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더욱 강화된 함대 지배의 초능력에 제압당한 우주 해적함의 인공지능들은 과거의 주인들을 버리라는 명령에도 기쁘게 따른다.
‘인간이 살 수는 있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개발되지 않는 무인 행성은 은하계에 찾아보면 많다.
이런 외곽 지역은 아무도 오지 않지.
언제 개발이 될지 아무도 모르니 완벽한 유배다.’
에메랄드 여왕은 잠시 망설이다가 추가적인 지시를 내린다.
“동면장치를 벗어나도 바로 깨지 않게 수면제를 투입하라.
자는 동안 모두 발가벗기고, 총알 하나만 넣은 자살용의 총 한 자루씩만 남겨준다.”
초능력자에게 과학 도구를 주었다가는 어떻게든 탈출수단을 만들어서 행성을 벗어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에메랄드 여왕은 의복조차 허락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해적함들에 그려진 해골 마크를 쳐다보면서 나직하게 선언했다.
“해적은 해적의 방식으로 처단한다.
은하제국에 반기를 든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무인 행성에 추방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에메랄드 여왕은 애써 우주해적단의 기함 ‘본 스피어’를 외면한다.
저기에 타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결정을 철회하고 싶지만, 은하제국의 여왕으로서는 그럴 수는 없었다.
‘과거 동료들이 건든 상대가 너무나 좋지 않아.’
하필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명예대공 아이언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
만약 제국의 귀족이나 총독을 약탈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감히 함대의 여왕인 자신에게 겨우 우주 해적 몇 명의 문제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대공인 아이언은 다르다.’
떠나오기 전에 우주 해적을 용서하고 싶으면 법을 고치라고 했던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자신이 내린 처벌이 가볍다고 느껴지면 어떻게 나올지는 바로 예상이 되었다.
‘누구나 합당하다는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 명예대공 아이언이 직접 나선다.
그러면, 또 살아있는 채로 지옥에 끌려가겠지.’
다시 지옥에 들어가느니 무인행성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사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더구나, 믿는 구석도 있었다.
‘모두 강력한 초능력자이니 맨몸으로 유배를 당해도 불편하지는 않다.
자살하지 않는 한 죽지도 않겠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은하제국이 안정되고 상황이 조용해지면 다시 찾기로 하자.’
이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내린 알몸 유배 결정이었다.
그래서, 우주 해적함들이 장거리 공간이동을 해서 주변의 쓸만한 행성으로 사라지는 모습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보물을 회수하고 분풀이도 한 에메랄드 여왕의 가슴 속에 다시 애틋한 사랑이 감정이 떠올랐다.
‘해적이 아닌 여왕으로서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군요.
잠시 이별이에요.’
어느 정도 과거의 인연을 정리한 에메랄드 여왕의 함대가 본성을 향해 초장거리 공간이동을 시작한다.
그때 본성에서는 아이언과 프롬 여제, 크롬 공주가 모여서 회의 중이었다.
그런데 아이언의 노한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은하제국에 반역하면 본인만 끝장을 내야 하느냐?”
아이언의 목소리가 뒤흔드는 회의실의 중앙에 위치하는 에메랄드 여왕의 왕좌는 비어있다.
왕좌 좌측에는 오래간만에 모습을 보인 크롬 공주가 앉아 있고, 우측에 선대 여왕인 프롬여제가 있다.
그리고, 크롬 여제의 허벅지 위에는 아이언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네 명이 앉은 왕좌 앞에 엎드린 은하제국의 실무자들은 모두 식은땀만 흘린다.
“반역자를 따르는 군대와 관리까지 처단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행성에 속한 모든 인간에게 책임을 묻어야 하는가?”
앞에 엎드린 수백 명의 관리는 군인이 아니라 예산을 담당하는 실무자였다.
허공에는 각 행성의 총독들을 비추는 수백 개의 화면이 떠 있었다.
그들에게 명예대공으로 자신을 소개한 아이언은 무지막지한 존재감으로 그들을 억누르면서 잘못을 추궁하는 중이었다.
소년의 목소리지만, 근엄하게 묻는다.
“은하제국의 법은 인권을 중시하여 연좌제를 금지했다.
연합과 제국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중시하여 총독에도 임명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가 이것인가?
