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自由)와 통제(統制) -->
황금빛이 찬란한 보물 전함을 보면 누구에게 바치려고 만든 물건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용자왕들이 직접 상황을 이야기했으니 거기에 끼어들 생각을 굳힌 것이다.
‘권력층일수록 새로운 놀이와 재미에 몰입하지.
아이언님은 신계주신이면서 유아신이니 더욱 그러하겠지.’
그렇게 프롬 여제와 귀족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속성도 잘 알기에 나온 제안에 천족과 마족도 동의한다.
총제독이 동맹의 일반기체를 사냥하는 모습은 중앙신계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높고, 보너스도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알았다.
확실히 좋은 이벤트겠군.
“여긴 지옥이니 내가 갔다 오지.
바로 보고하고 오겠다.”
마족이 공간이동으로 사라지자, 총제독은 은근한 어조로 천족에게 물었다.
“마족이 없으니 우리 솔직해지자.
나 지옥에서 풀려나면 얼마나 살 수 있지?
절대로 길지는 않지?”
“….”
그 말에 신족은 물끄러미 총제독을 쳐다보았다.
총제독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신계 주신이 주도한 은하제국의 일을 방해한 반역도와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당장 처분대상이었다.
아이언님의 변덕 덕분에 살아있지.’
대가가 없는 특사나 무죄방면은 없다.
그걸 제국의 고위층이었던 총제독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반란의 주동자로서 즉결처형도 당연했지.
그런데 갑자기 젊게 해주고, 이런 함대까지 주어서 동맹의 사냥을 시키니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이게 정말 호의일까?
아니면 희망을 보게 하고, 더 큰 절망을 주려는 악의일까?
어느 쪽이지?”
한번 젊어졌더니 이제는 삶에 애착이 넘친다.
더구나, 이미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던 육체는 젊은 시절에 하도 고생을 해서 거의 망가진 몸이었기에 욕망이 더했다.
‘젊어지기 전의 노인 시절에 이대로 잠을 자면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은 감각도 많이 느꼈지.
그래서, 기계 인간이 될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 총제독의 마음을 알기에 천족은 그대로 사실을 알려준다.
신계주신인 아이언이 어떤 생각으로 총제독에게 젊음과 장난감 함대를 주고 지옥으로 보냈는지 모르지만, 명확한 사실이 있었다.
“너의 수명은 이미 끝났다.
위대한 신계주신이신 아이언님이 내리신 가호가 끝나는 동시에 즉사할 거다.
기계인간이 되어도 이미 영혼의 수명이 다 되었기에 오래 연장할 수 없다.”
“….”
실망하지 않는다.
역시 그렇다는 표정을 지은 총제독은 다시 망원경을 잡는다.
허공을 불가사의한 각도로 날면서 일반기체를 요격하는 붉은 변신전함을 노려보았다.
‘신의 함대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신계와 환생에 대해서 알았기에 다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내가 또 새로 태어나서 그 힘든 성장의 삶을 영원히 반복해야 해?
신계에 아무런 공적이 없는 지금 다시 환생 되면 하류층에 또 가야 한다.
그럴 수는 없지.’
아무 배경과 힘, 지식이 없던 어린 시절에 전쟁을 만나서 가족을 잃었다.
덕분에 굶어 죽을 뻔했던 총제독에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악몽도 없었다.
천족 앞에서는 평정을 가장했지만, 속에서는 감정의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벗어날 방법이 있다.
초능력자와 기계인간들이 단지 강하고 강해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언님의 직속세력이 되었다.
아이언님을 감탄하게 할 정도의 강함이나 공적을 새우면 죽음에서 영원히 벗어나 신계에서 출세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이제는 신계에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누구나 잘 안다.’
아이언이 능력과 성과를 중시한다는 점을 모르는 존재는 이제 없었다.
신나게 일반기체를 요격하는 붉은 변신전함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린다.
“저 정도면 충분해.
연합의 천재여. 역시 너는 내 출세와 인생의 밑거름이었어.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총제독이 그렇게 말하면서 붉은 변신전함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주시하자 그 안에 타고 있던 천재 조종사는 갑자기 소름이 오싹 올랐다.
‘이 익숙한 살기는 그 영감탱이다!’
부르르르! 섬뜩!
과거에 느꼈던 늙은 맹수가 허점을 노리는듯한 미묘한 감각이었다.
주변에 달려들려는 일반기체를 초고속으로 제쳐버리고, 추진부를 변화시켜 거리를 확 벌려버린다.
‘은하계의 무기체계와 상성을 다시 연구하게 할 정도였기 나의 애기(愛機) 레드 크림존을 잃게 한 그자의 느낌이야!’
지옥에서 동맹의 일반기체를 사냥하던 정체불명의 함대의 정밀한 운용은 분명 제국의 총제독만이 보일 수 있었다.
