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거기에는 행방불명된 초능력자들을 돌려달라고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광장이 보였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지 단숨에 깨달은 제독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윽! 치안부를 대신하여 전부 잡아넣으라는 것인가?’
‘하지만 어떻게?’
어떤 유능한 제독도 우주 함대를 잃고, 계급을 박탈당한 이상 힘없는 노인이다.
‘지휘할 수 있는 부하들과 함대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나 아이언의 말에 약간의 화색이 돌아왔다.
“본성의 우주군이 약 일천만 명이었나?
그들도 너희와 같이 모두 해고했지만, 지휘체계는 살려두었으니 잘 해봐.”
“…”
제독들이 확인을 해보니 실제로 참모들에 대한 연락체계는 유지가 되고 있었다.
제독들은 거의 일천만 명이라는 거대 군조직이 아직 휘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자신감을 회복했지만, 곧 절망에 빠졌다.
‘전투무기가 없다!’
‘우주 전함에 모두 실려있어.’
‘모든 우주 함대를 에메랄드 여왕이 가져가 버렸다.’
우주군은 각자 소지한 개인화기를 제외하고 전투 무기가 없어서 군대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연합과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여유 무기는 넘쳐났지만, 협조는 불가능했다.
‘지상군은 우주군과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투 무기를 가지고 있다.’
‘다른 군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우주군과 지상군은 임무가 다르니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아.’
‘무기를 대여해달라고 하면 반역자로 취급을 당하겠지.’
‘계급도 빼앗겼으니 오히려 비웃음이나 당할 것이다.’
그런 제독들의 마음 변화를 읽으면서 악동의 미소를 띤 아이언은 추가로 말한다.
“치안에 전투 무기는 필요가 없다.
불법 시위도 못 막는 무능한 치안부는 전부 해고하고 인공지능 기계로 대체할 생각이야.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은하제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치안부의 규모를 확대해야 하겠지.”
이 명예대공이라는 어린애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일단은 치안부로 소속을 변경해서 살 길은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우주 함대 대신에 순찰할 치안함대도 만들 생각이다.
우주 전함보다 무장은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쓸 만은 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만들어질 치안함대의 제독을 노려보는 것은 어때?”
“!?”
다시 함대를 이끌고 우주로 나갈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제독들이 엎드린 채로 프롬 여제를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허가한다.”
프롬 여제는 위엄을 완전히 회복하여 엄중한 음성으로 명령한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치안 이부의 책임자다.
기존의 치안부는 일부로 명명한다.
제국의 법과 안정을 뒤흔드는 모든 범법행위를 막아라.”
자신들을 치안 이부로 만들고 기존의 치안부를 일부로 두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제독들이었다.
그런 꽉 막힌 노인들을 위해서 아이언은 크게 웃으면서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카하하하하! 앞으로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공적이 많은 쪽이 진정한 정규직 치안부란 뜻이다.
반대로 지시를 수행하지 못하면 비정규직 치안부가 된다 이거지.”
“!?”
시위를 진압하지 못한 치안부를 가만히 둘 수 없다는 의견에는 일치한 두 명이었다.
그래서 내놓은 처벌방안은 가혹했다.
일천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우주군 병력을 치안부에 투입하는 경쟁이었다.
프롬 여왕도 기분 같아서는 전원 해고하고 싶었지만, 실업자가 넘쳐나서 수도가 엉망이 되는 꼴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대병력의 수용은 문제였다.
‘우주 전함에 모든 시설이 있는 우주군에게 본성에 건물이 많을 리가 없다.’
아무리 고도로 발달 된 본성의 고층시설로도 수용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거기서 나온 아이언의 방안은 충격적이었다.
“사무실과 건물은 기존의 치안부와 같이 사용하라.
머물 공간이 부족하거나 필요하다면 치안부의 소유를 빼앗아도 상관이 없다.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사망자만 나오지 않게 하라.”
“!!!”
그럼 치안부와 우주군의 사망자가 나와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이제야 프롬 여제가 진심임을 확인한 제독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계급장이 떨어져서 허전한 어깨의 견장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이렇게 평생을 몸담은 제국의 군대에서 쫓겨날 수 없다는 오기가 솟아오른다.
‘우주군 대신 치안함대가 만들어진다면 다시 제독이 될 기회가 온다.’
‘하지만, 장군의 계급을 박탈당했으니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나는 너무 늙었다.’
