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방(前方)과 후방(後方) -->
또한 저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현재의 시대와 위치에 만족하고 조용히 숨어살던 주신들이었다.
단지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 뜻을 합쳐서 덤벼 왔지만 명분이 있었다.
저렇게 허무하게 소멸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차원창세신 코아는 이계에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허무의 승리를 칭찬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적군을 압도하는 아군만큼 찬사를 받을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적에게 베풀 동정은 사치이기도 했다.
“멋지군.
좋은 승리다.”
짝짝짝-!
그러나 추가적인 반응은 없었다.
허무의 전력의 일격에 칠백 명의 주신이 일순간에 소멸된 충격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칭호를 받은 존재들조차 허무 덕분에 쉽게 승리했지만 축하에 동조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결과였다.
동료들조차 공포에 어린 얼굴이라서 허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우려하던 결과였다.
‘허무의 칭호는 적을 너무나 쉽게 소멸시킨다.
그래서 아군조차 무서워하게 하는 권능.
이래서 허무의 칭호는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어.’
허무의 칭호는 다수의 적을 소멸시키는 너무 강력한 파괴력 때문에 아군조차 공포에 질리게 한다.
그래서 결국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 허무의 칭호를 가진 모든 존재들이 가졌던 고민이자 한계였다.
‘아군에게 준 공포는 서서히 풀어나가자.
일단은 되었다.’
지금 가장 절실한 차원창세신 코아의 칭찬과 박수에 얼굴을 풀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서 감사를 표시했다.
“감사합니다.”“진리님께 인정받은 강함.
똑똑히 보았다.
앞으로도 중임을 맡아서 활약할 것을 기대하겠다.”
“하-!”
아군에게 공포를 심어주었지만 그렇게나 원하던 평가와 약속이 나온 것이다.
초월자들의 대표가 된 차원창세신 코아의 말은 이제 법과 같았고 이렇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으니 좋은 결과였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불복종의 디스가 크게 박수를 치자 곧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짝짝짝-!
적을 동정하기 전에 갑자기 등장한 강적들을 혼자서 처치한 허무의 강함은 찬사를 받을만한 일이었다.
그 박수소리를 들은 허무의 얼굴이 그제야 희미한 웃음이 서렸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받아들일 정도로 조금은 이계가 변했음을 감지한 것이다.
‘이제 되었다.
초월자들의 대표로 등극한 차원창세신 코아님의 인정을 받은 이상 칭호를 받은 존재들은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반석이 되었다.
앞으로의 칭호를 받은 존재들이 얻을 위치 또한 신족보다 낮지는 않겠지.
그걸로 만족하자.’
그렇게 칭호를 받은 존재들의 큰 박수소리와 환호가 울리는 와중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라크사샤의 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것이 신족의 다음 시대이다.
진정한 강자만이 살아남아서 지배자로서 군림하게 된단다.
강자에 대한 견제보다 인정, 아니 크나큰 영광이 부여되지.
이제 배우나 가수가 되기 위해서 신생을 걸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바닥에서 쓸데없는 시간낭비나 절차 없이 능력에 걸 맞는 최고의 위치에서 시작할 수 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만들 너와 같은 강자들의 시대이지.
정말 흥분이 되지 않느냐?”
“........”
라크사샤는 이런 참극을 벌인 허무를 칭찬하는 차원창세신 코아의 말에 반항심이 들었다.
더구나 허무가 승자로서 영광과 찬사를 받은 승리는 칠백 명의 주신들을 소멸시킨 결과였다.
그 중에는 자신의 친구까지 끼어있으니 찬성할 수 없었다.
‘강자들의 시대라는 것은 결국 약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아.’
그러나 이미 당한 바가 있고 아직 품 안에 있으니 바로 대들지는 못하고 자그마하게 말했다.
“저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단지 부모를 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부디 자비를 바랍니다.”
