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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체가 되면 망각은 없다.
근원은 다시 떠오르는 영웅신으로서 더없는 영광의 시기와 처절한 배신을 생각하면서 신경질적으로 술을 마셨다.
벌컥-! 벌컥-!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모두가 종족을 멸망시킨 죄인이 되어 세계에 쫓겨서 떠돌던 과거처럼 실컷 싸우고 빼앗으며 마시기만 한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자는 없고 다음 사냥감을 생각만 하는군.’
이미 흑염의 절대자가 말했던 순수한 강함의 추구와 강자로서 홀로 선다는 자부심이 흐릿해진 그 모습은 이제 도적단에 지나지 않았다.
‘영웅신에서 타락하여 강도가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절대계의 흑염의 절대자를 모시는 지배층이 되었다가 이제는 도적단의 두목인가?
영광에서 시작했다가 맨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운 좋게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리에게 흑염의 절대자님이 패배한 순간 다시 내동댕이쳐진 신세였다.
지독한 굴곡의 신생에 씁쓸한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근원이었다.
‘더 오를 수 없는 하늘 끝에 올라서면 땅끝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영웅신의 운명인가?
일족과 함께 버렸어도 지긋지긋하게 따라오는군.’
쓴웃음을 띄우면서 아직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에게 설명한다.
“후후! 그동안 이겨오기만 해서 무사했던 모양인데 우리와 싸워 패배했으니 반드시 탄핵을 당한다.
그때가 오면 반드시 구해서 동료로 삼겠다.
절대계의 창조주가 된 진리와 혈족인 바람가와 싸워서 십중심님들의 신체를 구하려면 강자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해.”
진리와 바람가에 대항하여 십중심을 구한다는 말에 흑염 세력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함께 검은 불길이 타오른다.
흑염의 권능이 남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일지를 모르나 흑염 세력에게는 구원의 태양이었다.
다시 가호가 돌아왔으니 드디어 희망이 보인 것이다.
‘흑염 권능의 가호가 돌아왔다.
루카 에일레스님은 살아계신다.’
‘일족을 멸망시킨 타락한 영웅신이 되어 세계에게 배척당한 우리다.’
‘모든 반대를 무마하고 다시 양지로 끌어올려 준 흑염의 절대자님은 분명 살아있다.’
이런 신세로 만든 진리에 대한 복수와 지배층으로 복귀에 대한 갈망은 그들을 완전히 도적단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격앙된 분위기를 느낀 근원을 술병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외쳤다.
“우리는 현세계의 신족의 영웅신 샤이니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패배시켰다.
현세계의 초월자들과 약속은 부분적으로 이룬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우리는 현세계의 세력이다.”
현세계의 초월자들은 자신들에게 정기를 받고 감사를 표하면서 적대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흑염 세력을 정식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난색을 보이면서 거절했지만 막대한 정기 지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임무를 맡긴다.
신족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샤이니의 배제였다.
종족전쟁에 패배하고도 살아남은 초월자들에게 신족의 영웅신인 샤이니는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심각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더군.
다른 세계에서 온 위험한 강자들에게서 족쇄를 벗겨주는데 동의할 정도로 말이지.’
지배층인 신족의 승인이 없어도 많은 존재감을 가진 초월자들이 동의하면 세계의 항상성으로 인한 힘의 감소를 경감시킬 수 있다.
‘차원권능에 의해 일 할의 힘을 되찾았는데 적어도 일 할 정도는 추가로 회복할 수 있다.’
그럼 샤이니라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신족을 대표하는 영웅신이라 해도 흑염 권능의 가호를 회복한 자신들의 적은 아니었다.
‘그는 혼자이지만 우리는 오십 명이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
흑염 권능의 가호가 돌아온 이상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일 써클의 차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신족의 지배층들이 알아서 배제해줄 것을 짐작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샤이니를 소멸시키지 못해도 신족에 의해 추방되어 격리되면 의뢰는 완성이다.
그리고 초월자들과 같이 신족을 무너트리고 여기 창조주님의 인정을 받으면 우리의 힘의 제약이 완전히 풀린다.
그다음에 초월자들을 전부 장악하고 강자들을 모아 단련시켜서 절대계로 쳐들어간다.
이번에는 반드시 십중심님들의 신체를 되찾자.”
