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흑염의 절대자는 황금의 절대자를 제외하고 십중심에서 일 대 일로 싸우면 항상 최후의 승자로서 거론되는 최강에 가장 가까운 강자였다.
그것도 권능이 아닌 순수한 신체 능력으로만 받은 평가였다.
‘다른 십중심들은 수억이 넘는 부하를 두고서 절대계를 다스렸다.
하지만 흑염의 절대자만은 달랐다.
강자가 무수하던 절대계에 오직 육체의 힘으로 겨우 오십 명을 이끌고 군림하던 위대한 존재였지.’
어떤 계략이나 세력이 없이 순수한 개인의 힘으로 그 위치에 올랐으니 비슷한 육체 강화계열인 아이언의 입장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으나 혼자의 힘으로 창조주의 위치까지 올라간 위대한 육체계열의 정점.
지금의 내 신체를 만드는데 직접 가호를 내려준 흑염 권능의 오리진.
그의 길을 추구하는 내가 흑염의 절대자의 깃발을 두 조각이 나게 했는가?
그것도 겨우 의뢰에 실패하기 싫어서?’
용병신인 차원의 마도신이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업가인 차원창세신 코아라면 이미 패배하고 죽은 존재의 깃발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니 아주 잘 사용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웅신을 지향하는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은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시 내 미래의 존재들은 뭔가 어긋나 있어!
차원의 마도신의 승리를 위해 약점만을 찌르는 치사함, 차원창세신 코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효율성으로는 부족해.
그들의 사상과 행동으로는 결코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없다.’
둘의 방식은 대놓고 하면 욕먹기 딱 좋으니 숨어서 해야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지금은 그들의 생각대로 따라야만 할 때다.
과정의 문제는 내 방식으로 보완하면 된다.’
감정을 정리한 아이언은 화면 너머의 고유세계의 빛의 화살이 풀리면서 공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시작되었군.
저들이 십 분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도망을 친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아오 시바나 수련생들은 모두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쓸데없는 약자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비난만 할 수 없군.
같은 상황이면 나 역시 저렇게 했을 테니 말이야.’
우우우우웅-!
고유결계의 공간이동은 확실하게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살기와 투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유아신이 된 흑염 세력들이었다.
“아오 시바라고?
이름 그대로 만들어 주마.”
“감히 루카 에일레스님의 흑염의 깃발을 찢었느냐?”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소멸을 시켜주마!”
음성에 실린 감정의 파동만으로도 흑염 세력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언에게 대련으로 단련되지 않았다면 단숨에 투지를 잃을 정도의 살벌한 기세에 수련생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큭!”
“윽!”
그러나 품속에 보관한 아이언이 써준 창조신계에 임관을 약속한 명령서가 의지를 붙든다.
강력한 흑염 세력의 기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신체와 권능한계를 넘어선 일백 개의 팔을 뽑아낸 아오 시바는 외쳤다.
“부활한 흑염 도적단과 우리의 신격은 같거나 위다!
남은 것은 재능과 수련으로 쌓은 능력만이 남는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오!”
자신들이 오리진들의 직계임을 인식하고 힘차게 대답한 수련생들을 흑염 세력은 비웃었다.
“그 말 잘했다! 이 애송이들아!”
“타락한 영웅신으로서 세계 전부와 싸워 살아남은 우리 앞에서 재능과 단련을 이야기하는가?”
흑염 세력은 절대계에서 단련한 신체를 아이언에게 잃어서 신격은 일반 창조신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나 현세계의 창조신 따위에게 질 리가 없다는 자신감과 근거는 충분히 있었다.
흑염 세력의 온몸에서 투기와 살기가 융합된 검은 불길이 치솟는다.
“절대계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흑염 권능 앞에서 어디 살아남아 보아라.”
그것은 흑염의 절대자에게 받은 가호가 갈수록 약해져 가서 부활 이후의 신체로 자체적으로 수련한 흑염의 권능이었다.
흑염 권능의 잔재가 새로 만든 신체의 흑염 권능의 씨앗이 된 것이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발휘된 흑염의 권능의 세기는 오리진인 루카 에일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미비하다.
하지만, 영웅신의 저력으로 자체적으로 키워냈기에 현세계 창조신을 상대하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유아신의 부족한 신체 능력을 단숨에 성인신 이상으로 증폭시켜 버린 것이다.
“십중심님이 지배하던 절대계에서 현세계의 고위 창조신 따위는 중급 전사에 불과해!”
“그리고 우리는 그 절대계의 십 분의 일을 지배하던 흑염 세력이다.”
“아무리 영락하고 타락할지라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흑염의 절대자님을 모독한 대가를 치러 주마!”
검은 불길에 휩싸여 달려드는 오십 명의 흑염 세력에서 품어지는 지독한 살기는 아오 시바와 수련생들을 위축시킨다.
정확하게 흑염 세력의 현재 전력을 측정한 아오 시바는 이를 악물었다.
‘으득! 신격은 일반 창조신이지만, 전투력은 상급 창조신인가?
