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감옥행성이 두 동강 나면서 도망치기 시작한 죄수들을 잡으려던 간수들은 탈옥이라는 말에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검을 사용하는 모든 존재의 정점인 십중심의 검편(劍蝙)이 탈옥을 한다면 막을 수는 없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감옥행성의 거울 같은 절단면을 보니 박쥐의 검의 무형 초진동 칼날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상처였다.
기겁한 간수들이 아스나스를 가둔 감옥을 찾지 않고, 간수장을 찾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갇혀 있는 곳에 허락 없이 가까이 가면 무조건 죽기 때문이었다.
“간수장님! 아스나스가 마침내 탈옥하려 합니다.”
“진실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그 말에 위압적인 덩치의 투신인 간수장은 인상을 팍팍 썼다.
“나 보고 어쩌라고?”
그러자 모두의 얼굴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간수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도 아스나스의 일격조차 받아낼 수 없으니 욕설을 나직하게 내뱉었다.
“제길! 검이라도 빼앗아둘 것을 그랬어.”
“….”
물론 쓸데없는 후회이고 바람이다.
검의 절대자에게 검을 빼앗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면서 무기를 반납하라고 말했던 간수를 먼지처럼 산산이 베어버린 전적이 있었다.
‘감옥에 가까이 가도 되는 간수는 식사와 정기를 운반해주는 단 한 명뿐이다.
그것도 감옥동의 입구까지만 갈 수 있어.’
‘나머지는 모두 죽였어.’
아스나스의 가족이 일족에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불문에 부쳤기에 아무도 모른다.
‘막 행동한 가족들에 끼친 영향을 스스로 반성하고 자숙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제약을 걸려던 간수를 모두 죽여버렸어.’
그리고 같은 동에 있던 죄수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입이라도 벙긋하면 베어버린다.’
‘잔혹함과 냉정함을 견디지 못한 죄수들이 제발 살려달라고 사정을 해서 다른 동으로 옮겼지.’
‘혼자서 한 동을 전부 사용한다.’
‘죄수가 아닌 지독한 폭군이야.’
절대계 최고의 무력이라는 십중심 검편(十中心 劍蝙)의 위력 과시에 감옥행성이 점령된 상황이었다.
간수들과 간수장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지배층들에게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사정을 해도 모두 거부당한다.
오히려 해달라는 것은 설사 여성이라도 모두 조치해주라는 말에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도대체 아스나스와 지배층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가족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왔는데 태도가 왜 이래?’
‘이건 분풀이를 하러 온 거잖아.’
도저히 견디지 못한 간수장이 은밀하게 조사를 해보니 가족의 범죄에서 썩은 내가 풀풀 났다.
‘가족들은 본성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마 이 미친 것들이 검편(劍蝙) 아스나스를 지배층들에게 팔았나?’
이건 아무리 보아도 지배층들과 아스나스가 충돌을 하기 직전에 한발씩 물러선 상황이었다.
그러니 죄수가 아닌 폭군이 된 아스나스에게 언제 자신들의 몸이 먼지처럼 조각날까 조마조마하면서 살아왔는데 드디어 터진 것이다.
간수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간수들의 힘으로 아스나스의 탈옥을 막을 방법이 없자 머리를 움켜쥐면서 외쳤다.
“제길! 제발 높은 놈들끼리 싸워서 빨리 결판을 보란 말이야!
왜 흐지부지하다가 밑에까지 내려와서 괴롭혀!”
꽤 높은 고위층에 인연이 있는 간수장조차 절망하자 모두가 포기한다.
그런데 간수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큭-! 설마 또?”
본성의 중앙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강해지면서 무시무시한 검기가 용솟음친다.
아스나스의 기세임을 확인한 간수장은 다급하게 외쳤다.
“아직 분이 덜 풀렸다!
모두 피해-!”
간수장이 공간이동을 하면서 외치는 소리에 간수들도 상황을 눈치채고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너무 늦어서 거대한 검날의 환영이 자신들을 스치는 것을 모두 보고 말았다.
슉-!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검날이 모두의 신체를 관통하고 지나가는데 아무런 고통도 느낌도 없다.
그러나 이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비명부터 지른다.
“으아아아-! 박쥐의 검이다!”
“아아악! 살려주십시오.
검편(劍蝙)님!”
자비를 간청하려 했으나 너무나 늦었다.
검의 환영이 지나간 모든 부위가 먼지로 변하고, 간수들의 몸도 산산이 분해되어버린 것이다.