저번에는 진리도 아닌 바람가의 가주 한 명에게 모든 병력을 잃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흑염 권능의 가호가 돌아온 이상 반드시 탈환한다.’
가호가 돌아온 이유는 나름대로 짐작한 근원은 더욱 술병을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흑염의 가호가 되살아났다.
영원체를 뛰어넘는 강함을 완성한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님의 신체를 진리가 완전하게 말소시키지 못한 증거다.
그분과 십중심들의 신체를 전부 탈환하여 복구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계와 현세계의 지배층이 될 것이다.”
그것이 흑염 세력이 바라는 일이었다.
세계의 적인 타락한 영웅신에서 절대계의 일 할을 다스리던 지배층으로 돌아갔던 기억은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았다.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도 그걸 바라고 있었다.
‘십중심들의 힘은 진리와 맞먹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이다.’
‘진리의 혈족인 바람가는 십중심들이 직속세력을 구하거나 만들어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강력한 창조력으로 한 지역에서 창조신 이상의 대접을 받던 이들은 결코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진리에게 십중심들이 동시에 쓰러졌지만 어떤 권능보다 연산력이 필요한 차원권능을 가졌기에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열세였던 진리가 갑자기 이겼다.’
‘십중심들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 분명해.’
십중심들이 온전했을 때 진리와 바람가가 감히 준동하지 못했음을 알기에 더욱 희망에 찬다.
챙-! 챙-!
모든 흑염 세력이 술병을 높이 들면서 진리와 싸울 각오로 부딪치는 순간 아이언은 습격예고를 당한 신계 주신과 대화 중이었다.
같이 싸워야 할 처지였지만 현재 어린 유아신의 몸을 가진 아이언답게 화기애애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방어 준비를 하는 방식에서부터 충돌한 것이다.
“너희가 쓸만한 전력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아.
그런데 싸울 준비조차 어렵다고?
도대체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냐?
운 좋게 잘 태어나서 쉽게 물려받은 신계로 놀고먹는 것만은 참 잘하지.
그것도 이제 날리게 되는 판국인데 이 이후에 뭘 할래?”
“........”
고위 주신인 신계 주신과 주변의 신계관리주신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실 정도로 신랄한 독설이었다.
특히 맞상대하고 있는 신계 주신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라서 폭발 직전이었다.
‘날 언제부터 알아서 이따위 말투냐?
초월자 주제에 힘만 세고 직위만 높으면 다인 줄 아나?’
신계를 소멸시키는 존재로서 악명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흑염 도적단에 예고를 받은 것도 미칠 노릇이었다.
‘신계 자력으로는 중앙핵 탈취를 막지 못해.
반드시 창조신계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 개의 신계가 동시에 침략 통보를 받았다는 문제다.
다른 신계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보내준 지원군이 겨우 초월자 한 명에 정체도 모르는 기계신 군단인가?’
샤이니조차 막지 못했는데 겨우 초월자 한 명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을 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다짜고짜 강제로 통신을 연결하더니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내가 마음 놓고 싸울 투기장을 신계 중앙부에 화려하게 지어라.”
“?”
“기계신 군단의 행진을 해야 하니 도로를 지금의 열 배로 넓혀.”
“!”
“정문이 너무 작아-!
저것도 열 배로 키워-!”
“!?”
하는 말마다 필사적인 방어전과 전혀 상관없는 요구였으니 복장을 터트린다.
‘같이 예고를 받은 다른 두 곳의 신계는 토벌단의 창조신 집단이나 초월자 집단으로 확실하게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의 신계만은 이 어린 철없는 초월자 단 한 명을 보내다니 어이가 없었다.
막상 직접 마주쳐서 하는 요구가 이런 꼴이니 더욱 암울해지는 신계 주신과 주변의 신계관리주신들이었다.
‘고위신도 파괴하기 힘든 기계신 군단이 있다고 하더니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뭐가 어째?
방어벽을 강화해도 부족한 판에 신계의 중앙구역을 밀고 투기장을 만들라고?’
‘지금 그럴 정기와 자재가 어디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추가로 성문을 더욱 크고 화려하게 짖고 투기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 배 이상 확장하라는 요구이다.
지금 방어를 하려고 하는지 행사준비를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바로 이런 폭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신계 주신이 겨우 번화가 조금하고 개인 신전 몇 개를 부하들 눈치 때문에 철거를 못 한다고?
