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침묵한 채 황궁 안에 들어선 에메랄드 여왕은 바로 알현실로 이동한다.
여왕에 대한 인간의 명령 거부 사태 이후로 궁 내부는 모두 인공지능 기계로 채워져 있기에 인기척은 없었다.
뚜벅! 뚜벅!
아무도 없는 화려한 복도를 지나서 세 개의 여왕의 의자가 놓여있는 알현실에 도착하자 중앙에 프롬 여제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은빛 투기의 날개가 넘실거리고 있다.
후우우우우웅-!
잔잔한 울림을 내 품으면서 일렁이는 모습에 에메랄드 여왕은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한다.
“다녀왔습니다. 어마마마.”
아무도 없지만, 이제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여왕이 되었으니 정중하기 짝이 인사였다.
“어서 오렴,
수고했다.”
초월자로서 본성의 인공지능 기계들을 통제하느라 여념이 없던 프롬 여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기고, 자신의 왼쪽에 앉게 했다.
그리고 에메랄드 여왕이 앉자 나직하게 물었다.
“우주 해적단을 못 찾았다고 들었다.”
“제국의 미개발지역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여요.”
마지막에는 모든 행성의 총독들이 적극 협조를 했어도 발견을 하지 못했으니 타당한 추론이었다.
프롬 여제도 에메랄드 여왕이 진심으로 우주 해적단을 토벌하려 했음을 알기에 더는 추궁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는 추가로 확인한다.
“우주 해적단의 근거지를 파괴했다고 들었는데 거기가 그들의 모항이니?”
“예. 다른 장소는 우주전함의 수리조차 할 수 없는 임시 기지예요.
그것도 모두 파괴를 해 두었으니 이제 활동을 하려면 기존의 행성이나 요새를 빼앗아야 해요.”
과거에 연합과 싸울 시절에는 그렇게 해도 바로 토벌을 할 수 없었지만, 통일된 지금은 다르다.
‘요새나 행성을 습격하면 바로 추격함대가 붙을 것을 아니 그렇게는 할 수 없지.’
우주 해적단이 은하의 미개발지역으로 도주하여 숨었다는 사실은 프롬 여제도 어느 정도 예측했다.
아이언의 유모 자격으로 신계에 정보를 요청했는데 그들의 통제조차 벗어났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은거지가 최소한의 기능만 살아있는 신계조차 없는 불모지역이라는 뜻이다.
‘신계가 있는 지역은 은하제국(銀河帝國)보다 넓다.
그런데 모른다면 역시 아주 깊숙한 곳에 숨은 모양이구나.
그럼 미개발지역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제국과 연합이 치열한 전투 중에 개발을 포기한 지역은 엄청나게 넓었다.
‘거기를 전부 뒤지려면 은하제국(銀河帝國)의 모든 함대를 동원해도 수십 년이 걸릴 일이다.’
그런 이유로 돌아온 에메랄드 여왕은 지친 듯이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물었다.
“신족도 모르나요?”
“파악이 안 된다고 한다.
거짓은 아니다.”
본래 신족에 반대하던 제국의 여제였다가 지금은 신계 주신인 아이언의 유모라는 미묘한 위치였지만 프롬 여제의 직위는 굉장히 높았다.
그런 그녀에게 일부러 틀린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고, 안건 또한 심각했다.
“우주 해적단이 아이언님의 정체를 감히 무단으로 지성체들에게 알린 일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지.”
정보요청자의 높은 위치와 이런 이유로 고위 천족과 마족들도 토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통보였다.
“신족이 되기를 바라는 천족과 마족은 지금의 성장세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신족에 대한 반역이라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의 편이니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영역에 없다는 뜻이겠지.”
프롬 여제의 확신이 어린 말에 에메랄드 여왕은 길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우-! 지성체의 상위 존재라고 자부하는 정신체라는 신족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에요.
이야기대로 전능(全能)은 아니군요.”
신계 주신인 아이언은 명예대공으로 받아들인 지금 상황에서는 어찌 보면 위험한 말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신족의 능력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기에 프롬 여제는 냉정하게 말한다.
“신족을 얕보지 마라.
신계가 대답을 못 하는 것은 천족과 마족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계에 고위신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은 현실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능을 사용하니까 설사 신족의 영역을 벗어나도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내가 그러하니 말이다.”
프롬 여제의 눈동자에서 은빛이 빛나고 투기의 날개가 더욱 활짝 펼친다.
