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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나가는 에메랄드 여왕의 뒤를 담당 천족과 마족이 따라나서는 순간에 아이언은 프롬 여제와 대화 중이었다.
그리고 에메랄드 여왕과 대화 내용을 알리고 추가적인 조치를 이야기한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안 되면 직접 나서시겠다고요?”
광신도를 얻어서 직접 신국을 세울 기회를 차버린 아이언이기에 상당히 놀란 프롬 여제였다.
그러나 우주 해적들이 무슨 수를 쓰고 있는지 행방을 도저히 찾을 수 없고, 해결할 수 있는 에메랄드 여왕까지 감옥에 들어간 상황에서 거부할 명분이 약했다.
아이언은 얼음 궁전 영광의 자리에 앉은 채로 다시 이야기한다.
“신계 주신이 아닌 명예 대공만으로 나설 생각이에요.”
은하제국 여제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식 유모가 되었으니 나온 존댓말이었다.
그러나 최고위 창조신이 어떤 직위인지 이제 잘 아는 프롬 여제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여왕과 여제의 힘에 대한 의문이 생겨 지배체제가 흔들려 도움이 절실하던 판국이기에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시다면 제가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하시겠나요?”
명예 대공이지만 위치는 여왕의 바로 밑이었다.
즉 모든 제국 귀족의 상위였으며 여왕이 없다면 직접 명령권을 실행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과거 대공이 행했던 어리석은 행위가 있어서 제한이 잔뜩 걸려있었다.
‘대공의 명령은 여제가 인정해야 발휘된다.’
더구나 명예 대공이라 해서 제국에 어떤 조직이나 부하도 둘 수 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왕의 도움 없이는 은하제국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언도 알고 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한다.
“모든 행성의 총독들에게 명령을 내릴 생각이에요.”
“명령?
시위를 진압하라는 지시인가요?”
그런 지시는 이미 내렸다.
그러나 평화시위에다가 가족을 되돌려달라는 명분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총독들이 초능력자들의 위치를 물어오고 있다.
그들은 이 시위를 진압할 생각이 전혀 없어.’
은하제국을 통일한 위대한 여제의 약점을 발견한 총독들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가세하고 있다.
이러니 어떤 명령도 무의미한데 거기에 명예 대공인 아이언이 명령을 내린다고 들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언은 화면 너머로 공문 하나를 작성해서 보냈다.
여제의 서명이 필요한 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시위를 진압하라.
우주 해적을 찾아라.
못하면 명령 불복종과 하극상으로 전부 처분하겠다.
은하제국 명예대공 은하유성(銀河帝國 名譽大公 銀河流星) 아이언.’
너무나 간단한 명령서였다.
이러면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프롬 여제가 시선을 다시 아이언에게 향했다가 몸이 딱딱히 굳었다.
“…”
거기에는 스물여섯 쌍의 빛의 날개를 활짝 펼친 최고위 창조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초월자인 프롬 여제는 단숨에 압도를 당했고 귀에는 은은한 신언이 울렸다.
“저는 자비롭죠.
약자에게 기회를 줍니다.”
아이언의 손가락은 명령서를 가리켰다.
시위를 막고 우주 해적을 잡으라는 명령 두 둘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관대하기까지 합니다.
반대하는 적에게도 경고하니까요.”
세 번째 줄의 모두 처분을 하겠다는 말이 환한 황금빛을 뿌린다.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
이 이름을 보고도 기회와 경고를 무시한다면 저를 무시한 것입니다.
철저한 처벌만이 있을 뿐입니다.”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의 이름이 찬란한 무지개의 빛을 뿌린다.
보기만 해도 심상치 않은 공문이 된 서류를 본 프롬 여제는 잠시 갈등하다가 서명을 했다.
이 공문이 가진 의미는 아이언의 힘과 직위를 아는 프롬 여제는 너무나 잘 알았다.
‘이 지시를 거부한 많은 귀족이 사라질 것이다.
편히 죽지도 못하겠지.
그러나 은하제국보다는 가볍다.’
