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그 또라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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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 또라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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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 또라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2023.03.11.
충격을 받은 며느리의 모습에 방 여사가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그 사이 예령도 자신이 전송한 사진을 마 여사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엔 방 여사의 아들이 한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밀착한 두 남녀는 누가 봐도 가까운 연인 사이처럼 보였다. 문제는 사진 속 여자가 앞에 있는 방 여사의 며느리가 아니라는 거지만.
“이, 이게 뭐야? 반 관장,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남의 사진을 이렇게 막 함부로 찍어도 되는 건가!”
아들의 외도 장면이 낱낱이 까발려지자 방 여사가 방방 뛰며 난리를 쳤다.
“아, 얼굴은 모자이크라도 해드릴 걸 그랬나요? 근데 그러면 좀 범죄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뭐? 범죄자? 이, 이 무슨 무례한!”
“불쾌하셨어요? 어휴, 죄송해요. 저는 그냥 아드님이랑 며느님 사이가 걱정이 되어서요.”
흥분한 방 여사가 성을 내자, 사르르 웃은 예령이 그녀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아드님 단속 잘하세요. 아무리 손주 재롱이 보고 싶으셔도, 며느님 말고 다른 곳에서 보시면 평판상 좀 곤란하지 않겠어요? 간통죄가 폐지됐다 해도 우리나라 정서상 좀……. 게다가 며느님은 곧 출산까지 앞두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사돈댁에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 이이!”
방 여사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방 여사가 고개를 돌려 마 여사에게 소리쳤다.
“마 여사님! 며느리 좀 말려보시죠? 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교육? 여기서 우리 예령이한테 학력으로 명함 내밀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예령에게 핸드폰을 건네준 마 여사가 팔짱을 끼고 방 여사를 쏘아보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씩씩대는 게 독 오른 두꺼비가 따로 없었다.
‘흥,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우리 며느리를 건드려 가지고.’
방 여사가 도움을 청하듯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다들 시선을 피하기 급급할 뿐 그녀를 위해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박 여사, 뭐라고 좀…….”
“흠, 크흡.”
이 모임을 소개해 준 박 여사를 콕 집어 말했지만, 그녀 또한 엮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린 건 마찬가지였다.
“…….”
입술을 짓씹은 방 여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 여사는 부들부들 떠는 방 여사를 지나 그 옆에 있는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만삭의 여인이 안쓰럽긴 하지만. 어쩌겠어, 시모 복이 없는걸.
“며느님.”
마 여사의 부름에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단 여자가 몸을 움찔거렸다.
우아한 미소를 지은 마 여사가 방 여사의 며느리에게 훈훈한 덕담을 건넸다.
“이번에 꼭 순산하시길 빌어요.”
***
“죄송해요, 어머니.”
그림을 보고 있던 마 여사의 곁으로 예령이 다가왔다. 뒷짐을 지고 있던 마 여사는 예령을 한번 쳐다보곤 무심하게 물었다.
“뭐가?”
“제가 일을 크게 벌인 거요.”
마 여사와 눈을 마주친 예령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예령에게 덤볐다가 호되게 깨진 방 여사는 눈물을 쏟는 며느리와 일찌감치 자리를 뜬 상태였다.
“그게 뭐 큰일이라고.”
걸음을 옮긴 마 여사는 난간에 기대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전까지 차를 마셨던 미술관 1층 카페에선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있으나 간간이 예령의 이름이 들려오는 걸 보면 조금 전 일이 계속 회자 되는 듯했다.
“일을 더 크게 만들 거면 여기서 터트릴 게 아니라 언론사에 사진을 뿌렸어야지.”
마 여사가 부드럽게 입술을 늘였다. 저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아 더 무서웠다.
사진이 시모의 손에 있었다면, 아마 내일 아침 신문엔 유향 건설 장남의 불륜 스캔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리라.
역시, 어머님껜 함부로 덤비지 말아야지.
“그보다 넌 괜찮니?”
“네? 저요?”
마 여사가 지긋한 시선으로 예령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 방 여사가 했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냐 묻는 거였다.
