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은하유성(銀河流星) 아이언의 힘과 권능에 눌려서 물러났던 세계의 항상성이 요동을 친다.
강대한 차원권능을 가진 아이언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유모들과의 관계는 어떻게든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파라라라라라-!
아이언의 몸에 올라탄 크롬 공주의 주변의 공간이 회전하면서 영상이 펼쳐진다.
파아아아아아-!
거기에는 검은 긴 드레스를 입고 보석으로 치장한 크롬 공주가 서 있었다.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에 있는 초호화 호텔의 최상층 방에서 멍한 눈빛으로 전깃불로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본다.
“…”
은은한 황금빛이 감도는 금발 머리에는 공주가 쓰는 작은 머리띠 모양의 관이 아닌 화려한 여왕의 관이 씌워져 있었다.
제국을 다스리는 여왕의 증거였지만, 크롬 공주의 눈동자는 공허하기만 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일백만 명이 넘게 생활하던 커다란 도시에 생활하는 인구가 이제 겨우 십만 명이구나.
행성에 살던 일억 가까운 인구 중 살아남은 수는 일천만 명 미만이야.”
구 할의 인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원래 연합소속이었던 이 행성은 영역을 확대해온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제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당연히 제국에 받아들여질 줄 알았는데 돌아온 것은 기계군단의 대학살이었다.’
초능력자들의 긴급보고를 받고 경악한 크롬 공주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결사항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기계 귀족의 변명과는 달리 이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항복했다.
그 증거로 이 도시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어.”
대학살에 관련된 기계 귀족들을 공개 처형했지만, 죽어간 구천만의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항복한 인간들은 모두 감옥에 갇혀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에 의해서 가까스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가족을 너무나 허무하게 잃은 그들이 절대로 제국의 국민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았다.
“기계 귀족들이 노동력으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노인이나 아이는 모두 처분하고, 쓸모 있다고 판단한 젊은이들만 남겨두고 있어.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제국 안에 살아가는 인간은 없고, 인공지능 기계와 기계 인간뿐이 될지 몰라.”
이런 현상은 제국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제국의 국민은 여왕의 소중한 재산이라고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지만 통제가 먹히지 않는다.
‘초능력자와 인간들과 팽팽한 세력싸움을 하다고 우세를 점한 기계 귀족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이 기회에 인간세력을 줄이려 하고 있어.’
지배층의 세력싸움 결과가 국민과 점령지의 대학살이라니 이렇게 끔찍한 일이 없었다.
제국의 변모와 앞으로 올 비극을 눈치를 챈 국민은 서서히 도주하고 있었다.
“제국의 영역은 넓어졌으나 국민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
이대로는 제국은 끝이야.”
이게 모두 프롬 여왕이 원인 모를 불치병에 걸려서 기계 인간으로 몸을 바꾸고 여제로 칭호를 바꾼 이후의 변화였다.
‘어마마마는 병든 육체를 기계 몸으로 바꾸셨다.
그 과정에서 제국을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반역을 시도했던 솔트 기계 재상의 음모를 예상하고 분쇄하셨지.
그런데 그 이후로 더욱 냉혹하게 변하셨다.
아버지의 배신도 치명적이었어.
더는 인간이나 기계 인간을 믿지 않으셔.’
프롬 여제는 인공지능 기계들을 이용하여 초능력자와 기계 인간, 인간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지배하면서 연합의 숨통을 끊는 중이었다.
‘관리들이 무리한 전쟁이라고 반대를 하려 해도 안 돼.’
범죄를 저지르고 여제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대공까지 공개 처형되는 상황이다.
그 이하라면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그래서, 제국은 어쩔 수 없이 연합과 최대한의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무리한 전쟁에 한계가 오고 있다.
제국의 모든 분야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해.’
여유가 없으면 잔인하고 냉정해진다.
이번에 항복한 행성에 대한 학살과 정리도 프롬 여제의 강압적인 지배와 성과요구에 대응하려던 기계 귀족의 발버둥과 같았다.
‘제국이 총력을 기울인 결과로 은하계의 칠 할을 얻었다.
이제 남은 적은 연합의 잔당과 고대문명의 계승자들, 일부의 무법자들이다.’
전체적인 전력은 압도적으로 제국이 상위였지만, 인적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높은 성과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학살과 피의 지배로 제국의 악명은 높아지고 있어.
그 결과로 이제는 고위 초능력자들과 관리들이 제국을 떠나고 있어.’
특히 제국 최강의 초능력자이자 여왕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했던 크림 백작의 이탈은 치명적이었다.
그를 따르던 명망 높던 고위 초능력자들까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충성은 살아있는 진짜 여왕에게만 바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완전한 기계 인간이 되어 잔인한 학살을 하는 어마마마를 더는 모실 수 없다는 뜻이지.
이제 제국에는 초능력 병기가 된 슈가 백작과 군대에서 육성하던 양산형 초능력자만이 남았다.’