이번 일로 인하여 산산조각이 날지 모르는 은하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립을 꿈꾼 발칙한 반역자들이다.
전쟁이 벌어져서 생길 대규모 사상자와 피해보다는 이게 차라리 낫다.’
프롬 여제의 서명이 완료된 이 간단한 명령문은 은하제국의 전 행성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정체 모를 존재들의 수장이라고 의심을 받는 은하제국 명예대공(銀河帝國 名譽大公)의 이름으로 하달된 첫 공문이었다.
거기에 문서로 출력했는데도 황금빛의 문장과 무지갯빛의 서명이 찬란한 공문은 총독들을 고민을 빠뜨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어떤 과학기술로 조사해도 평범한 종이에 출력된 문서인데 완성되자 바로 빛을 품어낸다.
그리고 적힌 내용도 너무나 간단해서 기가 막혔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된 초능력자의 행방이나 설명은 한 줄도 없었다.
“프롬 여제님께서는 지금도 이런 군대식 명령이 통할 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나?”
차라리 연방과 싸울 때라면 모를까 통일된 지금은 완벽한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었다.
“더구나 여제의 칙명도 아닌 보지도 못한 명예 대공이의 명령이라니 우습기까지 하구나.
신경 쓸 것 없다.
이 기회로 자치권을 얻어낸다.”
본성과 여기는 너무나 멀다.
통신이면 모를까 대규모 토벌함대를 보내기는 무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여유롭기까지 한 총독이었다.
그러나 주변 참모들은 모두 심각하게 마지막 세 번째 줄을 쳐다보았다.
‘명령 불복종과 하극상으로 전부 처분.’
징계가 아닌 처분이었다.
‘전부 처분이라?
그럼 규모가 어디까지지?’
‘어떤 심정으로 누가 적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똑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있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마치 쓰레기를 치우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지배층들이 피지배층들에게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까지 모호한 기준으로 대규모 숙청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불가사의한 빛을 내뿜는 공문에 쓰여 있으니 심상치 않았다.
‘설마 우리까지는 아니겠지?’
여기에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명예대공의 존재가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우주 해적들이 떠벌린 신이라는 허황한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비견되는 강력한 초능력자로 본 것이다.
‘제국을 우선시하는 프롬 여제나 우주해적에게 이상하게 집착하는 에메랄드 여왕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존재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다.’
서로 논의를 하던 참모들은 총독에게 조치를 건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처분이라는 공문의 내용이 계속 걸린다.’
해석을 해보면 최악의 경우 총독만이 아니라 관리들 전부가 사형당할 수 있었다.
“총독님. 시위를 진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타났던 우주 해적의 위치를 본성에 통보하겠습니다.”
그런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총독의 얼굴의 미묘하게 변했다.
이제까지 장황한 내용의 공문을 받고 문장 해석을 놓고 본성과 줄다리기를 했는데 이번 짧은 공문에 불안감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총독이 되니 더 많은 권력과 재물을 얻고 싶었다.
‘에메랄드 여왕이 이끄는 본성의 우주 함대를 당할 방법이 없다.’
본성의 우주 함대가 무서워 대놓고 반역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일로 야금야금 자치권을 얻어오려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는데 이번 공문은 무엇인가 아주 달랐다.
참모들의 통합 의견에 총독은 깊은 생각에 잠겨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르렸다.
뚜뚜뚜뚝-!
초능력자들이 사라져서 대신에 오른 총독 직위였지만 결코 무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능했기에 환한 빛에 휩싸인 공문을 쳐다보고 있으면 붉은 피가 떨어지는 환상까지 보였다.
‘마치 선전 포고처럼 보이는군.
그렇다고 본성에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흘려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그런 총독의 반응을 본 참모들은 내심 혀를 찼다.
‘쯧! 안도와 억울함이 반쯤 섞였군.’
‘초능력자들이 있을 때는 관리직에 만족하더니 총독이 되더니 욕심만 늘었어.’
참모들이 보기에 제국의 최고 과학자였던 프롬 여제와 함대를 다루는 에메랄드 공주의 전력은 아직 막강했다.
