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아이언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화면을 보는 모두의 눈에는 똑똑하게 보였다.
허공에 검은 구멍이 열리고 일백 개 정도의 희미한 인영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말이다.
흠칫-! 섬뜩-!
저 검은 구멍 너머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몸에 소름이 올라오고 굳어졌다.
수많은 윤회를 거친 영혼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아이언이 외치는 소리도 똑똑하게 들었다.
‘지옥이라고 했다.’
‘설마 진짜 신인가?’
방금 개조 인간들의 생명은 분명 정지했다.
그러나 다시 되살아 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료까지 생생하니 신이 없다는 굳건한 불신의 믿음도 흔들리는 중이었다.
뚜뚜! 뚜뚝!
그런데 갑자기 본성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곧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폭우가 된다.
솨 아아-!
쏟아지는 비로 인해 시야는 가려지고 행성 전부를 가린 아이언의 황금빛 날개도 아래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빗속에 섞여진 신경안정제와 수면제의 성분까지 확인한 아이언은 피식 웃었다.
“훗! 폭동 진압용 기상조절장치인가?
안정제는 기억 일부분을 강제로 지워버리나?
나름 머리를 쓰는군.”
인공 폭우로 여기를 주목하던 카메라나 감시장치도 무용지물이 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수도에서 마력에 놀라서 도망친 국민도 약품이 섞인 물에 젖어서 하나둘 쓰러져 잠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빗속을 뚫고 인간 크기의 거대한 기계 벌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윙-! 윙-! 윙-!
기계 벌들이 날개를 펄럭이면서 도로에 쓰러진 사람들을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보낸다.
수십만 대가 넘는 기계 벌들이 동원되자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아이언의 대기 숙소에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개조 인간들의 신체를 집어 들려 했다.
가지고 가서 연구하려는 의도를 읽은 아이언은 차갑게 말했다.
“그건 안 돼.
지성체가 손에 대서 무사할 과학 수준이 아니다.”
그 말에 잠시 멈칫한 기계 별들이 지령을 받았는지 바로 떠난다.
그렇게 수도를 뒤집어 놓았던 아이언의 이차 방문은 이렇게 정리되면서 끝났다.
그리고 프롬 여제는 직접 움직였다.
위이이잉-! 척-!
아이언의 대기 숙소에 여제 전용 의전 차량으로 에메랄드 공주와 함께 온 프롬 여제는 쏟아지는 비를 쓱 쳐다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잠든 이들은 모르지만 지금 수도는 심각한 위험에 들어가 있었다.
‘상황이 조금만 더 심각했다면 비에 수면제나 안정제가 아닌 극독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지시만 하면 맹독으로 바뀐다.’
그럼 본성의 생명체는 전멸이었다.
‘신족의 노예로 만들려고 은하제국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일조가 넘는 은하제국의 여제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명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신족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그러기 전에 아이언의 생각을 파악해야 해.’
아이언에 의해 신족에 대한 오해는 많이 풀렸다.
하지만 인간과는 생각이 다른 가혹한 지배층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영원히 사는 신족의 지배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언의 숙소에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아이언은 탁자에 앉아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은하를 통일한 위업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아이언.”
처음은 아주 부드러운 인사말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눈빛만은 날카롭게 이성으로서 빛난다.
대기 숙소에 있는 작은 원탁에 앉은 프롬 여제와 에메랄드 공주는 아이언이 내온 차를 내려다보았다.
후르르르르!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풍기는 차를 맛있게 먹는 아이언이지만 마주 앉은 두 명은 손을 대지 않았다.
‘평범한 차로 보이지만 마시지는 말아라.
창조신인 아이언에게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겠어요.’
신족의 음식물은 인간으로서는 괴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언이 차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말에 아이언은 환한 미소를 지었으면서 대답한다.
“일천조.”
“?”
“?”
두 명에게는 일천조의 돈을 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신족에게 돈이 필요할 리가 없으니 의아함만 커질 뿐이었다.
아이언은 양손을 넓게 펴면서 신력을 집중한다.
우웅-!
몰려드는 강력한 위압감과 함께 방 안 가득히 은하의 모습이 보인다.
소용돌이치는 별 무리의 모습은 바로 여기 은하계였다.
아이언은 중심부에 반짝이는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한다.
“여기가 은하제국의 본성이고 현재 지성체의 숫자는 일조 정도인데 아주 부족해요.
적어도 일천조가 되어야지 제가 원하는 규모예요.”
