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신이 거짓을 말하면 권능이 하락하기에 진실만을 말하는 사정을 잘 아는 마족과 천족에게 이런 어리석은 발언이 없었다.
총 제독의 돌발 발언에 격노한 천족과 마족은 의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큰소리를 지른다.
“이이! 멍청이가! 지금 이게 무슨 헛소리냐!”
“감히 위대하신 신의 말을 거짓으로 생각하다니?”
그런데 그게 의심 많은 노인의 오판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화를 내면 토론에서 진다네.
그리고 발끈하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군.”
총 제독은 망설임 없이 지옥의 빨간 문을 향해서 걸어간다.
오랜 시간 같이 살아서 성질을 잘 아는 천족과 마족이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딱!
막 지옥의 빨간 문 앞에 선 총 제독에게 아이언은 정말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후후! 그 앞은 진짜 지옥이다.
평범한 인간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총 제독은 아이언이 나온 화면을 힐끔 보고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한다.
“전 속지 않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또한, 이유 없는 호의도 없습니다.”
그 말에 폭소를 터트리는 아이언이었다.
“카하하하하하하하-! 나도 저랬는가?
이것 참 걸작이로군.”
처음으로 듣는 아이언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프롬 여제조차 놀랐다.
그리고 천족과 마족은 완전히 포기한 듯이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로 관심을 끌었으니 끝났다.’
‘절대로 벗어나지 못해.’
한참 웃은 아이언은 기분 좋게 설명을 해주었다.
“공짜나 호의의 개념도 신에게는 의미가 다르다.
네가 소중하다고 해서 나에게도 귀중한 것은 아니란 뜻이지.
지성체인 네가 생각하는 이해득실은 정신체 나와는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까지 말한 아이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결정한 듯이 말한다.
“재미다.
아무런 자극도 관심도 생기지 않는 무덤덤한 세상과 지성체를 누가 애써 손을 볼까?
재미없는 세상은 신의 관심을 잃고 사라지는 법이지.”
도대체 이 어린 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기대를 하던 총 제독은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족과 마족은 아이언이 진심임을 깨닫고 벼락을 맞은 표정을 지었고 프롬 여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
“…”
“…”
그리고 총 제독은 천국으로 믿는 지옥의 빨간 문으로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아이언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말했다.
“난 자비롭고, 관대하다.
천국을 원하면서 지옥으로 가려는 지성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지.
그리스.”
화면 너머에서 들려온 영창이었다.
그러나 강대한 최고위 창조신의 권능은 현실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끈!
바닥에서 마찰력이 사라진다.
총 제독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천국의 파란 문으로 돌려진다.
“억!”
그리고 그대로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 총 제독은 몸을 뒤로 날리면서 벗어난다.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어림없다!”
호기롭게 외친 총 제독은 화면을 한번 쏘아보고는 그대로 빨간 문으로 몸을 던져넣었다.
“여기가 진짜 천국이다!”
천국으로 가기를 원했으면서 신에 대한 불신으로 스스로 지옥의 문으로 뛰어든 총 제독이었다.
“아니라니까!”
거긴 지옥이야!”
“주변의 말을 들어!”
파아아아아-!
담당 천족과 마족은 있는 대로 화를 내면서 같이 지옥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우주군을 총독들의 편에 세우려던 총 제독이 산채로 지옥으로 알아서 걸어 들어간다.
“이 어리석은 인간! 위대하신 신께서 직접 천국으로 보내려고까지 했는데 스스로 지옥으로 가다니?”
“또 이따위 짓이냐?
정말 아직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
그런 사태를 지켜본 프롬 여제는 잠시 멍해 있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빨간 문이 지옥인가요?”
그녀도 신을 반대하는 총 제독에 대한 아이언의 이유 없는 가호에 의심했다.
‘그래서 열린 공간의 문 너머를 확인을 해보니 분명 아이언이 말 한대로 지옥이다.’
그러니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을 반대한 존재에게 천국으로 인도하고 초능력자로 만드는 가호를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분명 빨간 문이 지옥이었다.
그런데 왜 천국으로 이끌려고 했지?
정말 군인이라서?
그걸로는 부족해.’
파란 문으로 들어갔어도 뛰어든 순간에 얼마든지 지옥으로 도착지를 바꿀 수도 있기에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은 폭소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카하하하하하하하-! 지성체는 정말 어리석구나.
아주 엉망진창이야.
그런데 이래야 수정하는 맛이 나겠지.”
“….”
프롬 여제는 이제 초월자가 되어서 어리석은 지성체에 포함은 안 된다.
‘그런데 뭔가 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아이언은 머리를 손으로 젖히면서 말한다.
“파란 문이 천국 맞아요.
속임수와 계략은 약자의 전유물이죠.
강대한 신이 약한 인간에게 뭐하러 거짓을 말하고 속일까요?”
“그… 그런가요.”
프롬 여제가 생각하기에도 확실히 강자가 힘으로 누르면 되는 약자를 구차하게 속일 이유가 없었다.