초능력자 전력이 열세로 변했다.
‘중립이던 다른 고대문명의 후계자와 초능력자들도 제국의 폭거에 분노하여 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저항세력을 만들었다.’
그들이 전선에 집결하면서 제국의 진격은 멈춘다.
‘인간과 기계의 전투로 바꾸고 있다.
지금은 우세하나 점점 최악으로 변하겠지.’
대량학살을 일삼는 제국의 상황과 다가올 처참한 미래를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서 유리창에 손을 데고 기대었다.
그러자 유리창 자체가 빛이 나면서 도시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비춘다.
반짝! 반짝!
‘손에 가려진 도시의 불빛은 보이지 않으나 빛나고 있다.’
제국의 대학살에 굴복한 인간들의 마음도 저렇게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국은 영역을 점령했으나 가장 중요한 인망을 잃었어.
힘이 약해진 순간 반란은 반드시 일어난다.’
기계 인간이 된 프롬 여제도 점점 심각해지는 사태의 위험성을 알고서 크롬 공주를 여왕으로 임명하고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폭주하기 시작한 제국의 기계 인간들은 원래 제국에 속해있던 인간들마저 마치 농작물처럼 처리하고 기계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제국의 각지에서 기계 귀족에 의해 인간의 분류와 처분이 몰래 행해지고 있다.
이미 멈출 수 없어.’
이 행성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조차도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는 크롬 공주는 절망하고 있었다.
‘이제 제국은 은하계를 다스릴 자격을 잃었다.
아무런 명분이 없는 살인자는 지배자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우주함대와 기계 병기로 우세하여 징후가 나타나지 않지만, 에메랄드 공주가 저항세력의 편에 섰으니 그것도 끝이었다.
‘에메랄드에게 충분한 함대가 모이면 제국의 우주함대는 당해낼 수 없다.
이미 제독들까지 대부분 인공지능 기계로 교체된 상황이니 이겨낼 도리가 없겠지.
제국은 이제 반드시 몰락한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불꽃이 그녀에게는 제국의 묘지를 밝힌 촛불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소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요.
한참 심각한 고민 중이신데 실례하겠어요.
제가 워낙 급해서 더 기다릴 수가 없네요.”
“!?”
여기는 여왕의 침소였다.
들어오려면 수많은 경비장치와 경비병의 경호를 돌파를 해야 하는 사실을 아는 크롬 공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도 은하에서 최고 수준의 초능력자인데도 이렇게 부르기 전까지 어떤 기색도 느끼지 못했다니 충격이었다.
‘아무런 기색도 없었는데 어떻게 내 뒤에 서 있을 수 있지?’
내가 반응하지 못하다니?
나보다 상위의 초능력자인가?’
은하계는 한없이 넓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천천히 몸을 돌려서 쳐다보니 거기에는 회색의 로브를 둘러쓴 아이가 자신을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양손을 불끈 쥐면서 환호했다.
“역시 나의 적합자! 이제 영양실조도 끝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적의가 없음을 안 크롬 공주는 호위병들을 부르는 팔찌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발동된 초능력은 빌딩 안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초능력자와 기능이 정지된 기계 인간을 파악한 탓이기도 했다.
‘이미 모두 제압되었구나.’
다행히 죽은 초능력자나 완전히 정지한 기계 인간은 없었다.
그러나, 중간에 심하게 저항을 한 모양인지 몇몇 초능력자와 기계 인간들은 팔다리가 날아가 있었다.
‘대부분 객실이 반쯤 파괴가 되고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부러져있는데 모두 살아는 있다.
죽이는 것보다 저런 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크롬 공주는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악한 성향은 아니다.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아.’
감히 힘으로 제국 여왕의 침실에 무단 침입한 작은 불청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키가 작고, 말랐어.’
강력한 전사와 같은 초능력자를 예상했는데 솔직히 실망이었다.
‘로브로 몸이 가렸지만, 목소리와 드러난 얼굴을 보면 소년이다.
어린 나이를 고려해서 정밀하게 추정을 하지 않아도 앙상하고 마른 체구였다.
‘어린 소년답지 않게 귀엽지도 않아.
얼굴의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지 않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네.’
짧은 다리와 팔을 보니 못 먹고 자란 하층민의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나마 후한 평가였다.
솔직히 말하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다.
‘왜소(矮小).’
어디에도 자신을 뛰어넘은 강력한 초능력자의 모습이 아니지만, 긴장을 풀지 않는다.
눈동자에 일렁거리는 황금빛의 불길에서 품어지는 투기와 살의 때문이었다.
수많은 무장과 고위 초능력자들을 본 그녀로서도 처음 볼 정도로 눈빛만은 이상하게 강했다.
그녀의 조합의 초능력이 민감하게 왜소한 외모에서 참모습을 분석하고 이해한다.
‘세상 전부를 태울 분노?
