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흑염 세력은 태어나서부터 특출나게 강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던 종족과 행성을 모두 파멸시키고 홀로 떠돌면서 근처의 신계를 약탈하고 살았다.
‘가끔 추격해온 토벌대를 박살 내던 통제 불능의 무법자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원래대로 돌아갔군.’
십중심이 없던 절대계에서 따로따로 혼자서도 멋대로 잘 살던 강자들이 뭉쳤으니 막을 존재는 없었다.
‘혼자 있을 때도 거침이 없었는데 비슷한 능력을 갖춘 존재가 수십 명이 모인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기도 보충했더니 이제 지루할 뿐이군.’
차원권능으로 입체 결계를 만드는 존재들을 지키고 있던 근원은 순조로운 신계 약탈을 무감동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차원권능으로 힘의 감소를 중화시키고 있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도 혀를 차고 있었다.
“쯧쯧-! 너무 약하군.”
“이러면 차원결계도 필요 없겠어.”
어느 정도 정기를 보충하자 십중심의 반란세력을 거침없이 처단하던 흑염 세력다운 능력을 발휘한다.
세상 전부를 적으로 돌려 싸워 살아왔기에 흉악하기 짝이 없는 투기와 살기를 뿌리고 본래 가졌던 강력한 고유권능과 특출한 신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니 적수가 없었다.
전력을 반으로 나누어도 여유가 넘칠 정도였다.
‘이걸로 확실하다.’
‘이곳의 나약한 신족들은 우리와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열 개의 신계를 부수면서 누구도 치명적인 부상이 없다는 사실이 힘의 차이를 증명했다.
이제 신계 주신과의 전투조차 나설 필요가 없어진 근원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한 신계의 울타리를 보았다.
‘아무리 신계의 방어력이 강해도 저렇게 무방비로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연속공격에는 어떤 철벽도 뚫리기 마련이기에 반드시 나와서 저지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도 요격하러 나오지 않고 벽 뒤에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들은 힘이 문제가 아니야.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의지가 없어.”
이제 둘이 아니라 세 개나 네 개의 신계를 동시에 침략해도 가능해 보였다.
현세계의 신족이 약한 덕분에 힘의 회복은 굉장히 순조로우나 근원의 지금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갈등과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어디서 정보를 파악했는지 흑염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적 떼로 악명이 높아질수록 근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또 이러는 것을 아시면 흑염의 절대자님이 복귀하시자마자 모두 맞아 죽는다.
그걸 알면서도 유일하게 배운 일이 도둑질이고 잘하는 것이 싸움이라 이러고 있다.’
흑염 세력 모두의 가슴 속에는 삼 미터가 넘는 거구로 도저히 항거하지 못할 힘을 보인 거인의 말과 주먹이 육체에 가득 새겨져 있었다.
도저히 정상적인 신족으로 보이지 않던 거인은 언제나처럼 닥치는 대로 죽이고 빼앗으며 살아가던 자신들의 앞에 서서 울화통이 터진다는 듯이 외쳤다.
“강자로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면 자랑이다.
그러나 목적이 어중간해서 혐오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내 손에 죽어라.”
혼자 떠돌면서 만난 존재들이 모두 자신보다 약자들이라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너부터 죽인다고 달려들었다가 장난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손바닥 한방에 신체가 완전히 뭉개지고 십중심의 감옥에 끌려갔다.
흑염 세력과 흑염의 절대자의 첫 만남은 그러했다.
‘아무리 각색을 해도 최악의 추억이로군.’
살과 뼈를 찰흙처럼 뭉개놓고 감옥에 가두어 놓은 주제에 계속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니 미칠 지경이었다.
“너희들의 강함에는 갈망과 순수가 부족해!
그래서 너희들이 이렇게 도망 다니는 꼴인 것이다.
강해져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강해지는 과정 자체가 삶이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 거인이 십중심 중 최강의 광전사(狂戰士)인 흑염의 절대자라는 정체를 알고 보니 영 믿음이 안 갔다.
잘 알려진 삶과 과거의 행동을 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흑염의 절대자와 자신들의 차이는 밀림과 종족이라는 거주 장소의 차이였다.
‘흑염의 절대자가 살던 밀림에서 마수들은 거의 몰살 되었다.
그럼 해코지만 해대던 종족들을 모두 죽인 우리와 뭐가 달라?’
그러나 뭐라고 욕을 하면 바로 감옥에 들어와서 자근자근 정성 들여서 작살을 내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워낙 험하게 살아서 부상회복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뭐가 이렇게 세고 무식해!’
‘이건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야.’
이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탈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폐해지면 바로 외출하여 또 한 명씩 잡아 왔다.
그렇게 절대계를 종횡하면서 멋대로 살아오던 무법자 모두가 잡혀 오자 구원이자 절망이 다가왔다.
회색의 고풍스러운 정장을 입은 중년인이 지극히 짜증이 나는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흑염의 절대자를 보자마자 겁도 없이 소리부터 쳤다.
