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자(勇者)와 영웅(英雄) -->
천국과 지옥에 영혼이 어떻게 오고 나가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반 용자라면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
신계의 지원을 받는 정식 조종자라면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전해지는 법칙은 모두 알고 있었다.
‘천국에 있는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지옥에 갔던 영혼이 천국에 오는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반복이 신의 가호가 없는 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걸 모르다니 정식 용자가 아니구나.’
그럼 낙제생밖에 남지 않는다.
‘그럼 기체가 없는 낙제생들까지 감히 철의 요새에서 날뛰고 있는가?
같은 개조 인간이 부랑아와 난민처럼 떠돌기에 불쌍해서 받아주었더니 결국 이 꼴이구나.’
점점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사자왕 가이였다.
‘게다가 마음대로 뜯어서 챙긴다고?
이것들이 감히!’
옆에서 해방이라고 기뻐하면서 대답하던 일반 용자는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재빨리 도망을 쳤다.
일단 사태수습을 위해서 냉정해지려는 사자왕 가이는 청각을 강화해서 낙제생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었다.
역시 지극히 한심한 대화가 들려온다.
“학교에서 낙제해서 쫓겨났는데 지옥에서도 낙제생이야!”
“퉤퉤퉤! 하여간 잘난 척하는 놈들에게 배우면 재수가 없어.”
“그래도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제는 은하제국의 군대도 무섭지 않다.”
역시 지성체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해진 자신들의 힘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쓰려고 생각하는 방법이 문제였다.
“세계는 불공평해.”
“있는 자에게만 자비롭고 없는 자에게는 잔혹해.”
“은하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의 힘으로 바꾸어야 해.”
겨우 용자동맹의 낙제생 주제에 최고위 창조신인 아이언이 가호하는 은하제국을 힘으로 바꾸겠다니 기가 찬 소리였다.
‘아마 벌레처럼 밟아 버릴 것이다.
무지(無智)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자신과 관계가 없다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소리였다.
여기에 우려대로 은행부터 몰래 털어서 빚을 갚고 화끈하게 놀아보자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본성의 중앙은행에 금괴와 희귀금속이 수천 톤이 쌓여있다지?”
“흐흐흐! 그것부터 구경을 해보자고.”
이제 사자왕 가이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품어져 나온다.
‘저 자식들이 사고를 치면 뒷감당을 내가 해야 해.’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라고 책임을 못 지겠다고 버티면 아이언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죽지도 못하고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두들겨 맞겠지.’
인사를 안 했다고 투기로 얻어 맞고 행성을 한 바퀴 돌고 온 직후였다.
무례하다고 가슴에 구멍을 냈으니 명령을 거부하면 진짜로 조각나서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수가 있었다.
‘감히! 누구를 고철로 만들어 소멸시키려고?’
사자왕 가이의 기계 몸에서 살기와 투기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이언의 황금빛 투기의 불길과 아주 닮아있었다.
화를 엄청 내면서도 머릿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다시 정리한다.
‘지옥에서 용자동맹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권한을 아이언에게 위임을 받았다.
낙제생들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신 용자왕들이 보증을 서야 한다.
내가 이상이 없다고 보증한 용자나 낙제생들이 사고를 치면 내가 책임지고 수습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
아이언이 무능하거나 예의가 없는 부하에게 엄청나게 까다롭다는 사실은 가슴에 뻥 뚫렸다가 아물고 있는 구멍이 증명했다.
‘인사를 안 했다고 이렇게 했다.
그런데, 정기 확보를 위해 가호하고 있는 은하제국을 용자들이 망가트리면 반드시 엄청난 처벌이 떨어진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징계나 전투 중 싸우다 소멸이 되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부하를 휴가 보냈다가 사고를 쳐서 연대책임으로 끝장이 나면 억울해서 눈이 감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확장된 청각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일단 지하로 파고 들어가서 은행 금고를 통째로 이동시켜 보자고.”
“안되면 상층부 은행구조물에 집중포격을 날리고 금고만 가지고 튄다.”
“우린 할 수 있어!’
드디어 구체적인 범죄계획이 들려오자 결국 울화가 분노로 바뀐다.
빠직!
‘신계로부터 개조되고, 미약하나마 권능을 추가한 기체를 받은 용자들을 은하제국이 감당하기는 힘겹다.’
이미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철의 요새에서 은하제국의 모습을 본 사자왕 가이의 얼굴에서 혈관이 솟아오른다.
‘이걸 다시 지으려면 얼마나 주변에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고 다녀야 하지?’