그 말에 프롬 여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신족이 필요한 것이 정기이니 인구를 늘려서 더욱 많이 확보하기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일천 배의 인구 증가를 원하신다고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요.
차라리 신도를 늘리시는 것이 좋지 않나요?”
신족에 대한 신앙심이 투철한 신도는 무신론자보다 몇 배의 정기를 추출할 수 있다.
일조의 인구를 가진 은하제국보다 일조의 신성제국이 몇 배나 아이언에게 득이 되기에 의심을 지우지 않은 프롬 여제였다.
하지만 아이언은 들을 가치도 없이 차를 추가로 마시면서 대답한다.
“신도로 더 많은 정기를 확보하는 방법은 지성체의 정치나 경제로 보면 개인의 세금을 올리는 대신 복지를 높여주는 일이에요.
많은 정기를 바치면 더 좋은 혜택을 준다고 할까요?”
아이언은 신을 믿는 인간이 천국에 가는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를 아주 편안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아아! 물론 죽고 나서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혜택이니까 신족에게는 부담이 덜하지요.
신족에게는 아주 좋아요.
작은 인구라도 더 많은 정기를 끌어모아서 쓸 수 있으니까요.”
지옥과 천국을 주관하는 신계 주신으로서 여유와 위엄이 흘러넘쳤다.
“이런 체계에서는 신을 믿지 않거나 악인이면 바로 지옥행이니 더욱 일을 편리하게 하지요.
하지만 선인과 악인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심판하여 보내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니까요.
불만이 쌓이겠지요.”
그 말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아이언을 보기 전까지 신을 믿지 않았던 에메랄드 공주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럼 나도 지옥행이란 뜻이잖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옥행이라니 이게 말이 돼?’
신자라면 환영하는 기준이겠지만 무신론자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편협한 기준이었다.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분위기를 읽은 아이언은 어느새 빈 주전자에 세계수의 잎과 수액을 넣고 다시 차를 끓였다.
보글보글! 쪼르르르르르-!
순식간에 끓은 세계수 차를 다시 잔에 가득 채우고 아이언은 가볍게 말했다.
“믿으면 천국이고 안 믿으면 지옥이다.
지성체들에게는 자유 의지와 이성이 있으니 어지간한 문명 이상이 되면 반론을 당하고 무너지기 딱 좋은 기준입니다.
더구나 너무나 명확한 기준이라서 종교재판이나 전쟁의 명분으로 악용을 당하더군요.
지성체들이 서로의 욕망의 충족을 위한 전쟁을 하면서 신을 핑계로 하면 이것만큼 모독도 없겠지요.
그래서 신족은 다음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은하계의 별의 모양이 변한다.
화아아아아-!
소용돌이의 모양에서 원으로 응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빛의 별이 된 은하를 보면서 아이언은 낭랑하게 말한다.
“하나의 행성에 사는 인구를 최대한 늘리고 규모를 키워서 자연스럽게 정기를 확보한다.
지성체들의 기준으로 보면 기업을 키워서 걷는 세금으로 운영한다고 할까요?
이렇게 되면 관리가 많이 들어가는 개인의 신앙심은 별다른 문제가 안 되지요.
주된 기원인 병의 치료와 기아는 행성의 자연환경 개선과 높아진 문명으로 처리가 되니까요.
무엇보다 수백 배로 늘어난 인구를 가진 행성에서 뽑아낸 정기의 양이 압도적 많아요.
정제만 잘하면 이쪽이 더 좋지요.”
에메랄드 공주는 뭔가 알 것 같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었다.
그러나 제국을 다스려왔던 프롬 여제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수백억의 국민에게 세금을 일일이 걷는 것보다는 소수의 귀족과 기업에게 한꺼번에 받는 편이 더 좋다.
징수과정에서 문제도 적고 조율도 편하다는 뜻이군.’
프롬 여제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파악한 아이언은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하나의 행성에 일백억 정도가 되면 이제 관리 중점은 지성체의 신앙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가진 행성이지요.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간 신족에게 별의 파괴는 용서할 수 없는 중죄가 됩니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부르는 전쟁이나 치명적인 오염과 파괴만 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놔둔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한 프롬 여제였다.
그러나 아이언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단순히 은하제국의 인구가 일천조 이상이 되기만을 바라시는가요?”
이것이 정말 의문이었다.
“일조의 신성제국에서 거두어들이는 정기보다 일천조의 은하제국이 더 많아요.