왜 세금을 내지 않는가?”
프롬 여제에게 부족한 예산문제로 불려온 관리들은 모든 총독이 쳐다보고 있으니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온 대답은 에메랄드 여왕에게 했던 대답과 같았다.
“총독들이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제국의 본성이 아무리 부유해도 은하계 전체를 지탱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명예대공 아이언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총독들을 지금처럼 몰아세운다.
관리들은 이 인간 같지 않은 절세의 미소년의 외모와 기세에 감탄했다.
‘역시 여왕님들이 명예대공으로 임명할 정도로 엄청난 초능력자라고 하더니 과연 대단하구나.’
어찌나 강력한 초능력자인지 화면 너머의 총독들이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어린애의 말이라고 대들려고 했던 몇몇 총독들은 노려보자 기절까지 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 초능력자들은 영상통화 중인 상대에게 능력을 발동할 수 있다니 진짜였어.’
‘초능력자들이 일제히 사라진 이후에 처음 보는 강력한 초능력이다.’
‘이런 분이 대공이라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긴급 화상회의를 소집해서 회의실에는 행성 총독들을 나타내는 일천 개가 넘는 많은 화면이 띄워졌다.
하지만, 삼 분의 일 정도는 총독이 끝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군.’
‘세금만 들어오면 문제는 끝이다.’
‘절반 정도만 성공해도 다행이지만 말이야.’
원래 제국의 행성은 세금을 잘 냈다.
그러나, 연합소속이었던 행성과 중립지역의 행성은 이런저런 이유로 납부 시기를 늦추고 있었다.
그들의 속셈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은하제국의 완성을 늦추거나 다시 분열시킨다.’
안정된 치안과 여왕의 지배는 국민에게 좋지만, 야망이 있는 권력자들에게는 지극히 불편하다.
모두가 여왕의 아래에 위치하니 이제까지 누렸던 초법적인 권력과 혜택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들에게는 차라리 제국과 연합이 치열한 전쟁을 하는 환란의 시기가 더 좋았다.
‘은하제국을 최대한 방해를 할 생각이군.
내가 용납할 것 같으냐?’
은하제국을 통해서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려는 계획을 가진 아이언의 기세는 흉흉하게 변해만 간다.
그걸 본 밤에는 악당동맹이며 낮에는 은하제국의 관리인 인원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명예대공 아이언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총독들이 아이언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총독들이 통신망 불량을 이유로 프롬 여제님의 연락을 안 받는다고?’
‘세금을 낼 돈이 없어?
새로운 우주함대를 만들 예산은 어디서 났어?’
여왕이 소환했는데 총독이 아예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있으니 이건 명백한 반역이었다.
더구나 행성들이 자위를 위해서란 명분으로 대량의 우주함대를 자체 건조하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너무나 빨랐던 통일만큼 행성의 피해가 작았기에 저항세력도 빠르게 키워지는 셈이었다.
‘그런 주제에 치안이 불안해서 보낼 수가 없다고?’
‘아예 세금면제를 해달라고 요청한 행성도 있다는군.’
‘미쳤다! 미쳤어!’
에메랄드 여왕을 가장 골치 아프게 했던 총독들의 세금미납 사태를 프롬 여제가 발견한 것이 이 일의 시초였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본성의 지원만 받아먹은 대부분 미납행성이 연합과 중립지역이었느니 에메랄드 여왕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총독들이 여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정하거나 버티면 들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모두가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너무 쉽게 은하제국을 만든 부작용이었다.
은하제국의 주인인 여왕의 무서움을 확실히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프롬 여제는 일단 은하계가 통일된 이상 학살을 아주 좋지 않았기에 달래기 위해서 각 총독을 호출한다.
하지만, 미납행성의 절반 이상이 통신 불량을 이유로 잠적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이 도착한 것이다.
분노한 크롬 여제를 본 아이언은 이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개입을 원했다.
“총독이 여왕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이건 하극상입니다.
반역이지요.
그럼 숙청을 하시지요.”
연합과 전쟁을 하던 제국 시절도 아닌데 치안 불안과 자치를 이유로 세금의 면제를 주장하는 총독들에게 분노한 크롬 여제였다.