유일하게 속마음을 열 수 있는 대등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가릉빈가조차 소멸되었으니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주신의 소멸을 복구할 만한 권능을 가진 창조신은 지금 신족에게는 없었다.
창조신급인 칭호를 받은 존재들을 장난치듯이 되살리는 차원창세신 코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정색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저들이 죄가 없다니?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두 개나 있다.”
“?”
이번에는 또 무슨 엉뚱한 죄가 나올지 몰라서 긴장을 하는데 역시 또 이상한 죄목이 나왔다.
“세금포탈과 병역기피.
이제까지 선신과 악신은 개인의 신념은 신계운영과 별개라는 이유를 들어서 이 둘을 모두 피해왔다.
이제까지 죄가 아니었지만 내가 독재자 된 이후부터는 죽어야할 중죄다.”
“?”
선신과 악신은 신족의 이상과 가치관을 주관하고 보살피기에 최고위원회의 정식통제를 벗어난다.
신족의 가치를 주관하는 신념이 권력과 밀착해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이다.
‘선신은 악신은 정식등용도 피하고 신족의 일원으로서 창조주만을 찬양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세금이나 병역의무가 면제되는데 그걸 지적한 것이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이제까지 장난기가 어린 말과는 전혀 다른 위엄이 서린 말투로 말을 이었다.
“선신이든 악신이든 신족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선과 악의 신념을 앞세워서 신계에 임관도 병역도 하지 않고 세금도 안 낸다.
강제로 집행하려하면 무리를 이루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지.
신계는 전면전 중인데 후방에서 평화를 주장하는 입 바른 소리와 어차피 권력다툼이라는 냉소적인 말만 하고 있다.
틀린 말도 아니고 개인적인 신념이나 이상으로는 평화가 맞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미 존망의 위기에 있는 신족에게는 하등의 도움도 안 돼는 말장난이지.
내가 창조신장이 된 이상 선신과 악신의 신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마치 딸을 가르치는 아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장면은 모든 신족이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앞으로 무엇이 죄가 되는지 명확하게 가르쳐야 했다.
납득하든지 아니면 반역을 선택하든지는 신족의 자유였지만 알려줄 의무는 있었다.
그리고 차원창세신 코아의 차가운 눈은 제압한 시위대를 흩고 있었다.
‘아무 훈련도 받지 않고 당장 전쟁에서 나서도 큰 전력이 될 고위신들이 이십만이 넘는다.
그런데 전선에서는 전력이 부족해 신계운영을 위해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할 창조신들이 전부 참전했다.
결국 창조신에게 보호된 고위신들이 후방에서 평화시위를 하면서 최고위원회를 점거하려고 하다니?
전부 엉망진창이야.’
시위대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로 무장까지 했으니 용서할 필요가 없었다.
“평상시라면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다.
안전한 후방에서 하는 평화시위는 전장에서 조금이라도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투신들에 대한 모욕이다.
더구나 창조신들 전부가 나서서 신족 전부의 존망을 건 전쟁 중에 평화 요구시위라니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어리광이로다.
여기 평화회담을 요구하면서 최고위원회를 점거하려고 하다니 반역죄로 처분을 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당장이라도 모두 숙청하거나 처분할 기세였다.
창조신장의 끔찍한 살기에 몸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시위대의 고위신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칠 정도였다.
그런 차원창세신 코아의 분위기를 읽은 라크사샤는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들도 신족입니다.
또한 사적인 욕망이 아니라 신족을 위해서 나선 행동일 것입니다.
다시 신족을 위해 노력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차원창세신 코아가 자신을 이상하게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았다.
친아버지나 가족조차 하기 힘든 배려와 지원을 해주고 있기에 시위대에 대한 선처해달라고 말을 했다.
이십만의 고위신들이 시위를 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몰살된다면 이후의 시대는 광기로 물들을 것이었다.
‘잘못하면 이십만 명의 시위대가 공개 처형된다.’