그러자 알현실의 바닥에서 금속의 기계부품들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허공으로 떠오른다.
드드드드! 다다다다닥!
그리고 서로 맞물리면서 거대한 공 형태의 은하의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아직은 과한 권능을 사용하여 약간 피곤한 기색을 보인 프롬 여제는 아직 여기저기 커다란 빈틈을 보인 은하의 기계모형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우리 은하계를 축소하여 복제하고 있는 지도다.
완성만 하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지만, 아직 내 권능과 영역이 부족해서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은하 전부에 내 인공지능 기계를 뿌리고 인증하면 나의 영역이 되니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그 말에 눈에서 번쩍 투기의 빛이 스며 나온 에메랄드 여왕은 다급하게 묻는다.
“그럼 얼마나 걸릴까요?”
“….”
그 말에 약간 얼굴이 붉어진 프롬 여제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하기 민망할 정도로 긴 시간이 들어가는 탓이다.
‘현실을 조정하는 권능은 현실의 일부인 물리법칙에 기반으로 하는 과학보다 확실히 위력적이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나 지금 본인이 다스리는 은하제국(銀河帝國)을 세게 치고 도망간 바람둥이 애인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에메랄드 여왕의 분노를 알기에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은하계를 전부 내 영역에 넣으려면 일만 년 이상이 걸린다.”
“일만 년!?”
기대하던 에메랄드 여왕으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과거의 동료로서 자신의 함대 지배의 초능력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너무나 잘 아는 우주 해적단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을 찾을 방법이 없어요.
아마도 모두 숨어서 동면하고 있겠죠.
최악의 경우는 제가 늙어 죽어서 사라진 다음에 나타날 거예요.”
맞상대를 할 수 없는 군대에 쫓기면 나오는 우주해적의 은거 방식이다.
‘철저하게 숨어서 장기간의 동면으로 물자를 아끼고, 경계의 해제를 노린다.’
자신도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할 것이니 거의 확신이었다.
그런데 늙어 죽는다는 에메랄드 여왕의 말에 프롬 여제의 안색이 확 굳었다.
이제 아무 일이 없으면 영원히 사는 초월자가 된 그녀에게 딸이 늙어 죽는 모습을 본다는 사실이 현실이 되어 다가온 탓이다.
‘죽음을 어쩔 수 없다면 포기라도 하겠지만, 이제 그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강력한 초능력자인 에메랄드 여왕에게는 죽음을 간단하게 피할 방법이 있었다.
초월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언의 유모의 적합자이기도 하니 내가 먹었던 정기 술 한 병이면 단숨에 초월자가 되겠지.
신계에서도 엄청난 보물로 치는 정기 술이 아니더라도 신계의 지원을 약간만 받아도 초월자가 될 자질이 넘쳤다.
‘더구나 본인의 입에서 직접 늙어 죽는다는 말을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처음에는 인간의 나라에 인간의 여왕이 필요했기에 에메랄드 여왕을 이대로 둘 결심이 점점 흔들리는 프롬 여제였다.
‘내 작품인 은하제국(銀河帝國)이 인간의 어느 나라보다 긴 일천 년 이상을 번성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일천 년이 정신체의 영원한 삶에는 일순간이구나.
겨우 그런 짧은 순간의 만족을 위해서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내 딸을 잃을 수는 없다.’
제국에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희생시킬 각오를 했고 실제로 방해가 되던 남편을 처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영원한 삶을 얻으니 점점 생각이 자기 주변의 인물과 미래의 삶 위주로 변화하는 중이었다.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를 우선하는 신족의 시야를 가지는 것이다.
‘지성체의 나라가 어떻게 되든 정신체에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정신체에게 지성체는 세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기본 자원인 정기만 만들어내면 그만인 존재였다.’
왜 아이언이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지배권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지 정신체에 대해 파악을 하면 할수록 깨달아가는 프롬 여제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이언이 에메랄드 여왕을 초월자로 만들어 줄지 방안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아이언은 철저한 능력으로만 존재를 파악한다.
‘고위의 정신체 일수록 수명이 있는 지성체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일단 초월자가 되게 해야 해.
그러나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왕위를 포기할 수도 없다.’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이 왕위를 이으면 가장 먼저 선대 여왕의 잘못부터 들쑤시기 마련이다.
자신의 위업이 퇴색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은하제국(銀河帝國)이 안정될 때까지 에메랄드 여왕은 왕위를 유지한 채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초월자가 되는 길을 모색을 해보니 보다 뛰어난 초능력을 가지면 된다.