“순수한 강함?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서 지껄이고 있나?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왜 바로 말소를 안 시키고 이렇게 모으기만 해?
설마 이 무법자들을 세력으로 쓸 생각은 아니겠지?
태어난 종족을 행성을 일족까지 지운 이들은 자신의 삶에 변명까지 하는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재활용의 가치도 없으니 당장 처리해버려.”
“내가 맡겠다.
그러니 나에게 과거를 세탁해서 넘겨줘.”
“이 꼴통아-! 힘이나 직감만 믿지 말고 머리를 쓰고 살아.
이것들을 네가 체포하여 죽이지 않고 가둔 사실을 알고 모인 저 밖의 군중들이 안 보여.
당장 죽이라고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
아오-! 바보는 정말 약도 없어.”
절대계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흑염의 절대자에게도 거침없는 욕설을 내뱉은 중년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이들을 두둔하면 너도 저들에게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겨우 십중심이 되었는데 과거보다 못한 위치에 있고 싶어?
지지받지 못하는 상위자만큼 힘든 것도 없어.”
“약자들의 외침 따위는 관심 없다.
어떤 악명을 뒤집어써도 내가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라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십중심의 이름을 지키는 대신에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
그것이 내가 너희와 합류한 조건이었으니 지금 지켜다오.
나는 이들을 내 세력으로 받아들여 반란자들을 치겠다.”
“좋아! 그러면 합당하다.
절대계의 모든 옮고 그름을 판정하는 현자의 정점인 회색의 절대자의 권한으로 이들의 이름을 지우고 기록도 바꾸겠다.
그럼 범죄기록의 구 할은 말소되겠지.
그다음에 저 밖에서 고발은 했지만, 보상을 바라는 자들을 만족하게 하면 끝이다.
이제 이것들은 무죄다.”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당연히 말소 처분으로 알고 각오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과 소속이 멋대로 바뀌고 무죄라는 선고이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뻐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렇게나 바라던 새 출발을 할 아주 좋은 기회였지.’
그런데 회색의 절대자는 아주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선고했다.
“너희들이 언제인가는 도움이 될 것을 아는 직감만 좋은 멍청이 덕에 너희는 무죄다.
끈질긴 생명력과 강함으로 저 꼴통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덕분에 살았으니 좋겠구나.
십중심의 직속 세력 중 하나가 되었으니 기뻐하라.
그러나 운 좋은 쓰레기들아 명심하라.
너희가 언제 어디에 이 무뇌아에게 쓸모가 있을지 나조차 모른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호는 이어지겠지.”
회색의 절대자 사이안은 이 무법자들을 진심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낙인찍어 당장 말소라고 내뱉을 듯한 어조였지만 현자로서 설명한다.
“강자나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욕망대로 살아서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죄는 크다.
그 대가를 치르기 전에는 너희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
그래서 흑염의 절대자의 가호가 끝나고 용서받지 못한 죄를 범한 죄수임을 잊는 순간 본래의 운명으로 돌아가서 마지막이다.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면 이번 나의 무죄 판결은 결국 말소의 집행유예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건대 너희들의 욕망을 자중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벌레처럼 밟혀 죽을 것이다.”
“........”
십중심 중 현자의 정점은 회색의 절대자였다.
자신들 같은 무법자는 보기도 힘든 최고의 현자가 직접 한 경고를 단순한 예언이나 저주라고 무시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이름이 바뀌고 흑염 세력으로 일하는 대가로 무죄 방면되어 흑염의 절대자를 보필하면서 살아갔다.
그리고 근원은 그 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되새기듯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흑염의 가호를 잃은 상태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 벌레처럼 밟혀 죽는다.”
지금 현 세계의 신계들을 털고 있는 것도 회복에 필요해서 이다.
하지만 좋게 해결할 수도 있으나 진리에게 쫓기고 세상의 항상성에 약해진 분노에 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발생한다.
‘우리를 현 세계의 신족들은 허계 흑염의 도적 떼라 불리고 있다던가?
나나 저들의 악명은 상관없지만 하필이면 흑염이라는 단어가 붙다니 이 무슨 끔찍한 일인가?
흑염의 절대자께서 복구되시고 이 사실을 아시면 모두 죽고도 남을 죄이니 어떻게든 호칭을 바꾸어야 한다.’
흑염의 절대자는 악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지만, 그래도 욕을 먹는 것은 아주 싫어했다.
더구나 흑염의 절대자라는 위대한 명예에 내심 자부심도 느끼고 있었는데 도적 떼에 자신의 칭호가 붙었다는 사실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근원이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고 너무 약한 상대에게서 막대한 정기를 수월하게 빼앗아서 마냥 기쁜 흑염 세력이었다.
대부분이 저런 단세포들이라 의논할 상대 따위는 없으니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
‘신계 약탈을 그만두고 다른 방식으로 정기를 벌 수는 없다.
그럼 일단 흑염의 의적단이라도 되어보자.
이제부터 신계에서 턴 정기는 거의 격리되었다고 하는 초월자들에게도 뿌린다.
