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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이 아버지는 누구예요? (39/100)


39. 아이 아버지는 누구예요?
2022.12.14.



‘저…… 잡아 먹힐 거 같은데요.’

뺨에 닿는 시선이 따가웠다. 세경은 보고 있던 종이를 살짝 들어 송 실장의 시선을 피했다.

오전 스케줄을 마치고 제훈과 소속사로 돌아온 세경은 태조의 연락을 받고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태조의 사무실에서 쉬고 있었을까.

회의를 마친 송 실장이 세경을 찾아왔다.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게 불과 20분 전.

태조의 집무실에서 세경을 불러낼 때만 해도 전과 다름없던 송 실장은 회의실에 단둘이 남자 그녀를 발라먹을 듯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


“드라마 관련해선 추가 스케줄은 이게 전부인가요?”

“제작사 쪽에선 좀 더 활동적인 예능 촬영을 요구하긴 했어요. 이쪽에서 다 거절했지만. 대신 인터뷰랑 화보 촬영은 하나씩 더 잡았어요. 세경 씨가 보고 무리거나 힘들 것 같다 싶으면 지금 이야기해요. 다시 조정하게. 괜찮으면 그대로 진행하고.”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이대로 픽스 해요.”

“그럼 내가 그쪽 홍보 담당이랑 이야기하고 확정되면 신 매니저한테 전달할게요. 인터뷰랑 화보 촬영은 날짜를 조율해야 하니까 일정은 조금 바뀔 수 있어요.”

세경이 종이 끝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 실장은 서류에 몇 가지 사항을 적어놓고 세경을 올려다보았다.


“대표님한테 들었죠? 내가 세경 씨 스케줄 담당하는 거?”

“네.”

“당분간 시나리오 들어오는 건 거절할게요. 촬영에 여유가 있는 건 보여주겠지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세경이 옅게 웃었다. 고개를 쭉 뺀 송 실장은 바깥의 상황을 살피다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몸은 어때요? 임신 9주 차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단 괜찮아요. 조금 피곤하고 잠이 많아진 걸 빼면. 근데 저 9주 차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대표님이 말씀하시던데요.”

“아, 대표님이…….”

세경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송 실장님이 눈치채면 어쩌려고.


“신 매니저는 모르죠?”

“네. 아직은. 그런데 조만간 알아챌 것 같긴 해요. 요즘 먹는 게 많이 바뀌었거든요.”

“신 매니저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일단 매니저가 눈치채면 나한테도 말해줘요. 입단속은 시켜야 하니까. 지금 회사에서 세경 씨 임신한 사실은 나랑 대표님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촬영하다가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요.”

“그럴게요.”

“근데…….”

송 실장이 세경의 앞으로 몸을 바짝 기울였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아이 아버지는 누구예요?”

결국 이 질문이 나오는구나.

세경이 답하기 곤란한 표정을 짓자 송 실장이 질문을 바꾸었다.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사귀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낌새도 없었던 거 같은데.”

“알고 지낸 지는 좀 됐는데, 연인 사이로 발전한 건 얼마 안 됐어요.”

“혹시 연예인?”

“아니요.”

“일반인이에요? 아,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던 건가?”

송 실장의 추리에 세경은 웃음으로 답을 얼버무렸다.

진 대표가 일반인이긴 하지. 소속사 직원들이 다 아는 일반인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럼 올해 안에 결혼도 하는 거예요?”

“글쎄요. 그건 아직 결정된 게 없어서…….”

“대표님은 드라마 끝날 때까지 세경 씨 임신한 걸 숨기실 생각이던데.”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드라마가 로맨스적 요소도 있으니까. 제 개인적인 일로 드라마에 영향을 주는 건 미안하잖아요.”

“그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임신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열애설이나 결혼설 같은 건 살짝 흘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것도 없이 갑자기 임신 사실이 터져 봐. 파장이 생각 이상으로 클 수 있어요.”

“고민해 볼게요.”

