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벌써 거하게 한판 했는지 상급 주신이 다스리는 것으로 화려한 신계가 엉망이었다.
신계의 외곽 성벽은 완파 당하고 내부는 주신전까지 완전 박살이 나서 여기저기 화려한 갑옷을 입은 투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 신계 주신으로 보이는 상급 주신과 신계관리주신들이 신계에 지원을 받아서 필사적으로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흑염 세력의 단 네 명을 당해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한심한 몰골이었다.
꽈드드드득-!
그리고 나머지 오십여 명의 흑염 세력은 신계의 내부로 침입하여 중심핵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통째로 뜯어낸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작작 좀 부셔라.
정기가 필요하면 그것만 빼 가면 돼지 왜 쓸데없이 신계까지 파괴하나?’
신계의 모든 시설이 파괴되고 중심핵이 가진 정기 전부가 털리기 직전이었다.
이 신계는 끝장이었다.
‘투신의 숫자는 여기 신계가 월등히 많다.
그러나 수준 차이가 극심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군.’
흑염 세력은 중심핵에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정기에 희희낙락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하하-! 좋아-!”
“역시 신족은 어디서나 부자야!”
“이 정도면 회복에 도움이 되겠어.”
흑염 세력이 보기에 허약한 현세계의 신족들은 적이 아니었다.
비록 차원권능으로 어느 정도 힘을 회복했으나 백 분의 일로 힘이 감소한 자신들조차 막지 못해서 수월하게 탈취했기에 더욱 기쁨이 컸다.
같이 있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중심핵을 그대로 아공간에 집어넣고 외쳤다.
“전부 챙겼다.”
“빨리 뜨자.”
“창조신들이 오고 있다.”
아직 창조신은 감당이 힘들었기에 그대로 초장거리 공간이동으로 도주 준비를 한다.
벌서 몇 번을 했는지 이제 아주 익숙한 절차로 보였다.
그 말에 신계주신과 신계주신관리들을 느긋하게 상대하던 근원과 흑염 세력들은 반색하며 기뻐했다.
“그래?
벌써 끝났다고?”
“귀찮은 창조신들이 온다니 그럼 가야지.”
신계의 방어 전력을 제압하고 중심핵을 빼돌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상연락을 받은 창조신들의 도착까지 처리하는데 아슬아슬해서 위험했다.
이제는 갈수록 빨라지더니 이제는 여유가 넘치는 탓이니 안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뜬 채로 힘겹게 축적한 정기를 모두 뺏고 여유까지 있으니 상대하고 있는 신계의 신들 입장으로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크으으으-! 이 도적놈들-!
그만두지 못해!
신계가 정기부족으로 멈추면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한단 말이다!”
“커어어어-! 신계의 가호가 사라집니다.”
우우우우우웅-!
중심핵이 제거되면서 정기가 사라진 신계의 기능이 저하되어 신들에 대한 능력증폭이 해제된다.
그러자 흑염 세력을 더는 상대를 하지 못하게 된 신계주신 쪽이었다.
여기에 신계에 의한 강화가 풀리는 순간을 노리고 흑염 세력의 맹공이 그들을 덮쳤다.
“잘 놀았다.”
“신체단련은 좀 해라.”
신계관리주신들이 흑염 세력의 돌진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간다.
주먹과 발에 맞는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고 얼마 남지 않는 신계 건물을 몇 개나 부수고 처박혔다.
너무 상대가 안 되니 신계 주신에게 쇄도하는 근원의 표정에는 나른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너무 약해.
정기가 고마우니 죽이지는 않으마.”
퍼어억-! 빠가가각-! 꽈꽈꽈꽝-!
신계 주신도 신계로부터 강화가 풀리자마자 흑염 세력의 근원에게 단 한방으로 피를 토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흑염 세력은 상처 하나 없으니 그래도 상급 주신의 신계 전력을 실컷 가지고 놀다가 처리한 셈이었다.
‘힘은 백 분의 일로 줄었으나 겨우 오십 명으로 흑염의 절대자의 직속 세력을 유지했었던 강함은 어디 가지 않았군.’
