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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自由)와 통제(統制)
차호(次湖)가 누구인지는 아이언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단지 절대계의 창조주인 진리의 혈족이자 영원체로서 인식할 뿐이었다.
‘바람가의 계승자면 확실한 원군이다.
최소한 함정은 아닌 모양이야.’
브라이트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이 정도는 창조신장이 될 존재에게 당연한 지원이지.
그대는 창조주님이 주시하고 있지.
경력이나 권위에 흠집이 날 불가능한 일은 절대 제안하지 않으니 안심하게.”
“···.”
정말 목적을 바로 알 수 있게 제목이 쓰인 극비문서의 내용을 빠르게 읽어간다.
‘흑염 군단이 도망치지 않을 정도의 강자가 그들이 포기할 수 없는 흑염의 절대기 파호톤을 가지고서 유인한다.
절대계의 바람성에서 현세계로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틴다.
원군의 공격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바로 시작할 수 있게 적당한 강자를 준비하라.’
간략하게 내용을 확인한 아이언은 극비서류를 다시 넘겨주면서 말한다.
“아주 좋은 계획입니다.
저의 역할은 파호톤을 가지고, 흑염 군단을 불러내서 차호(次湖)님이 오기까지 발목을 잡는 역할이군요.
그런데 그 원군이 바람가의 차호(次湖)님이라니?
정말 바람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미 한번 받았지.
그래서 흑염 군단이 농성 요새를 잃고서 도주 중이네.
두 번째도 확약하셨다네.”
아이언의 뇌리에 얼마 전에 엄청난 검기로 세계가 절반으로 갈라졌다가 합쳐졌던 일이 기억이 났다.
‘그것이 바람가의 계승자의 힘이군.
상황이 이 정도라면 원군은 확실하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물러서지 못한다.’
그런데 브라이트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차호(次湖)님의 도움을 받으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네.
그분이 쓰신 태극세계참(太極世界斬)의 여파로 현세계의 일 할이 소멸하여 버렸지.”
“말 그대로 세계를 절반으로 가르는 공격이더군요.
과연 바람가의 계승자입니다.”
“우리 같은 영웅신은 상상도 못 할 힘이더군.
더구나 영원체이시니 너무 주변에 무신경하시네.”
바람가의 당대 전승자 차호(次湖)가 와서 다짜고짜 날렸던 태극세계참(太極世界斬)의 무시무시한 위력보다 그 이후에 보인 재생력이 더 큰 문제였다.
자신도 모르게 소멸했다 재생되어 충격을 받은 정신체들이 쏟아내는 항의를 수습하며 했던 고생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지는 브라이트였다.
‘창조주의 자격이 있는 차호(次湖)님에게는 세계나 정신체는 다시 고치시면 되는 자산에 불과하다.
아무런 배려가 없어.
그런 공격을 했는데 미리 눈치채고 도주한 흑염 군단에 대해서는 이제 진저리가 쳐질 지경이다.’
현세계의 전력으로는 흑염의 절대 직감을 가진 영웅신의 군단을 도저히 토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브라이트에게 더는 수단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나와 샤이니는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돼.
바람가에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 집결하고 있으니 어서 가야 해.
늦어질수록 따라잡기 힘들어진다.’
각 세계에서 십중심 후보로 선택된 존재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데 경악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존재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와 경쟁해야 했다.
‘절대계 십중심의 자리는 단 열 명이다.
그들은 현세계보다 수백 배는 풍요로운 절대계를 나눠서 완전지배하게 된다.
의무는 오직 영원한 행복을 위한 영원한 발전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절대계를 어떤 세계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진리님 외에는 상위의 존재가 없다고 공인받는다.
영원체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가 쥐어지니 후보 전부가 바람가에 몰려가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십중심 전부를 제압할 수 있는 진리님이 존재하는 이상 일대처럼 반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처단당할 염려도 없다.’
개인의 강함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다른 세계의 후보들은 이미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도 자신들은 떠날 수가 없었다.
현세계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창조주님이 출발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흑염 군단 때문에 현세계에 묶여있는 십중심 후보로 선택받은 브라이트와 샤이니, 창조신장과 우주신, 최고위 창조신들의 마음은 지금 한없이 급해지고 있었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언에게 여주신을 여창조신으로 만들어 유모로 지원하는 정도는 쉽게 생각할 정도지.’
