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그 말에 음식만 먹고 있던 영웅동맹의 주신들이 모두 일어섰다.
상대가 신계관리주신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제 영웅동맹이라는 군단에 편입되었으니 관심조차 없었다.
주신이 되는 동안 신계에 받았던 은혜보다 범죄신으로 낙인찍은 원한이 더 커진 지는 오래였다.
‘나를 버린 신계 따위는 신경도 쓰기 싫다.’
‘상대가 신계관리주신이든 뭐든 아무 상관이 없다.’
‘명령대로 처단한다.’
더구나 옆의 동료들은 모두 영구 봉인방에서 마주 보았던 오랜 인연이었다.
이제 감방 동료가 아닌 영웅동맹이라는 군대의 일원이 되었으니 의사 통합조차 필요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군부에서 충성을 바치던 자신들을 순식간에 법안 하나로 범죄신으로 낙인찍어버린 존재들이 바로 신계관리주신과 법관신들이었다.
그래서 신족의 신분을 버리고 초월자가 될 각오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이제 신족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다만 신계를 떠나기 전에 복수를 마저 하고 싶었는데 아까부터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져서 거슬리던 상대이기도 했기에 살기까지 품어낸다.
그러자 땅에 머리만 내놓고 있던 신계관리주신이 목소리를 높여서 경고한다.
“이놈들!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상위 존재의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지만 그 정도에 위축이 되었다면 영구봉인이 될 정도로 복수에 집착하다 여기까지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전선 탈영병. 본래는 즉결처형이지.”
“훈련이 힘들다고 탈영하다 내 손에 처벌당한 수많은 부하 중 하나로 보인다.”
“...”
어디에도 존경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말투였다.
‘이놈들이 전부 징계를 당하고서 미친 듯이 날뛰던 놈들이었지.
부하와 부대를 전부 날려버린 미친놈들이다.
그 자식처럼 말이야.’
이제야 이들이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이 나서 긴장한 신계관리주신이었다.
그런데 가장 구석에서 가면을 쓴 채 입 부위만 열고 먹고 마시던 영웅동맹의 신입 중 하나가 맨 앞으로 나선다.
“내가 하지.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이러면 과거의 악연을 정리하고 떠나야 하겠군.”
신계관리주신은 가면을 쓴 영웅동맹 주신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어봤지만 일단 겁부터 주었다.
아이언의 힘에 눌려서 이렇게 되었지만, 자신은 뛰어남을 인정받아 신계관리주신이 된 창조신이었다.
본래 주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감히 신계관리주신인 창조신에게 주신 따위가 덤비려 하느냐?
으윽! 너는?”
가면을 벗은 주신의 얼굴을 본 신계관리주신은 기겁을 했다.
출세의 시작이었기에 잊을 수 없는 상대였지만 억지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존재가 거기 있었다.
과거 상급자였다.
“너 아주 오래간만이다.
신계관리주신이라니 아주 출세했구나.”
영웅동맹 주신의 오른발이 땅에 박힌 신계관리주신의 턱을 차서 위로 올린다.
퍼어어억-! 팍팍-!
지극히 감정이 실린 일격은 여지없이 턱에 명중하고 뼈를 부수고 피를 토하게 한다.
창조신과 주신의 신격차이에 의한 피해 감소를 생각하면 엄청난 위력이었다.
“컥-!”
땅에서 강제로 뽑혀 나온 신계관리주신의 목을 영웅동맹의 주신은 그대로 양손으로 잡고 조여간다.
우두두두둑-!
목을 졸라 죽여버릴 기세로 힘을 주면서 울화가 참는 음성이 울린다.
“이 싹수도 없는 자식! 아무리 직위가 높아졌다고 해도 옛 상관한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능력을 좋고 똑똑한데 항상 요령만 피워서 그렇게나 골치를 썩이던 약삭빠른 부하 녀석이었다.
그런 자식이 신계관리주신이 되었는데 자신은 영구봉인된 범죄신이 되었다.
‘신세대 군부지침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놈이 가장 수상했어.’
누군가의 고발로 체포되고 그 이후에 행해진 여론조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아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나를 배신한 부하들은 전부 죽여서 신격이 낮추는 대가를 치르게 했었는데, 이 녀석 하나만 외박을 가서 놓쳤었다.
신계관리주신이 되어있다니?
으득-! 그때 어떻게든 죽여놓아야 했어.’
영구봉인 방에서 고민을 많이 한 덕분에 이미 자신을 고발한 범인이 누구였는지 확신한 상태였다.
지휘관이 징벌로 끌려갔는데도 부대를 벗어난 이 녀석 외에는 없었다.
