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다시 시작된 내기에 주변의 신계관리주신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참석하고 있는 인원도 어느새 많이 늘어나 있었다.
생전 처음 볼 정도로 화려한 연회와 맛있는 음식이 깔렸다는 소문과 결투와 내기의 열기에 이끌려 어느새 모여든 신계의 창조신들과 주신들이 가세한 탓이었다.
일반적인 투신과 전신들이 견디지 못하는 연회장에 가득 찬 투기를 견디고 하나둘 모여든 그들은 상급 창조신의 신계에서 진정한 강자들인 각 일족의 원로들이었다.
평소 번잡함을 피해 권력을 양보하고 은거 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즐기던 그들이 이끌려 나온 것이다.
그들은 지금 마음을 졸이면서 승부의 향방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이겨라!”
처음에는 무슨 해괴한 짓을 하니 구경이나 할 셈이었다.
그러다 정기술을 노리고 신기를 걸었다가 그대로 잃어버린 이후로는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눈이 벌게질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간만에 보는 처절한 결투의 순수한 관객으로서 안주하지 않는 폭주의 영향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우우-! 창조신이 어떻게 이렇게 주신에게 연속으로 지나?”
여기에 처음 맛보는 음식과 술이 계속 나오니 이 연회 자리가 잘못하면 바로 최전선이 되는 위험한 장소라는 사실은 잊은 지가 오래였다.
“젠장! 또 지면 나와!”
“차라리 내가 싸우고 만다.”
두 번이나 신계관리주신에게 걸었다가 신기들을 날리자 신체까지 청년신으로 바꾸어서 날뛰려는 원로들까지 생기려는 상태였다.
아이언의 한번 걸려들기 시작하자 너무나 빠르게 전파되는 신성의 전달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연 상급 창조신이 다스리는 신계라서 뛰어난 고위신들이 많아.
이 정도 전력이면 최소한 신계 침입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정찰이라?
이제 정신을 조금 차린 모양이군.’
아이언은 주우주 차원 일족의 오리진의 권능을 거의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흑염 세력의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은밀하게 정찰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았다.
직감만 믿고 날뛰던 흑염 세력이 드디어 정찰까지 하다니 모든 일은 자신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의 흐름에서 지금의 나는 겨우 초월자로서 첫발을 디뎌야 한다.
그리고 프롬 여왕과 은하계를 두고 승부를 가리고 있었겠지.
신계에서는 흑염 세력이 준동하면서 샤이니와 충돌할 시기다.’
흑염 세력의 난동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회를 힘과 세력의 부족으로 날려버린 원래의 아이언은 그 후 긴 세월을 숨어서 전력 축적에 써야 했다.
신족이 모르게 세력을 만들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갔다.
‘기회를 잡고 출세하면 이렇게 편하지.
내가 고생하는 원래의 과정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샤이니와 브라이트에게 박살 나고 분노하여 현세계를 뒤집어놓는 결론만 단숨에 이끌어 내주겠노라.’
방금 이상할 정도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기에 방심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대한 요란하게 연회를 벌여서 신계의 숨겨진 전력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지금까지 안주하지 않는 신성으로 강화한 상급 창조신이 한 명, 신계관리주신이 삼십 명, 그리고 각 일족의 원로들이 일백 명정도이다.
신계의 지원을 받아서 정문 방어에 한정한다면 버틸 수 있는 전력이지.”
여기에 영웅동맹 주신들의 전력이 합쳐지면 신계 전부의 방어도 가능해 보였다.
‘나머지는 내가 문제다.’
아직은 작은 주먹을 가볍게 쥔다.
우두둑-!
뼈와 근육이 울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전신에 퍼져나간다.
이대 흑염의 절대자의 직접 가호를 받은 차원일족의 유아신의 신체는 일반 신족보다 더없이 강력했다.
그러나 상대도 강해졌으니 역시 부족함이 있었다.
‘타락했지만 영웅신 오십 명을 상대해야 한다.’
미래의 자신조차 죽음을 각오한 곤경에 밀어 넣었다고 하는 영웅신의 강력함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부족함을 느꼈다.
‘역시 여기서도 준비해 놓아야 하겠군.’
아이언의 손아귀에서 황금빛의 차원권능이 은밀하게 발동된다.
우웅-!
아무도 모르게 발동된 차원권능은 그대로 신계의 방어벽을 뚫고서 신계의 중앙으로 향한다.
자신도 은하계의 신계주신이기에 광대한 신계 전부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중심구역의 방어까지 관통한 차원권능은 중앙핵에 도달한다.
이 은하계에서 모은 정기와 신계에 있는 모든 신족의 권능이 뭉쳐진 중앙핵에 접촉한 차원권능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파파파파-!
경보장치나 신계 자아조차 눈치를 채지 못할 아주 자그마한 스파크를 남기고 접속을 완료하고 아이언에게 정보를 보내기 시작한다.
