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세계조차 격리하는 최고 수준의 결계는 창조신조차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아이언이 결계 너머로 음식을 마음대로 받아 먹는 모습에 상급 창조신은 탈출은 포기했다.
“최소한 세계를 파괴할 힘과 복구할 수 있는 창조를 동시에 쥐어야지 마음대로 살 자격이 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니 신족에 임용했지.
너도 그렇겠지?”
“...”
아이언의 말은 귀에 아프게 박혀 들었다.
분위기는 처음 목이 잡혔을 때부터 좋았지만, 더욱 위험했다.
‘비장의 수단으로 숨겨둔 오의와 권능을 들키면 입막음으로 소멸시키기도 한다.
큰일이군.’
그런데 이상하게 겁이 나지 않았다.
창조신장의 직계라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삶에 별 미련도 없던 탓이 컸다.
애착이 없기에 공포도 없었다.
“제 출신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고위 창조신이면서 영웅신인 내 신격에 겁을 먹지 않으려면 창조신장과 거의 동등한 신격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넌 상급 창조신이다.
그럼 답은 간단하지 않나?”
감추어 놓았지만, 이계의 창조신장인 아이언의 신격이다.
그 앞에서 평온하게 있을 수 있는 존재는 같은 등급이나 이어받은 직계밖에는 없는 것이다.
“최고위 창조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상급 창조신은 창조신장의 직계나 후계 외에는 없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
“하하. 그런 이유로 이렇게 간단하게 밝혀지다니?
넘겨 짙은 것에 당한 셈이군요.”
상급 창조신은 너무 빠르게 인정한 일이 후회스러웠다.
다른 직계와 후궁들에 의해 앞으로 벌어질 암살이나 정치적인 매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아이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음식을 먹었다.
정체가 들통이 나버린 상급 창조신의 얼굴은 더욱 굳어만 갔다.
“...”
그러나 곧 음식이 도착하자 그대로 먹기 시작한다.
머릿속은 오래간만에 다시 들추어진 과거로 복잡했다.
‘한때의 유희를 즐기다 자신이 잉태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떠나버린 부친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뛰어난 재능으로 태어나자 가혹하게 수련을 시켜 출세의 도구로 삼은 모친도 싫었다.’
그나마 위안이 부하들과의 좋은 관계였는데 그것도 인제 보니 못 믿을 일이 된 것이다.
아이언은 그런 심정 변화를 느끼고 다른 일을 물었다.
“창조신장인 부친이나 가혹하게 단련시켜 창조신으로 만든 모친을 원망하느냐?
참으로 배부른 생각이다.
너와 같은 처지지만 여기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
아직 세계를 구분하는 결계가 쳐 있는 상태였다.
비밀이 보장되니 잘 생각해서 바른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다른 창조신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상급 창조신이 되기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만 했다.
교류는 사치였지.’
그러다 겨우 최고 위원회의 창조신이 되어서 외곽의 중앙 은하를 받았는데 비밀인 창조신장의 서자들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아이언은 가져온 음료를 마시면서 대답한다.
“대부분의 고위 창조신들이 수십의 후궁을 두고 수백의 직계를 둔다.
강력한 후계와 믿을 수 있는 가문의 전력을 만들기 위해서이지.
창조신장 정도면 거의 일천 단위 이상일 것이다.
즉 너의 운명은 일천 명 중에 하나 정도이다.
그러면 특별한 비극도 아니고 상급 창조신이 되었으니 성공한 신생이다.”
“...”
자신도 이렇게 출세했으면 성공한 신생이라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명문 일족의 일원도 아니면서 상급 창조신까지 되고, 최고 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면 굉장히 배려해 준 셈이다.”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뜻입니까?”
“당연히! 초월 이상의 권능을 가진 창조신장급의 상위 존재들에게 너의 평온한 태도면 충분한 의심 사유가 된다.
네가 정체를 숨겼어도 다른 고위 창조신들에게 지금처럼 격의 없이 행동했다면 창조신장의 직계라는 사실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
거기까지 말한 아이언은 음료를 추가로 마셨다.
“그러니 영웅신들이나 최고위 창조신 일부는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상위 존재에게 겁을 먹지 않고 재능이 넘치는 존재는 극히 드물다.
그런 존재를 지성체들에게는 용자나 영웅이고 부르고, 신족에게는 용자신 혹은 격이 높아지면 영웅신이 된다.
사생아고 뭐고 지금 같은 비상사태를 생각하면 아껴야 하지.”
그리고 컵을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냐?”
아이언이 상대의 이름을 이렇게 정식으로 묻기는 처음이었다.