일시적인 정치적인 약세에 불과하니 최후의 통보와 같은 이런 명령이 도착하면 이 정도로 물러서야 했다.
그러나 총독은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기에 다른 선택을 한다.
“본성의 첩자들에게 명예대공의 정체를 확인하라고 해.
성향, 취향 전부 조사하고 그다음에 판단한다.”
상대를 알고 나서 협상을 하겠다니 어찌 보면 합리적이기도 했다.
참모들은 본성의 우주 함대도 이번 일로 심각한 지휘 문제를 겪고 있음을 알기에 동의를 하고 물러났다.
이번 사태로 일반 시민과 군대의 흔들림도 심각했다.
‘초능력자나 기계 인간, 개조 인간들은 대부분 지휘관이나 지배층인데 그들을 잃은 군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군 장성들은 독립이나 자치를 원하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군대는 줄고 가장 먼저는 싸울 상대가 없는 우주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여차하면 집단항명까지 할 기세였던 우주 함대의 간부들이었다.
그런데 우주 전함의 인공지능들이 일제히 이상을 알렸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잉-!
본성과 주변 방호 위성에 대기 중이던 모든 우주 함대에 비상이 걸린다.
연방을 흡수한 지금 본성에 어떤 적이 침입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하는 간부와 군인들에게 정신없는 보고가 연이어 올라온다.
“삐-! 전달합니다.
엔진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지극히 위험하오니 모두 퇴함을 하시기 바랍니다.”
“삐-! 운영시스템에 해킹이 들어왔습니다.
시스템을 동결해야 하기에 생명유지시스템을 제한합니다.
모든 승무원께서는 비상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급작스러운 퇴고 명령에 놀랄 틈도 없었다.
인공지능의 경고와 동시에 합의 생명유지시스템이 정말로 정지되고 비상통로만 빛을 발산한다.
치이이이이-! 파아아아아-!
공기가 줄어가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공황에 빠진 군인들이 허둥지둥 비상통로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뭐야?”
“우리만이 아니다!”
착륙해 있던 모든 전함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우주 공간에 순찰 중이던 함에서도 비상 탈출함이 끝없이 배출되고 있었다.
“설마! 인공지능의 반란인가?”
수십 겹의 제한이 걸린 인공지능의 반란이라는 황당한 생각이 드는 사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래도 함을 지키겠다고 우주복을 입은 승무원을 작업 기계가 밖에 내던지는 꼴을 보고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삐! 인간은 위험하니 나가십시오.”
“우와아아아아-! 기계의 반란이다!”
“기계들이 드디어 미쳤다.”
전함에서 강제로 내쫓겨진 군인들이 지르는 비명과 외침이 통신망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준비된 절차대로 신속하게 진행을 추진하는 군대의 지휘부였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도 잊지 않았다.
“이래서 내가 너무 자동화하지 말라고 그랬지 않나!”
“예산을 절약했잖아?
업자들한테 먹은 것이나 토해내고 그딴 소리를 해!”
“그만 닥치고 긴급 정지명령을 넣어!”
은하제국의 함정을 긴급정지시키려면 혼자의 의사로는 안 된다.
그래서 다급하게 모인 우주군 장성들이 모든 전함의 인공지능을 멈추는 최우선 명령어를 생체정보와 함께 연이어서 입력했지만 먹히지가 않는다.
“이럴 리가?”
“이건 인공지능이 간섭할 수 없는 독립체계다.”
“접촉 불량일 수 있으니 다시 넣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넣은 명령어는 함대를 멈추지 못하고 대신에 하나의 문장을 출력한다.
그 문장을 읽은 군 지휘부는 한순간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여왕 폐하를 위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정지명령을 무시한 모든 우주 전함이 일치된 답변만을 보낸다.
그렇게 모든 군인을 추방한 함대가 일제히 우주로 날아오른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약간의 오차도 없는 질서정연한 출발 대열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함선의 모습을 본 우주군 장성들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이 되어간다.
아름다운 여성이 왕관을 쓴 채로 양팔을 앞으로 해서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을 한 초대형 함선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퀸 엘리자베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