‘다시는 우주의 바다에 나가지 못하겠군.’
참혹한 현실에 점점 힘이 빠져나갈 때 아이언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린다.
“후후후후-! 당장 명확한 싸울 수 있는 적과 목표가 필요하겠지?
치안부의 계급장을 빼앗아라.
그것들이 이번 사태에 더욱 괘씸하게 행동했으니 동급이상이라면 명예대공인 내가 바로 인정해주지.”
“…”
함대와 직위를 빼앗기고 궁지에 몰린 우주군에게 대놓고 치안부와 전투를 벌이라고 하는 부추김이었다.
이번 조치는 즉흥적이어서 프롬 여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완벽한 다 죽어가는 노인이 되던 제독들의 눈빛에서 생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치안부의 계급장만 빼앗으면 동등한 계급이 된다 이건가?’
‘연합이라는 적이 사라졌더니 치안부라는 적이 생겼다.’
프롬 여제도 놀란 표정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믿을 만한 약속이었다.
더구나 치안부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음이 틀림이 없었으니 기회였다.
‘당장 기습을 가해야 한다.’
‘무장은 우리가 위이지만, 여기는 저쪽이 본진이다.’
부하들을 움직일 방법도 방금 명예대공이 알려주었다.
‘참모들도 치안부의 간부의 계급장을 빼앗으면 원래 계급으로 복직이니 물불을 가릴 리가 없다.’
더구나 동급이상의 계급을 인정해주겠다고 했으니 진급까지 가능한 기회였다.
‘치안장관! 그 녀석의 계급장은 내 것이다.’
다시 한번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아이언과 위엄이 넘치는 여제의 모습을 올려다본 전직 제독들은 크게 소리를 치면서 일어섰다.
“여황폐하를 위하여.”
그런데 프롬 여제를 칭송하는 소리에 누군가가 외친 구호도 섞여 있었다.
“명예대공(名譽大公) 만세!”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 봐서 재빨리 몰려나가는 제독들의 뒤로 아이언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카하하하하하! 그래야지.
군대에는 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후까지 상급자가 정해주는 적과 싸워야 한다.
상급자를 잃고 마음대로 싸우면 군대가 아니라 도적 떼가 되지.”
황궁을 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뛰어나간 제독들은 정신없이 참모들에게 지시를 쏟아내었다.
그들도 갑자기 계급장이 사라져서 망연자실했지만 떨어지는 명령에 정신이 확 들었다.
“프롬 여제님의 명령이다.
치안부를 모두 제압하고 계급장을 회수하라.”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오래간만에 떨어진 칙령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초능력자 지휘관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예산 감축에 팽배해있던 제독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기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말에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
“!!!”
이건 치안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였다.
‘치안부의 반란을 우주군에게 진압하라는 뜻으로 일단은 이해한다.’
우주 함대나 대형 전투 병기로 제압하면 희생이 크니 몰래 진압하라는 식의 명령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건 월권이었다.
‘지상군이 있는데 우주군들이 나설 이유가 없다.’
더구나 자신들은 몇 배의 봉급과 높은 직위를 약속한 총독들의 행성으로 재배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독님. 총독들의 제안…”
보안회선이라고 막말을 하는 참모들의 눈치 없음에 기겁을 한 제독은 일단 소리부터 쳤다.
“닥쳐! 각 우주군은 소속에 따라서 여제님의 칙명에 의해서 움직인다.”
총독과 제독들의 대화도 최고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고 했는데 모두 녹화를 당했다.
은하제국의 도청과 암호해독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지금 상황에서 무조건 따를 수가 없었다.
“제독님! 함정이 없고 무기도 부족합니다.”
“더구나 계급까지 여제님의 칙명에 의해 취소가 되어서 병력들이 혼란해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치안부를 제압하고 계급장을 회수하라니요?
이건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는 제독들도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부하들이 설명을 요구하다니 연합과의 전쟁 때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같이 여왕을 배신하고 총독들에게 가기로 약속할 정도로 관계가 돈독한 참모들이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전쟁이 끝나니 역시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는군.’
‘여제님과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적이 없으면 군대가 아니고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도적 떼라는 명예대공의 말이 심장에 말뚝처럼 박혔다.
그리고 그제야 제독들은 왜 명예대공이 계급장을 전부 회수했는지도 알았다.
