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아이언이 나직하게 웃기 시작하자 옆의 상급 마족도 웃으면서 분위기를 올리는 것을 도왔다.
“푸후후후후후! 언제나 해를 쳐다보는 해바라기를 좋아했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 고객은 한결같이 지옥으로 옵니다.
다른 지성체들은 태어난 환경이 좋으면 본성을 깜박하고 가끔 천국으로 가던데 말입니다.”
“원래 똑똑한 놈들이 천국에 가기 힘든 법이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다른 존재들에게 손해만 입히니 지옥이 당연하다.”
솔트가 보기에는 절대로 착하고 볼 수 없는 두 명이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말하자 지극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의 운명을 쥔 존재들이 분명하다.’
그 불안감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아이언의 신력이 노인의 상태로 동면 중인 솔트의 육체를 변화시킨다.
“그 몸으로는 얼마 버틸 수 없으니 새 신체를 내려주마.”
슉-! 슈우우우욱-!
인간의 육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은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해바라기 꽃이었다.
‘아-! 으어어어어어-!’
그리고 영혼조차 은빛 금속으로 이루어진 해바라기 모습으로 바뀐다.
간단하게 솔트를 해바라기 기계 꽃으로 변화시킨 아이언은 왜 이렇게 했는지 현자답게 설명했다.
“감각에 지배되는 육체로 수시로 변하는 욕망과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긴 시간을 버틸 수 없다.
그러나 너에게 초월자의 신체를 주거나 기계신의 몸을 주면 상당히 문제가 많겠구나.
딴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지옥으로만 향하는 너의 본성을 보면 길게 버티어봐야 일만 년도 힘들다.
그래서 해바라기 기계신체를 하사하였다.”
금속바닥에 순식간에 뿌리를 내린 해바라기 꽃이 떨리면서 음성을 쏟아낸다.
그것은 솔트의 절규였다.
“으아아아아-! 날 이렇게 만들다니?”
뭐라고 욕설을 하려다가 다음 이어지는 아이언의 말에 그대로 닫힌다.
“불모지 혹성 하나를 개발하고 지성체가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허락한다.
물론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청년 시절로 말이다.”
“......”
개발이 끝난 행성에서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젊음을 되찾고 생활할 수 있다면 별 하나를 개발하는 대가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좋은 조건을 아이언이 줄 리가 없었다.
“단 네가 개발한 행성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은 한 달로 한정한다.
개발 행성 하나에 한 달씩이다.”
별 하나를 개발한 대가로 한 달만 인간으로 생활할 수 있다니 기가 막혔다.
자신의 능력을 아이언이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달은 솔트는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으윽-! 한 달은 너무 적습니다.
너무 가혹하십니다.”
불모지 혹성을 거주 가능한 행성으로 만드는데 들어가는 자원과 노력을 생각하면 겨우 한 달이라는 청년의 삶이란 보상은 너무 적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언은 전혀 의외라는 듯이 말한다.
“호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나는 굉장히 자비로운 조치라고 생각한다.”
멀쩡한 인간을 해바라기 기계 꽃으로 만들고 불모지 행성의 개발을 맡겼다.
그리고 그 대가가 그 행성에서 한 달의 휴가뿐인데 자비라고 말하니 이해랄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에서 듣고 있던 프롬과 에메랄드 공주, 상급 마족까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아이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열두 개의 행성을 개발하면 일 년이다.
백이십 개면 십 년이지.
그리고 천이백 개면 일백 년이다.
일만이천 개면 일천 년이 된다.
최종적으로 십일만 개가 되면 일만 년의 청춘을 받는다.
단순한 수치상으로 그렇지만 너무 황당했다.
그러나 다음 말에 점점 생각이 복잡해져 갔다.
“노력만으로 영원에 한없이 가까운 삶을 얻을 수 있다.
현세계의 고위신 중 누가 이런 보상을 해주었는가?
대부분 거의 불가능한 고난만 부과하고 지성체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있는 쓸데없는 부와 명예라는 대가만 주었다.
그런데 나는 신이 아니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삶을 업무의 대가로 약속한다.
이게 더 없는 자비가 아니고 뭐냔 말이냐?”
“.......”
솔트는 일단 하나는 깨달았다.
눈앞의 존재가 일반적인 수준의 기준과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바라기 기계 꽃의 상태라면 수명도 노화도 없다.