스스로 초월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도우면 가능해.’
그러나 과다한 초능력의 사용으로 육체에 문제가 있으니 개선을 서둘러야 했다.
‘아이언님이 준 옷으로 육체의 악화는 막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억제하는 정도다.
조사해보니 어떤 육체라도 단번에 치료할 지름길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방법이다.’
아이언과 같은 고위 정신체가 약간의 권능만 발휘하면 에메랄드 여왕 정도라면 순식간에 초월자 이상의 초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아이언님이 에메랄드의 정신을 문제로 삼아서 초월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꺼리셨지만, 육체강화 정도는 가능해 보여.’
은하제국(銀河帝國)을 더욱 번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여왕이 필요하니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은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말이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해보지 않겠느냐?”
“예?”
갑자기 나온 제안에 어리둥절한 에메랄드 여왕이었다.
프롬 여제는 황궁의 천장에 본성의 달, 지금은 삭월(朔月)의 시즈지의 개인 신계를 비추고 긴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휴우우우!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는 상대하기가 버겁구나.”
삭월(朔月)의 시즈지는 아이언의 수련행성을 만들고 죽은 신계들을 복구하면서 중앙신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쌓아 올렸다.
‘저 강대한 창조력은 내 분석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천족과 마족은 신계주신의 유모로서가 아니라 그녀 자체를 추종할 정도다.’
신계를 운용하는 천족과 마족에게 강력한 창조력만큼 필요한 힘은 없었다.
그러니 같은 유모이기는 하지만 창조력 대신에 기계지배와 분석력이 뛰어난 프롬 여제는 입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여제라는 신분이 없다면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니 초조하구나.”
어느 세계나 조직이든 권력경쟁에서 밀리면 어떻게 되는지 실컷 봐온 여제이기에 더욱 심각한 고민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을 모르는 에메랄드 여왕은 갑자기 정식으로 결혼을 하라니 의문이 서린 표정만 할 뿐이었다.
“?”
그리고 그때 행성 외부에 대규모 공간이동이 일어났고, 바로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이 알현실로 들어온다.
반짝이는 금발을 휘날리는 미소년을 보자 프롬 여제는 바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최고위 창조신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님.”
옆의 에메랄드 여왕이 놀랄 정도로 공손한 태도였다.
더구나 권능으로 억지로 자신까지 같이 일어서서 인사까지 하게 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어머니. 왜 갑자기 이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과거에 신족이라면 그렇게나 경계하던 프롬 여제였기에 혹시 세뇌라도 당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난 제정신이니 넌 가만히 있으렴.’
신족에서 최고위 창조신이 어떤 위치이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잘 아는 프롬 여제에게는 당연한 예우였다.
그러자 아이언은 가까이 오면서 쾌활하게 말한다.
“자리에 편히 앉으세요.
그리고 지성체들의 앞이나 행성에서는 명예대공(名譽大公)이라고 부르세요.
그게 활동하기 편해요.”
“알겠습니다.”
아이언이 신계 주신으로 정한 방침이 지성체에 대한 불간섭임을 알기에 순순히 따른다.
그리고 프롬 여제가 자리에 앉자 아이언은 그대로 그녀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푹신!
여제의 다리 위를 마치 자신의 지정석인 것처럼 편히 앉는 아이언의 모습에 에메랄드 여왕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
하지만 프롬 여제는 오히려 살짝 다리를 벌려서 아이언이 편히 앉게 배려를 해준다.
초월자가 되어서 정신체의 세계에 막 편입된 그녀에게는 현재 지배세력인 신족의 최고 권력자인 최고위 창조신인 아이언의 유모라는 직위는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허용할만한 수준이었다.
“명예대공인 제가 할 일이 뭔가요?
은하제국 이대 함대의 여왕(銀河帝國 二代 艦隊의 女王).”
자신의 모친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모습에 반감을 보이는 에메랄드 여왕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묻는 아이언이었다.
프롬 여제는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바로 주의를 주었다.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마라.
현세계에서 최고위 창조신이신 아이언님의 직위는 은하제국(銀河帝國)의 여왕보다 아득하게 높다.’
‘….’
그러나 아직 초월자가 되지 못해서 아이언의 존재감을 못 읽는 에메랄드 여왕은 바로 응대했다.
“우주 해적단의 위치를 알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