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여왕의 이야기는 수정관을 품고 각 행성의 땅으로 파고들어 숨어가는 우주함들을 보여주면서 이어졌다.
“고대문명의 후계자들은 혜성이나 이미 정체모를 존재들이 초토화시킨 행성 위주로 숨어들어갔지만 대부분 발각되어서 파괴되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는 살아남아서 정체모를 자들이 확인할 수 없는 지하 깊숙이에 잠들어 때를 기다렸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워낙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기에 우리 은하 하나에 언제까지 전력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지.
과연 예상대로 행성의 표면에서 인간들이 모두 사라지고 문명의 흔적이 거의 없어지자 그들은 떠났다.
그리고 바로 다른 은하에서 새로운 인간들을 데려왔지.”
딸깍-!
행성 위의 표면에 거대한 빛의 문이 열리면서 거기에 초라한 행색을 한 인간의 무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확인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땅에 입 맞추고 빛의 날개를 가진 존재들을 칭송했다.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만족한 정체모를 존재들은 무리의 지도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고는 그대로 공간이동으로 대부분이 떠난다.
그 다음에는 중세시대 수준의 문명을 가진 인간들이지만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아주 약간 남은 정체모를 존재들을 떠받들었다.
“정체모를 존재들은 반역한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키고 자신들에게 순종하는 인간들로 행성을 다시 채운 것이다.
수확과 파종이라 부르는 이것이 바로 정체모를 존재들의 지배방식이다.
그들은 우주 전부에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
정기라고 부르는 무형의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 말이다.
정기는 지성체들의 생명력이자 정신 에네지의 일종으로서 인간들이 늘어날수록 늘어나고 특이구조물로 가공해서 수집한다.”
이제 많이 늘어난 인간들이 신상이나 신전에 절하자 환한 기운이 모이고 하늘 높이 발송된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양은 많아졌지만 빛줄기가 약해져가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여왕은 확신하듯이 말했다.
“정기는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살아도 흡수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그들을 인식하고 받들면 그 농도가 높아진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식을 하지 못해도 발산되는 정기의 농도는 정체모를 존재들이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창조나 파괴에 사용하기에는 강도가 부족하다.
이들의 개입을 줄이려면 정체모를 존재들에 대해서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해서 정기의 농도를 줄이는 방법이 가장 유효하다.”
극비 동영상을 끈 여왕은 공주들에게 확고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이 고대문명의 후계자 중 하나다.
너희들은 그 피를 강하게 이어서 현재 인류에 비해 강하지만 명심하라.
정체모를 존재들을 정면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형의 존재이기에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강하면서도 대량의 정기가 필요하다.
현재 제국의 약한 정기으로는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자아가 약한 어린 초능력자의 육체를 뺏어서 빙의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려 하고 있다.”
정체모를 존재들이 초능력자 아이에게 빙의되었다가 밝혀지고 벌어진 토벌 전투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완전한 육체를 가지면 고위 초능력자도 당해낼 수 없는 권능이란 능력을 보이지만 초창기에 잡아내면 비교적 쉽게 몰아낼 수 있다.
더구나 어린애의 육체라면 강한 초능력자 정도이지.
그러니 그들의 육체로 바로 사용될 수 있는 어린 초능력자들은 특별히 관리하고 정보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지금처럼 인간이 다스리는 제국의 지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여왕은 모든 영상과 화면을 닫고서 공주들에게 다짐하듯이 말한다.
“오랜 노력으로 그들은 이제 빙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솔트를 조작하여 그들을 경계하는 나를 병으로 쓰러트리려고 했으니 이제 직접 개입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없다는 증거다.
제국의 백성 누구도 존재조차 모르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절대로 그들은 과거처럼 대군으로 쳐들어 올 수 없다.
적대도 인식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
공주들은 믿기지 않았다.
제국을 만든 강대한 여왕의 발언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약한 항복선언이었던 것이다.
여왕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정체모를 존재들의 강대함에 놀라 달을 급히 쳐다보았다.
