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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누가 보낸 거예요? (52/100)


52. 누가 보낸 거예요?
2023.01.28.



 
<우아한 가족>의 방송 첫날.

세경의 스케줄은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인터넷에 올릴 짧은 홍보 영상을 딴 뒤 오후에는 공 작가와 같이 인터뷰 하나를 마쳤다.


“요즘 정신없었죠?”

기자가 떠나고 회의실에 둘만 남자 공 작가가 말했다.

단순히 드라마 홍보 스케줄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세경에게 좋은 화제가 아니다 싶어 상대를 콕 집어 말하지 않았을 뿐, 임주희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에둘러 묻는 거였다.


“조금요. 공 작가님도 놀라셨죠? 방송 앞두고 안 좋은 기사가 나서.”

“세경 씨에 비하면 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라 당혹스럽긴 했지만, 내가 아는 세경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었으니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공 작가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차 피디가 철없이 노이즈 마케팅이다 뭐다 떠들어 댔던 건 그냥 흘려들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차 피디가 세경 씨 걱정 많이 했어.”

“알아요. 저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 그 기사 나고 괜히 폐를 끼친 거 같아 죄송스러웠는데, 오히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이쪽도 고맙지. 사실 차 피디가 좀 방정맞은 구석이 있어서 간혹 좋은 의미로 한 말인데도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공 작가가 은근히 차 피디를 까면서 그를 두둔했다.


“두 분 대학 동기라고 하셨죠?”

“응. 징글징글한 인연이지. 누가 알았겠어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저 인간이랑 같이 일하게 될 줄.”

말은 저렇게 해도 두 사람만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팀도 없었다. 이미 두 작품을 같이 했고, 그 드라마 모두 대박을 터트렸으니.


“아까 직원한테 들었는데 세경 씨 이번에 홍보차 예능 촬영도 했다면서요?”

“네. 친구 제안으로 잠깐 나가게 됐어요.”

“그 결혼한 친구 나오는 거죠? 부부이몽?”

“공 작가님도 그 프로 보세요?”

“자주는 아니고 가끔. 남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그 커플 재밌긴 하더라고요. 매일 아침 남편이 요가 하다 비명 지르는 게 제일 웃기던데?”

그 비명, 이번에 저도 지르고 왔는데요…….


“여러모로 힘들었을 텐데 세경 씨도 고생했어요. 이제 오늘 첫 방만 잘 넘기면 되겠어.”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세경이 세상의 근심을 다 짊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공 작가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뭘 걱정까지 해요. 이미 촬영도 다 끝났는데. 나 편집본도 잠깐 봤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요. 시청률도 잘 나올 거니까.”

공 작가의 위로에 세경이 옅게 웃었다. 그때 노크를 한 신 매니저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누나, 언제 출발하실 거예요?”

“아, 지금 가.”

자리에서 일어난 세경이 공 작가에게 인사를 했다.


“저 먼저 가볼게요.”

“응. 들어가요, 세경 씨. 나중에 봐.”

꾸벅 인사를 한 세경이 회의실을 나섰다. 그녀가 밴에 오르자 운전석에 탄 제훈이 시동을 걸며 물었다.


“누나, 어디 들를 데 있으세요? 아님 곧장 집으로 갈까요?”

“음…….”

세경이 잠시 고민했다. 태조의 선물도 사야 하는데 잠깐 백화점에 들렀다 갈까?


“나는…….”

목적지를 이야기하려는 찰나, 손에 든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세경이 팝업으로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태조에게서 온 문자였다.

[선물 들어온 게 있는데. 잠깐 사무실로 올 수 있어? 아니면 저녁에 가져다주고.]
 


“선물?”

“네?”

세경의 혼잣말에 앞에 있던 제훈이 반응했다.


“사무실에 선물 들어온 게 있다는데. 그럼 일단 회사로 갈까?”

룸미러로 시선을 맞춘 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 장소였던 제작사 건물이 소속사와 그리 멀지 않아 차는 금방 회사 앞에 도착했다.


“누가 보낸 선물이에요? 제가 바로 가지고 올까요?”

“아니. 내가 가지러 갈게. 아마 대표님이 받으신 거 같은…….”

땡!

빠르게 상승한 엘리베이터가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스르륵 열리는 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세경은 복도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선배님.”

“여, 세경아 오랜만이다?”

활짝 웃은 석주가 반가운 듯 손을 들었다. 세경은 묵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석주의 옆에는 우현도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강 상무님.”

“음? 세경 씨, 요즘 회사에서 자주 보네. 스케줄 끝내고 오는 거예요?”

세경에게 인사를 되돌린 우현이 신 매니저를 한번 쳐다보았다.


“네. 잠깐 일이 있어서요.”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라며 세경이 신 매니저에게 손짓했다. 석주와 강 상무에게 인사를 한 제훈이 사무실로 사라지자, 세경이 석주를 돌아보았다.


