검을 들어라.

이제 시작하자.”

난생 처음 잡아보는 목검이었다.

그러나 마치 매혹되듯이 손잡이를 잡아갔다.

처음에 수련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세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현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결심도 그 세상을 단숨에 절단하는 힘 앞에 사라졌다.

사이안님에게 배웠던 수많은 지식과 권능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 어떤 대책도 찾을 수 없었다.

영원체들과 정신체들이 이런 힘을 가진 10중심들 앞에서 느꼈을 절망감과 암담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창조주가 무슨 생각으로 넘겨주었는지도 정확히 깨달았다.

자신도 절반은 영원체였기에 알 수 있었다.

‘영원체인 나는 알 수 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의지의 승부를 건 것이다.

영원체인 이상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었고 창조주의 자리를 걸어서 물러날 수 없게 만들었다.

받아들인 순간 이미 졌다.’

절대계 전부를 주관하는 창조주가 되면 혜택도 엄청나지만 정신과 존재에 걸리는 부담이 막대하다.

영원체를 초월한 힘을 가진 강자라도 결국은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수많은 의지의 부대낌과 반복되는 경험의 허무함은 영원불멸의 정신과 육체를 가진 영원체가 아니라면 결국 미치게 된다.

‘불사불멸의 정신체조차 시간이 가면 결국 소멸을 선택하는 이유다.’

더구나 창조주의 의무까지 부여하여 부담을 가중시키면 끝장이다.

최고의 현자인 회색의 절대자조차 바로 파악할 수 없게 영원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 인내의 승부였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표면적인 완전 승리와 같은 창조주의 제안에 적극 찬성한 다른 10중심들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스스로 자멸하는 순간을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설사 미쳐버린 10중심이 설사 절대계를 소멸시켜도 영원체들은 본질적으로 어쩔 수는 없다.’

10중심들의 미래는 결국 파괴신이 되어 급격하게 힘을 소모하고 자멸하는 길뿐이었다.

이 결말은 창조주의 의무와 권리를 충실히 실행할수록 빨라진다.

‘왜 사이안님이 10중심들이 절대계에 직접 관여하여 지배하는 것을 그렇게 반대했는지 알겠다.

열심히 할수록 파국이 더 빨라진다.’

자신들이 거의 승리한 최종 단계였다.

그러나 모든 신족세력을 잃은 창조주가 넘겨준 마실 수밖에 없는 극약을 먹어 외통수를 맞은 10중심이었다.

사이안은 이 절망적인 패배를 반전시킬 수단이 필요했다.

설사 다른 10중심들과 원수가 될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회색과 바람의 힘을 합한 반영원체인 자신이었다.

‘또 난세가 온다.

그것도 모든 10중심들이 미쳐 날뛰는 종말의 때다.

그럼 강함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10중심들을 전부 제압할 정도의 힘이 필요해.

그러나 가능할까?’

아버지가 10중심의 무력의 상징 ‘파워 오브 엠블렘’이라고 불릴 정도의 강자이나 10중심 내에서 종합적인 서열을 가장 하위이다.

세력이 없어서 그런 평가를 받기도 하나 실질적인 무력역시 최강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직접 보았다.

바람가의 가주계승을 위해 여기 오기 직전에 사이안님은 자신을 데리고 다른 10중심을 방문했다.

사이안님이 다른 10중심들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하여 어쩔 수 없이 보여주고 가르쳐 준 그들의 힘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리고 위화감도 느꼈다.

그들의 전력과 전부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10중심님들도 아버지처럼 숨긴 힘이 있어 보였다.

전력을 다했다고 하지만 아무 부담이 없었으니까.’

그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수단을 총동원해도 현재의 아버지에 받을 바람가의 오의로는 승산이 없다.

바람가의 오의는 분명 대단하나 종합적이다.

각각의 영역에서 특화되어 있는 다른 10중심과 비교하여 위력 면에서 손색이 있는 것이다.

