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동원된 신족의 군대만 일천만의 대군이었고 최고 위원회의 창조신들이 총출동하여 결계를 만든다.
이 정도 규모의 대군을 동원한 작전을 해본 적이 없는 관리신들은 흥분상태였다.
이들은 최고위 창조신들이 전부 나섰고 창조신계를 방위하던 일천만의 정예투신이 전부 나선 대작전이니 실패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샤이니의 안색은 펴지지 않았다.
종족전쟁을 겪으면서 키워온 안목은 지금 포위망의 허점이 너무나 잘 보였다.
한마디로 병력의 질이 너무 낮았다.
‘고위 창조신이나 정예투신이라고 하지만 영웅신에 비하면 너무 약해.
은퇴를 약속하고 총력을 끌어냈는데도 너무나 부족하다.
이들로는 흑염 세력을 잡을 수 없다.’
영웅신의 무력과 권능은 같은 입장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이렇게 어중간한 전력은 아무리 많아도 오히려 더 강하게 해주는 빌미만 안겨줄 뿐이었다.
대등한 전력이 필요했다.
‘브라이트와 잠들지 않은 우주신들이 나와 합류할 수 있다면 이런 대군은 필요가 없다.
그런데 불가능하군.’
우주신들의 개입은 창조신계에서 창조신장의 눈앞에서 최고 위원회를 대리 운영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창조주님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으니 창조신장의 승인이 필요한데 용납하지 않았다.
적을 쓸어버릴 능력이 있는데도 명분으로 인하여 쓸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에 치를 떨면서도 포위망을 완성해가는 샤이니였다.
“신계에서 정기 소모전을 벌일 전력의 준비는 어떤가?”
“두 곳은 준비 완료입니다.
토벌단과 초월자들의 포진이 완료되었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계에서 보내준 완전 방어태세에 들어간 신계의 모습들이 보였다.
방어벽 위에서 결전을 준비 중인 토벌단과 초월자들의 영상은 확실히 믿음직해 보였다.
그러나 이미 각자의 수준을 파악한 샤이니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저들로는 열 명이 넘는 영웅신들을 감당할 수 없다.
최대한 버티면서 정기를 소모하게 해야 한다.’
중앙핵의 정기를 다 쓰더라도 적의 정기를 소모를 신계 주신의 옆에 앉아있는 상급 창조신에게 신신당부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한 곳이 문제였다.
창조신을 뛰어넘는 강대한 무력과 기계신 군단을 이끌고 이번에 최고 위원회로 바로 임관한 아이언이라는 초월자가 담당한 신계는 아무런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언이 맡은 신계는 아직도 준비 완료 보고가 없나?”
그 말에 관리신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아이언은 아직도 패장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샤이니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소모 작전조차 거부하고 직접 독자적으로 계획을 추진 중이다.
‘무척 기분이 상하지만 혼자서 신계 하나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고위 창조신이 없었기에 맡겨두고 있다.’
제출한 서류상으로 보면 영웅동맹이라는 기계신 군단은 분명 막강한 전력이었다.
‘지역 우주 단위의 결계와 포위망 완성을 위해서는 일천만의 신족 전력도 부족하다.’
도저히 대체할 전력이 없고 파견할 여력도 없기에 내버려 둔 상태였다.
그런데 설마 당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견된 상급 창조신으로부터 신계는 모든 기능을 요새로 전환하고 결사항전을 준비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보고서에 첨부한 사진입니다.”
사진과 영상이 거대한 화면에 뿌려진다.
그걸 보는 관리신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오! 대단하다.”
신계를 둘러싼 거대한 성문과 성벽이 새로 신축되어서 하늘을 치솟을 정도로 높고 두껍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이 포진하기에 충분한 대로가 신계를 십자가 형태로 뻗어있다.
여기에 신계의 정 가운데 있어야 할 호화로운 주신전 대신에게 은색의 반구형으로 빛나는 투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개인 신전이나 번화가도 모두 사라지고 거기에는 한눈에 보아도 튼튼해 보이는 초소와 투신들의 막사들만이 있었다.
군신이나 투신이 아닌 고위 창조신들이 보면 기이할 정도로 살벌한 광경이지만 샤이니조차 탄성이 나왔다.
“오래간만에 보는 멋진 완전방어 신계로군.”
종족전쟁의 최전선의 중요 요새였던 신계들은 모두 저런 형태였다.
그리고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현세계 최강의 방어력을 가진 요새로서 신족의 승리를 끌어낸 것이다.