“석주 선배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요즘 촬영 때문에 바쁘시죠?”

“정신없지 뭐. 독일 갔다가 스페인 갔다가. 지금은 지방에서 촬영하고 있어. 오늘은 광고 촬영 때문에 잠깐 서울 올라온 거고.”

“그러셨구나.”

“그러는 너는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야?”

“대표님이 저한테 선물 온 게 있다고 해서요.”

“선물?”

되물은 석주가 옆에 있는 강 상무를 쳐다보았다.


“왜 날 봐?”

“세경이 선물 왔대잖아.”

“그래서 내가 불렀냐고. 태조가 불렀다잖아, 이 곰탱아.”

면박을 준 강 상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때마침 나온 송 실장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송 실장님!”

“네?”

강 상무의 부름에 송 실장이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걸어왔다. 살짝 웃은 세경은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세경 씨 선물 온 게 있다던데.”

“세경 씨 선물이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아, 혹시 그건가? 오늘 낮에 대표님 사무실로 꽃바구니 하나가 들어가던데요?”

“꽃바구니? 태조의 사무실로?”

뭐야, 그 안 어울리는 조합은.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강 상무와 석주가 묘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 살짝 흥미가 돋는 듯 세경에게 물었다.


“누가 보낸 거예요?”

“그건 저도 잘…….”

“혹시, 세경 씨 애인?”

“어……. 애인이면 회사가 아니라 집으로 보내지 않을까요?”

뜨끔한 세경이 도르륵 눈을 굴려 강 상무의 시선을 피했다.


“아, 그건 그러네. 쓰읍. 궁금한데? 누가 보냈을지?”

“그러게. 근데 그게 세경이 건 맞아? 태조 사무실로 들어간 거라면 세경이가 아니라 태조 것일 수도 있잖아.”

“태조한테 꽃바구니를? 아니, 누가 그런 센스 없는 선물을…….”

우현이 꽃바구니를 든 태조를 상상하더니 징그럽다며 진저리를 쳤다.

하나,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태조의 사무실로 들어간 꽃바구니의 주인이 누구인지.


“…….”

힐끗 옆을 본 우현이 석주의 옆구리를 쿡 찔러댔다.

둔한 곰도 이럴 땐 없던 눈치가 생기는지, 고개를 끄덕인 석주가 세경의 어깨를 잡아 휙, 돌렸다.


“가보자, 세경아. 너 선물 받으러 왔다며.”

“네, 네?”

곰 같은 석주의 힘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석주가 미는 대로 세경의 다리가 움직였다.

목적지는 태조의 집무실 앞.

떠밀리듯 다가오는 세경과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두 남자를 보며, 집무실 앞에 있던 김 비서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태조 안에 있죠?”

“네.”

김 비서가 인터폰을 들자, 강 상무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어서 들어가자는 석주의 눈빛에 세경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대표님, 윤세경이에요.”

“들어와.”

안쪽에서 태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경이 힐끔 석주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어서 들어가자며 고개를 까닥거리자, 한숨을 쉰 세경이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뭐야.”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태조가 세경의 뒤에 붙어오는 두 사람을 보며 인상을 썼다.


“너넨 왜 왔어?”

“세경 씨 앞으로 선물이 왔다며.”

태조의 미간에 진 골이 더 깊어졌다. 강 상무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집무실 안을 휘휘 돌아보았다.


“혹시 이거냐?”

강 상무가 소파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꽃바구니를 가리켰다.


“그래.”

“아니. 누가 보냈는데 세경 씨 선물이 네 방으로 들어와?”

테이블 안쪽으로 들어간 강 상무가 바구니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세경도 궁금한 듯 태조를 쳐다보았다. 손잡이에 달린 상아색 리본엔 드라마 첫 방송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만 적혀 있었다.


“형수님.”

“응? 형수님?”

우현이 되묻자 태조가 재차 확인시켜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형수님?”

“나한테 형수님이 한 명밖에 더 있어?”

심드렁한 태조의 대답에 강 상무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세경 씨 앞으로 온 거고, 보낸 사람은 네 형수님이다?”

우현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태조에게 형수님은 한 명밖에 없는데? 근데 왜 그분이 세경 씨한테 꽃을…….


“이거 반 관장님이 보내주신 거예요?”

의아해하는 강 상무의 귀에 세경의 발랄한 목소리가 꽂혀 들었다.

세경은 소파에 앉아 꽃바구니를 제 앞으로 당겨왔다.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피어난 리시안서스 무리에 작은 카드 한 장이 꽂혀 있었다.


“세경이 네가 예령 형수님을 어떻게 알아?”

“갤러리에 갔다가 뵙게 됐어요. 같이 식사도 했고요.”