힘든 현실에 치여서 잠시 잊었던 과거의 원수를 다시 찾기 시작한다.
“분명히 제국의 총제독이다!
어디냐! 이 치사한 늙은이야!
나와!”
공격목표가 바뀐다.
주포를 강화한 변신전함의 포화가 지면을 강타하기 시작한다.
지옥의 대지가 버섯구름을 피어오르면서 뒤집혔다.
투하하! 구궁! 과광!
십이 킬로미터의 주포가 품어내는 몇 발의 공격으로 수십 킬 미로 미터의 대지가 커다란 분화구가 되어버린다.
연발로 쏘는 데도 함대가 동시에 포격하는 집중포화에 밀리지 않는 위력을 본 총제독은 식겁했다.
“헉! 화력 보게!
도대체 얼마의 예산을 저 한 대에 쏟아부었기에 저런 괴물 전함이 나와.”
에메랄드 여왕의 전용전함인 퀸 엘리자베스호에 들어간 엄청난 예산을 보고, 뒷머리를 잡았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리고, 그녀가 우주해적을 하면서 엄청나게 당했던 기억까지 떠올라서 경각심이 강해진다.
‘돈값을 했지.
이거 만만치 않겠어.
쯧! 여전히 감각도 좋아.
목표가 안 보이는데도 추격을 하는 저 녀석이 정말 초능력자가 아니야?’
천재조종사가 초능력자는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감이 좋아서 매복과 함정은 대부분 피해갔다.
이번에도 천족이 자신을 보호하니 분명히 어디 있는지 모를 터인데 변신전함의 포격이 갈수록 가까워지자 황급하게 자리를 뜬다.
“젊은 놈이 노인에게 성질을 부리는 것 보소?
에잉! 여전히 보면 재수가 없어.
꼴 보기 싫으니 후퇴하자.”
“이길 수 있겠냐?”
총제독을 허리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고서 이제 익숙한 도주를 하는 천족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짐짝처럼 끌려가면서도 총제독은 자신 있게 소리쳤다.
“기체의 성능만 믿는 저 녀석은 내 밥이라니까!
레드 크림존인지 이름만 거창한 인형병기도 결국 이 손으로 박살을 냈어!
중요한 것은 기체의 성능보다 운용이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격추가 쉽지는 않았다.
엄청난 사전 공작을 해서 끌어들여야 했다.
‘중요한 전략물자를 모아서 임시로 만든 함대로 이송했지.
그 정보를 연합에 흘려서 스스로 찾아오게 하였다.
군인이니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함정인 줄 알면서 찾아왔지.’
전략물자를 가진 기함만 정상이고, 겉만 그럴듯한 인공지능으로 간신히 운행만 가능한 폐전함들로 이루어진 가짜 함대였다.
‘고물 전함 안에 폭발물을 잔뜩 실어서 공격받는 순간 자폭하게 함으로써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전략물자를 운송하던 기함으로 전력으로 도주하면서 추격하는 손상된 레드 크림존을 정밀포격을 하여 만든 성과였다.
‘솔직히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자폭공격에 반파가 되었으면서도 끝까지 같이 죽자고 달려들었으니 말이야.
기함의 엔진 바로 앞에서 겨우 잡았다.
장렬한 최후였어.
그때 죽은 줄 알았더니 개조인간이 되어있었구나.’
전력으로 도주하면서 움직임을 전부 분석하여 쏜 집중포화를 돌파했다.
인형병기의 소총 한 발이면 엔진이 당해서 기함이 침몰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것이다.
‘거의 무승부였지.
그런데 레드 크림존이 막대한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한 가동으로 스스로 자멸했다.’
지긋지긋한 붉은 인형병기가 기함의 추진부의 불꽃보다 더 강렬한 빛을 발산하면서 대폭발을 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초고속 진급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몰락은 주변인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인형병기는 그 일로 함대의 자폭도 못 이기는 약한 방어력과 기동성이 문제가 되어서 결국 도태되었다.
전함의 시대가 왔지.
너한테는 악연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지.
이번에도 출세의 계단으로 삼아주지.’
변신전함의 강화된 주포가 지옥의 대지를 송두리째 뒤집는 모습을 보니 약간 서늘해졌지만, 한번 이긴 상대를 또 못 이길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전의를 다지는 총제독에게 천족이 묻는다.
“이번에는 저쪽의 성능이 너무 높은 것 같은데?
더구나 같은 전함이잖아?
너 정말 이길 수 있겠어?”
“….”
악착같이 쫓아온 동맹의 일반기체를 변신전함이 화염방사기로 벌떼를 태우는 듯이 주포로 쓸어버리는 변신전함의 모습을 보니 솔직히 걱정되기는 했다.
“일단 저 전함의 자료부터 분석을 해보자고.”
그렇게 말을 끝낸 총제독은 은신처로 돌아가서 신계로부터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는 통보를 받는다.