상급 창조신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유아신의 명은 바스타드라고 합니다.”
“검의 이름인가?
너는 칼을 안 쓰니 그럼 진짜로 개자식 또는 사생아라고 이름을 붙였어?”
신족 창조신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이름이었다.
부친인 창조신장은 아예 태어났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모친이 지어주었음이 틀림없었다.
대충 사태를 짐작한 아이언은 유쾌함을 숨기지 않고 웃는다.
“푸하하하하! 그것참 정체를 숨기기 좋게 아주 잘 지었다.
창조신장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에게 이런 욕과 같은 이름을 붙일 리가 없지.
설사 의심한다고 해도 사생아라고 당당하게 붙였으니 깊이 파고들지 못하지.”
한참을 웃던 아이언은 확실하게 다시 물었다.
“네 모친이 자신을 버린 창조신장에 대한 원망이기도 한 것인가?
푸후후후후-! 보통 성깔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단한 성격이셨지요.”
상급 창조신의 모친으로서 안정을 찾은 이후로 성향이 많이 수그러졌다.
하지만 창조신에게도 지지 않는 대단한 투신이었다고 한다.
겨우 주신이면서 창조신장의 관심을 끌 정도였으니 정확한 평가였다고 생각은 되었다.
“그렇겠지.
아무리 창조신장의 피를 받았다고 해도 모친의 수준이 떨어지면 상급 창조신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결과만 보면 좋은 모친이니 잘 모셔라.”
아이언이 창조신장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의아해진 상급 창조신이었다.
‘뭘 생각하는 거지?
협박하기 가장 좋은 약점인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하긴 이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아군도 거의 필요 없겠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강해질 수 있나?’
당연히 알 수 있을 리가 없기에 곧 고민을 포기하고 같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운 아이언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유아신의 명이 바스타드면 지금은 다르단 뜻인가?”
“...”
창조신장의 직계라고 해도 아무런 태도 변화가 없는 아이언에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말하면 다른 고위 창조신들처럼 화를 내지 않을까?’
그래서 슬쩍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성인신이 되고 나서 개명을 했습니다.”
“그래. 바스타드라는 이름으로 신족 생활을 하기 힘들었겠지.
개명한 이름은 뭐냐?”
“...”
계속 머뭇거리던 상급 창조신은 아이언이 주먹을 슬쩍 들어 올리자 바로 고백을 했다.
“아오시바입니다.
줄여서 시바라고도 합니다.”
“...”
아주 반항기가 넘쳐흘렀다.
그런데 성인신이 되고 나서 개명했다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바뀐 이름도 욕이군.
이러면 이름을 바꿀 이유가 있나?’
이런 이름을 가지고 용케도 상급 창조신까지 되었으니 감탄이 될 정도였다.
잠시 이 시건방진 녀석을 죽여버릴까 고민을 하던 아이언에게 정보행성 코아가 정보를 보내준다.
신력 파형을 기초로 가장 확률이 높은 존재는 다음과 같았다.
‘구세의 영웅신(救世의 英雄神) 대자재천(大自在天) 시바
이계 아수라 일족의 오리진이자 영웅신.
미래의 삼대 영웅신 중 하나로 판단됩니다.’
정보대로라면 초월자들의 혁명을 극복하고 오백억 년 이후까지 살아남아서 아수라 일족을 만들고 영웅신이 된 존재였다.
그제야 왜 자신이 바로 죽이는 것을 망설인 이유를 깨달은 아이언이었다.
‘이계 신족의 삼대 영웅신이면서 명문 일족의 오리진.
지금 없애면 안 되는 중요인물이라 이거지?’
그런데 정보행성 코아가 단서를 달았다.
‘이계 선신대표(異界 善神代表)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오류만 아니라면 거의 확실합니다.’
그 말에 아이언의 고개가 저절로 갸웃거려졌다.
‘선신대표(善神代表)의 직계라고?
성향이나 신격을 보면 이 녀석은 분명 창조신장의 사생아인데?’
‘영웅신 시바의 부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창조신도 되지 못한 선신대표(善神代表) 정도라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는 하지.’
영웅신 시바가 맞는 것 같은데 미래 부친의 정체가 틀려서 확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그런데 목숨에 별 미련도 없으면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모습이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내 미래의 과거라는 차원의 마도신과 많이 닮았다.
아수라 일족의 영웅신 시바라도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강자와 힘에 대한 동경이 먼저인가?
신족의 부친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
본인은 창조신장의 사생아로 알고 있고 정황도 그렇다.
‘진짜 부친이 누구인지는 모친만이 알 수 있겠지만, 꼭 확인할 필요는 없지.’