‘전쟁은 끝났으니 시대도 변했다.
적을 얼마나 죽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명령에 충실하게 결과를 내었는가로 바뀌었다.’
지휘체계는 남겨두었으니 징계만이 목적이 아니라 하부조직의 이런 변화를 깨달으라는 조치였다.
‘시위를 진압하라는 여제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있는 치안부를 적으로 규정해주었다.’
‘치안부의 계급장을 전과로서 쟁취하라고 했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회수한 계급장을 독점하여 이 기회에 참모들을 재편성하려던 계획에서 한발 물러 나아야 할 상황이었다.
평화로운 시대에 군인을 움직이려면 역시 진급이 최선이었다.
“회수한 치안부의 계급장이 동급이상이면 본인의 계급으로 인정한다.”
“…”
통신망이 일순 침묵에 잠긴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은하제국 명예대공(銀河帝國 名譽大公) 아이언님의 약속이며 프롬 여제님께서 인정하셨다.”
“…”
그래도 조용한 통신회선이었다.
이것도 틀렸다고 생각을 제독들이 하는데 험악한 대답부터 들려왔다.
“그것부터 말씀하셔야죠!
진짜 늙으셨습니까?”
“이런 젠장! 겨우 얻은 계급장이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월급계좌도 막혔다고요!”
순간에 불평불만을 쏟아부은 참모들은 이 대화를 지휘관들에게 개방해놓았는지 바로 지시에 들어간다.
“모두 들었지?
해고가 아니다.
우리는 여제님의 칙명으로 이제부터 치안부가 된다!”
“치안부의 간부들이나 형사들을 잡아서 해직을 시키면 그 자리는 우리 것이 된다.”
“그러니 가까운 치안부를 싹 갈아엎어 버려!”
“특히 고위 책임자는 절대로 놓치지 마라!”
“병사들에도 확실히 주지시켜!
이번이 실업자가 되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고 말이다!”
“우우우우우우!”
지휘관들의 대답 소리가 울림이 될 정도로 동시다발적인 응답이 울린다.
그리고 점검하는 소리가 울리다가 어떤 참모가 묻는다.
“그런데 치안본부에는 누구를 보낼까요?”
거기에는 우주군의 총 제독과 같은 직위인 치안 장관이 있다.
즉 치안본부를 제압하면 새롭게 만들어진 치안함대의 총 제독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건 당연히 내 우주군이 가야….”
반사적으로 자신의 우주군을 보내려던 제독은 주변 제독들이 죽일 듯이 쳐다보자 입을 다물었다.
주변에 부하도 없으니 정말 주먹다짐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가장 먼저 설쳐야 할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 제독이 없다!”
“그러고 보니 없네?”
분명 자신들을 소집해서 우주 함대의 긴급 정지명령을 넣으려 했고 실패하자 같이 황궁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명예대공을 보자마자 입을 꽉 다물었다가 같이 물러 나온 총 제독이 옆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우린 계급도 없다!”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어디로 가서 뭐 하고 있어?”
지금 급한 일은 총 제독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의 직위와 계급이었기에 모두 흩어진다.
더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를 기회이기도 했기에 전용차에 타면서 다른 제독들에게 외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치안본부는 마지막에 제압한다!”
“누구도 건들지 마라.”
“먼저 가면 가만두지 않겠어.”
잠시 제독들의 관심 대상이었다가 잊힌 총 제독은 아이언의 앞에 엎드려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왜 나만?’
제독들과 똑같이 나갔는데 바로 혼자만 순간 이동으로 불려왔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부른 존재가 프롬 여제인줄 알았는데 아이언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자신의 앞에 다가온다.
그러자 누가 자신에게 용무가 있는 줄 깨닫고서 물었다.
“명… 예대공 은하유성(名譽大公 銀河流星) 아이언님. 왜 저만 남겨두셨습니까?”
화면 너머의 아이언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훗!너만 나에게 만세(萬世)라고 해서 기분이 나빠서야.”
“만세(萬世)가요?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그런 대화에 여제의 자리에 앉은 프롬 여제가 지극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억 년이 한세대인 신족에게 만년만 살라는 뜻은 유아신에서 죽으라는 소리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저주 같은 말이지.’
총 제독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르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더욱 땀만 흘리면서 대답했다.
“아! 원래 대공님은 천세(千歲)였죠.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