중앙핵에 접촉하여 정보를 읽은 아이언은 감탄했다.
‘역시 상급 창조신의 신계.
주신이 다스리는 신계와는 규모와 강도가 다르다.’
아이언이 지금 하는 일은 간단하게 융합의 준비였다.
신계의 핵인 중앙핵과 위험을 감수하고 일체화하면 일시적으로 초월적인 위력을 품어낼 수 있었다.
영웅동맹이 파견 나갔던 신계에서 영웅황제가 아예 차원권능으로 중앙핵을 빼돌려서 장착하고 운용까지 했기에 강력한 위력을 선보인 것이다.
‘영웅황제에게 중앙핵을 이런 방식으로 빼서 사용하다가 원래의 위치로 되돌렸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 챘다.’
중앙핵을 직접 삼키거나 접촉하면 확실하다.
그러나 상급 창조신의 감각을 무시할 수 없으니 차원권능으로 원격으로 연결하는 융합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인데도 눈치를 못 채네.
현세계의 신족은 너무 약해.’
그렇게 아이언이 중앙핵과 몰래 접촉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갑자기 벌어진 축제와 결투에 흥겨워하는 상급 창조신과 신족들이었다.
아이언은 차근차근 원격접촉을 하면서 아직도 숨어서 정찰하는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을 주시한다.
‘이 정도 정기와 신력이면 어느 정도는 본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그리고 그때 시즈지는 영웅황제를 타고 있는 크롬 공주와 대화 중이었다.
아이언에게 받은 정기로 이제 초월자로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시즈지는 자연스럽게 크롬 공주에게 하대하고 있었다.
“신계와 함께 적을 소멸시키려는 아이언의 조작을 방해하다니?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니?”
은하계의 신계로부터 넘겨받은 막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신계 주신의 유모가 어떤 위치인지를 자각했다.
‘신계 주신의 유모는 지성체들의 어떤 직위보다 상위다.’
더구나 크롬 공주를 초월자로 이끈 것이 시즈지였기에 말을 놓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부담감이 없었다.
여기에 갑자기 파견을 나간 영웅동맹의 임무는 성공했지만, 신계의 전투기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서 바로 긴급 연락을 한 것이다.
‘신계 주신인 아이언의 행동을 유모라지만 아직 정식으로 인증되지 않은 크롬 공주가 막았다는 사실은 굉장한 문제였다.’
아이언의 성격을 아니 놀라서 세밀하게 확인을 한다.
“어쩌려고 그랬니?”
크롬 공주는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했으나 아이언이 그런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은 시즈지가 잘 알았다.
제국이 출세에 방해가 된다고 싹 쓸어버리겠다고 나서는 것을 겨우 막았기 때문이다.
‘아이언에게 피해나 희생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오로지 승리만을 원해.
그걸 방해했으니 복귀하면 반드시 처벌하려 하겠지.’
처벌 방식은 영웅동맹처럼 무자비하지는 않겠지만, 신족 기준이라면 상당히 오랜 시간 봉인이 걸릴 것이 당연했다.
‘아이언의 세력이 막 만들어지고 지배층이 형성되는 시점이다.
지금 크롬 공주가 봉인징계를 받으면 엄청나게 뒤떨어질 수 있다.’
남은 쭉 나가는데 지금 장기간 봉인되면 유모나 영웅동맹의 부맹주 자리도 위험했다.
크롬 공주를 초월자로 만든 것은 자신이기에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도울 생각을 했다.
‘유모로서 적합자가 다른 은하계를 전부 찾으면 우리만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야.
그리고 아직 천족과 마족만이 있는 신계이기에 초월자들은 무조건 서로 도와야만 한다.’
실질적인 필요도 있기에 신신당부를 한다.
“일단 이후부터는 아이언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하렴.
지금은 잘 달래야 한다.
아니면 큰일이 날 수 있어.
지금의 아이언은 은하계 전부를 다스리는 신계 주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
걱정이 가득 담긴 시즈지의 지시에 크롬 공주도 할 말이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십 개가 넘는 신계의 중앙핵을 훔쳐서 소멸시킨 흑염 세력의 수장을 동정심 때문에 놓쳤다는 사실은 굉장한 문제였다.
앞으로 몇 개의 신계가 이 일의 여파로 추가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분명 전술적이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전략적으로는 아니었어.’
그렇게 시즈지와 아이언이 앞으로의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드디어 흑염 세력이 예고한 시간이 도래하려 한다.
물론 시간에 신경을 쓰는 신은 연회장에 없었다.
안주하지 않는 폭주의 신성은 그런 자질구레한 사실은 무시하게 했다.
세 번째판도 또 지고 아이언만 많이 따자 눈이 뒤집힐 지경으로 열이 받은 고위신이 대부분이었다.
상급 주신도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지 손잡이를 부서지라 움켜쥐면서 외치고 있었다.
“이제 지면 내려오지도 마라!”