그리고 다른 기계의 인공지능에 직접 접속하여 지시를 내리고 움직일 수 있다.
그 상태로 영원히 계속 살아가면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나 원하던 영원한 생명을 통한 물리법칙에 속한다는 과학의 한계들을 넘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그 말에 솔트는 뿌리로부터 제국의 인공지능들이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제국의 모든 기계의 움직임이 손바닥 보듯이 보였다.
‘지금 나는 본성의 중앙 컴퓨터조차 능가하는 초 인공지능이 된 셈이로군.’
그것도 기계라도 무엇이든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의 기계신의 능력파악을 한 솔트를 보면서 아이언은 확신이 서린 어조로 말했다.
“다른 존재에게 형벌일 수 있으나 과학자인 너에게는 축복이다.
별을 개발하면 영원한 삶 일부를 받는다.
이 조치가 다른 무능한 존재에게는 가혹한 징계일 수도 있으나 유능한 너에게는 커다란 자비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제국의 인공지능과 기계를 통제하여 최대한 행성을 개발하고 지성체를 번성시키라.”
“.......”
불모지 행성개발 하나에 청년 모습으로 한 달의 휴가라는 가혹한 조건이다.
하지만 해바라기 꽃 상태로 기계와 직접 연결되어서 아무런 제약도 없는 연구활동의 보장이 있었다.
‘인간의 육체 대신 해바라기 기계 꽃이라?
육체의 욕망이나 노화가 귀찮아서 동면을 시켜버린 나게는 딱 맞는 조치로군.’
솔트는 미녀나 맛있는 음식, 권력조차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원한 것은 다른 과학자들이 그어놓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데 필요한 연구시간과 자원이었다.
제국의 황제가 되려고 했던 이유조차 은하 전부의 자원을 연구에 총동원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다른 자들에게 형벌이지만 나에게는 축복이로군.
더구나 아이언이라는 이 신은 내가 당연히 기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어서 이런 과중한 업무를 맡겼다는 뜻인데 이걸 기뻐해야 하나?’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절망에 빠질 벌이지만 자신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인다.
프롬 여왕과는 다른 지배자의 카리스마를 느끼며 새로 얻은 해바라기 기계 꽃을 신체의 능력을 조사한 솔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영원히 연구하면서 살고 별을 개발하면 일정 기간 인간으로 되돌려 준다는 약속은 꼭 지켜주십시오.”
“내가 이 은하계의 신계 주신으로 있는 동안 이 계약은 이어진다.
설사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분의 권능에 의해 유지될 것이다.
아이언이 들어 올린 자신이 서명한 계약서를 쳐다본 솔트는 겨우 종이에 적힌 서명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언은 확신에 찬 어조로 추가로 말해주었다.
“너의 해바라기 기계 꽃의 신체에는 조건을 충족하면 인간으로 변화하는 권능이 이미 담겨있다.
그리고 너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이렇게 정식으로 계약했는데 의심할 필요가 있나?”
솔트는 해바라기 기계 꽃에 인간으로 변환하는 기능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자 판단이 끝났다.
“그럼 불모지 행성의 개발을 시작하겠습니다.”
연합의 초능력자들이 전원 사라지고 주력함대가 에메랄드 공주에 의해 철저하게 궤멸하였으니 전쟁은 이미 끝났다.
잔당 청소는 시간문제였고 이제 복구를 해야 하거나 개발할 별은 넘쳐났다.
‘제국의 과학기술은 행성개발에 특화되어있다.
내가 기계들의 능력을 집중시키면 얼마든지 빠르게 할 수 있다.
일단 별을 개발하면 진짜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나 확인해야 한다.’
금속바닥에 스며들듯이 해바라기 기계 꽃이 사라진다.
스르르르륵-!
잠깐 주변의 인물들은 조용했다.
제국의 재상이었던 솔트가 해바라기 꽃으로 변해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은 어쩐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알현실 바닥에는 이제까지 제국의 권력을 양분하던 기계 귀족들의 기능이 정지한 기계 몸 밖에 없으니 소름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아이언은 기계 귀족들의 기계 몸을 모두 아공간에 회수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이걸로 제국의 은하 통일과 끝이군요.
전후복구를 솔트가 끝내면 제국의 영광은 일천 년은 가겠지요.
그러니 이제 가요.”
아이언의 떠나자는 말에 프롬 여왕의 몸이 확 굳었다.
