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영웅동맹의 후보생들은 강제로 고자에 성행위가 금지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프롬 여제는 고민에 빠졌다.
‘후대를 이어야 하는 여왕을 그런 몸 상태로 만들 수는 없다.’
제국을 다스리는 여제는 모든 존재를 다스리기에 가장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해적 생활을 했던 과거야 한순간의 유희였다고 무시하면 되는 일이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아이도 낳을 수도 없다면 심각한 문제였다.
호로로로!
아이언은 느긋하게 차를 다시 마시면서 다른 제안을 말해주었다.
“물론 대책은 있어요.
후계자를 낳기 위한 동안은 불사(不死)를 걸지 않고 아기가 태어나면 다시 걸면 돼요.
그러면 인간 기준으로서는 충분한 불사(不死)이지요.”
“...”
확실히 그러했다.
후계자를 낳기만 하면 성행위는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과연 제국의 백성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까?’
시간이 정지된 신체는 초월자처럼 늙지 않았다.
어떤 부상도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와서 회복된다.
‘자력으로 회복하는 초월자보다 더 완벽한 불사라고 할 수 있어.’
지금 초월자가 된 프롬 여제는 백성의 반발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 정지는 한시라도 빨리 에메랄드 공주에게 은하제국을 넘겨주려는 의도와는 상반되는 상황이었다.
한데 의문이 하나 생겼다.
‘나와 두 딸은 아이언의 유모로서 적합자다.
그래서 초월자로 만들었는데 왜 에메랄드 공주만 예외로 하고 있지?’
자신은 아이언이 신계에서 주었던 정기술 한 병을 먹고 초월자가 되었다.
그럼 아주 쉬운 일이다.
‘술 한 병으로 초월자로 만들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다.’
제국의 후계자로서 결격 사유가 생기겠지만, 나중에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일단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프롬 여제였다.
“왜 에메랄드 공주를 초월자로 만드시는 방안은 말씀하지 않으신가요?”
“...”
프롬 여제의 질문에 아이언은 물끄러미 에메랄드 공주를 쳐다보다가 차를 마시면서 대답한다.
“자격이 없는 지성체를 불사나 초월자로 만들어준 자료의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 일천 년을 못 견디고 미쳐서 자멸한다고 하더군요.
영원히 사는 존재는 감정이 풍부해서는 안 돼요.
쉽게 사랑하고 슬퍼하며 증오를 한다면 무궁한 시간을 견딜 수 없어요.”
아이언은 정보행성 코아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초로 천천히 설명을 시작한다.
“삶의 기준이 반드시 죽을 지성체에 대한 사랑이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사랑을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자살해요.”
어째서인지 아이언이 에메랄드 공주를 강제로 범해서 죽은 자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에 대한 증오를 심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반드시 죽을 필멸자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사는 자신에 대한 증오로 전환 시킨 것인가?
그래서 오백억 년을 버티게 했다면 참으로 인간적이군.
나도 약해지면 그렇게 될까?
지금과 달리 선택지가 적었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어.’
원래 흐름에서는 초월자로서 은하제국과 싸워 승리한 아이언은 힘과 세력이 부족했기에 연인을 잃고 죽으러 떠나는 에메랄드 공주를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신계주신이며 최고위 창조신인 자신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고자에게 불능이지만 연인을 영원히 같이 살게 해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군.
지성체들의 사랑은 순간이어야 가치가 있어.
영원하다면 언제인가는 파탄이 나서 비극이 된다.
많이 아는 것도 문제로군.’
갑자기 상념이 몰려왔다.
그러나 손은 기계적으로 차를 따라서 마시는 중이었다.
쪼르르르르-!
아이언이 침묵하자 초조함에 목이 타는 프롬 여제도 같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다.
에메랄드 공주를 초월자로 만들어도 연인인 해적 두목이 죽으면 자살할 것이라는 의견은 부정할 수 없던 것이다.
아이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모든 문제의 시작인 해적 남자의 신상정보를 쳐다보았다.
‘낙제, 재교육’이라고 적혀 있는 서류를 들어 올리면서 말한다.
“아주 좋은 방법이 있네요.
에메랄드 공주의 남자도 초월자가 되어서 영원히 같이 살면 전부 해결돼요.”
그 말에 프롬 여제의 표정이 확 굳었다.