거대한 나무의 화분이 된 달에 은하 단위의 인간과 문명을 멸망 시켰다는 정체모를 존재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여기 신족들이 사업을 참 무식하게 했네.
잡초라 판정했으면 뿌리만이 아니라 씨앗이 있는 땅까지 갈아엎어야지 멍청하게 줄기와 앞만 제거했어.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설프게 후환을 남겨두니 평판이 이 꼴이지.”
알현실의 허공에 마치 그려지듯이 화려한 황금빛의 거대 문이 생기면서 열린다.
투덜거리는 소리는 그 안에서 이어졌다.
“하여간 이계의 신족들은 무능해.
모두 처분대상이야.”
그 문을 열고 나온 흑발의 미소년의 모습에 여왕과 공주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끼이이익-! 뚜벅-! 뚜벅-!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과 모습은 문제가 아니었다.
등 뒤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들이 문제였다.
특이하게도 정체모를 존재들이 나누어 가졌던 빛의 날개와 암흑의 날개를 동시에 가진 것으로 보였는데 너무나 많았다.
‘저 무형의 빛과 암흑의 날개들은 정체모를 존재들의 힘과 계급의 증거다.
그런데 빛의 날개가 열세 쌍에 암흑의 날개 열세 쌍, 그리고 혼합된 회색의 날개가 한 쌍이다.
극비영상에서는 아무리 많아도 여섯 쌍이었는데 자그마치 스물일곱쌍이라고?’
정체모를 존재들은 날개가 늘어날수록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정보를 가진 여왕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럴 수가?
영상에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고대문명의 지배층이던 고위 초능력자들을 전멸시킨 총지휘관이 열세 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주신(主神)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 이상의 고위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지?
그럴 수 있는 정기가 없을 것인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 중에 틀린 것이 있나?’
낮은 정기 속에서 주신 이상의 신족들은 신력을 회복하기 힘드니 꺼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이 시공간 구멍으로 다른 세계의 먼 미래에서 여기로 떨어진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를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알현실에 차원결계를 치고 모든 날개를 개방한 아이언은 아주 환한 미소를 띠우면서 여왕과 공주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말을 했다.
“후후후후-! 금방 다시 뵙는군요. 프롬 여왕폐하.
제국과 개인의 치부를 처리하는 빠른 대처를 아주 감명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크롬과 에메랄드 공주님.”
지성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이지만 완전 개방한 힘에 바짝 굳은 여왕과 공주들을 바라본 아이언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간들이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정체모를 존재라고 부르시는 신족들도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착한 쪽이라고 자부합니다.
저와 운명을 같이한 존재들은 모두 성공하고 속한 세상은 끝없이 번영했지요.”
물론 성공에 공짜는 없다.
자신을 따르고 죽을 고생과 시련을 넘어서 승리해야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그러나 정보행성 코아가 넘겨준 정보로는 분명 사실이었기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말한다.
물론 여왕과 공주들은 정체모를 존재들이 은하를 제압한 문명을 지워버린 전적이 있으니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공할만한 힘의 크기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직접 보니 굉장히 놀라운 수준입니다.
왜 여기 신족이 초월자로 만들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군요.”
“.......”
“.......”
“.......”
완전히 압도당한 그녀들은 바라본 아이언은 개방한 권능과 신격을 수습했다.
그리고 알현실의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저의 소개를 하겠습니다.
개인사정으로 현세계 최고의 영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초월자(超越者)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라고 합니다.
초월자(超越者)는 초능력자의 진화이며 지성체가 정상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종단계입니다.
당신들이 정체모를 존재라고 말하는 신족처럼 신령을 가진 신체이며 일단은 불사불멸(不死不滅)의 존재입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여왕과 공주들이지만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초월자(超越者)로서 제가 직접 온 이유는 제국의 혼란을 정리하시고 대공도 처리하셨으니 어서 빨리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바래서입니다.”