또 검의 주신이 동냥하듯이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감정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사고를 친 용자들 때문에 아이언에게 또 맞아서 행성을 위성처럼 도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집합! 이 쓰레기들아! 당장 집합!”
그와 동시에 공간이 일자로 가르고 검은색 장갑에 가슴에 사자가 포효하는 장식이 달린 철의 거신이 등장한다.
구구구구구-!
붉게 빛나는 사자의 갈기와 같은 머리를 휘날리고, 등에 붙은 검은색 망토에는 피처럼 붉은 글씨로 용자동맹 사자왕 가이라고 적혀있었다.
기신일체(機神一體)의 경지로 인하여 모습이 화려하게 변한 전용 용자왕까지 소환한 사자왕 가이의 포효가 철의 요새를 뒤흔들었다.
“당장 헛소리를 그만하고, 전원 연병장에 집합하지 않으면 모두 밟아버린다!”
진심이 담긴 살의와 투기가 용자들의 신령과 낙제생들의 영혼을 강타했다.
그리고, 정문에 우뚝 서서 검붉은 투기의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용자왕을 쳐다본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최강의 용자왕인 거대 사자왕이 검의 주신과 결투를 할 때도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살의를 마구 품어내고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영웅동맹이 또 쳐들어왔나?’
‘임무를 받아서 전쟁준비 중이라고 하잖아?’
‘대상이 바로 우리들이다!’
거대 용자왕과 동화하여 반쯤 무너진 철의 요새와 바짝 굳어있는 일만 명의 용자와 구만 명의 낙제생들을 번갈아 바라본 사자왕 가이의 분노가 폭발한다.
‘으으윽! 철의 요새가 방어기능을 상실했다.’
수리를 위해서는 신계에 예산을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또 거액이 들어가니 아무리 보아도 또 아이언에게 불려가서 치도곤을 당할 것 같았다.
‘나 자신은 당당한데 불량하기 짝이 없는 부하들 덕에 언제나 이런 꼴이다.
아이언에게 용자동맹 때문에 항상 징계를 당하는데 지은 죄가 있으니 한마디도 못 했다.’
지옥에서 해방되는 휴가 권한을 받은 지금도 용자나 낙제생들이 모범적이었다면 정말 기뻐하면서 축제를 벌일 일이다.
‘영웅동맹의 낙제생들처럼 벌써 출발시켰겠지.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냐?
철의 요새는 안에서 무너지고, 용자와 낙제생들은 은하제국에 나가면 은행을 털 계획만 새우고 있다니?
이것들을 그냥 두면 안 돼.’
거대 용자왕은 융합을 완료한 사자왕 가이의 살의와 투기에 반응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컹! 철컹!
가슴부위의 사자의 입이 더욱 크게 벌려진다.
그리고, 투기와 신력이 뭉쳐서 거대한 핏빛의 태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투기를 응축시켜서 신력포처럼 쏘아대는 간단한 기술이다.
“내가 애써 만든 철의 요새를 이 꼴로 만들다니?
용자동맹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한이 있어도 용서하지 않겠다.”
최고위 창조신인 아이언의 기계 분신인 영웅황제의 복제인 거대 용자왕이 전력으로 쏘면 철의 요새를 증발시키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거듭되는 압박과 어떻게 할 수 없는 곤란에 마침내 용병으로서 성질을 드러낸 사자왕 가이는 사형선고를 내린다.
“너희는 용자가 아니다.
잘해줄 필요가 없는 쓰레기들이다.
내 고민과 함께 사라져라!”
용자왕의 가슴부위의 사자의 머리가 물고 있던 피의 태양이 폭발한다.
파하하하하하하하-!
거대 용자왕의 주변을 휘감은 핏빛의 폭발은 순식간에 철의 요새를 집어삼킬 듯이 커져만 갔다.
용자들의 일반기체나 낙제생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파괴력임을 짐작한 모두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헉! 진짜 쐈다.”
“우왁! 도망쳐!”
항상 이해하지도 못할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를 주장하면서 올바른 소리만 하던 사자왕 가이였다.
‘자신을 길러준 고아원을 지원하기 위해서 개조 인간이 되어서 용병생활을 했다.’
‘한정 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보고, 마음대로 행동했었지.’
‘이제까지 잔소리만 하고 제재는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폭발했다.’
철의 요새의 부품을 조금 챙겼다고 자신들을 전부 죽이려 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충격이 컸다.
‘착한 사람이 화를 내면 큰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니 진짜였어!’