“드라마 끝날 때쯤으로 한번 생각해봐요. 아니면 남친이랑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서 사진이라도 찍히든가. 우리 회사가 또 연애하는 건 별로 터치 안 하잖아.”

송 실장이 구체적인 타이밍과 방식을 조언해 주었다. 세경이 참고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잠깐. 전화가…….”

테이블에 엎어놓은 송 실장의 핸드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녀는 세경을 한번 쳐다보곤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아, 세경 씨요? 예, 지금 저랑 같이 있어요.”

송 실장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세경이 귀를 쫑긋거렸다.


“스케줄 관련해선 이야기가 다 끝났고요. 다른 사항에 관해서 조금……. 네. 그건 전에 말씀드린 대로 진행할 것 같아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할게요.”

태조와 통화를 마친 송 실장이 세경을 바라보았다.


“세경 씨, 대표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네. 용건 끝나면 본인 사무실로 보내달라고 하시는데?”

“그래요? 그럼 스케줄 건 외에 다른 논의 사항은 없는 거죠?”

“지금은 뭐. 아, 하나 더. 대표님이 드라마 피디님하고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셔서 내가 연락을 드렸거든. 피디님은 제작 발표회 때 시간이 좀 날 것 같다 하시더라구. 공지원 작가님도 같이 식사 자리 마련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감사합니다. 중간에 고생이 많으셔요.”

“이게 내 일인 걸 고생은 무슨. 그리고 내가 세경 씨한테 좀 미안한 것도 있고.”

“미안한 거요?”

송 실장이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던가? 세경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세경 씨 임신테스트기 발견해서 대표님께 전해준 게 나잖아.”

“저랑 부딪친 날이요?”

“응. 곤란했지? 나도 세경 씨한테 개인적으로 돌려주고 싶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대표님하고 딱 마주쳐서. 내가 그걸 들고 있으니까 대표님이 오해를 하시더라구. 그래서 할 수 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

정말 미안한지 송 실장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뭐, 좀 곤란하긴 했지. 그날 태조가 들고 있던 임신테스트기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송 실장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부주의했던 잘못도 있었으니.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게다가 언젠간 알려야 할 일이었잖아요.”

그게 좀 많이 당겨져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대신 서포트는 든든하게 해줄게. 아, 대표님 기다리시겠다. 가 봐, 세경 씨.”

“네. 그럼 다음에 봬요.”

꾸벅 인사를 한 세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막 문을 열려던 찰나였다.


“세경 씨.”

“네?”

송 실장이 부르는 소리에 세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웃은 송 실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좀 늦었지만, 아이 가진 거 축하해.”

 

***

똑똑똑.

노크를 한 세경이 살짝 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보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태조가 보였다.


“들어와.”

태조의 손짓에 세경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앞으로 향했다.


“바쁘세요?”

“아니. 거의 다 했어.”

시간을 확인한 태조가 모니터 전원을 껐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세경은 아까보다 표정이 더 좋아 보였다.


“송 실장하고 이야기는 잘했어?”

“네. 근데 김 비서님은 어디 가셨어요? 안 보이시는데.”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고 했어. 세경 씨 오면 곧 출발해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심 원장의 병원에 마지막 타임으로 예약을 해둔 터였다.

매번 병원에 혼자 보내는 게 미안했던지, 태조는 송 실장과 미팅이 끝나면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10분만 있다 나갈까? 송 실장은 뭐래?”

“잘 서포트해 주겠다고. 임신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열애 소식이든 결혼설이든 먼저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시더라고요.”

태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그도 동의하는 바였다.

뜬금없이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터지는 것보단 열애설 후 나오는 임신 소식이 돌아오는 후폭풍에 대한 완충재 역할을 해줄 테니.


“드라마 끝날 때쯤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송 실장이 그건 안 물어봐? 아이 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어봤어요. 설마 대표님한테도 물어본 거예요?”

“어. 나라고 대답은 못 했지만.”

피식 웃은 태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옷걸이에서 재킷을 빼 팔을 꿰어 넣었다.


“세경 씨는 뭐라고 했어?”