지금도 힘들었지만 평화로웠던 시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변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그런 미친 시대에서 현재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신족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단호했다,
“개인적으로 옮은 말이나 주장도 집단을 책임지는 수장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될 수 있다.
신족의 명운을 걸고 과거의 배신자들을 넘으려고 전쟁을 하는 신족을 이끄는 창조신장이 바로 나다.
그런 내게 잘못된 현재에 만족하고 적과 타협하자는 평화요구 시위는 백번 죽어 마땅한 대죄다.”
“!!!”
공개처형과 준하는 처분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십만의 고위신을 쉽게 몰살시킬 생각을 가진 창조신장이 앞으로 어떤 비극을 추가로 양산할지 두려울 지경이었다.
절망적인 생각에 빠진 라크사샤의 머리를 다시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무 많이 죽으면 신족의 세력이 감소하지.
그래서 운명을 건 결전에 나설 신족에게 후방에서 부담만 주는 기존의 선신과 악신만을 죽여 버리면서 정기와 권능을 회수하고 있었단다.
쉽게 처분 당하면 지금처럼 억울하다고 할까봐서 이렇게 하나하나 철저하게 절차를 밟아서 말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나요?
엄청난 원망과 분노가 당신께 몰려들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시위대에게도 부모, 자식이 있었다.
그들이 앞에서는 힘에 눌려서 비난하지 못할지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복수하러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선신과 악신, 아니 어떤 신이라도 신족의 부흥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때까지 숙청은 계속된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덤벼라.”
거기까지 대답을 한 차원창세신 코아는 아련한 시선으로 거꾸로 매달아놓은 선신과 악신, 시위대를 보았다.
“신족의 부흥을 위해 기존의 모든 방해요소를 철저한 배제한다.
이것이 창조신장으로서 가장 큰 의무이다.
인재 발굴도 최우선이지.”
그리고 속으로는 직접 말하지 못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완벽하게 의뢰를 완수한다.
이것이 내게 이계의 부흥을 맡기신 진리님에게 바치는 내 충성이며 효용성의 증명이기도 하다.’
본심과 같은 이 말은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오욕과 원망은 자신이 듣고 찬양과 명성은 진리님에게 돌리기로 직접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단지 충격을 받았는지 떨고 있는 라크사샤를 달랜다.
“이들은 그냥 두면 신족에게 쓸모가 전혀 없으니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너와 같은 강자를 직계로 둔 선신이나 악신은 신족에게 기여한 공이 크다.
네가 공을 세우거나 이계 부흥이 끝나면 바로 해방시켜 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거꾸로 매달린 선신 하나가 크게 외쳤다.
바로 다음 공개처형이 될 두 번째로 명성이 높은 선신이었다.
“강자를 직계로 둔 것이 신족에 공적이 되어서 해방할 사유가 된다면 저는 무죄입니다.”
다른 선신과 악신들은 자신들을 구하러온 구조대가 허무에게 전부 소멸되는 것을 보고 모두 넋이 나갈 정도로 절망한 상태였다.
그런데 마치 살아날 기회를 잡은 것처럼 핏대를 올리면서 소리를 쳤다.
“창조신장님의 기준대로라면 저의 공적은 세금포탈이나 병역기피보다 훨씬 큽니다.
선신의 대표 직위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저의 대표 자리를 인정해 주신다면 원하시는 대로 이끌겠습니다.”
강력한 직계가 있으니 공개처형을 면제시켜 주고 선신의 대표라는 권력까지 달라는 말이었다.
창조신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너무나 당당하게 하는 발언에 차원창세신 코아도 잠시 멈칫했다.
본성과 신계자아를 완벽하게 통제하기에 이미 공개처형 대상자인 선신과 악신의 정보는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저 선신이 강력한 직계를 가졌다는 보고는 없었다.
반려조차 없는 철저한 독신주의자였다.
‘허허. 이 놈 보게.
간이 부었나?
아니면 선신계열의 만년 이등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한이 맺혀서 돌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