도박은 가끔 따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잃는다.
왜냐하면, 도박장에서 따게 하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리고 이것저것 먼저 떼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아도 판단착오로 대부분의 신계관리주신들이 창조신이 주신을 이긴다고 생각해서 걸었다가 엄청나게 잃은 후였다.
“거기 비켜-!
내가 나간다!”
소수의 이긴 고위신은 정기술을 얻자마자 바로 먹어서 취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대화도 점점 거침이 없어졌다.
영웅동맹의 주신들과 신계관리주신들의 원한 관계가 결투로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제 원로들이 나서고 있었다.
이대로 판을 끝내면 본전을 복구할 방법이 거의 없기에 필사적이었다.
“아무나 덤벼라!
나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늙었으니 이제 죽어야지 하고 말하던 영감은 빠져!”
이제 원한과 상관없이 순수한 권능과 무력의 겨룸이 되어간다.
하지만 아이언은 중앙핵과 원격접촉하는 중이었기에 시간을 끌기 위해 기분 좋게 판에 정기술을 올려주었다.
탁-! 파파파-!
항상 가지고 다니던 애장품을 털린 고위신들은 이제 일족의 보물고에서 신기를 꺼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더는 이성이라고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듯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
“...”
“...”
정찰하는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나 창조신장, 브라이트조차 침묵할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강탈 예고시간은 다가오는데 방어 준비는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신기를 걸고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브라이트도 수염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시간이 거의 되었어.
그만 결투를 멈추고 진형을 갖추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세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군.’
예고시간이 마침내 왔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생명력을 최대한 발동시킨 근원은 치료가 겨우 끝낸 흑염 세력을 이끌고 신계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문의 연회장과 결투장을 보고 짧게 한마디를 했다.
“보고대로 마신계가 맞군.”
정문에는 신계의 신성한 창조력 대신에 음험한 마력이 가득했다.
연회장에서 풍겨 나온 살의와 투기, 욕망이 뒤범벅된 신력들은 신계의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아이언의 목소리가 울린다.
“원한은 더 없어?
그럼 판 종료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얼마나 잃었는데요.”
한번 잃으면 다음 판에 두배로 걸어서 따면 이득이다.
그래서 손해를 복구하고 이득을 보기 위해서 신계관리주신들에게 계속 배수로 걸었다가 가장 많이 잃은 상급 창조신이었다.
그런데 도박판이 끝나려 하자 열이 받아서 소리쳤다.
“싸우고 싶은 투신이나 전신이 있으면 아무나 올라가!
이기면 반드시 중용하겠다.”
선대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서 영원히 가둔 주신들에게 현재 신계의 지배층들이 이렇게 당하다니 체면 문제였다.
‘이렇게 끝내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자 이제 살기까지 풍기면서 신계관리주신들을 노려본다.
신계관리주신들이 주신에게 질 정도로 무능하다니 그동안 특별대우를 한 것이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는 최상위 서열이 나서라.
또 주신에게 지면 각오들 해라.”
신계 주신의 실망감으로 폭발 직전이라는 사실을 잃은 신계관리주신들은 울화를 꽉 누르고 한 곳을 주목했다.
거기에는 결투장에서 떨어져서 혼자서 음식과 술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신계관리주신이 하나 있었다.
앞머리를 길게 길러 눈동자를 가린 평범한 청년신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혼자서 잘 먹고 즐기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
신계관리주신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슬그머니 먹고 있던 술병과 음식 그릇들을 들고서 옆자리로 이동한다.
스르르르르르-!
양손에 술병과 음식 그릇을 가득 쥐었는데도 아주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외면까지 한다.
골치 아픈 일은 싫다는 노골적인 행동에 성질이 난 신계관리주신들은 외쳤다.
“서열 일위답게 이럴 때는 나서십시오!”
“저희 지금 엄청난 위기라고요!”
“파산하는 것보다 이러다 다시는 얼굴 못 들고 다닙니다.”
일부의 신계관리주신은 너무 다급해서 애원까지 했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원래 가장 용맹하시던 분이 갑자기 이런 한량 흉내라니요?”
“지금 누가 그걸 믿습니까?”
그 말에 아이언의 눈빛이 자신에게 향하자 허겁지겁 음식과 술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트림을 하면서 말한다.
“커어어억-! 세상이 변해서 혼자서 잘 먹고 놀 수 있는 좋은 시절은 다 갔나 보네.
시대가 바뀌었나?
내가 나설 기회가 다 오는군.”
술병까지 빈틈없이 비운 신계관리주신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결투장으로 향했다.
방금 세 명의 신계관리주신이 영웅동맹의 주신에게 쓰러진 장소였지만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그리고 패배했지만, 신계의 도움으로 회복한 신계관리주신들을 쓱 흩어보면서 말했다.
“관리신이면 몸 좀 사려라.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전신과 투신의 시대인 모양이야.
그래도 괜히 주목받으면 아주 안 좋은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