“제가 답을 못 하니까 질문을 바꾸시던데요? 연예인이냐고. 아니라고 하니까 일반인이라 안 알려진 거라고 추측하시더라고요.”

“거짓말은 아니네. 일반인은 맞으니까. 참, 신 매니저한테는 이야기했어? 따로 간다고.”

“아니요. 나갈 때 직접 보고 말하려고요.”

“그럼 슬슬 나가자. 가면서 매니저한테 인사도 하고.”

차 키를 챙긴 태조가 세경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가 매니지먼트 실에 있는 제훈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태조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가요.”

세경이 돌아오자 태조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을 때…….


“또 손잡고 있네.”

지난번 세경과 태조가 손을 잡고 있던 것을 목도한 한 직원이 멀찍이 서서 믹스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



“여기 조금씩 튀어나온 거 보이죠? 이게 손이고 요게 발. 크기를 보니 앙꼬가 주 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네요. 몸 상태는 어때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심 원장이 모니터를 보며 세경에게 물었다.

동그랗던 앙꼬가 꼬물꼬물 자라더니 자그마한 손발이 튀어나와 젤리곰처럼 보였다.


“배가 좀 뭉친 것처럼 아파요.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많아지기도 했고.”

“이맘때쯤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에요. 다행히 초음파상으론 큰 문제가 없어 보여요. 혹시라도 너무 심하게 아프다든가 피라도 보이면 곧장 병원으로 와요.”

“그럴게요.”

“12주 차엔 기형아 검사도 할 거니까. 바쁘더라도 시간 꼭 내고요.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심 원장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세경이 입을 열었다.


“아이 성별은 언제쯤 알 수 있어요?”

“성별은 대략 16주쯤? 그 전에 뭐가 보이기 시작하면 알려줄게요. 세경 씬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둘 다 상관은 없는데 태몽 때문에 아들일 것 같긴 해요.”

“벌써 태몽을 꿨어요? 어떤 건데요?”

“작은 아기 호랑이가 제 손에 얼굴을 척 올리는 꿈이요.”

“어머, 귀여웠겠다. 앙꼬가 꼬마 호랑이였구나.”

심 원장이 맞장구를 치며 초음파 기계를 정리했다. 세경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나 앙꼬 아빠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앙꼬 아빠요?”

세경이 저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 심 원장이 태조를 보며 미간을 구겼던 것이 생각나서였다.

왜 앙꼬 아빠가 아니라 네가 왔냐는 눈치였다. 물론 태조는 그런 심 원장의 시선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뭐가 궁금하신데요?”

“앙꼬 아빠, 연예인은 아니죠?”

뭘까, 이 데자뷔는?


“네에.”

“그럼 회사 다니는 직장인?”

세경이 눈동자를 굴렸다. 대표님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긴 했다.

평사원이 아니라서 그렇지.


“네. 회사 다녀요.”

“아하. 그래서 같이 못 오는구나.”

……같이 왔는데요. 좀 전에 보시기도 했고.

속으로 중얼거린 세경이 싱긋 웃었다.


“참, 세경 씨 저번에 나랑 갔던 갤러리 기억하죠?”

“물론이죠. 제가 그때 급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실은 내가 어제 거기 관장님과 통화를 하다가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거든. 혹시 세경 씨도 시간을 낼 수 있을까 해서.”

“좋아요. 안 그래도 제가 그날 저녁 사려고 했었는데. 못 사서 마음에 걸렸거든요.”

“세경 씨한테 밥 사란 소리는 아니고. 그럼 언제쯤 시간 낼 수 있어요? 관장님이 세경 씨 시간 되는 날 알려주면 자신이 시간 빼겠다고 하던데.”

세경이 송 실장에게 받은 추가 스케줄을 떠올렸다. 다음 주부터는 포스터 촬영이며 홍보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어, 이번 주밖에 시간이 없었다.


“다음 주는 무리일 것 같고. 내일모레 저녁쯤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럼 내가 반 관장님과 통화하고 시간 정해서 알려줄게요.”

“네. 그러세요.”

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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