‘나도 대등한 전력이었던 연합과 상대하는 경우에만 권모술수를 사용했다.
약소 독립 행성은 무력으로 제압하면 끝이었어.’
은하의 절반을 지배한 강자로서 경험이 있으니 바로 이해한 프롬 여제였다.
그런데 아이언이 신계를 시켜서 지옥을 비추게 했다.
“푸후후후후-! 어디 이 녀석의 표정을 좀 볼까?
보여봐라.”
‘알겠습니다.’
신계가 바로 비춘 화면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지옥의 광야에서 넋이 나간 표정의 총 제독이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우웅!
지옥이기에 실체화한 천족과 마족이 이를 부득 갈면서 옆에서 잔소리를 퍼붓고 있다.
뭐든지 있는 천국에서 편하게 있을 기회를 놓쳤으니 화가 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뿌득! 맹신천국(盲信天國)! 불신지옥(不信地獄)!
어리석은 인간이여 왜 간단한 이 진리를 모르느냐?
이제 어쩔 것이냐?”
“아득! 자유 좋아하네.
악령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지옥에서 그 잘난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아봐라.”
“….”
그들도 아주 심각한 처지였다.
총 제독이 죽지 않는 한 공동운명체인 그들도 아이언이 용서해주기 전까지 지옥에 갇힌 셈이었다.
그렇게 두 명에게 한참 비난을 듣고 있던 총 제독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다… 다시 선택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면 안 될까?
신의 자비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
“….”
“….”
천족과 마족은 신에게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독립을 꿈꾸던 주제에 신의 자비를 이야기하는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심각하게 정신상태를 의심한다.
‘무한의 자비?
저런 소리를 또 어디서 들었나?
어떤 신께서도 직접 그런 소리를 한 적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야.’
‘그런데 지옥에 왔다가 천국으로 갔다는 악령이 있었나?’
‘없지.
그럴 이유가 있나?’
그러나 포상에 파격적인 아이언의 신으로서 성향을 생각하면서 가능성을 생각한다.
‘시킨 일만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총 제독에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가지신 모양이니 가능하겠어.’
그러다 어떤 생각이 딱 들어서 총 제독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너 또 반대로 생각할 거지?”
“위대하신 신께서 정해주신 천국을 지옥이라고 잘못 생각할 것이 아니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했던 선택으로 원하던 천국이 아닌 지옥에 떨어진 총 제독은 다급하게 외쳤다.
“안 해!
이제 믿는다니까!”
총 제독이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신을 단순한 인간의 지배자로 믿었던 착오였다.
‘어떤 행동을 보이든 신에게는 어차피 똑같은 지성체다.
직접 당해보니 이건 인간의 생각으로 예측하거나 재단을 해서는 안 된다.
시키는 그대로 해야 해.’
신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
의심이 많고 인간을 못 믿는 총 제독으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천족과 마족의 추궁은 멈추지 않는다.
“또 선택의 기회가 오면 다른 생각을 할 것 아니냐?”
“너의 평생을 보아온 우리다.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마라.”
“….”
총 제독도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신의 말을 순종하는 선택을 할 거라 확신이 없었기에 대꾸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옥의 대지에 은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구구-!
거기에 천족과 마족이 전율할 정도의 투기와 살기가 지옥 여기저기서 풍겨오기 시작했다.
“헉! 뭐야?”
“큭! 그들이다.”
“역시 소문대로였어.”
평생을 전장에서 구른 총 제독이었기에 이런 종류의 기운에 감지능력이 아주 우수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하늘을 가릴 듯이 땅에서 치솟는 거대한 거인들의 모습에 기겁한다.
“흐어억! 저거 뭐야?”
지옥이니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란 심정을 다스리고 잘 보니 프롬 여제님의 명령으로 회수하여 어딘가로 보낸 제국과 연합의 인형 병기들이었다.
“에잉! 구식 인형 병기잖아?
전투기와 전투함에 밀려서 의식이나 제식이 아니면 쓸모가 없는 고철 주제에 놀라게 하고 있어.”
우주시대에 들어서서 우주 전함들이 원거리에서 쏘는 함포전으로 전쟁은 진화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근접전이 주가 되는 인형병기는 현재의 전쟁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체계였다.
‘건설과 맞물려서 잠시 부흥했지만 이제 한물이 간 무기체계다.
이걸 모으신다기에 어디다 쓰시려고 했나 의아했더니 전부 지옥에 와 있었구나.’
그런데 지옥에서 본 인형 병기의 모습은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대단했다.
무기를 든 인형 병기가 병기를 휘두르고 걸을 때마다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일그러진다.
구구구구궁-! 우우우웅-!
황금빛이 찬란한 인형 병기를 선두로 어떤 전투함대로도 상상도 못 할 위세를 보여 주면서 대열을 갖추어 간다.
움직임만으로 단숨에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인형 병기들의 엄청난 전투력의 정체를 확인한 총 제독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초능력 증폭?”