그것도 최고 수준이다.’
상급 창조신 열 명이 있으면 최상급 창조신 한 명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자신들은 최상급 창조신 하나와 중급 창조신 열 명이 전부였다.
‘이러면 전력이 너무 부족해.
오십 명의 흑염 도적단은 최상급 창조신 다섯 명을 상대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본래 영웅신인 저들의 잠재력도 자신에게 지지 않았다.
‘어떻게 세계가 바뀌어서 부활했는데도 저렇게 강한가?
정면승부를 하면 순식간에 패배한다.’
그제야 아이언이 천을 찢자마자 도주하라는 지시가 생각이 났다.
그러고도 살아날 확률이 일 할도 안 된다는 경고도 절실하게 와 닿는다.
‘너무 가까워서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도주하는 광경을 다른 창조신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
그것은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창조신계에 임관을 해도 겁쟁이로 낙인 찍힌다면 아무 쓸모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싸우기로 각오를 굳힌 아오 시바가 이끄는 수련생들의 눈빛에 황금빛의 권능이 깃든다.
아이언과의 대련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서 습득한 안주하지 않는 폭주였다.
우우우우웅-!
아이언이 안주하지 않는 폭주를 발휘하는 수련생과 자체적으로 개발한 흑염 권능으로 신체를 강화한 오십 명의 흑염 세력이 충돌을 시작했다.
구구구궁-! 꽈꽈꽈꽝-!
서로의 투기와 권능이 작렬하자 아이언이 만든 화면이 잠시 일그러질 정도였다.
그리고 아이언의 분노한 음성이 울렸다.
“이 멍청이들! 약하면 방어부터 해야지 왜 공격을 하는 것이냐?
아직도 상대의 강함을 알지 못하는가?
천을 찢었으면 바로 도주하라고 살길까지 열어주지 않았는가?”
흑염 권능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한 영웅신과의 정면충돌은 신격이 비슷한 현세계 창조신으로는 자살행위였다.
바로 회복시킨 화면에서 역시 수련생들의 신기가 흑염 세력의 주먹과 발에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이 보였다.
“허헉! 신기가 전혀 안 통한다!”
“이…이건 아이언님의 신체?”
신력을 집중시킨 신기가 신체에 충돌하여 박살이 나는 황당한 모습은 아이언과의 대련에서 많이 보았다.
파괴력과 절삭력을 가장 높게 발휘할 수 있는 신기가 무방비의 신체에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광경은 악몽이었다.
‘이건 못 이긴다!’
그러나 아오 시바는 신기와 충돌한 흑염 세력의 신체에 손상이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언처럼 피는 나지 않지만, 피부에 붉은 선이 그어진 것이다.
“아니다!
아이언님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약하다!”
그러나 겨우 맨손과 맨발에 부서진 신기에 충격을 받은 수련생들이었다.
몸이 굳은 그들에게 흑염 세력의 용서 없는 공격이 쏟아진다.
그들을 구원한 것은 역시 아오 시바였다.
“정신들 차려!”
이들을 잃으면 혼자서 오십 명을 상대해야 하니 필사적으로 도왔다.
“아이언님과 대련 때처럼 방어만 해라!
공격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다.”
파파파파파파파-!
일백 개의 팔에 잡힌 삼지창이 일제히 전면으로 쏘아지면서 수련생의 뒤에서 흑염 세력을 노린다.
“윽! 날카롭다!”
“이건 피해!”
일백 개의 삼지창이 일제히 쏟아내는 집중공격에 수련생들을 막 끝장을 내주려던 흑염 세력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파아앗! 좌아아아아아아아아-!
뒤로 물러났지만, 일부의 삼지창에 명중이 된 흑염 세력의 신체는 여기저기서 피가 튀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물러섰지만, 이런 부상은 충격이었다.
절대계에서도 창조신에게 이런 꼴을 당한 적이 없던 것이다.
“큭! 흑염 권능을 발동한 우리가 겨우 현세계의 창조신에게 상처를 입다니?”
새로 만든 현세계의 신체가 현세계 최상급 창조신에 비해서 존재감이 떨어졌기에 발생한 사태였다.
더구나 이 유아신의 몸으로는 어떤 단련도 하지 않고 성장부터 시킨 원인도 컸다.
“아이언에게 잃은 절대계의 신체가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련 부족에 최상급 창조신에게 신격이 밀린 탓인가?”
“이대로는 밀린다.”
수많은 팔과 신기를 가진 최상급 창조신을 맨손으로는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흑염 세력이었다.
“시바! 신기 꺼내.”
결국 영웅신 시절에 사용하던 신기를 모두 꺼내었다.
흑염의 절대자에게 거두어져서 흑염 권능을 받은 이후로는 신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는데 이제 생긴 것이다.
신기를 꺼내 들은 흑염 세력의 기세가 한 차례 더 폭증한다.
“겨우 현세계의 창조신에게 신기까지 사용하게 되다니?”
“으득! 우리가 약해졌다고 너희가 강해진 것은 아니다.”