슈아아아아아아아-!
그래도 사정은 봐주었는지 신령은 살아남은 간수들이었다.
그들의 감각에 아스나스가 휘두른 거대 검의 환영이 우주 공간을 그대로 베어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스가가가가가가가-!
물질과 정신을 모두 분해하는 초진동의 검날에 걸리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과 불꽃이 울렸다.
까깡-!
그건 마치 모루를 검으로 내리친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이제까지 거침이 없던 아스나스의 검의 환영은 그대로 내려치지 못하고 강렬한 불꽃을 품어내면서 멈추었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카캉-!
불꽃을 튕기는 모습이 아스나스가 검에 실은 절단의 권능이 무엇인가에 의해 가로막혀있는 것으로 보였다.
간수들이 권능을 집중해서 보니 스물여섯 쌍의 빛의 날개를 휘날리는 창조신이 보인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은 검편(劍蝙)의 검기를 외날 검을 양손으로 잡아서 머리 위에서 막아내고 있었다.
‘저럴 수가?
검편(劍蝙)의 검을 검으로 막아내다니?’
‘저 빛의 날개는 신족의 창조신?
도대체 누구냐!’
검사들의 정점인 검편(劍蝙)이 가진 이름의 무게와 위력을 같은 일족으로서 너무나 잘 아는 간수들은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차원창세신(次元創世神) 코아는 상급 특위 창조신 아기발도로부터 먹어서 흡수한 신검의 칼이 아스나스의 검의 환영에 덜덜 떨리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쳇-! 이게 진짜 박쥐의 검인가?
역시 흉내로는 잘 안되네.”
막강한 검기가 실렸지만, 살기(殺氣)가 없는 것을 보니 자신의 도발에 대한 간단한 응대로 보였다.
그런데도 명백하게 밀리고 있었다.
기기기기기-!
사백구십구 주우주 상급 특위 창조신 아기발도의 권능이 담긴 신검이 못 견디려 하고 있었다.
‘신력은 분명 아기발도가 상위인데도 이 꼴이라니?
과연 아직 완성되지 않고 신력이 낮아도 십중심(十中心)이다.
그럼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가?’
검편(劍蝙)의 검기를 익혀서 주우주 최고의 검신으로 이름 높은 아기발도의 신검이 아스나스의 검세를 이기지 못하고 점점 잘려나간다.
가가가가가가가-!
그러나, 차원창세신 코아는 당황하지 않고 검날을 버티고 있던 왼손을 풀면서 웃었다.
“푸후후후-! 이것도 예상한 대로다.”
왼손에 빛나는 하나의 투창을 만들었다.
쏘면 반드시 명중해서 관통하는 아기발도의 투창이었다.
“내가 언제 하나만 가지고 적을 상대했나?”
우우우우-!
오른손의 신검으로 아스나스의 검세를 막고, 왼손으로 투창을 들은 차원창세신 코아는 여유롭게 손가락으로 창을 돌린다.
빙그르르르르-! 파아아아-!
일 미터가량의 투창이 황금빛의 신력이 뭉치면서 빛살이 뭉쳐서 길어진다.
“이것도 하나 먹어라.
나의 공격 앞에서 계속 감옥에 있을 수 있나 보자.”
흑염의 권능으로 단련된 아이언의 신체 능력으로 쏘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을 찢어발기고 도약시키기 충분했다.
그대로 빛의 투창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감옥행성으로 쏘아 보낸다.
퉁-! 투하하하하하하하하-!
손가락에 튕긴 순간 사라진 빛의 투창이 용서 없이 감옥행성을 관통한다.
그런데 이제 네 조각이 된 감옥행성의 중앙에 빛의 투창이 내려꽂히는 모습을 본 크롬 공주는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았다.
“꺅-!”
동전 세 개와 얇은 실로 젖꼭지와 음부만 겨우 가린 그녀의 알몸이 아이언의 몸 위에서 튕기고 뒤로 날려진다.
아주 먼 과거라서 약한 상태였지만, 십중심 검편(十中心 劍蝙)과 차원창세신(次元創世神) 코아의 격돌이었다.
그 여파는 너무나 커서 아직 하위 초월자인 그녀로서는 상위 존재의 기억이 담긴 시공간을 살짝 바라보는 아주 작은 구멍조차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녀를 돕는 아이언의 권능이 담긴 동전들이 방어한 덕에 큰 부상이나 고통은 없었지만, 충격은 컸다.