아이언은 차원권능으로 냉정하게 능력분석을 하면서 놀라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현세계에서 상급 주신 정도로군.
특히 저 근원은 거의 최고위 주신이다.
하지만 절대계에서 현세계로 넘어오면서 백 분의 일로 힘이 줄었다면서?
그럼 본래 능력은 창조신장 이상이었나?
창조신장이상의 강자가 오십 명이라면 엄청난 전력이다.
흑염 세력이 이렇게나 강했어?’
힘이 백 분의 일이나 줄었으면서 아직도 상급 주신이라는 사실에 놀랐으나 정보행성 코아가 빠르게 사실을 파악하여 아이언에게 알려주었다.
‘그건 아니야?
단지 차원권능으로 힘의 감소를 줄이고 기본 저력이 최고위 창조신이상이라서 그렇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신계 전부가 차원결계에 둘려 있군.
저들의 소행인가?’
잘 보니 여섯 명의 차원권능을 사용하는 존재들이 신계의 외곽을 전후좌우와 상하를 둘러싸고 연결하여 육각형의 고유세계를 펼치고 있다.
‘차원결계로 흑염 세력의 힘 감소를 어느 정도 중화시키고 있다.
그럼 저들부터 처리하면 대충 주신급으로 떨어지겠어.’
그러나 이 차원결계 안이라면 모두가 상급 주신 이상이었다.
그 덕에 신계 하나의 전력을 송두리째 무너트리고 정기를 모은 중심핵을 탈취하는데 걸린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보였다.
나름대로 훌륭한 대책이었다.
‘신계의 가호를 받은 저 신계주신은 거의 창조신급이다.
그런데 겨우 최고위 주신인 근원이 농락할 정도로 강하군.
나 정도의 차원권능으로 고유세계를 만들어 영향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적어도 현세계 창조신장급 정도는 된다는 소리로군.
그러나 저들의 수준으로는 아무리 차원권능을 합해도 그 정도는 무리다.
그러면 현세계 최고위 주신 한 명과 상급 주신 오십구 명이 총 전력인가?
이거 미묘한데.’
차원일족의 유아신 상태로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흑염 세력에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열 명이나 있으니 확실하게 제압은 불가능했다.
‘이길 수는 있으나 도주를 막을 수가 없다.’
실제로 중심핵을 챙기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신계 주신까지 날려버린 흑염 세력이 차원이동으로 공간이동을 하는데 굉장한 발동 속도였다.
파파파파파파파파-!
지역우주 이상의 거리를 이동하는 자신에 비해 이동거리는 은하계 정도로 짧았지만, 흔적도 거의 없고 발동도 지극히 빨랐다.
더구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 열 명이 힘을 모아서 이동하면 사전에 저지할 수 없어 보였다.
‘저렇게 도망치면 나도 막기 힘들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어디서 차원권능으로 도주하는 것만 배웠나?
이동거리는 한심한 주제에 왜 저렇게 속도가 빨라?’
갑자기 날라 와서 은하를 지우는 진리의 술병 투척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갈고닦은 차원권능이었다.
그러니 차원의 오리진인 아이언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흑염 세력이 중심핵을 가지고 도주를 하자 신계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정기 부족으로 기능을 정지합니다.’
중심핵을 잃은 신계가 휴면상태로 들어간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신계 자아가 스스로 폐쇄조치를 한 것이다.
스스스스스스스스슥-!
신계가 찬란한 빛을 잃고 신전과 건물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광경을 본 현세계의 신들은 모두 망연자실해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이언도 남의 사정이지만 같은 신계 주신이기에 신계의 몰락을 착잡하게 쳐다보았다.
‘끝장이군.
신계 전부를 지탱할만한 강력한 창조력이나 정기를 가진 고위신이 없다면 막을 방도가 없다.’
그 순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신계 주신은 자신의 신계가 망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절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도적놈들-!
허계(虛界)의 허신(虛神)들 주제에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그 말을 들은 아이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불쌍하기 전에 패배를 당하고 나서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신계 주신이면서 자기 신계도 지키지 못하고 목숨이 붙어있다니?