도저히 어린 딸을 꾀어서 해적질하게 하고 인생만이 아니라 수명까지 망친 남자를 사위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해적의 아이를 은하제국의 후계자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차라리 내가 영원히 제국을 다스리면서 공포 정치를 하는 것이 나아.’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는 프롬 여제였지만 에메랄드 공주의 표정은 아주 밝아졌다.
사랑하는 연인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반발심이 컸던 아이언이지만 이렇게까지 해주니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하지만 아이언은 서류를 다시 보이면서 말한다.
“그런데 여기 보이시지요.
낙제라고요.
신계의 지원을 받았는데도 스스로 초월자가 못 되었으면 수련 부족, 의지박약입니다.
가망 없어요.”
프롬 여제가 보기에는 아이언은 해적 두목에게 정기술을 주어서 초월자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무슨 생각이지?’
실제로 아이언은 유모도 아닌데 그렇게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류철을 에메랄드 공주에게 넘겨주면서 아이언은 말한다.
“특별히 교육을 따로 맡겨드릴 것이니 훈련과 교육을 직접 하세요.
최소한 당신 수준의 초능력자가 되어야지 초월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그리고 황금빛이 일렁이는 구슬 하나를 추가로 넘겨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에메랄드 공주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략 한 시간에 일백 년의 시간이 흐르게 한 공간이에요.
수명에 제한이 있는 상태로 들어가면 바로 즉사할 수 있어요.
절대로 들어갈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아. 예. 알겠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라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은 주니 받았다.
그런데 받자마자 내부의 상황이 바로 전달되었다.
거기에는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연인과 과거의 해적 동료들이 있었다.
“이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데려오고 싶었던 연인과 동료였다.
그런데 비록 구슬에 담긴 상태이지만 받은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서 의아한 표정이 된 에메랄드 공주에게 별것 아니하는 듯이 말한다.
“누가 해적들이 아니랄까 봐서 특히 태도가 불량해요.
초월자가 될 가망과 의욕도 없는 낙제생들은 전 별로 필요가 없어요.
구슬을 꼭 쥐고 의지를 일으키면 내부에 전달이 되니 잘 교육을 해보세요.
에메랄드 공주 수준의 초능력자가 되면 바로 해방이 될 거예요.”
“...”
자신이 내부에 들어갈 수 없지만 돌려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정말 이 안의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나 빠르다면 죽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수련을 해서 경지를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럼 영원히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고맙습니다.”
모든 감정이 풀려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에메랄드 공주를 보는 프롬 여제의 마음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에메랄드 공주는 자신의 수명이 십 년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던 것이다.
아이언인 볼 일을 다 보았다는 듯이 찻주전자를 챙기자 다급하게 의지를 보냈다.
‘너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뭘 기뻐하고 있느냐?’
‘!?’
그제야 수명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한 에메랄드 공주였다.
애인이 초월자가 되어도 자신이 안 되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언은 깔끔하게 탁자를 치우고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사라지려 한다.
“그럼 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사세요.”
지독할 정도로 냉정한 선고였다.
결국, 에메랄드 공주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초능력자에서 초월자가 되려면 신계나 아이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제야 간절해진 두 명의 표정을 읽은 아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한다.
“흐으음! 에메랄드 공주는 초월자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너무 무리한 능력 사용으로 육체가 한계에 봉착되어있는 상태이니 당장 초월자로 만들 수 없어요.
금이 간 도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박살이 나는 이치예요.
일단 이어붙여야 하는데 힘든 일이지요.”
그리고 품속에서 무지갯빛의 동전을 꺼내어 들었다.
팅-! 빙그르르르-!
허공에 띄어진 동전이 회전하면서 치솟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신뢰예요.
제 생각에는 지금 상태로는 초월자로 만들어 보았자 이백 년도 못 버텨요.
연인을 붙여주면 대략 일천 년 정도일까요?
힘들여서 초월자로 만들었는데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자살하면 정말 참기가 힘들죠.”
신랄한 아이언의 말에 프롬 여제와 에메랄드 공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반론을 하기에는 에메랄드 공주의 감정적인 성향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탁자 위에 떨어진 ‘언제나 동전의 앞면’의 직감권능이 이번 사태를 판정한다.
아이언은 나직하게 말했다.
“숫자가 있는 뒷면이 나오면 에메랄드 공주도 초월자로 만들어 드리죠.”
