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自由)와 통제(統制) -->
총제독의 출전을 허락한 아이언은 영웅동맹이 올린 전투보고서를 읽어보고 있었다.
대부분 용자동맹이 전투 중에 벌인 과정에 대한 보고서였다.
공통으로 우주군과 지상군은 궤멸 직전이고, 각지의 은행이 털린다는 내용이었다.
“흠! 행성 정부가 적이니 은행도 적의 군수품에 속한다.
은행의 재물은 당연히 승자의 것이다.
전리품 허용을 이렇게 사용하나?
논리적으로 맞지만, 정의의 용사가 재물에 욕심을 내면 쓰나?
역시 급조한 용자들이라서 문제가 많아.”
“….”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자마자 순식간에 은행을 털어버렸으니 말리지 못한 탓에 다시 회의에 호출된 용자왕들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우주함대가 무력화되자마자 낙제생들이 은행을 털었다.
이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지?’
‘그래도 겁은 나는지 입금은 한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공동계좌의 액수를 보아도 사자왕 가이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걸 보고 다른 신계의 간부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만 해도 심장인 갓 스톤이 과열되어서 터질 것만 같다.’
항상 부하 때문에 아이언에 징계를 당해왔는데 이번에 사태가 너무 커서 어느 정도로 당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를 주장하는 용자동맹의 이름은 확실히 알렸군.
그렇다고 행성의 지배층을 노리면 쓰나?
정부의 운영은 힘만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성 지배는 용자왕들의 의견이냐?”
지극히 평범한 어조였는데 듣고 있는 용자왕들은 소름이 오싹 올라왔다.
‘아이언은 통일된 은하제국을 통해서 급속한 인구증가를 바란다.’
‘용자동맹이 지배층이 된다면 은하는 다시 분열된다.’
‘통일을 바라는 아이언님의 지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다.’
이번 일에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 감히 고개를 들고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뭐 좋아.
할 수 있으면 해봐라.”
뜻밖의 허락에 용자왕들이 경악해서 얼굴을 들었다.
옆의 크롬 공주도 놀라서 아이언을 쳐다보았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만을 보일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된 사자왕 가이는 다른 용자왕들에게 의지를 보내서 의견을 묻는다.
‘이게 무슨 말인 것 같나?
정말 용자동맹이 행성의 총독이 되어도 좋다는 뜻인가?’
‘잘 모르지만, 상당히 느낌이 안 좋아.’
‘당장 철수시켜야 해.’
신계로 편입을 은근히 바라던 다른 용자왕들에게 아이언의 지침과 정면충돌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아직 영웅동맹의 주력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확실하게 제압을 못 하고 있다는 점도 상당히 큰 문제였다.
‘상대는 행성 정부의 군대와 영웅동맹의 낙제생들이다.
일반기체가 없는데도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영웅동맹의 일반 영웅들이 투입되면 반드시 패배한다.’
용자동맹이 지옥의 철의 요새에서 영웅동맹을 이겨왔지만, 어디까지나 익숙한 지형과 가득한 마력 덕분이었다.
신계에 소속되어 신력을 주력으로 삼는 영웅동맹이 마력만이 가득 찬 지옥에서 제 위력을 내기 힘들다.
그러나, 은하제국에서는 위력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영웅동맹의 일반 영웅은 초월자다.
권능이나 능력에 대한 이해는 고위 초능력자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하다.’
‘지옥의 마력과 철의 요새의 보호가 없이는 힘들 것이다.’
다른 용자왕들이 모두 철수를 주장하지만, 사자왕 가이는 생각이 달랐다.
지옥에서도 일반 영웅들은 일반기체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대부분 능력을 사용해서 싸워왔다.
‘일반기체의 위력이 고위 초능력자보다 상당히 위에 있다.
영웅동맹의 일반 영웅은 일반기체를 우리에게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기신일체(機神一體)의 경지가 아니라면 기계 몸의 사용이 능숙한 개조 인간에게 탈취당할 위험이 항상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승산이 있다.
이대로 행성 제압을 끝내면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를 더욱 빠르게 전파할 수 있다.’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를 알게 된 은하제국의 수많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신앙과 같은 힘은 너무나 컸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검의 주신을 확실히 능가할 정도로 급격하게 강해짐을 깨달은 사자왕 가이의 망설임을 눈치챈 아이언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후후후후후! 어리석구나.
신앙으로 얻은 힘은 신기루와 같다.
지지를 잃으면 사라진다.’
무수한 신들이 지성체들의 신앙에 의지해서 경지를 올렸다가 배신당하는 바람에 허신이 되어버린 사실을 잘 아는 아이언이었다.
그런데 휘하의 투신이 지성체의 신앙에 기대어서 강해지려는 시도를 용납할 리가 없었다.