네가 싸우다 죽을 각오였으면 막을 수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숙청당해야 할 주제에 상대를 허신이라 매도한다고?
썩을 놈!
아주 잘 망했다.’
억울한 심정은 이해한다.
분명 오랜 세월을 거쳐서 가꾸어온 것이 틀림없는 아름다운 신계가 모두 분해되고 광활한 평야만 남았으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신계 주신의 절규와 함께 단숨에 중심핵과 신전까지 모두 잃어서 알거지가 되어버린 넋이 나간 신들 위로 급하게 공간이동해온 창조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파파파파-! 파파파파-!
고위 창조신들의 공간이동에 아이언은 혹시 모르니 차원권능으로 고유세계를 더 강화하고 그들의 찬찬히 살펴보았다.
‘현세계의 창조신들인가?
역시 지금의 흑염 세력보다 능력은 위다.’
일백 명 정도 나타난 창조신들은 신계가 완전 휴면에 들어간 상태를 보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또 늦었군.”
“역시 여기도 완전히 당했나?”
추적을 개시하고 이미 열 번 이상 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나마 소멸한 신이 적어서 다행이나 중심핵을 뜯어가서 신계가 자연 폐쇄되니 피해가 극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꾸 예산이 줄고 있는데 걱정이로군.’
‘우리 봉급도 팍 깎이는 것 아니야?
슬슬 우리 책임론도 나온다고 하던데?’
‘자기들이 직접 해보라고 대답하지.’
‘만약 그랬다가는 최고위원회를 뒤집어 버린다.’
차마 말을 못하고 불만을 의지로 나누는 상위 창조신들의 출현에 신계 주신과 신계관리주신들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여기저기 당한 부상을 회복조차 못 한 몰골에 창조신들을 혀를 찼다.
“쯧-! 그래도 상급 주신의 신계여서 이번에는 견딜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
“겨우 반나절도 못 버티었나?”
“신계의 전면지원까지 받고서도 이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세계의 차이로 인하여 적의 신격은 너보다 약했다.
“창조신계의 추가지원까지 받고 이게 무슨 추태냐?”
“오랜 평화에 신계를 지키는 법조차 잊었느냐?”
살벌한 추궁이었으나 신계 주신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강력한 차원권능으로 도적 떼들의 수장이 최상급 주신이고 다른 놈들은 상급 주신 수준으로 힘을 일시적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방어력으로는 최고의 요새인 신계를 활용한 수성전이었다.
‘창조신들이 몰려와도 견딜 수 있다.
나라면 그래야 했다.’
그런데 전력으로 방어하고도 반나절을 못 견딘 사실은 자신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물론 알고 있었다.
‘방어력은 위였는데 기세에서 완전히 밀렸다.’
능력 이전에 몸을 아끼지 않고 외부 성벽에 몸을 던져서 파괴하는 도적들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신계 내부에 들어와서 품어내는 투기와 살기에 직면한 대부분의 투신들이 전의를 잃었다.
이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완패다.’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푹 숙인 신계 주신의 모습에 딱해진 창조신들은 그 이상의 질책은 하지 않았다.
‘이미 신계의 복구는 글렀으니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이상의 징계는 없지.’
다시 신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시밭길을 가야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전담반을 꾸려서 추격하는데도 벌써 여러 곳이 털렸으니 창조신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허계의 난민은 많았으나 이번 도적 떼들만큼 골치를 아프게 한 존재들은 없다.”
“이놈들의 차원권능 때문에 항상 도착이 늦어.”
“은하계를 뛰어넘는 거리를 가진 차원권능이 문제다.
신계들의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이용해도 늦어.”
“이러면 우리만으로는 한계다.”
맞상대라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적떼들은 자존심도 없는지 어떤 도발을 해도 피하고 철저하게 약한 신계의 중심핵만 노렸다.
그 결과 이렇게 기능 정지가 된 신계들만 늘어나니 이제 자신들에게 책임추궁이 들어올 차례였다.
해결책은 하나였다.
“우리도 차원권능을 가진 창조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