너 온실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이지?”
처음 연락을 해올 때부터 이런 시비조에 명령이었다.
급한 입장은 자신이니 될 수 있는 대로 달래서 써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니 감당이 힘들었다.
그리고 말투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철없는 아이를 상대하는 태도다.
‘이-! 이-! 누가 도련님이냐?
옛날에나 그랬지 지금은 나는 신계 주신이다.’
다른 존재가 이런 말투를 썼다면 당장 처형했겠지만, 직위나 능력이 분명 상대가 위였다.
화면 너머지만 보기만 해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말을 조심하시지요.”
“넌 말이 아니고 소야.
일해야 하는데 배부르고 게으른 소처럼 안 움직이려고 하니 맞아야지.”
이제는 도련님도 아니고 소 취급이었다.
신계 주신의 입장으로는 이 무엄한 초월자에게 당장에라도 욕설이라고 퍼붓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위원회의 관리신이 보낼 전력이 창조신급 강함을 가진 강력한 초월자이며 최고 위원회의 위원을 임시로 배정받았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질린 얼굴로 알아서 잘 달래서 쓰고 성질을 부르면 감당이 안 된다고 경고했기에 최대한 이성을 붙들었다.
“개인의 재산인 신전과 거리를 신계 주신이라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소이다.”
주변에 있던 신계관리주신들이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이언에게는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말이었다.
“뭔 헛소리야?
신계가 누구의 것인데?
신계는 신계 주신의 책임이자 소유라고 분명히 창조신계의 규율에 명시되어 있다.
정당한 주인인 신계 주신이 왜 마음대로 개인신전을 처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그건-!”
갑자기 나온 명확한 사실과 규정에 근거한 아이언의 말에 대답할 말이 꽉 막힌 신계 주신이었다.
더구나 반대를 표시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신계는 신계 주신인 나의 것이다.
처음에 아버지이신 오리진님에 의해 신계 주신으로 선택되고 일족의 지원도 많이 받았지만, 신계가 안정되기 전까지만이다.’
오리진님과 일족에게 받은 은혜는 신계로 정기를 벌어서 몇 배로 갚아내었다.
그 이후로 독립을 인정받고 영겁의 세월 동안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 투자하여 여기까지 만든 것이다.
그걸 스스로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부하들의 신망을 생각하면 개인 재산을 마음대로 훼손할 수는 없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신계 주신을 본 아이언은 아주 어리석다는 듯이 비웃으면서 말한다.
“후후-! 이 도련님이 부하들 눈치를 보는 꼴을 보니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이번에 신계가 당하면 망하는 것은 너 하나야.
부하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정기와 세력을 가지고 고용해줄 다른 신계를 찾아가면 돼.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기 살길들을 찾고 있을 놈들의 말을 따라?”
“그럴 리가 없소!”
그동안같이 해온 세월이 얼마이고 엄청난 배려를 해주었는데 그런 배신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언은 확신하듯이 쏘아붙였다.
“의심스러우면 신계의 외부통신을 조사해 봐라.
아마 여기저기 연락해서 취직을 부탁하고 난리였을 것이다.
신계를 잃고 거지가 될 너와 같이 죽겠다는 부하들이 한 놈이라도 있을 것 같으냐?
먼저 신계를 잃은 다른 신계 주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몰라?”
신계 주신이 충격을 받고 뭐라 하기도 전에 신계 자아가 보고를 한다.
인공지능인 신계 자아가 명령을 받지 않고 이렇게 능동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었다.
‘사십 개가 넘는 신계가 중앙핵을 빼앗기고 소멸했다는 소식은 이미 받았다.
지금은 내 차례다.
그런데 이대로 진행되면 무조건 당한다.’
아무리 감정이 없는 신계라고 이렇게 진행되면 소멸이 확실하니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그대로 신계 주신에게 일러바쳤다.
‘외부 신계로 연락이 열 배 이상 폭증한 사실은 맞습니다.’
명확하지 않지만 의심하기 충분한 사실을 전달받은 신계 주신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주변의 신계관리주신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모두 시선을 피하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 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한 신계 주신에게 아이언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신계의 모든 것은 신계 주신의 것이다.
안정된 세계에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복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신계가 죽으면 같이 죽을 각오를 하고 부하들도 그렇게 만들어라.
그러면 혹시라도 너도 포기한 구원이 열릴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