은하 통일이라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제 제국의 여왕에서 물러나서 자신의 유모가 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초월자는 지성체 사이에 섞여 있어서는 안 돼요.
제국을 훌륭하게 이어받을 후계자도 있으니 홀가분하게 떠나세요.”
“.......”
여왕에게 그 점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크롬 공주가 있으면 걱정 없이 초월자로서 새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이미 유모로 삼아서 초월자로 만들고 있는 아이언이 내줄 리가 없었다.
남은 후계자는 에메랄드 공주뿐이었다.
‘에메랄드 공주에게 능력은 확실히 있다.
단지 철이 없지.’
겨우 일주일만에 연합의 주력함대를 전멸시켰다.
그 뛰어난 능력으로 제국의 영역을 해적과 함께 털고 다니고 결혼까지 하려 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머리만 아픈 프롬 여왕이었다.
하지만 아이언도 거기까지 고려해서 일을 처리했다.
“공주가 우주 해적 노릇을 하고 해적과 결혼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귀족들은 모두 치웠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만약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지성체들의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제약하고 천족이 직접 개입하여 관리하는 신성제국으로 만들면 돼요.
에메랄드 공주를 교황을 임명하고 맡기면 되겠군요.”
“.......”
“.......”
과학으로 일어선 제국을 신을 모시는 신성제국으로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기계 귀족들이 모두 처단되자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던 에메랄드 공주조차 입을 딱 벌릴만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프롬 여왕은 다른 쪽에 주목했다.
“공주의 일을 이미 알고 계셨나요?”
“제국의 귀족이라면 거의 알고 있었는데 제가 모를 리가 없지요.”
“......”
정신체를 총괄하는 신계 주신이 파악하고 있는데 여왕만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망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떠날 수 없는 프롬 여왕이었다.
여왕의 대답이 없자 아이언은 그대로 프롬의 허벅지 위에서 내려서서 차원문을 만든다.
탁-! 우웅-!
아이언에게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흑염 세력을 타도하고 초월자들의 영웅이 되어서 신족의 혁명을 이끄는 과정은 지성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이 걸릴만한 일이었다.
“아직 급하지는 않으니 천천히 생각하세요.
공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면서 의무를 실행하지 않는 에메랄드 공주는 적합자이기는 하지만 아직 저의 유모로서 자격이 없군요.
공주가 해적과 결혼을 한다는 의미를 모르고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군요.
제국의 여왕으로서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 더 품격을 갖추도록 하세요.”
“.......”
프롬 여왕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에메랄드 공주는 지금 정신상태로는 초월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선고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언은 차원문을 열고서 이동하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감정을 우선으로 하는 상태로는 초월자의 영생을 견디지 못해요.
지성체의 순간의 삶을 살다가 환생을 반복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리고 결혼을 원하던 우주 해적도 초능력자라서 모두 저의 영웅동맹에 넣었습니다.
그들은 교육이 끝날 때까지 외부활동은 절대 금지입니다.
꼭 면회를 신청하고 오세요.”
“아-!”
팍-!
그 말에 에메랄드 공주의 표정이 창백해졌지만 차원문은 무정하게 닫힌다.
졸지에 연인을 잃어버려 멍해진 에메랄드 공주를 쳐다보는 프롬 여왕의 표정은 지극히 복잡해져 간다.
초능력자가 초월자가 되려면 고위 존재나 신계의 개입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언은 에메랄드 공주를 초월자로 만들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러면 딸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내 딸인데 어떻게든 해야 해.
나보다 먼저 죽게 할 순 없다.’
초월자가 된 자신과 크롬은 이제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런데 혼자 노화로 죽어가는 에메랄드를 보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제국의 일이 마무리되어갈 때 흑염 세력의 강탈 예고일도 다가왔다.
세 개의 신계에서 직접 대응할 전력의 집결하고 미진하지만, 지역 우주 규모의 포위망도 완성되어간다.
쿠쿠쿠쿠쿠쿵-!
고위 창조신들의 개입으로 더욱 강대한 권능을 발산하는 신계들이 지역 우주 전부에 차원이동을 방해하는 결계를 친다.
그렇게 조치가 끝난 지역 우주를 묘사한 삼차원 전술 지도 앞에서 관리신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이제 아무리 차원권능을 가졌다고 해도 은하계 이상의 도약은 불가능합니다.”
“잘해봐야 성단 정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