그렇게 신계의 기능 전부를 전투와 방어에 집중한 장엄한 요새가 침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의 신계 전부를 재구축하다니 각오가 대단하다.’
신계를 저렇게 바꾸면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다른 신계에 비해 전의도 왕성하다는 보고였다.
‘방어에 불필요한 개인 신전까지 모두 정리하고 민간신들은 모두 퇴거까지 했다고 했던가?
상급 창조신이 보기에 투신과 전신만이 남아서 결사항전을 준비 중이라서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다는 보고였다.
음! 이 정도의 각오와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면 쉽게 버릴 패가 아닌데 아쉽군.’
전장에서 필사의 각오를 하고 싸우는 용맹한 지휘관과 병력은 극히 적었다.
살아남으면 반드시 최상위 창조신에 오를 수 있는 신계 주신으로 보이니 아깝기까지 했다.
이렇게 신계 주신과 신계의 준비는 지극히 믿음이 가는 모습인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왜 정문이 열려있나?”
창조신계의 성문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신축된 정문은 닫혀있지 않았다.
활짝 개방되어서 모처럼의 방어력을 쓸모없게 하고 있다.
그동안 멋대로 이탈하여 명령을 받지 않는 아이언에 앙심을 품고 있던 관리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러바친다.
“저것이 아이언의 지시라고 합니다.”
“성문을 닫으면 자신이 도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박살을 내겠다고 무조건 열어두라고 지시했답니다.”
작전을 위해서 애써 아이언의 악평을 무시하려던 샤이니였는데 슬슬 머리가 아파지고 있었다.
“.......”
아이언이 제출한 임관서류와 특수금속에 구멍을 뚫어서 제출한 힘의 증거는 샤이니도 보았다.
‘창조신이 권능으로 전력을 다해도 파괴하기 힘든 특수금속의 중앙을 힘만으로 깔끔하게 구멍을 뚫었다.
놀라운 완력은 찬탄이 나올 정도였지.’
힘만으로 상위 권능으로 만들어진 특수금속을 관통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불가능한 줄 아는 고위 창조신들이니 최고 위원회에 자리를 달라는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예측 불허의 행동을 하니 과연 통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강자의 명령을 따른다고 하니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제압하면 고분고분해지겠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아직 정기 고갈 상태라서 직접 전투는 무리다.’
최종적으로 차원권능의 도약을 막기 위한 포위망에 전력을 투입하고 있는 지금 운용할 전력이 없었다.
‘패배할 경우 가진 기계군단을 창조신계에 바치고 받은 신계까지 반납하기로 한 이상 임무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럼 다른 방책이 있나?’
승리하면 최고 위원회의 초월자 담당 위원으로 정식임명되고 완전히 토벌할 경우 지역 우주를 통째로 넘겨받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니 이번 방위전의 승리가 가장 절실한 대상은 바로 아이언이었다.
이러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전적으로 맡기도록 한다.
우리는 다른 두 곳의 방어태세를 주시하라.
방위전을 통해 흑염 세력의 정기를 최대한 소모해 저 은하계에 가두어야 한다.
이번에 놓치면 이제 신족 전군을 동원하는 총동원령밖에 없다.”
“예!”
샤이니의 결정에 관리신과 참모들은 힘차게 대답하고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기껏 전력으로 만들어낸 방어 신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정말 이상한 대처를 하는 신계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다.
‘기껏 만든 요새다.’
‘그런데 성문을 열어서 무방비로 만들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리고 그 의문은 부하들의 반발을 힘과 협박으로 찍어누르고 종족전쟁 시절에도 최상으로 인정할만한 완전방어 신계를 완성한 신계 주신이 가장 컸다.
‘이러면 밀고 들어오면 끝이잖아?
왜 이렇게 열어두는 거야?
내가 어떤 각오로 신계를 완전히 개조했는데 이러면 안 되지.
지금이라도 닫아야 해.’
그렇다고 지시를 어길 수가 없었다.
아이언의 황금빛 투기가 품어나오는 눈동자를 보면 만약 지시를 어기면 가장 먼저 자신이 죽어 나가는 미래가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상급 창조신도 찍소리 못하고 설설 기고 있는 판국이고 최고 위원회의 위원에게 항명죄로 처단당하면 하소연할 곳도 별로 없었다.
‘믿어 보자.
직접 오지 않았지만, 아이언은 최선을 다했다.’