“너의 소멸은 바뀌지 않는다.”
우우우우우우웅-!
신기를 꺼내어 쥐고 태세를 정비하는 흑염 세력을 본 아오 시바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갔다.
‘신기를 발동해도 한 명이라면 쉽게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다섯 명이 지금의 나의 한계다.
그런데 적은 오십 명이 넘어.
수련생들도 울타리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흑염 세력이 마치 군대처럼 대열까지 갖추기 시작한다.
열 명이 일렬로 다섯 개의 줄을 만들고 발을 맞추어서 전진을 시작하는데 손에 쥔 신기의 높이마저 똑같았다.
완벽한 훈련상태였다.
착착착착착!
아이언은 군대의 대열을 형성하는 흑염 세력을 보고 눈을 빛냈다.
‘겨우 오십 명으로 절대계의 일 할을 통제하던 흑염 세력의 참모습은 바로 지금부터다.’
지금의 흑염 세력은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가 가만히 있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거대한 세력을 포기하고 선택한 영웅신의 군대였다.
그리고 그 위력은 절대계에서 발생했던 전 창조주를 따르던 모든 반란을 진압하는 것으로 증명했다.
“마치(March)!”
오십 명의 타락한 영웅신이 외치는 목소리는 하나가 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폭발할 것 같은 기세를 더한다.
꽈꽈꽈꽈꽈꽈꽈꽈꽈-!
동시에 내딛는 발걸음은 폭음이 되어서 아오 시바와 수련생들의 투지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드디어 흑염 세력이 본격적으로 나왔음을 깨달은 아이언은 혀를 찼다.
“쯧! 이길 가능성이 약간만 있었다면 내가 도주 명령을 내릴 것 같으냐?”
이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뒤돌아서서 도주하려는 순간 던져진 신기에 벌집이 될 상황이었다.
“그래도 잘해주었으니 어떻게든 살린다.”
다시 기세부터 밀리기 시작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아이언은 아직 수리 중인 거대 포대를 무시하고 공간의 문을 열었다.
우우우우웅-!
포탄만을 공간 도약시킨 처음 공간의 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의 구멍이 신계 전체에 개방되었다.
그 중심에는 황금빛 구슬 모양의 고유세계가 큰 점처럼 찍혀 있었다.
‘차원권능을 가진 존재들의 방해와 고유세계의 여파로 나도 근접해서는 만들 수 없다.’
고유세계가 바로 보이지만 차원권능이 없는 창조신들에게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최대한 전투현장에서 열린 공간의 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위 창조신들에게 명령한다.
“모든 상급이상의 창조신은 전력으로 지원을 가라.
저들은 능력이 부족함을 알면서도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여 이기려 했다.
어리석지만 용기 있는 자들이 모두 죽기 전에 구원하라.”
“핫-!”
상급 창조신들은 모두 힘차게 대답하고 공간의 문에 뛰어들었다.
흑염 세력이 항상 하던 도주를 포기하고 전투에 들어가 있으니 드디어 싸울 기회가 온 것이다.
‘흑염 도적단이 미끼를 물었다.’
‘이제까지 항상 놓쳐서 얼굴조차 보지도 못했다.’
‘잡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나 바라던 승리가 눈앞에 있다.’
공간의 문으로 상급 창조신들이 몰려갈 때 최상급 창조신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두 수리 중인 거대 포대에 달라붙는다.
오리진답게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은 것이다.
‘지금 열린 공간의 문과 전투현장과의 거리는 절대 가깝지 않아!’
‘단거리 공간도약으로는 늦다.’
‘포탄으로 쏘아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급하게 수리해서 쏘면 그대로 공중분해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하려면 적어도 십 분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상급 창조신들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집중시킨 창조력으로 순식간에 복구되는 거대 포대를 직접 몸으로 밀면서 좌표를 조정한다.
그리고 스스로 포탄에 들어가서 외쳤다.
“아이언님! 준비되었습니다.”
화면 너머에서 수련생들이 군대의 대열까지 취하고 밀어붙이는 흑염 세력에게 산산 분해가 나기 시작한다.
수련생들의 팔다리가 흑염 세력이 일제히 휘두르는 신기에 잘려나가고 우주 공간이 피의 안개로 뒤덮여간다.
당장 수련생들의 대열은 무너질 것 같지만, 수십 개의 팔을 추가로 만들어내고 선두에서 선 아오 시바 덕분에 겨우 버틴다.
그런데 흑염 세력은 흑염의 깃발을 찢은 당사자가 앞으로 나서자 더욱 살기를 피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아오 시바! 너만은 반드시 소멸시켜주마!”
그와 동시에 가장 뒷줄에 있던 열 명의 흑염 세력이 동료의 등을 타고서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크으윽-!”
그들이 단숨에 아오 시바의 삼지창을 쥔 열 개의 팔을 날리는 모습을 본 아이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으음! 이제 끝이군.
늦겠지만, 도울 각오가 되었다면 가거라.”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