그리고 악질적인 신계 주신이 사는 신계만 중심적으로 노려 처단하면서 명망을 높인다.’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근원도 도적질과 전투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느긋한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아아아아-!
등 뒤에서 아주 강력한 존재가 살기를 품어내는 것처럼 아주 섬뜩하기 짝이 없는 감각이었다.
‘과거 흑염의 절대자와 마주쳐서 끌려가기 전의 느낌과 아주 비슷하다.’
분명 상대할 수 없는 강자가 추격해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뭔가 온다.
이건 위험해!”
그러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은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항성계 전체에 뿌린 차원권능에 어떤 공간이동이나 기색도 잡히지 않고 있으니 당연한 의문이었다.
“차원권능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데 착각이 아닌가?”
그러나 근원은 언제나 지식이나 정보보다 이 직감을 더 신뢰했다.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 절대계에서 토벌당해 이미 수백 번을 죽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너희 권능보다 내 직감이 더 정확하다.
당장 후퇴해야 산다!
다른 공략팀에게도 경고를 보내서 빨리 정리하고 뜨라고 해!
차원권능으로 최대한 멀리 도약한다.”
“알았다.”
근원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다급하게 도주 준비를 해가는 차원권능이었다.
흑염 세력의 대부분은 혼자서 세계 전부와 싸운 전적이 있던 강자들이었다.
근원의 심각한 경고가 실린 외침에 즉각 반응했다.
그러자 눈앞의 전과에 잠시 마비되었던 위기 감각이 비명을 질러온다.
정말 극히 위험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이거 엄청나게 강하네.”
“제길-! 거의 다 되었는데 아깝네.”“도대체 뭐가 오는 거냐?
그래도 시간은 조금 남았잖아?
여기는 마무리 하자!”
여섯 시간을 넘게 걸리던 신계의 외부 성벽 돌파를 이제는 세 시간도 안 되어서 가능했다.
이제 자신들의 투기와 살기에 벌벌 떨고 있는 투신들과 신계 주신을 정리하면 또 일 조를 벌 수 있는데 아깝기 짝이 없었다.
조금 시간이 남아 보이니 강행돌파를 해볼까 생각했으나 근원이 단호하게 외쳤다.
“이번 추격자는 분명 우리보다 강하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흔적을 철저히 지워야 한다.
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놓고 가겠다.”
“윽-! 알았다고!”
근원이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을 닦달해서 도주로를 만들자 다급하게 복귀한다.
자신들이 아무리 강해도 소수인 이상 차원권능이 없으면 포위되어서 죽을 신세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아아아아-!
그렇게 흑염 세력이 사라진 이후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화살이 쏘아지는 듯한 기세로 샤이니가 도착했다.
강력한 권능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창조신계로부터 여기까지 초장거리 공간이동으로 관통하여 반나절의 이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인 것이다.
그렇게 무리해서 도착해보니 신계는 비교적 무사하나 흑염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공간이동의 흔적조차 완전히 지운 것을 보고 탄식을 했다.
“허어! 창조신계의 권능을 총동원하여 이동을 숨기고 은하계 밖에서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해 왔는데 눈치를 챘구나.
그럼 이들에게는 미래를 읽는 존재가 섞여 있나?”
예지가 아닌 오랜 무법자 생활로 갈고 닦여진 단순한 위기 감각이었다.
하지만 도착 몇 시간 전에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게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도주했으니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은하계 이상의 공간이동과 육십 명의 강력한 고위 주신도 문제가 크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미래 예지까지 가졌다면 이걸 어떻게 토벌을 해야 하나?”
샤이니도 대책이 없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유감스럽게도 다른 쪽의 신계는 대책반이 늦어서 털렸기에 정식으로 토벌단으로 전력을 확장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렇게 샤이니가 이끄는 흑염 도적단 토벌대와 흑염 세력이 치열하게 충돌을 시작했다.
현세계의 흐름을 가속화 하기 충분할 정도의 활발한 신계의 강탈 시도와 방어, 추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힘을 축적한 흑염 세력은 드디어 깃발을 만들어 들었다.
‘우리는 절대계 흑염 의적단(絶代界 黑炎 義賊團)!
신족의 독재를 타도하고 자유를 되찾겠다.’
벌써 이십 개의 신계를 잃고 이십 조의 정기를 빼앗긴 신족으로는 기가 막힌 이름이자 명분이었다.
그러나 별로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괄시와 탄압을 받던 초월자와 고위 지성체들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소식은 흑염 세력이 신계를 털면서 자신이 있는 은하에 가까이 오자 신체 성장과 전력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아이언에게도 들렸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절대계 흑염 의적단(絶代界 黑炎 義賊團)이라고?
도적질하면서 그런 이름을 붙여?
절대계와 흑염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구나.
더구나 독재 타도와 자유?
절대적인 힘으로 지배하던 십중심의 세력이 할 말이냐?
원래의 흐름이고 뭐고 당장 죽여 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