물론 이만 오천분의 일의 오류가 나지 않는 한 뒷면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 극악한 확률을 뚫고 쟁취한다면 도와주어도 되겠지.’
쓸데없는데 정기를 낭비하는 일은 질색인 아이언이었기에 확고한 거절이었다.
빙그그르! 탁-!
탁자 위에 떨어진 동전이 에메랄드 공주의 운명을 가지고 회전을 한다.
그리고 아이언조차 할 말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
동전이 서 있었다.
앞면도 뒷면도 아니고 옆면으로 서 있는 것이다.
아이언조차 너무 황당해서 저절로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사용해서 고장이 났나?”
십중심의 절대 권능이 그럴 리가 없지만, 이건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언제나 동전의 앞면의 권능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옆면을 새우고, 어떤 면도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디 다시 한번.”
또 하나의 동전을 꺼내서 허공에 던진다.
팅! 빙그르르르-!
이번에도 탁자 위에서 옆면으로 섰다.
두 번이나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없으니 우연이 아닌 뭔가의 권능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아이언은 다시 몇 개의 동전을 허공에 던졌다.
하나의 오류가 생겼다면 복수를 던져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탁! 빙그르르! 탁! 빙그르르!
탁자에 열 개의 동전이 옆면을 보이고 섰다.
이제 무시무시한 투기를 보이면서 차원권능으로 주변 조사를 시작하는 아이언이었다.
‘감히 어떤 존재가 나의 직감권능에 개입하느냐?
세계의 항상성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반발이 강력해.’
‘언제나 동전의 앞면’의 선택을 열 번 가까이 무력화시켰다.
그렇다면 이만오천 번의 시도에서 한 번의 오류를 불러내었다는 뜻이었다.
다만 힘이 없어서 완전히 결과를 뒤집지 못하고 중립에 두었다는 의미는 컸다.
‘하나의 권능은 약하지만 수많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 다중 연산력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굉장하다.
이십오만 번 이상의 결과를 일일이 수정하려 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에메랄드 공주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코피를 품으면서 탁자 위로 쓰러졌다.
쿵-! 주르르르-!
“애야!”
대경한 프롬 여제가 다급하게 에메랄드 공주를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아이언이 손을 대지 못하게 막았다.
“생명력이 고갈된 십 년 후면 모를까 지금 제 앞에서 죽을 수 있는 지성체는 없어요.
잠시 지켜보세요.”
그 말에 안정된 프롬 여제는 놀란 가슴을 누르면서 변화를 지켜본다.
주르르르르-!
에메랄드 공주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닿은 무지갯빛의 동전에 닿자 그대로 뒷면을 보이면서 쓰러진다.
탁탁탁탁-!
옆면으로 세워진 열 개의 동전이 모두 쓰러지기 시작한다.
탁자 위를 흥건하게 적신 에메랄드 공주의 피에 의해서 모두 뒷면을 보이는 광경을 지켜본 아이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절대 권능이 겨우 초능력자의 능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계를 돌파해서 내 권능에 변화시켰는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만 오천분의 일의 오류가 차라리 나았다.’
어떤 권능에 의해서 직감의 결과가 바뀌었다면 끔찍한 사태였다.
하지만 다시 분석을 해보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건 아니야.
이번 일에서 앞면이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아슬아슬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본인의 목숨을 건 결의가 미지수로 작용했다.
그래서 옆면인가?’
그 순간 한계를 넘은 에메랄드 공주의 몸이 부르르 진동한다.
그제야 어찌 된 상황인지 깨달은 아이언이었다.
‘십 년을 사용할 수 있는 생명력을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전부 사용했구나!
한계를 넘어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은 익숙하니 가능한 수법이야.
그러나 이런 무모한 방법이 다 있나?
결과를 바꾸지 못하면 무조건 죽잖아?
이긴다고 해도 내가 살려준다는 보장도 없다.’
에메랄드 공주의 몸이 축 늘어지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목숨이 경각에 걸린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한계를 돌파한 초능력 발휘가 동전을 던진 순간 작용했다.
뒷면이 나왔으니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약속을 지켜야 하나?’
치료 능력은 없는 프롬 여제가 아이언의 손을 붙잡았다.
더없이 간절한 얼굴로 눈물까지 보이자 마음을 정한 아이언이었다.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쯧! 자신의 목숨을 걸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게 해적의 방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