“괜찮아요. 일부러 저랑 어머니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 그랬던 거 뻔히 아는데.”
“남들 말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이가 뭐 공장에서 뚝딱 나오는 물건인 줄 아니? 자기 아들 단속이나 잘하지, 쓸데없는 오지랖은. 쯧.”
방 여사가 망신을 당해 도망쳤음에도 화가 안 풀리는지, 혀를 찬 마 여사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
예령은 그런 시모를 보며 근질거리는 입술을 꽉 말아 물었다. 사실 방 여사가 마 여사의 속을 긁어댈 때부터 예령은 세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었다.
태조 도련님도 곧 결혼할 거라고. 게다가 우리 어머님도 곧 예쁜 손주 재롱을 보게 될 거라고.
‘그 아이가 아직 우리에게 찾아온 건 아니지만.’
씁쓸하게 웃은 예령이 제 배를 꾹 눌렀다. 그걸 본 마 여사가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그녀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음?”
그때 1층에 있던 한 여자가 마 여사를 올려다보았다. 이곳 화온 갤러리의 주인이자 마 여사의 오랜 친우인 임 여사였다.
“혜영아, 잠깐만.”
따로 이야기를 하자는 임 여사의 눈빛에 마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내려갔다 와야겠구나. 예령이 넌 여기 좀 둘러보고 있으렴.”
“네. 천천히 이야기하고 오세요, 어머니.”
예령은 계단을 내려가는 마 여사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시모의 곁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던 예령이 그림이나 감상할 겸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아우, 깜짝이야!”
소리도 없이 제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맞닥뜨린 예령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라셨어요?”
“어휴, 당연히 놀라지. 소영이 넌 왜 소리도 안 내고 내 뒤에 서 있어?”
“소리 냈어요. 언니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어서 몰랐던 거지.”
싱긋 웃은 소영이 예령의 옆에 나란히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아까 한 방 먹인 거 속 시원했어요.”
“그럼 뭐 해. 품위가 없는데. 아이 가진 사람에게 너무 가혹했나 싶기도 하고.”
“언니도 참. 전투에서 품위를 왜 찾아요? 승리만 하면 되지. 그리고 두 분은 이미 충분히 챙긴 거 같은데. 나 아까 마 여사님이 순산하라고 하는 말 듣고 살짝 소름 돋았잖아요. 그거 덕담이에요, 악담이에요?”
“반반이지 않을까?”
“내 귀엔 악담으로 들리던데? 아까 봤죠? 방 여사님이랑 그 며느리 얼굴 뻘게져서 나가는 거?”
“응. 나도 그거 보면서 좀 통쾌했지. 전부터 자꾸 나한테 애는 언제 가지냐고 속을 긁어댔거든. 근데 나 아까 좀 무서웠니?”
“왜요?”
“아니. 저기 사람들이.”
예령이 아래쪽에 있는 여자들을 가리켰다.
“나랑 눈을 마주치면 다 고개를 돌려버리네?”
“무섭다기보단 밉보이면 안 되겠다 싶었겠죠. 언니, 모임에서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잖아요. 조곤조곤 웃으면서 사람 말로 패는 거.”
“말로 팼다니. 너도 표현이 참.”
“그래도 저 중에 언니한테 고마운 사람도 있을 걸요? 방 여사님이 언니 말고도 여러 사람 괴롭혔거든요.”
“그랬어? 그건 몰랐네. 근데 넌 쫓겨난 거야? 두 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데?”
예령의 시선이 시모와 같이 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마 여사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소영의 모친이었다.
“모임에 관한 이야기일 거예요. 지금은 사람이 많아졌지만 원래 시작은 소규모였잖아요. 정말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만 모이던.”
“그렇다고 듣긴 했지.”
“근데 여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며 한두 명씩 데리고 왔던 게 늘어서 이렇게 많아진 거였죠. 엄마도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끼신 모양이에요.”
“…….”
“아, 그리고 저 저번에 여리 만났어요.”
여리의 이름이 나오자 예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디서?”
“어디겠어요. 여기, 한국이지.”