브라이트는 다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면서 천천히 설명한다.
“아마 이번 토벌계획에도 세계의 일 할은 소멸이 되겠지.
차호(次湖)님이 재생해주신다고 해도 엄청난 피해일세.
그런데 더는 흑염 군단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어.
그들이 강탈한 중앙 신계의 핵을 회수하지 못하면 현세계의 신족은 파산하네.
오 할 이하로 규모를 줄여야만 해.
자력으로는 도저히 처단하지 못하겠으니 바람가의 차호(次湖)님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이번 한 번으로 끝을 내야 하네.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도주를 저지하는 그대가 최대한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언제나 온화하던 브라이트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잠시 생각한 아이언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면서 말한다.
“알겠습니다.
이제 저도 신족이며 최고위 창조신입니다.
차호(次湖)님의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바로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오! 믿음직하군.
필요한 것은 뭐든지 말만 하게.”
더없이 기뻐하는 브라이트에게 아이언은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그에게는 창조신계의 전면적인 지원과 여창조신 유모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일이 있었다.
바로 십중심 후보의 선발기준이었다.
“십중심 후보가 되셨다는데 기준이 무엇입니까?
저와 같은 최고위 창조신이나 우주신까지 선정되었다는데 조건이 정말 궁금하군요.”
“!?”
자기보다 약한 최고위 창조신도 선택이 되었는데 왜 같은 신분인 최강의 영웅신인 자신이 제외되었냐는 질문이었다.
브라이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마음 상해하지 말게.
진리님의 선택기준은 오직 재능이라고 하시더군.
십중심 고유권능을 온전하게 이어받을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존재만을 고르셨어.
현재 가진 힘이 약해도 교육을 받으면 보충된다고 완전히 무시하셨네.”
“!!!”
진리의 교육을 받으면 지금은 약해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으니 현재의 상태는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세력도 직위도 모두 무시하셨다.
오직 재능만으로 인정된다.
십중심 후보로 선택받은 모든 존재가 미친 듯이 열광하는 이유지.’
비록 이대 절대계 십중심이 되지 못해도 영원체를 능가하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영원체 중 가장 막강한 진리의 인정이었으니 그것은 참으로 영광이었다.
‘좋은 것만이 아니야.
기득권을 완전히 무시하신 덕분에 지금 모든 세계는 충격과 혼란으로 뒤흔들리고 있다.’
선택받지 못한 존재들에게는 나락과 같은 절망이었다.
‘인정받지 못한 최고의 지배층들은 십중심 후보보다 무능하고 강해질 가망성이 없다는 낙인이 찍힌 것과 마찬가지다.’
십중심 후보에서 제외된 아이언도 잠시 멍해진다.
‘강자를 중시하는 진리님이니 재능을 중점으로 십중심 후보를 직접 고르리라 예상은 했다.
그렇지만 오직 재능이라니?
이건 너무나 냉정하면서 가혹한 선택이다.
이러면 최고위 창조신이 된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가?’
흑염 도적단을 무리해서 토벌하여 최고위 창조신이 된 이유 중에 이 시대에서 십중심 후보로 선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무산된 것이다.
‘최고위 창조신의 직위에 최강 영웅신의 힘인데도 떨어졌는가?
나는 진정 십중심이 될 재능이 없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헛된 노력이며 발버둥인가?’
황금 책 탑의 중턱에서 자격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경고하던 에반젤리가 떠오른다.
도전했다가 분석력 부족으로 물러났던 상황이 다시 떠오르니 이를 악물었다.
으드드드득!
무시무시한 황금빛 투기를 발산하는 아이언을 지켜본 브라이트는 이해한다는 듯이 딱한 눈빛을 보냈다.
‘아이언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군.
같은 상황이면 나라도 평정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허나 어쩔 수 없지.’
진리에게 십중심 후보로 선택받지 못한 다른 최고위 창조신들도 이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구나.
타고난 재능만은 어쩔 수가 없어.’
십중심 후보에서 제외된 강자들은 흑염 군단을 상대로 직접 자격을 증명하겠다고 완전 전투태세였다.