그가 원격으로 넘겨준 자료와 지원을 바탕으로 신계 자아와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니 규격 외의 방어력을 가진 방어 요새가 완성했다.
아이언의 조력을 받아 직접 만들었지만, 완성품을 보고서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
과정을 지켜본 상급 창조신도 할 말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절대로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신계였다.
그런데 신계의 자원을 모두 끌어모으더니 신계에서도 굴지의 방어력을 가진 철의 요새로 만들어 버렸다.
입과 행동은 과격하지만, 확실히 능력은 있어.’
흑염 도적단의 정기 소모를 위해서 결사항전을 명령받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신조차 가둘 정도로 강화된 중앙핵을 보관하는 투기장은 아이언이 원격으로 만들었는데 과정 중에 하도 불안해서 뭐라고 했다가 그대로 투기에 찍어 눌렸다.
‘신계와 같이 죽을 각오가 아니면 넌 거기서 구경이나 해.
난 그럴 각오로 진행하고 있다.’
상급 창조신인 자신이 겨우 주신이 다스리는 신계와 운명을 같이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실로 할 말이 없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영웅동맹의 기계신 군단 일부를 직접 보고 있으니 침묵 상태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지금 투기장의 중앙에는 일백 미터가량의 갑옷을 입은 거신들이 충돌하고 있었다.
구구구구구구-! 꽈꽈꽈꽝-!
현실을 조정하는 강력한 권능을 발산하는 거대한 기계신체 일백 대가 서로를 죽일 기세로 충돌하고 있었다.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를 가진 기계신도 있었고 빔포나 미사일까지 사용하면서 상대로 노린다.
문제는 그 위력이었다.
물리법칙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권능이 담긴 공격이 아니면 손상할 수 없는 신계의 투기장이 조금씩 파괴되고 있었다.
보고 있는 투신들이나 전신들로서는 간담이 서늘한 광경이다
‘신계가 전력으로 만들어낸 투기장이라서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덕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겨우 지성체들의 무기체계에 파괴되고 있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지원병으로 온 저들이 방어에 나서지 않고 투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이유도 황당했다.
‘단순한 서열 결정이라고?’
‘싸워서 계급을 결정한다고?
이 무슨 야만스러운 방식인가?’
영웅동맹의 투입이 늦은 이유도 알았다.
서열을 정하기 위해 사전에 실시한 일만대의 기계신체들의 치열했던 승부가 겨우 끝나고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반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끝까지 버틴 일백대가 지휘기체로서 결전 중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여기로 이동해서 결판을 보고 있다니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흑염 도적단이 예고한 일이 오늘인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정문은 열어젖히고 남의 서열전의 관람을 하고 있다니?’
‘당장 열린 성문을 닫고 방어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개입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투신과 전신들은 질린 표정으로 투기장의 가장 상석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있던 귀빈석은 통째로 부서지고 커다란 신계 주신의 영광의 자리로 재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 위에 앉아있는 황금갑옷에 피처럼 붉은 망토를 걸친 거대 기계신체가 문제였다.
절세 미남의 금속 얼굴로 따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공할만한 투기를 품어내는 기계신체의 존재는 두렵기 짝이 없었다.
‘영웅황제 아이언.’
아이언이라는 초월자가 원격으로 조정하고 있는 기계신체의 품어내는 기세는 발밑의 신계 주신과 상급 창조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일백의 정예 기계신체들을 이끌고 도착해서 대로를 행진하던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고위신들은 드디어 드러난 기계신 군단 영웅동맹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계까지 동원하여 조사하려 했는데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계 주신과 상급 창조신조차 같았다.
‘저 기계신이 신계 주신인 내 권능을 무시하고 있어.’
‘창조신의 권능까지 튕겨내고 있다.
그리고 전신이 아이언이 제출한 특수금속 이상의 재질로 만들어져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 창조신 이상의 기계신체라고?’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이런 기계신들이 튀어나왔나?’
겨우 기계신에게 기세에서 밀리리라고 상상도 못 했지만,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언의 음성에 다급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투기장의 준비는 수고했다.
이제 내가 맡는다.
너희들은 관객 역할을 충실히 해라.”
갑작스러운 기계신들의 출현에 대로를 막아선 전신과 투신들이 그대로 투기장으로 밀려났다.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영웅황제 아이언이 품어내는 투기와 살기에 질려버린 탓이었다.
버티려고 했던 신계 주신과 상급 창조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희들도 이제 구경이나 해!
앞에서 얼쩡거려서 걸리적거리면 밟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