“여전히 머리는 잘 돌아가고 상황파악도 잘한다.
하지만 역시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니 변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동료를 버리고 도망을 치면 내가 죽여버린다고 경고했었지?”
“으으으으-!”
신계관리주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 상대는 창조신급의 주신이었지만 자신은 중급 창조신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세의 차이가 나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 상급자였다고 내가 주신에게 압도당한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신격이나 신력으로 보아서는 있을 수 없는 사태였다.
그런데 목을 잡은 영웅동맹 주신의 눈에서 갑자기 황금빛의 눈빛이 더 강해지면서 묻는다.
“과거가 너무 괴로우니 될 수 있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고 했다.
아무도 모르게 떠나서 가면을 쓰고 살고 싶었지.
그런데 말이다.
기회가 오면 원한은 갚아야지.
나를 상부에 투서로 찌른 놈이 너지?
내가 없어져야 네가 진급하니 말이야.”
“증거 있어?”
거짓을 함부로 말하면 권능이 하락하니 부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정도는 긍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영웅동맹 주신의 황금빛 안광이 더욱 거세지면서 이제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쿡쿡! 상층부에 간단한 쪽지로 고발당하고 반복된 설문으로 죄가 만들어져서 처벌을 당했다.
이러니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증거가 있을 리가 있나?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다면 그렇게나 많은 부하를 죽이지도 않고 당사자만 소멸시켰을 것이다.
알 수가 없어서 싹 죽였는데 주범을 놓쳤다니 쓸데없는 짓을 해버렸군.”
그제야 눈앞의 주신이 징계가 확정되자마자 바로 탈주해서 자신의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기억도 확실히 났다.
‘성질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지.
억지로 휴가를 받아서 부대를 비웠는데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경각심이 되살아난다.
지금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는 주신이 어떤 평가를 받던 존재였는지 기억이 난 것이다.
‘그 당시 군부 최강의 투신.
그래서 단 한 명의 주신의 습격에 일천 명이 넘던 최정예로 인정받던 고위투신과 전신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신체를 철저히 파괴해서 신격까지 하락을 당했다.
다행히 뒤늦게라도 신계의 군대가 총동원되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겨우 제압 했지.’
나중에 수만 명의 군세에 포위되어 정기탈진이 될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다가 꽁꽁 묶여 붙잡혀갔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았는데 지독한 원한이 서려서 계속 누군가를 찾던 눈빛은 잊을 수는 없었다.
‘아마 나를 찾고 있었겠지?
지휘관이 조사 중이라서 전원 비상대기상태였고 나만 열외였으니 말이야.’
설마 투서 한 장에 이런 참극이 벌어질 줄은 몰랐기에 다음부터는 조심했지만, 자신도 할 말이 있었다.
“가혹한 지휘와 훈련으로 부하들의 신망을 못 얻고 쫓겨난 지휘관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어?”
누구라도 할 말이 없는 타당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영웅동맹의 주신도 만만치는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투신과 전신들의 수준을 보니 내가 잘한 것 같다.
내가 영구봉인을 당하고 있는 동안 군부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저렇게 약해졌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저들이 정말 최정예인가?
내가 지휘한 부대의 훈련병도 저보다는 나았다.”
“...”
정문을 지키고 있는 부대는 어디라도 최강의 부대를 배치한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정문의 군신과 전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안타까웠다.
한때 몸담았고 신생을 전부 걸어서 충성하던 군부가 너무 약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러나 곧 무시무시한 살기가 품어져 나온다.
“이제 상관없다.
저 정도가 군신과 투신의 정예라면 나를 막을 수는 없다.
배신한 부하들은 신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죽여서 전부 하급신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그들은 봐주겠다.
그러나 그때 놓친 너는 지금 죽여주겠다.”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못했는가?”
“시대가 죄인을 만든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이다.
나는 시대가 정반대로 바뀌었음을 몰랐던 것뿐이다.”
영웅동맹의 주신이 마침내 노골적인 살기까지 보인다.
그러자 신계관리주신도 대화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권능을 집중하여 잡힌 목을 풀기 위해서 손목을 잡고 힘을 주기 시작한다.
‘과거의 망령 따위에게 당해줄 수는 없다.
이제 나는 창조신이자 신계관리주신이다.
주신 따위에게 당할까 보냐?’
서로 높아만 가는 힘과 권능이 충돌하면서 굉음과 파동이 발생한다.
그리고 신계관리주신의 눈에도 드디어 ‘안주하지 않는 폭주’의 신성이 머문다.
우둑-! 우드드드득-! 지이이잉-!
연회장이 일순간 날아가려 했지만, 아이언의 결계가 먼저 막아낸다.