초능력자 자체만으로 강력한데 거기에 인형병기를 조합했으면 우주전함이라도 안심할 수 없는 전력이다.
‘저 인형 병기들을 어떻게 개조했는지 모르지만, 초능력자들을 인형병기에 태워 초능력 강화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럼 상황이 달라.’
그런 생각대로 기세만으로 대지를 쪼개고 하늘을 뒤엎는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황금빛의 인형 병기군단은 진군을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궁-!
그들이 몰려가는 곳에는 검은빛의 인형 병기들이 중구난방으로 서 있었다.
총 제독은 그들의 정체도 바로 알아보았다.
“저것들은 또 뭐야?
연합의 고물들이잖아?”
연합에서 회수한 인형 병기들이 검은색으로 색칠이 되어 있는데 초능력으로 발휘되는 기체는 없었다.
대신에 엄청난 중화기로 완전무장을 한 상태였다.
검은 인형 병기들의 총구들이 정면을 향하자 황금빛 인형 병기의 선두에서 열두 개의 검을 뽑아낸 검의 주신의 영웅왕이 질주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전군 돌진! 어떻게든 영웅왕을 회수하라!”
검의 주신은 이제 범죄신이 아니다.
아이언의 중앙신계의 주력이 될 영웅동맹의 훈련 교관의 신분을 받고 신계까지 약속받은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신계 주신으로서 영광의 길만이 남았다.
이제 유일한 오점은 용자동맹에게 황당하게 빼앗긴 영웅왕이다.’
여기에 최고위 창조신이신 위대한 신계 주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용자동맹과 사자왕 가이의 존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온전한 초월자도 아닌 개조인간 주제에 영웅왕을 감히 용자왕으로 만들었다.
당장 회수해야 하는데 사자왕 가이가 이끄는 용자동맹이 만만치 않다.’
개조 인간들이라서 기계신체의 제어력이 신족보다 위라서 영웅왕을 동원하면 바로 빼앗긴다.
용자왕 가이도 만만치 않고, 이미 영웅왕 세대를 탈취당해서 혼자서는 안되었다.
‘용자왕이 있는 용자동맹의 전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창조신의 공격조차 튕겨내는 용자왕을 주신으로 상대할 수 없으니 남은 방법은 대군을 동원한 소모전이었다.
그 점에서 영웅동맹이 있는 검의 주신은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인간이다!
계속 몰아붙이다 보면 정신력에 한계를 보일 것이다.
물론 우리 쪽도 지치겠지만, 방지하기 위해서 보상도 확실히 걸었다.’
그 보상은 낙제생들에게는 당연히 합격이었고, 영웅동맹의 후보생들에게는 영웅왕의 지급이었다.
“낙제생 신분에서 반드시 벗어난다!”
“반드시 탈취해서 지옥을 탈출하겠다.”
“영웅왕은 내 것이다.”
막대한 보상 덕분에 사기와 투기가 넘치는 영웅동맹에게 용자동맹은 절박함으로 맞붙었다.
가만히 있어도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품어내는 용자왕 덕분에 악령들이 귀찮게 하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옥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이 가져다준 수많은 쾌락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무미건조한 지옥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이언이 걸어준 불사(不死) 때문에 죽지는 않지만 아무런 낙이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용자왕의 획득이다.’
그러니 영웅왕을 되찾으려는 영웅동맹과의 전투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여기에 아이언이 지급해준 인형병기를 굉장한 과학 문명을 바탕으로 개조해서 영웅동맹의 초능력에도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할 만한 전투였다.
초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영웅동맹과 거대화한 총화기를 운용하는 용자동맹의 격돌은 지옥에서 이미 일상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 꽈꽈꽈꽈꽈-!
그렇게 벌어진 인형 병기들의 전투를 정신없이 쳐다보던 총 제독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하늘을 가릴 지경으로 쏟아지는 용자동맹이 쏘아댄 미사일과 포탄들이었다.
“헉! 유탄이다!”
평범한 인간이니 스치기만 해도 죽음은 확정이었다.
보조인격을 맡은 하급 천족과 마족으로서는 저런 위력의 물리 공격은 막을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저들의 공격은 우리로는 못 막아!”
전투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천족과 마족은 총 제독의 겨드랑이를 양손으로 붙잡고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영웅동맹과 용자동맹은 지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마력을 흡수했다.’
‘그래서 아무런 초능력이 없는 개조 인간들의 물리 공격조차 서서히 물리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어.’
중앙 신계가 걱정할 정도로 전력이 급상승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천족과 마족의 손에 들려서 도주하는 총 제독의 눈은 기계 병기를 쏘아대는 용자동맹과 초능력과 권능으로 대응하는 영웅동맹의 전투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저들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젊어졌는데 왜 이렇게 시야가 흐려?
그리고, 천국의 빨간 문과 지옥의 파란 문이 보인다.’
알고 보니 눈에 어느새 흘린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리고 간절한 바람으로 생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손등으로 비빈 총 제독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바! 초능력자와 기계 병기의 전쟁인가?
여기가 지옥이 맞기는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