‘과거에 편하게 신앙으로 승급하려다가 망한 신들이 참 많지.
정신 좀 차리게 해주어야겠군.’
이미 총제독이라는 수를 써놓았기에 느긋하게 말한다.
“세금은 반드시 은하제국에 내도록 해라.
과거 총독과 지배층보다 못하면 용서 없다.”
“….”
“….”
“….”
전혀 협박이나 진심 같지 않은 장난스러운 말투에 혼란만이 더해지는 용자왕들이었다.
옆의 크롬 공주조차 의문을 참지 못하고, 의지를 보낸다.
‘무슨 생각이세요?’
많은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크롬 공주의 질문에 아주 기쁘게 대답해준다.
‘함부로 날뛰면 당한다.
그런 현실의 좌절을 알려주려고요.’
‘예?’
크롬 공주의 의혹이 더욱 짙어질 무렵 용자동맹은 고위 초능력자와 행성 군대를 마구 몰아붙이던 화면에 큰 변화가 생긴다.
투투투투투하하하하-!
화면 전체를 가리는 수많은 빛줄기가 옆 방향에서 쏘아져서 일반기체와 개조 인간을 덮쳤다.
처음으로 용자동맹의 비명이 화면을 울린다.
“크아아아아!”
“우아아아!”
그것은 총제독의 우주함대가 쏘는 집중포화였다.
행성 표면에 직각으로 포격을 쏘면 위험하니 스치듯이 쏴버린 것이다.
더구나 횡으로 쏘아져서 위력 범위도 엄청났기에 개조 인간의 속도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기습적인 집중포격에 개조인간 대부분이 방어막을 치지도 못하고, 일순간에 소멸이 된다.
어디서 언제 쏘았는지는 몰랐으나, 오랜 전장의 감으로 반사적으로 막아낸 일반기체도 상태가 안 좋았다.
방어막을 뛰어넘는 빔 포의 집중포격에 피격되어서 전투력 대부분을 잃을 정도로 대파가 되었다.
“끄으으으ㅡ! 설마 여기까지 쫓아왔느냐?
그냥은 안 당한다.”
당장 부서질 것만 같은 기체를 가까스로 유지하면서 적을 찾는다.
‘피할 틈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포와 같은 집중포격과 이 엄청난 위력은 지옥의 정체불명의 함대 외에는 없다.’
손상이 커서 도망칠 수도 없기에 마탄을 장착한 소총을 꺼내서 주변을 조준한다.
“어디냐?”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쏜 포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빔 포의 궤도는 직선이었기에 방향을 따라서 추적했지만, 거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결과만이 나온다.
“또 안 보여!
하지만, 우주함대는 분명 존재한다.
인식하고 조준하기에는 위치가 너무 먼가?
으득! 또 이 고약한 초장거리 사격이군.”
행성 정부의 미숙한 우주함대처럼 가까운 위성궤도가 아닌 거의 빔 포의 사거리 밖에서 쏜 초장거리 포격이었다.
‘이 거리는 아무리 신계의 개조를 받았어도 일반기체 인식장치의 범위 밖이다.’
용자왕들만이 직격을 버티고 추적이 가능했다.
그리고, 또 쏟아지는 빔 포 공격에 완전히 끝이 났음을 깨달았다.
“으으으으윽! 조금만 더 하면 행성의 지배층이 될 수 있었는데 원통하다!”
상당히 감정이 실린 음성을 지르면서 용자동맹의 일반기체는 쏟아지는 빔 포 속에서 허무하게 무너진다.
투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
단 두 번의 집중포격으로 가볍게 용자동맹의 일반기체 하나를 잡은 총제독은 신의 함대를 가방에 다시 불러들이면서 중얼거렸다.
“행성 전투에서 지상군에 대한 가장 유효한 사격은 우주 공간에서 직각이 아닌 평면사격이다.
최대한 행성의 곡선에 맞추어 쏘면 지상의 대군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다.
이건 우주군 전함운용에 제일 처음에 나오는 포격의 기초다.”
총제독은 용자동맹을 노리기 위해서 전장을 확인했는데 여기저기 빔 포에 구멍이 뚫린 빌딩들을 보고서 어이가 없었다.
각도도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제독이 되기까지 뭘 배웠기에 포격을 제대로 못 해서 도시를 저 꼴로 만든 거야?
제국 우주군이 저랬으면 모두 경위서에 감봉, 아니 강등이다.”
행성 정부의 우주군도 이제 같은 은하제국이니 참으로 걱정되는 제독이었다.
후배들의 무능함을 영 못마땅해하는 총제독의 옆에 있던 천족과 마족은 감탄하고 있었다.