드디어 버티던 신계관리주신의 눈빛이 황금빛으로 물들자 상당히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좋아-! 역시 기억도 안 나는 먼 과거의 비이성적인 복수만큼 똑똑한 놈들을 열 받게 하는 일이 없지.”
결계로 둘의 충돌에서 연회장을 보호한 아이언은 아공간에서 술 한 상자를 꺼내어서 탁자 위에 올렸다.
탁! 파아아앗-!
모두의 시선이 탁자 위의 술병으로 향하자 아이언은 선언했다.
“이쯤에서 연회의 흥을 더한다.
영웅동맹 주신의 승리에 이 세계수의 술들을 걸겠다.
누가 나와 승부를 겨루겠는가?”
상급 창조신은 세계수의 수액으로 담근 정기술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감탄하면서 말했다.
“세계수의 수액으로 만든 술이라니 굉장한 정기가 뭉쳐진 보물이군요.
저는 신계관리주신의 승리에 이 신기를 걸겠습니다.”
바로 반대편에 가지고 있던 신기들에서 쓸만한 하나를 꺼내어서 탁자에 올렸다.
본래 바로 말려야 하지만 혼자서 도주를 반복하다 당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통쾌하기까지 했다.
‘자꾸 혼자만 도망가려 하더니 꼴좋군.
그리고 신력을 올려줄 정도의 정기술은 절대 흔하지 않다.
술병 안에 있어도 정기가 풍겨 나올 정도이니 저건 분명 최상품이다.
반드시 확보 해야 한다.’
신력을 높일 수 있는 신기나 정기가 뭉쳐진 보물은 신력이 상승하기 힘든 고위신이라면 어떻게든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신계관리주신들도 하나씩 신기를 꺼내서 걸었다.
그들도 방금 과거의 원한에 발목 잡힌 신계관리주신이 도주하려다가 잡히는 모습이 못마땅했기에 구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파파파파파파-!
수북하게 쌓여가는 신기들에 맞추어서 아이언도 세계수의 정기술을 추가한다.
거기에 맞추어 신계관리주신들도 경쟁적으로 신기와 보물들을 내놓았다.
창조신계의 최고 지배층들이니 내놓은 신기의 가치가 심상치 않았다.
타타탁!
사생 결판을 내려던 두 명조차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물이 순식간에 승부에 걸렸다.
수많은 신기와 보물, 신력을 높여주는 정신체에게 가장 중요한 세계수의 술 상자 앞에서 아이언은 느긋하게 외쳤다.
“승부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일 할을 승자에게 주겠다.”
대가를 주겠으니 검투사처럼 구경거리가 되라는 말이었지만 이미 물러날 수 없는 결투였다.
더구나 승자에게 주겠다는 보상이 너무 막대했다.
‘신족이 일만 년 동안 벌 수 있는 봉급을 가뿐하게 넘겼다.’
신력을 높여줄 정기술을 얻기 위해 상급 창조신인 신계 주신과 삼십 명의 신계관리주신이 내놓은 보물의 가치는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로 더욱 살기를 품어내며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은 크게 웃었다.
“푸후후-! 아주 좋은 여흥이로다.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기 딱 좋군.”
“후후후! 그렇기는 합니다.”
옆의 상급 창조신이나 신계관리주신들은 평상시라면 부하끼리 싸움을 붙이고 하는 내기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안주하지 않는 폭주의 영향을 받아서 이제 즐기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크게 걸은 신계관리주신들은 결계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양측을 열성적으로 응원한다.
“죽여 버려.”
“발 쪽이 약해.”
살벌한 응원과 훈수까지 나오는데 아무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모처럼 벌어진 결투에 관심이 생긴 군부의 고위 주신들이 나오고 은근슬쩍 내기에 참여하니 열기가 더해간다.
거의 공석이었던 연회의 자리가 꽉 채워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어디에도 흑염 세력과 결전을 준비하는 모습이 아닌 광경이었다.
그리고 사전 정찰을 온 흑염 세력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그걸 보고 있었다.
“연회를 벌이더니 이제 싸운다.”
“내기까지 하는 모양인데?”
영웅동맹의 자폭에 당하기는 했지만, 차원결계 덕분에 충격만 받고 흑염 세력처럼 신체가 손상되는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근원에게 사정을 듣고 바로 정찰을 나왔는데 이해하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철저하게 항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계는 평온했고 정문에 연회장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신계 주신이 분명한 상급 창조신과 고위층들이 나와서 축제를 벌이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 먹고 놀다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 맞아?”
“신족의 고유권능을 구현한 황당한 기계신 군단이 튀어나오더니 이번에는 또 뭐야?
저건 뭐하는 미친놈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