‘황금의 절대자인 아리오리나 라마세스님을 상대로는 어떤 방식으로도 결코 이길 수 없다.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님과 근접전을 벌이면 패배하신다.

검편의 절대자 아스나스님과 진검 승부를 하시면 베이게 된다.

소마의 절대자 소마님과 마도의 승부는 순식간에 지게 된다.

다른 분들도 개인 전투력은 아주 약간 떨어지나 신족이라서 세력까지 전부 나설 것이다.

결국 바람은 누구와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복잡한 심사였다.

아버지와 자신만이 있는 바람가의 힘만으로는 다른 10중심과 세력을 단 하나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전부를 제압하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태는 위중한데 선택의 길이 너무나 좁고 험하다.

여기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창조주에게 사죄하고 부하로 들어가는 길이다.

각자 엄청난 제약을 당하겠지만 이 길이 아니면 결국 모두 미쳐버릴 것이다.

사이안님이 아무것도 말씀해주지 않고 아버지에게 넘긴 이유는 나보고 선택하란 것인가?

내가 나서서 창조주에게 다시 지배권을 바치고 충성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10중심들을 제압하고 절대계의 창조주가 될 것인가?’

양쪽 다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10중심들을 이길 힘이 부족하기에 창조주에게 고개를 숙이고 목숨을 구걸해야하는 것이 맞았다.

창조주는 아무리 반역자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힘을 가진 강자들을 다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림은 과거에 먼 선조가 했었고 나는 그 땅의 소유권을 힘으로 얻었다.

거기에 무엇을 하든 너의 자유이다.

너야말로 10중심이 마련한 최고의 힘이자 지혜이며 진정한 창조주이다.

우리의 모든 권능과 지혜를 익히고 발전시켜 마침내 세계와의 전투에서 최종 승리를 거둘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준비해온 것이다.”

이것 역시 정신체의 오산이면서 오만이다.

절대계를 만든 것은 영원체들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결국 창조주의 것이며 영원체들이 주인이다.

그 속에 있는 모두가 살아갈 권리를 그들에게 빌린 입장이다.

창조주의 권리를 받았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 행동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정말 주인이 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뿐이다.

‘창조주의 자리는 결국 영원체의 것이다.

사이안님의 말씀대로 투쟁을 할 수 있어도 주인은 될 수 없어.

협상을 하고 권위를 받아들인 순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

허나 이런 부질없는 기대를 하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구나.

그리고 영원체로서 자부심을 잃고 이런 치졸한 수단을 쓰는 과거의 창조주에게 고개를 숙이기도 싫다.’

영원체로서 파악한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서 바람가의 수련에 들었다.

그 후 10중심들은 역시 창조주의 기약 없이 반복되는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의무에 의지가 마모되어갔고 서서히 미쳐갔다.

‘처음에는 이유 없는 짜증 정도지만 점점 광폭해지고 긴장을 풀면 발작하듯이 부수려고 한다.

세상을 혐오하여 파괴하려는 광증의 시작이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이지만 어쩔 수 없이 반기를 들고 덤벼들고 나서야 삶의 의미를 찾고 겨우 진정이 될 정도였다.

그 후 벌어진 미숙한 영원체이자 절대자였던 자신과 10중심의 전투는 당연히 열세였다.

처음에는 10중심 전원은 고사하고 단 한명을 상대로도 처절한 패배만을 거듭했다.

1대 10중심들도 겨우 단 한명이 반역을 하겠다고 직접적으로 대들었으니 버릇을 고쳐줄 생각으로 나섰다.

‘수없이 찢기고 베인 그때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도 영원불멸의 영원체로서 어떤 부상이나 타격도 원상복귀가 된다.

절망적인 무력의 차이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강해졌다.

마침내 바람가의 절대권능 불가해의 팔시조를 완성하고 10중심들과 대등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을 때 과거의 창조주가 찾아왔다.

만나면 반드시 가만 안두겠다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허나 그 때 나온 제안은 정말 뜻밖이었다.

또 다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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