소영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오여리가 한국에 들어왔어? 언제?”
“몇 주 됐어요. 집에도 안 알리고 몰래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
“지금도 한국에 있고?”
“아니요. 다시 나갔어요. 하지만 곧 다 정리하고 돌아올 것 같더라고요.”
예령이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겼다. 6년 전 태조가 다치고 화가 난 마 여사가 여리에게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며 쫓아내긴 했지만, 그게 강제성을 띠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 고삐 풀린 망아지가 지금껏 태조의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게 용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제 와서 왜?”
“외국 생활도 슬슬 지겨워졌나 봐요. 6년 동안 해외에 있었으면 벌로 충분하지 않았냐고 하던데요?”
“그동안 반성이라도 한 건가? 시간도 꽤 흘렀으니 철없던 예전과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는데.”
“언니도 참. 사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요.”
“그 말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예령이 참담한 표정으로 묻자,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는 왜 그걸 나한테 말해줘? 오여리 친구면서.”
“오여리보단 언니하고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소영이 예령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냥 미리 이야기해 드리는 거예요. 예전 일도 있으니까. 어차피 여리가 들어온다고 막으실 수도 없잖아요.”
소영의 말대로였다. 6년 전엔 도피 목적으로 오여리가 자진해 떠났다지만, 지금은 돌아온다는 그녀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언제 돌아온다는 말은 들은 적 없고?”
“네. 그것까진 저도…….”
소영이 잘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밑에서 소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예령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또라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필 세경과 태조가 사귀고 있는 시기에 접하는 오여리의 소식이라니.
어쩐지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
지이이이잉.
식탁 위엔 둔 핸드폰이 벨소리와 함께 길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인을 확인한 태조가 젖은 머리를 털며 전화를 받았다.
“네. 형수님.”
- 도련님, 지난번에 보내준 사진 잘 썼어요.
“사진?”
태조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자 예령이 말했다.
- 유향 건설 장남 사진이요. 호텔에서 찍은 거.
“아아, 그거.”
저번에 연수원 대관 건으로 윤조와 만나 저녁을 먹었을 때였다.
형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가족과 관련된 것이 되었고, 지난달 모임에 나갔다 돌아온 예령이 유향 건설의 사모님 때문에 굉장히 분노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가 옆에 계셨다면 가만히 듣고 있진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형수님이 혼자 있을 때를 노리고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이 지났을까.
외부 미팅 건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던 한 호텔에서 태조는 유향 건설의 장남을 보았다.
남자의 곁에는 한 여자가 같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임신했다는 부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몇 장 찍어 예령에게 보냈었는데…….
“그 사진 뭐에 썼는데요?”
- 방 여사님을 한 방 먹이는 데 썼죠. 내가 그걸 어떻게 썼냐면…….
“아뇨. 거기까지만 들을게요. 유용하게 썼으면 됐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설마 사진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닐 테고.”
- 오여리 때문에요.
예령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태조의 미간이 단박에 좁아졌다.
“오여리가 왜요?”
- 얼마 전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대요. 도련님도 몰랐죠?
“네.”
- 다행히 도련님을 찾아간 건 아닌가 보네. 나도 오늘 들었는데 조만간 한국에 완전히 들어올 생각인가 봐요.
오여리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언제 말입니까?”
- 그것까진 몰라요. 그래도 일단 도련님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전과는 좀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난 그 여자 좀 싫더라고. 묘하게 도련님이나 윤조 씨한테 집착하고 그랬잖아.
“어머니가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 의지할 데가 따로 없어 그랬죠. 설마 지금도 그러겠어요?”
- 모르죠. 워낙 상식 밖의 인간이라. 괜한 걱정이면 좋겠는데, 그냥 감이 좋지 않네요. 아무튼 혹시라도 오여리가 찾아오면 세경 씨랑 마주치지 않게 해요.
“그러죠.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형수님.”
- 별말씀을. 쉬어요.
담백하게 인사를 한 예령이 전화를 끊었다.
“…….”
태조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상처를 매만졌다. 찢어진 피부는 다 아물어 약간의 흉터만 남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