무슨 아이가 이렇게 불만이 많고 원한이 크지?’
그리고 심장이 멈추는 느낌을 받는다.
“!!!”
거기에는 아주 작고 왜소한 소년은 없었다.
‘은하계를 태워버릴 기세로 거세게 타오르는 황금의 불길에 휩싸인 거인이 웅크리고 있다.’
거인은 엉망진창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인데 등 뒤에 수십 쌍의 빛의 날개가 휘날리고 있었다.
‘빛의 날개?
정체 모를 존재?
그럼 신(神)?’
크롬 공주는 신족에게 멸망한 고대문명의 후계자 중 하나인 프롬 여제의 딸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상대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엄청난 고위신?’
빛의 날개의 수로 신들의 신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한 쌍이나 두 쌍이면 하위신이라서 고위 초능력자들이 힘을 모으면 감당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초능력으로 본 거인의 뒤에는 수십 쌍의 빛의 날개가 일렁거린다.
‘고대문명을 멸망시킨 고위신이 열두 쌍의 빛의 날개를 가진 주신(主神)이라고 했어.
그런데 이건 두 배는 넘어 보여.
아직 고대문명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제국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갑자기 혼자 있는 방에 나타난 왜소한 소년의 정체가 고대문명을 멸망시킨 주신보다 더욱 상위신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크롬 공주였다.
유모 적합자를 드디어 찾은 아이언은 정체를 들킨 사실을 모르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일단 강철이라고 합니다.
보시는 대로 초능력자이지요.
크롬 공주님이 제게 꼭 필요하셔서 같이 가주어야 하겠는데요.”
아이언의 이름은 제국의 귀족명부에 아직 남아있기에 대신 만든 가명이었다.
그리고, 말은 좋게 하지만 거절하면 강제로 끌고 갈 기세였다
빌딩 주변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크롬 공주는 상황을 다시 파악한다.
‘이 주변은 모두 제압을 당했다.
나를 반드시 데려갈 생각이야.
내가 초능력으로 본 모습이 진짜 정체라면 저항한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아.
그런데 왜지?
제국의 실권과 통제권은 모두 어마마마에게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자신이 받은 여왕의 직위는 제국의 인간과 초능력자들을 달래기 위한 상징에 불과했다.
과거라면 아니겠지만, 기계 인간이 된 프롬 여제에게 후계자조차 쓸만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한다.
“당신이 누구신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저는 인질로서 큰 가치가 없습니다.
어마마마는 제국에 손해가 된다면 저를 포기할 것입니다.”
갑자기 제국의 공주가 존댓말을 하자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은 강철이지만 바로 용건을 말한다.
“제국과는 관계가 전혀 없어요.
제게는 크롬 공주님만이 필요해요.
“저만을 필요로 하신다고요?”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 된 크롬 공주에게 강철은 일단 돌려서 말한다.
처음 보는 여성에게 다짜고짜 유모가 되어달라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일단 해가 되는 일은 없어요.
협조만 잘해주시면 오히려 서로 이익이 되겠지요.”
강철의 느낌으로는 크롬 공주는 처녀였다.
그래서 더욱 유모가 되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느긋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기에 잘라서 말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저를 순순히 따라오시고 협조해주신다면 저도 정중하게 공주로 대우하지요.
그러나 거부하신다면 포로로 강제로 끌고 가서 협조를 받아낼 생각이에요.”
유모로서 비협조적인 삭월(朔月)의 시즈지 때문에 걸린 영양실조로 이런 미숙한 꼴이 되어서 짜증이 날 대로 난 강철의 음성에는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크롬 공주의 초능력에 황금 불길로 휩싸인 빛의 거신이 분노를 터트리면서 움직이려는 모습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정체 모를 존재들이 드디어 접촉해왔다.
게다가 내가 필요하다면 이건 오히려 기회야.
협조의 대가로 이 고위신의 힘을 어떻게든 빌린다.
멸망하려는 제국과 어마마마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어.’
왜 고위신이 자신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굉장히 다급해 보이니 최대한 협조를 하면 최소한 모친만은 구할 수 있어 보였다.
물론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육체로 부활이었다.
‘고위신은 인간의 육체를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했어.
그럼 어마마마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제국에서 최고 수준의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롬 여제의 소중한 육체였다.
기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뇌를 떼어냈지만, 나머지 육체는 소중하게 가사상태로 보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스으윽-!
강철은 크롬 공주의 대답을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망설임 없이 침상에 다가가 밑에서 여행용의 검은 가방을 꺼내었다.
입고 있던 드레스를 벗자 그 속에서 활동하기 편한 전투복 같은 복장이 드러난다.
“에?”
마치 누군가 납치하러 오기를 기다린듯 했다.
그렇게 탈주를 하려는 분위기가 되자 놀란 강철에게 그녀는 나직하게 말한다.
“준비 다 되었어요.
이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