석주에게 대답한 세경이 카드를 열어보았다. 거기엔 오늘 드라마의 첫 방을 축하한다는 말과 다음에 또 같이 식사하자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두 분 다 반 관장님을 아시나 봐요?”

“태조 형수님이기도 하고, 그 전에 태조 형님이 여기 대표로 있었을 때 자주 뵙기도 했거든.”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카드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은 세경이 강 상무를 힐끗거렸다.


“꽃바구니 센스 없다고.”

“누가?”

소파로 다가온 태조가 묻자 지레 찔린 강 상무가 자신을 변호했다.


“아, 아니. 나는 다른 여자가 태조한테 꽃바구니를 선물한 줄 알고 그런 거지!”

“네가 그랬어? 형수님한테 그대로 전해줄게. 우현이가 형수님 센스 별로라 했다고.”

“야잇. 나 죽일 일 있냐? 와, 세경 씨 이러기 있어?”

강 상무가 퍽 억울한 얼굴로 세경을 쳐다보았다. 세경은 카드로 입가를 가린 채 쿡쿡 웃었다.


“나 세경 씨한테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저한테요? 뭔데요?”

“유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좀 들어보려 했더니.”

“아, 그거라면…….”

세경이 입을 열려 하자 강 상무가 한껏 삐죽인 입술로 태조를 가리켰다. 우선 제 억울함부터 풀어달라는 거였다.


“어……. 강 상무님 말대로예요. 이거 대표님한테 온 선물인 줄 알고, 꽃바구니 보낸 사람은 센스가 없다고 말한 거예요.”

재빨리 태세를 전환한 세경이 강 상무의 억울함을 풀어줬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 태조가 웃었다.


“상무님, 유나 저희 소속사로 영입하실 거예요?”

강 상무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던 세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현이 손끝으로 턱을 문질렀다.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그 친구한테 이야기는 하지 말고. 세경 씨 일에 선뜻 나서주는 거 보니까 사람이 의리도 있는 게 좋아 보였거든. 요즘 나온 방송 보니 끼도 충만해 보이고. 아, 이유나 씨 노래도 잘하지?”

“네. 팀에서 메인 보컬이기도 했으니까요.”

“아직도 그 실력 그대론가? 음색이 잘 맞으면 드라마 OST도 부르면 좋을 것 같아서. 아, 만약 계약하게 되면 진 엔터는 아니고 우리 이번에 새로 만든 레이블 소속으로 들어갈 거야. 예능인하고 가수는 그쪽에서 키우려고. 그렇다고 뭐, 진 엔터랑 완전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쪽은 태조보다는 내가 더 집중적으로 관리할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근데 우리가 하자고 해도 그쪽에서 거절하는 거 아닌가? 이유나 씨 다른 회사에서도 꽤 탐내고 있다며.”

“그렇긴 한데. 아직 딱 이렇다 할 곳은 찾지 못해서요.”

“아. 그럼 느긋하게 굴면 안 되겠네. 나 가 봐야겠다. 우리 팀하고도 이야기해 봐야지. 아, 세경 씨.”

자리에서 일어난 강 상무가 세경을 내려다보았다.


“네?”

“이번에 우리 워크숍 할 때 오나? 다른 사람들은 다 참석 여부를 들었는데, 세경 씨만 못 들어서.”

“저 그날 스케줄이 하나 있긴 한데…….”

말끝을 우물거린 세경이 태조를 슬쩍 쳐다보았다.


“드라마 촬영은 아니니까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스케줄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낮엔 직원들 워크숍이니까 일찍 올 필요는 없고, 시간 되면 저녁에 잠깐 얼굴이라도 비치고 가요.”

“그래. 나도 그날 촬영 끝내고 늦게 갈 거야.”

“석주 선배도 가세요?”

“응. 우현이도 늦게까지 남을 거고. 태조 너도 있을 거지?”

“상황 보고.”

“뭘 보고야. 친구 버리고 혼자 서울 갈 거냐? 너 그렇게 가면 중간에 차 펑크 난다.”

“악담을 해라.”

태조가 인상을 쓰자 강 상무가 옆에서 낄낄 웃었다. 그러면서 태조의 차 키는 제가 잘 숨겨 놓겠다며 걱정 말라고도 했다.


“세경 씨도 머리 식힐 겸 잠깐 왔다 가. 이럴 때 회사 사람들하고 인사도 하고 그러는 거지.”

강 상무가 재차 권하는 말에 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훈이도 작년에 못 가 아쉬워하던데. 저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래요. 그럼 그때 봅시다.”

우현이 인사를 하고 다급히 나가자, 석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경에게 말했다.


“음? 세경이 넌 안 가?”

“네? 아, 네. 저도 같이 나가…….”

“세경 씨는 잠깐 여기 있어. 할 말이 있으니까.”

태조가 너만 꺼지라는 듯 석주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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