아이언이 제국과 여왕에게 적대하지 않는 대가로 자신과 딸들을 유모가 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본래대로라면 당장 사형감이나 여왕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상의할 시간을 주기 바라오.”
달에서처럼 바로 거절하기에는 방금 보인 힘이 너무나 컸다.
그리고 아이언의 말처럼 남편과 이혼하고 기계인간으로 만들어 전선으로 보낸 이상 유모정도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정체모를 존재들을 믿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더 자라기 전에 처리해야 해.’
슬쩍 공주들을 보니 일순 압도당했지만 바로 제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지금 소년의 모습이면 셋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다.
그럼 지금 쳐야하나?
본성의 초능력자 전력까지 총동원하면 처리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타났던 정체모를 존재들의 최대의 힘을 계산한 여왕에게서 서서히 투지가 일어나자 아이언은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극비영상은 나도 보았는데 대부분 천족과 마족이다.
그리고 최대가 겨우 상위신 정도의 전력이었다.
그것도 권능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현실을 강화하는 진정한 신족으로 보기 부끄러운 정도였지.’
천족과 마족, 하위신들을 기준으로 신족을 파악하고 대항을 하면 정말 큰 코를 다치게 된다.
신족의 진정한 힘은 주신이상의 존재들이었고 그들은 초월자가 아니면 상대할 수조차 없었다.
주신이상인 창조신인 자신은 원래는 지성체들이 직접 쳐다보기도 힘든 대적 불가능한 상위존재였다.
화를 내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하-! 그런가요?
시간이 필요하시다?
거절로 들리는군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아이언은 여왕의 자리에 떠있는 머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여왕님의 멀쩡한 몸이 제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단 치료는 완료되었고 초월자의 직전까지 진화를 해두었습니다.
역시 제국의 기둥다우신 힘이라서 발전이 아주 쉽더군요.”
“!”
자신의 몸이 완치되고 강화되었다는 말에 여왕의 표정도 변했다.
그리고 여왕과 아이언의 사이에 커다란 화면이 나타나면서 역시 투명한 구체에 쌓인 여성의 몸이 나타났다.
헌데 몸에 반투명한 머리도 붙어있었는데 분명 여왕의 얼굴이었다.
거기에다가 아무리 보아도 가짜 같지가 않았다.
“!?”
여왕이 놀란 표정을 하자 몸에 붙어있는 머리도 동시에 표정을 바꾼다.
지금 목과 머리가 나뉘어져 있지만 모종의 능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여왕과 공주들이 대충 사정을 파악한 것을 안 아이언은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가지신 강화된 초능력은 몸이 발달한 영향입니다.
조금만 더 하면 초능력자가 아닌 초월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계인간이 되시면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정말 불사불멸의 가능성을 버리실 수 있나요?”
권유보다 협박으로 들리는 이상한 말이었다.
여왕은 이미 기계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던 몸이기에 이렇게 압박을 하면 당연히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런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여왕은 결국 직접적으로 물었다.
“마치 짐이 기계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군.”
“기계인간이 몸의 부품만 간다고 뇌의 수명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무리 잘 관리해도 길어야 천년인가요?
지성체에게는 영원과 같은 시간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짧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우니 가급적 신형 기계인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말을 하는 아이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자 여왕과 공주들은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악의는 전혀 없는데 그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계획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여왕과 아이언이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시간에 절대계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칭칭 감은 인간형의 존재가 배 속에서 신기를 하나 잡아 뽑아서 바닥에 던진다.
땅-! 땅-! 푸슈-!
배에 피에 젖은 검 하나가 뽑혀 나와 생긴 상처부위에서 피가 솟구친다.
그러나 급속도로 상처가 아물고 품어졌던 피와 신기에 묻었던 혈흔까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머리와 몸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존재는 절대계의 새로운 창조주로 등극한 진리였다.
방금 검을 빼낸 배를 보면서 진리는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내 내장을 계속 끊어놓고 있던 검편(劍蝙)의 박쥐검을 드디어 적출했다.
이걸로 몸의 치료는 대충 끝났군.
남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