일부가 창조신성에 집결하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십중심 후보에서 제외되어 격노한 강자들이 후보 자격을 빼앗기 위해서 도전하려 했다.
그러나, 진리님의 철저한 가호를 확인하면서 포기한 상태다.
현재의 강함이 아니라 재능이니 중점이다 보니 아직 약한 상태에서 보호는 당연한 조치이지.’
진리는 영원한 번영을 만들 십중심을 절대계의 보물로 정하고, 후보들조차 손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중이었다.
‘만약 해를 끼치는 존재는 직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말소한다고 경고까지 된 상태다.’
심지어 다른 십중심 후보들의 집결로 마음이 급해진 브라이트와 샤이니가 아직 성장을 못 한 아이언을 대신하여 유인과 저지 임무를 맡으려고 해도 거부당할 정도로 보호되는 것이다.
‘십중심을 혼자 이겨낸 창조주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없지.
그건 현세계 창조주님도 같다.’
이제 위험한 전투에는 나설 수 없게 된 브라이트는 분노를 억누르려 노력하는 아이언을 달랜 이후에 돌아간다.
이성을 어느 정도 찾은 아이언은 자신에게 있는 십중심의 책 탑을 떠올리면서 의지를 불태운다.
“나는 진리님의 교육이 없어도 십중심이 될 수 있다.
반드시 내가 황금 권능을 완전히 익힐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어.”
그렇게 은하유성 아이언의 운명이 과거의 변화로 인하여 크게 바꾸어서 흐르고 있을 때, 원인이 된 차원창세신 코아는 회색의 절대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장소는 황금의 절대자의 본성에 만들어진 무수한 책 탑이 늘어선 회색의 절대자의 개인 신전이었다.
쫘르르르르르르르!
회색의 절대자는 반쯤 펼쳐진 책 모양의 영광의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원 권능으로 나타난 차원창세신 코아를 노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내 개인 신전에 바람의 절대자나 흑염의 절대자도 없이 혼자만 들어오다니?
이제 할 일이 다 끝났으니 내 손에 소멸당하고 싶으냐?
하긴 시간의 패배자가 되어서 흐름에 흡수되는 것보다는 나은 결말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야 합니다.
반드시 시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차원 권능을 가진 존재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면서 도전했다가 모두 흐름을 지키는 허신(虛神)이 되어버렸지.
내 눈에는 너라고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렇게 되면 내 비밀자료 유출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서 보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축객령을 내린다.
“내가 직접 나서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너는 곧 완전히 끝난다.
내 손에 피 묻히기는 싫으니 가봐라.
그리고, 실컷 발버둥을 쳐라.”
“호오? 벌써 저의 처리방법까지 결정이 되었습니까?”
“사냥이 끝났으니 감당하지 못할 정체 모를 사냥개는 잡아야지.
그래도 공이 너무 크니 직접 처단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그것이 싫으면 절대계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추격까지 할 생각은 없다.”
일대 흑염의 절대자의 경고대로 십중심들의 의견이 차원창세신 코아를 외계로 추방하여 끝장을 내는 것으로 이미 모였다는 의미였다.
차원창세신 코아는 얼굴을 가린 로브를 벗고 과다한 창조력 사용으로 초췌하진 얼굴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곤란하군요.
저는 절대계에서 임무를 마칠 때까지 있어야 합니다.
설사 외계로 추방되어도 돌아와서 임무를 완수해야 하지요.
그래서 왔습니다.”
“흥! 시작(始作)님이 왔던 외계로 너를 동행시켜서 추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흑염의 절대자나 바람의 절대자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데 이번에는 안 돼.
십중심 열 명 중 여덟 명이 동의했다.
이렇게 되면 그 둘도 너를 절대계에 둘 수 없다.
거부하면 널 구할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도 없다.”
일대 회색의 절대자의 단언에 차원창세신 코아는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라 책을 한 권 팔러 왔습니다.”
손에 들려진 책이 검은 불길을 내뿜으면서 타오른다.
찬란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책의 제목을 본 일대 회색의 절대자는 인상을 팍 썼다.
‘저것이 흑염의 정석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