미래에 복귀할 생각이지만 최대한 강해져서 자신의 힘으로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약해빠진 이계의 영웅신 따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흐름이 가속화되고 빨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버티었다고 하나 앞으로 변화한 초월자의 혁명과 오백억 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면 사라질 운명이다.
일단 나부터 강해지고 본다.’
깔끔하게 생각을 정리한 아이언은 병을 잡았다.
‘심상치 않은 기세와 좋은 인망이라서 꼬투리를 잡아서 죽여두려고 했는데 이러면 건들 수가 없다.
그럼 한편으로 만들어야지.’
벌컥-! 벌컥-!
결심한 아이언은 그대로 병에 담긴 음료를 단번에 마시고 바로 결계를 거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이번 토벌단에 참석하지 말고, 전력 확충이나 충실히 해라.”
“예?”
토벌단의 사열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찾아가서 박살을 내겠다고 공언을 했다.
그런데 빠지라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반문하려는 상급 창조신에게 가만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우두두둑-!
공간 자체가 손아귀에서 일그러지는 모습에 상급 창조신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알겠습니다!”
아무리 해도 발전이 없고 정체된 삶에 미련을 잃었지만, 비참하게 맞아 죽기는 싫었다.
아이언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물었다.
“너의 근처에서 시비를 걸거나 걸리적거리는 창조신들은 누구냐?”
“아! 예?”
전혀 의의의 물음에 멍청하게 반문했다.
그 대가로 주먹이 눈에 가까이 오는 것을 그대로 보아야 했다.
퍼어어억-!
정말 별이 번쩍이는 느낌과 눈이 빠질 것과 같은 고통을 동시에 겪은 상급 창조신 아오시바였다.
“우억-! 왜 때리십니까?”
“이거 뜻밖에 아주 멍청하네?
너를 괴롭히는 놈이 누구냐고?
버릇을 고쳐준다니까.”
또 주먹이 날아오려고 하자 나중에 구세(救世)의 영웅신이자 아수라 일족의 오리진이 될지 모르는 시바는 비명과 함께 외치려 했다.
‘바로 당신입니다!’
그런데 섬뜩한 위기 감각이 뒤통수를 가리켰다.
‘솔직히 말하면 맞아 죽는다.’
일단 생각나는 원수 같은 놈들이 생각났다.
항상 옆에 붙어있는 이웃이 친하면 좋은 데 항상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천 구 은하계와 천 팔 은하계 신계 주신입니다!
그 자식들이 항상 제가 뭘 할 때마다 시끄럽게 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알았다.
넌 열외를 하고 전력이나 확보해.”
그러고 나서 아이언이 장거리 공간이동으로 사라진다.
맞은 오른쪽 눈에 창조력을 집중시켜 한참을 회복시키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
거울을 불러서 확인해 보니 창조력을 총동원했는데도 검은 멍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지극히 우스운 꼴이라서 저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아오 시바! 도대체 어떻게 맞아야 내 창조력으로도 완전회복이 안 되나?”
총요리장이 정성스럽게 가져온 음식을 신경질적으로 먹으면서 방금 상황을 되짚는다.
‘왜 내가 원한을 가진 상급 창조신들을 물었지?
버릇을 고쳐준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물론 예상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었다.
아이언과 가장 인접한 천삼 은하계는 무사하고 천사부터 천육 은하계의 중앙신계가 남김없이 당한 일이었다.
‘그런데 피해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어느 중앙 신계는 신계 주신이 음식 그릇에 맞기만 했지만 다른 중앙신계에서는 죽어서 신격을 하락 당했다.
신계의 군대까지 전멸당한 곳도 있으니 처벌이 너무 다른 것이다.
“설마? 내가 공격당한 이유가 이런 식이었어?
이것들이 당하면서도 서로를 팔아서 이익을 챙겼다고?”
누가 고위 창조신이 아니라고 할까 봐서 최고위 창조신이 날뛰는 와중에서도 수작을 부렸다면 설명이 전부 되었다.
그리고 명분도 아이언이 휘하를 둘 상급 창조신들을 생각해서 방해물들을 치우고 있었다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내가 방금 언급한 천팔 은하계와 천구 은하계의 신계 주신들은 선택해야 한다.
알려줄까?’
이제 한패가 되던가 아니면 죽어서 신격이 낮추어지던가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상급 창조신은 시커멓게 변한 오른쪽 눈과 평소에 시비를 걸던 둘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럴 의리가 전혀 없었다.
‘시바! 내가 왜 혼자서 당해야 해?
알아서 살아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