어떻게든 아이언의 흥미를 끄려는 워터문으로서는 이런 재미있는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하급신이 된 워터문을 화면 너머로 본 총제독은 바짝 엎드렸다.
천족과 마족이 극도로 공경의 예의를 표시하니 분위기를 따른 것이다.
“기특한 제안을 했지만, 너의 수명이 다 되었구나.
걱정하지 마라.
아이언님이 이 일로 기뻐하신다면 나의 천족으로 만들어주겠다.
최선을 다하라.”
“감사합니다!”
일단 원하던 대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기쁘게 대답을 했는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워터문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천족과 마족에게 묻는다.
“신계에 큰 공을 새워야 천족이 되는 것이 아니었어?
어째 너무 가벼운데?”
최하위이지만 그래도 정신체인 천족이나 마족이 되려면 특출난 재능만으로는 부족했다.
신계에 도움이 되는 업적을 세워야 하는데 이건 너무 쉬웠다.
그런데 천족이 당연하듯이 말한다.
“최고위 창조신이신 아이언님의 기쁨만큼 큰 공적은 없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거다.”“….”
예상은 했는데 어마어마한 충성심이었다.
그리고, 마족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경고했다.
“그 대신에 아이언님이 재미없어하시면 너를 당장 처단해야 한다고 난리를 칠 거다.
물론 허무하게 지면 당연히 끝장이지.
그런데 너 정말 저거 상대로 자신이 있냐?”
그러면서 아까부터 계속 재생되고 있는 화면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용자동맹이 이번 행사를 위해서 보낸 변신전함의 소개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함의 형태에서 인형병기로 변신한 거대한 붉은 로봇이 하늘로 뛰어오른다.
‘차아아아아-!’
손에는 무장 컨테이너가 변형한 거대한 검이 들려있었다.
검의 뒷날에 수백 개의 추진장치가 붙어서 초고속으로 가속한 십 킬로미터가 넘는 대검이 동맹의 일반기체의 진형을 가로지른다.
과가가가가가가가가가-!
단숨에 수십 대가 두 동강이 나서 파괴가 된다.
일반기체는 바로 재생이 되어서 멀쩡해졌지만, 이 킬로미터가 넘는 거체가 검에 달린 추진구로 가로지르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구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추진부가 만들어내는 돌파력으로 단숨에 용자동맹의 진형을 가로지르고, 전함으로 변신해서 이탈한다.
그리고, 저 멀리 외곽에서 쏘아대기 시작한 주포의 연발사격이 신성문자를 만들어낸다.
‘나는 레드 크림존!
어떤 전장이라도 지배한다!
과학문명에 특화하여 어떤 지성체의 군대도 제압한다!
자동 수리와 자동보급이 가능하며, 기계신과 달리 유지하는 정기도 들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주문하시면 일 할을 깎아드립니다.’
아무리 보아도 작위적으로 영상을 만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엄청난 위력만은 진짜였다.
총제독은 혀를 차면서 몇 번이나 돌려본 화면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쯧쯧! 인형병기가 전함으로 변신을 해?
한 번 당하더니 보완을 하기는 했군.
저 녀석이 자만심을 버렸다면 정말 곤란한데.”
나름대로 걱정이 된 총제독은 이제 버릇이 된 장난감 가방 두 손 안기를 하면서 생각에 빠진다.
“으음! 신의 함대가 이제 이십 척인데 이러면 화력이 부족하려나?”
강력한 인형병기를 제압하는 수많은 전술을 떠올린다.
그리고, 변신전함이기도 하니 거기에 비견될 수 있는 퀸 엘리자베스호를 제압하려고 구상했던 모든 방안을 떠올렸다.
어디에도 정확한 결론이 없었다.
“으으으! 변신을 하니 예측불허잖아?
이거 만만찮네.”
단순하게 보조 무장이 많은 특수전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인형병기로 변신할지는 예상 밖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단순히 전함이나 인형병기라면 대처할 방법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저렇게 상황에 따라서 변형을 하면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수단밖에 없다.’
꽉 껴안고 있던 장난감 가방을 활짝 펼쳐서 탁자에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렸다.
총제독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천족과 마족도 똑같은 자세로 양옆으로 이동한다.
“위대하신 신계주신이신 은하유성 아이언님을 감히 미천한 지성체 제국의 총제독이 뵙기를 바라옵니다.”
치이이! 치이이이!
분명 아이언과 통신이 연결되어있는 장난감 가방에서 잡음만 일어난다.
“….”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잠시 당황한 총제독은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이면서 외친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들어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은하유성 아이언님.”
그 말에 장난감 가방에서 환한 황금빛이 나면서 아이언의 모습을 비춘다.
비잉! 빙!
이제 파란 옆머리가 선명한 아이언이 귀찮은 표정이 역력한 표정으로 경고한다.
“개인수련으로 바쁜데 여기저기서 쓸데없이 부르기만 하는구나.
재미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