퉁-! 털썩-!
크롬 공주의 몸이 아이언 위에 누워있던 자세에서 그대로 머리부터 뒤로 튕겨서 난다.
아이언의 발밑에 팔다리를 크게 벌린 상태로 쓰러진 그녀는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다시 조합권능을 최대한 올린다.
“으으으으음! 안돼.
지금은 안돼!”
어떤 강자와 아이언이 싸우는 중요한 시국에서 집중하다가 갑자기 발생한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끊긴 셈이었다.
고위 정신체들의 싸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기에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는 데 실패했어.’
어떻게든 바로 접속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아이언과의 신체접촉 없이는 원격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대로 몸을 일으키면서 돌아온 시야로 아이언의 몸을 찾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당연히 하나였다.
‘아까 접촉부위를 다시 손으로 잡아야 해.
처음에는 부드러웠지만, 만질수록 단단해지는 부위였어.
그리고 작은 방울이 두 개가 달린….’
거기까지 생각한 크롬 공주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금 자신이 생각한 부위가 남성의 어디를 뜻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설마!’
일어선 그녀의 눈에 아이언의 성인에 지지 않을 정도로 커지고 하늘로 우뚝 서 있는 성기가 똑바로 보였다.
그것은 이제까지 접촉률을 높이려고 정성스럽게 주물러서 아직도 성이 가라앉지 않았다.
더구나 털이 나지 않은 고환들도 그녀의 손길로 풀려서 흔들린다.
처녀인 그녀로서는 아직도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아이언의 성기와 고환의 감촉이 생생하니 입을 딱 벌리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렇게 아이언의 성기를 쳐다보면서 놀라 몸이 굳어버린 크롬 공주였지만, 신체의 기억은 무심하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황금의 절대자는 우주신 출신의 대신(大神), 일원(一圓), 일선(一線), 대수(大手)를 동시에 설득하는 중이었다.
‘호오? 잘 돌아가는군.
원래 흐름에서는 시작(始作)을 외계(外界)로 돌려보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행하면서 한 명씩 집중적으로 설득했다.
이제는 한꺼번에 회담장으로 불렀는가?’
차원창세신(次元創世神) 코아는 검편(劍蝙)의 절대자와 한판 붙는 상황에서도 따로 준비해놓은 기계신을 활용한 시야로 황금의 절대자와 대신(大神)의 회담을 보고 있다.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았군.’
흑염의 절대자는 모든 종족의 초대를 거절하면서 신족에게만 임관하려 했다.
황금의 절대자가 가장 난관이라고 생각했던 대상이 너무나 손쉽게 넘어왔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신족에게 집착하고 이상할 정도로 직감이 좋은 루카 에일레스를 다른 십중심들은 잘 알기에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모인 탓이기도 했다.
‘예정보다 훨씬 빨라졌다.
순조롭군.’
빛의 투창을 하나 더 만들어서 감옥행성에 던져넣으면서 회담을 지켜본다.
우웅-! 투하하하하하-!
아무리 검편(劍蝙) 아스나스이지만, 감옥에 버티면서 이렇게 검세만 보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여유였다.
황금의 절대자 아리오리나 라마세스는 간곡한 표정과 진심 어린 어조로 다른 십중심(十中心)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초심을 잃고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가 된 지금의 창조주를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절대계가 한계에 도달하여 멸망할 것입니다.
더욱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부디 힘을 빌려주십시오.
십중심(十中心) 여러분.”
그 말에 가장 큰 자랑인 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대신(大神)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는 우주신 출신인 일원(一圓), 일선(一線), 대수(大手)의 대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온 대답은 이제까지와 같은 거절이었다.
“이제 그렇게 해야 할 취지와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그분을 뵈온지가 너무나 오래되었지요.
그러나, 위대한 황금의 절대자 아리오리나 라마세스.
저희만으로는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과거처럼 칼로 자르는 것 같은 단호한 거절이 아니었다.
창조주의 태만은 세계의 운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였기에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흑염의 절대자 루카 에일레스가 합류했다고 들었기는 했지만, 영원체이신 창조주님을 상대하기는 벅찹니다.
일시적으로 힘으로 억눌렀다고 해도 그분의 권능과 신력은 영원하니 언제인가는 저희가 지쳐서 패배합니다.
그리고, 창조주님만을 따르는 신족의 군세 역시 거의 무한(無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