모두 낭패의 표정이 되어서 핏빛의 폭발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고 몸이 굳는다.
쿠우웅! 쿠우웅!
사자왕 가이의 화려한 용자왕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도 변화도 없는 검은 색의 갑주를 입은 거인과 같은 거대 용자왕 두 대가 반대쪽에서 달려온다.
그리고, 자신들을 노리듯이 빠르게 덮쳐오자 모두 그 자리에서 엎드리기 시작한다.
“우왁! 용자왕님들!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용자동맹은 지옥에서 벌어진 영웅동맹과의 전투로 용자왕들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도망을 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앞에는 분노로 철의 요새와 함께 자신들을 투기포로 날리려는 사자왕 가이가 있고, 뒤에는 용자왕 두 대가 퇴로를 막고 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빌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이제까지처럼 용서해줄 거야.’
용자왕들의 성향이 용병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착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십만 명이 넘는 인원이 챙기고 있는 부품과 자재를 모두 내려놓고 엎드려 비는 동작을 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철의 요새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 광경을 아주 멀리서 아이언의 장난감 함대를 이용해서 지하에서 지켜보고 있던 총제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놈들이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왜 자기 요새를 부수고 난리야?”
일백대만 잡으면 지옥에서 해방인 총제독이다.
그래서 일반기체를 함대로 부술 기회만 노리는 중이었고, 현재 달성률은 정확히 절반이었다.
‘지하에 파놓은 함정으로 일반 용자들을 이용해서 집중포격으로 오십 대 정도를 부수었다.
그랬더니 이제 일반기체는 쫓아오지도 않아.
용자왕들이 직접 나서지.’
일반 용자들이 대규모 피해를 받은 이후로는 용자왕들이 직접 추적을 해왔다.
‘용자왕에게는 함대의 어떤 공격으로도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래서 바로 도망을 갔지.’
오십 대 완파라는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본 용자왕들은 지하에 여기저기 파놓은 터널을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그런데 갑자기 당황해하면서 돌아가기에 이상해서 이렇게 상황을 보고 있는 도중이었다.
‘갑자기 철의 요새를 해체하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반란인가?
그럴 리가 없지.’
가장 가망성이 큰 예상이었으나 바로 고개를 저었다.
겨우 세 대만 있는 용자왕들의 위력이 십만 명의 용자와 낙제생보다 아득하게 위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힘의 차이가 너무 커.
반란을 벌이면 바로 끝장이니 그럴 리는 없다.
그런데 아주 무방비로군.
여기서 크게 한 방 날리고 튈까?
철의 요새가 기능을 잃었으니 잘하면 몇 대는 더 잡을 수 있을지 몰라.’
요새가 방어력이 잃은 것으로 보였으니 초장거리 빔 포를 막을 방어막을 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검붉은 파괴의 태양이 되어서 살기를 내뿜는 거대 사자왕 가이를 보는 순간 깨끗이 포기한다.
‘윽! 사자왕 가이가 돌아왔군.
게다가 어지간히 열을 받은 모양이야.
지금 건들면 나를 잡겠다고 지옥의 지하를 통째로 뒤집어엎겠어.’
다른 용자왕은 그래도 어느 정도 대처가 되는데 저 사자왕 가이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힘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의 격차가 너무 커서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조인간 용병이라고 들었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해진 상태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열세 쌍으로 빛나는 날개만 보아도 경외감만 드는 검의 주신의 영웅왕과 맞상대를 하는 사자왕 가이를 본 이후로는 절대 노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다시 지하 깊숙이 숨어드는 총제독이었다.
밑에서는 담당 마족과 천족이 은신의 권능을 발휘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가자!
이번에는 글렀다.”
여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총제독 덕분에 지옥에서 공동운명체가 된 담당 천족과 마족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쏟아낸다.
“파악이 늦어!
빨리 가자.”
“사자왕의 신격은 이미 주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더 멀리 떨어져야 한다.
주신의 탐지영역인 일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야 안심할 수 있다.”
“일백 킬로미터라고?
젠장! 뭐가 그렇게 넓어?”
“권능이나 신력을 사용하면 들키니 일단 달려.”
“마라톤이냐?
아무리 내가 젊어졌다고 너무하잖아!”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지하의 거대 터널을 달리는 세 명이었다.
이들은 지옥의 지하를 자신들의 기지와 은거지로 개조한 상태에서 부지런히 일반 용자들을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 뒤로 사자왕 가이의 핏빛 투기 태양으로 먼지가 될 것 같은 철의 요새가 아주 위태롭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