‘거의 사거리 밖에서 쏘았는데도 도시의 건물은 하나도 안 건들고 거리에 있는 개조 인간만 처리했다.’
‘인형 병기를 집중포격을 해서 파괴했어도 주변 피해는 경미 해.’
총제독이 공간의 문을 통해 도착하면서 보인 함대를 전개하는 속도나 적을 찾아서 조준하는 과정이 눈부실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신계에서 개조된 동맹의 일반기체가 주변의 이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포진을 완료하고 빔 포로 쏘아서 잡아버린 것이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런 엄청난 화력을 가졌지만, 본모습은 가방 안의 장난감 함대라서 공간이동이 너무나 손쉽고 은밀하다는 점이다.
“자! 앞으로 사십구대!
다음 가자.”
아주 작게 열린 공간의 문으로 사라지는 총제독을 동맹의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 이후로 용자왕들은 연속적으로 집중포격에 소멸하는 일반기체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투하하하-! 푸하하하-!
행성의 표면을 스치는 포격은 지독하게 정확하다.
도시를 방패로 삼으려 해도 어마어마한 집중도로 일격에 소멸시키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행성 제압 직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일반기체를 바라본 용자왕들은 위기임을 깨달았다.
힘으로 최고위 창조신이 된 아이언이 무능이나 약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당연하였다.
“가이! 당장 철수해야 해!
이대로는 모두 각개격파를 당한다.”
“저 함대는 우리가 아니면 정면에서 막을 수 없다.철의 요새가 없으면 일반기체는 버틸 수 없어.”
사자왕 가이도 물러날 때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힘을 폭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국인데도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지는 동맹을 보니 허탈할 뿐이었다.
‘직접 내가 나서서 잡을까?’
저 정체불명 우주함대의 놀라운 기동성과 원거리 포격능력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군.
추격 정도가 한계야.
아무리 용자왕이 강해도 어디까지나 격투전과 같은 근접전에 중점이 되어있다.
저런 이상할 정도로 긴 사정거리와 화력을 가진 함대와는 너무 상성이 좋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모를 아이언의 미소를 보다가 열대째의 일반기체가 소멸하는 순간 명령을 내린다.
“전원 철수하라.”
사자왕 가이의 명령은 모든 용자동맹에게 바로 전해진다.이미 정체불명의 함대가 각 행성에 흩어진 용자동맹을 사냥하고 있음을 알기에 모두 군말없이 따르려고 했다.
정체불명 함대는 철의 요새나 용자왕 없이는 단독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귀장소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자 일부가 동작을 멈추면서 의견을 송출한다.
“이대로 패배하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자왕 가이님.”
“죽어도 좋으니 싸워보고 싶습니다.”
동맹은 불사불멸(不死不滅)의 권능이 걸렸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더구나, 거의 잡았던 승리와 거둔 어마어마한 전리품에 눈이 먼 상태였다.
사자왕 가이도 미련이 많이 남았기에 슬쩍 아이언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 싸움은 절대로 말리지 않는 아이언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싸워도 좋다.”
지극히 짧은 명령이었지만 대답으로는 충분했다.
사자왕 가이는 도저히 안 될 것 같고, 빚이 늘어날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서 명령한다.
“으득! 반드시 한 대라도 잡아내라!”
지옥에서도 신출귀몰하기 짝이 없는 정체불명의 함대였다.
물론 지옥에서 설치니 신계 소속임은 분명한데 누구도 정확하게 정체를 몰랐다.
‘신계가 개조한 우주 전함이 아니라는 뜻이지.
그렇다 하더라도 한 대라도 노획해서 연구할 수 있다면 이렇게 골치가 아플 리가 없다.’
물론 아이언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자신들이 은하제국 대신에 은하계 전부를 지배할 수도 있었다.
‘저 함대만 잡으면 우리를 막을 전력은 이 은하계 없다.
그럼 무상의 정의(無償의 正義)를 수백억 인류의 마음에 담아서 나는 창조신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꿈에 부푼 사자왕 가이의 바람을 다른 용자동맹도 느꼈기에 모두 필사적으로 정체불명 우주함대의 대응책을 찾는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투하하하하-! 슈르르르르!
행성 표면을 스치는 집중포격은 일반기체의 방어막으로 막을 수 없고, 인식범위 밖이라서 반격을 못 한다.
그 이전에 언제 공간이동을 해오는지 알 수도 없으니 용자동맹의 일반기체와 개조 인간들만이 무참하게 당하기를 반복한다.
아이언은 일반기체의 피해가 이십 대가 넘어가자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열정과 욕심만으로 추진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원하는 흐름에 자꾸 어긋나려는 현실보다 무식한 데다 용감하기까지 한 너희가 참 답답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