그래서 대량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한 신족인 아이언의 개입을 허락한다.
오히려 명예롭지 않은 숙청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고맙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명예대공.”
하급자가 상급자가 무시했다고 처단할 수 없으니 반역을 시도하고 있다는 명분을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해당 예산 관료들을 호출하여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연락을 받지 않든 말든 각 행성 총독들의 비상연락망을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음성이나 영상은 모두 듣고 있을 것인데 아직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아이언이 보기에 은하제국의 초창기라서 아직 다른 꿈을 꾸는 인원이 이렇게 많다는 뜻이었다.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은하제국이 부여하는 국민의 권리를 누리면서 의무인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으면 은하제국의 국민이라 할 수 없다.
총독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반역으로 처단한다.”
“!”
“!”
이게 이번 회의의 결정타였다.
화면 너머 총독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고, 주변 참모들의 웅성거림이 전해져온다.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총독들에게도 분명 이쪽의 영상과 음성은 전해졌다.’
아이언은 빈 화면을 보면서 최후의 경고를 날린다.
“나는 자비로우니 다시 은하제국에 충성하는 신하이자 국민으로서 살 기회를 주마.
밀린 세금을 최대한 빨리 전액 납부를 해라.
납부기한은 에메랄드 여왕이 우주해적단을 처리하고 복귀하는 날까지다.”
그 이후로 이제까지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던 프롬 여제의 표정에서 의혹이 약간 드러난다.
‘왜 정확한 기한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이렇게 모호하게 설정을 했지?’
크롬 여제는 에메랄드 여왕이 우주 해적을 모두 사로잡고, 막대한 보물까지 획득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에메랄드가 본성 함대를 몰고서 곧 복귀한다는 사실을 총독들은 아직 모른다.
우주해적 토벌은 대부분 몇 개월이 넘게 걸리지.
이러면 바로 세금을 내는 총독들은 거의 없다.’
크롬 여제가 의문을 가졌지만, 그녀의 품속에 안겨있는 아이언은 아직도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총독들에게 최후의 경고를 날렸다.
“사라진 초능력자와 개조 인간들이 살아있는지 궁금하다고?
이번에 똑똑히 보여주도록 하지.”
드디어 투자만 해온 영웅동맹과 용자동맹을 부려먹을 시기가 왔으니 기쁘기까지 한 아이언의 얼굴에는 미소가 환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웃음을 본 악당동맹 소속의 관리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영웅동맹과 용자동맹을 총독 숙청에 쓰실 생각이다.’
‘그럼 악당동맹도 나설 기회가 올지 모른다.’
악당동맹은 지옥의 악령들을 제압하면서 마도(魔道)를 익혔다.
여기에 아이언의 명령으로 동맹과 낙제생들에게 시비를 걸면서 실전경험까지 해서 막대한 힘을 손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지옥이 아닌 곳에서 사용할 기회가 온 것이다.
‘항상 동맹에게 당하기만 했지만, 은하제국의 총독들이 상대라면 식은 죽 먹기이지.’
악당동맹은 초월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언에게 불사불멸(不死不滅)의 권능과 마도를 적용을 받은 이후로 원래 가지고 있던 욕망이 누구보다 강해진 상태였다.
그들의 목적은 낮에는 더 많은 부귀영화였다.
‘반역토벌을 하다가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어.’
그리고, 밤에 도착한 지옥에서는 초월자나 마족이 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뀐다.
‘모처럼 얻은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기 위해서는 정신체로 진화가 가장 급선무다.’
‘이번 일을 잘하면 우리도 초월자가 될 수도 있다.’
‘하다못해 마족이라도 되겠지.’
시킨 일을 잘 수행하면 엄청난 보상을 주는 아이언의 성향을 파악 한지는 오래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신계에서 악당동맹의 평가가 그야말로 최하의 바닥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이 없이 악령들을 쓴다고 동맹의 낙제생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은 지긋지긋해.’
‘우리도 은하제국에서는 모두 높은 신분이란 말이야!’
아이언이 악당동맹을 버리지 않는 한 상당히 오래 있을 신계였다.
그런데 최하층에 속해서 무시를 당하니 계급 상승을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할 각오를 한 지는 오래였다.
‘우리가 낙제생보다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