그러니 제 의도를 의심할 필요는 없어요.”
거기까지 들은 에메랄드 공주는 참지 못하고 반론을 이야기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텐데요.
아무리 출산을 장려하고 양육환경을 좋게 해도 일천 배로 늘리려면 적어도 일백 년 이상 걸려요.
그런데 그런 말을 믿으라고 하시나요?”
하나의 행성에 인구를 본성처럼 일백억으로 늘리고 일천조의 총인구로 만든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은 지금과는 엄청난 수준으로 발달할 것이다.’
인구가 많을수록 경제 규모가 커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은하계까지 점령할 수 있는 진정한 은하제국이 될지 모른다.
이건 평생이 걸려도 달성할지 모르는 원대한 목표야.’
일반적인 관리들이 이야기했다면 비웃음을 당할 일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웃으면서 말한다.
“겨우 일백 년이잖아요?
신족에게는 순식간이에요.”
“...”
그제야 앞의 아이언이 인간이 아닌 창조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자각한 에메랄드 공주였다.
초월자가 되어 노화가 없어진 프롬 여제도 이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목표를 가지셨다면 저희와 은하제국은 아이언님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어요.”
프롬 여제답지 않은 지극히 공손한 말투에 옆의 에메랄드 공주는 놀랐다.
너무 놀라서 의지를 보낼 정도였다.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은하제국의 규모를 일천 배로 늘리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창조신이라면 어떻게든 잡아야 할 상대다.
너도 앞으로 언행을 조심하도록 해라.’
그 말에 연인을 아이언에게 잡혀있기에 반발하려 했으나 프롬 여제는 용납하지 않는다.
‘고대문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벌써 잊었구나.’
‘...’
고대문명은 신족의 지배권과 불로불사를 탐내서 반역을 일으켰다가 철저하게 토벌당했다.
‘고위 주신에게 문명 전체가 사라지고 후계자 일부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이언은 그 이상의 최고위 창조신이다.
승산은 없다.’
지배층으로서 명분도 약했다.
현재 인류의 대부분은 다른 은하계에서 데려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후계자인 프롬 여제도 이방인이었다.
‘더구나 고대문명처럼 은하를 통일한 은하제국을 신족이 위험하다고 보고 토벌할 가능성도 있단다.’
은하를 통일하면서 가장 걱정하던 문제였다.
신족에게 도전할 만큼 발전한 지성체의 문명이 과거에 반역의 전과가 있다면 가만둘 리가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와야 정상인데 신족의 활동은 조용하고 통일 이후에 오히려 더욱 은밀해지고 있었다.
‘은하제국에 대한 신족의 견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아이언님이겠지.’
신족의 최고위 창조신이 은하계에 있는 이상 다른 신족의 개입은 원천 차단된다.
그리고 신계 주신이 은하제국의 부흥을 바란다면 지금 신족의 침묵은 설명이 되었다.
‘누가 우리 편인지 깊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언님에게 절대로 무례를 범하지 마라.’
처음으로 에메랄드 공주와의 의지 대화에서 아이언에게 자연스럽게 존칭을 썼다는 사실을 프롬 여제는 몰랐다.
그리고 경계를 풀고 아이언이 따라준 세계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입에 머금은 순간 놀라고 말았다.
“흐음?”
입속에서 엄청난 정기의 파도가 퍼져나간다.
세계수의 정기를 농축한 차는 초월자가 되고 나서 정기를 보충한 적도 없던 프롬 여제에게는 더없이 짜릿한 경험이었다.
부르르르-!
쾌감에 몸이 떨릴 정도로 맛도 있었는데 더 좋은 점이 있었다.
‘이 차의 생성과 제조과정이 읽히지 않는다.’
뭔가를 먹거나 마실 때마다 그렇게나 자신을 괴롭히던 분석권능이 발휘되지 않았다.
프롬 여제가 차를 마시고 몸을 떨자 왜 여왕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사태의 원인을 파악한 아이언이었다.
‘역시 과학자답게 분석에 관한 꽤 강한 권능을 얻었군.
권능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폭주하여 인지와 감각이 영향을 받았어.
아마도 가만히 있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파악될 거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해결책은 있었다.
상위 권능에 하위권능은 통하지 않는다.
즉 상위 권능은 하위권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수를 창조하는 내 차원권능을 분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분석하려다가 계속 막히니 다른데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세계수의 차를 상복하면 프롬 여제의 권능 폭주는 서서히 잦아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