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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열애 소문 (66/100)


66. 열애 소문
2023.03.18.



 


“다들 세경 씨 연애 상대가 궁금한가 보네.”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사람들이 흩어지자 공 작가가 말했다. 세경은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옆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세경에게 술잔을 내밀며 질문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어느새 옆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임신 중이라 술을 못 마시는 세경을 배려해 중간에 끼어든 차 피디가 저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준 덕분이었다.


“그러게요. 다른 사람들이 연애하는 거랑 별다를 건 없는데. 저렇게 궁금해 할 줄은 몰랐네요.”

굳이 긍정하지 않아도 동료들은 이미 세경의 연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그녀의 남자친구가 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거였다.

다만 어디서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건지 세경에게 확인차 묻는 태조에 대한 정보는 일관성이 없었다.

누군가는 연예인이 아니냐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젊은 사업가 혹은 연하남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아까 식당으로 들어올 때 저를 잡았던 기자는 자신의 열애 상대가 재력가가 아니냐 묻기도 했었고.


“대체 소문이 어떻게 난 걸까요?”

“알려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그냥 떠들어 댄 거겠죠. 그 중에 뭐 하나 걸려라 이런 심보로. 나도 세경 씨 커플링 기사 나고서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 많이 받았어요. 혹시 누군지 아냐고.”

공 작가가 살짝 어깨를 들썩였다. 오늘 세경 씨 남자친구가 비연예인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겠다면서.


“아직 보도 자료를 안 낸 건 드라마가 안 끝나서 그래요?”

“네. 드라마 끝나면 기사가 나가긴 할 거예요.”

“요즘은 연예인들 연애하는 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던데. 그냥 기사 내보내지 그랬어요?”

“드라마가 딱 절정에 이르는 부분이라. 한창 몰입해서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급한 것도 아니고 해서 잠시 미뤄둔 거예요. 게다가 어차피 기사 안 내도 저 연애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잖아요.”

세경이 옆 테이블을 눈짓했다. 공 작가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선선히 동의했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래도 다행이에요. 기사 난 게 세경 씨 열애설이라서.”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린 공 작가 잔을 들었다. 세경도 음료수 잔을 들어 공 작가와 잔을 부딪쳤다.


“세경 씨 결혼하면 우리도 청첩장 줘야 해요.”

“그럴게요. 올해는 무리겠지만.”

“에? 세경 씨 결혼해요?”

차 피디의 옆에 있던 여배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 세경에게 연애하냐고 물었던 그 동료 배우였다. 그새 술을 많이 마셨는지, 그녀의 두 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어이구, 귀도 밝네. 나중에 하겠지. 세경 씨도 애인이 있는데.”

“그럼 나도나도. 결혼하면 나도 청첩장 줘요오!”

“때 되면 세경 씨가 알아서 챙겨주겠지. 아니, 누가 지현 씨한테 폭탄주 말아줬어? 벌써 취했잖아.”

차 피디의 호통에 그 앞에서 소맥을 말고 있던 동료 배우가 몸을 움찔거렸다.


“강수, 너냐?”

“저는 제조만 했을 뿐. 가져가 먹은 건 지현 씨라구요.”

제 탓은 아니라고 발뺌한 강수가 맥주와 소주병을 팔에 끼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

세경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웃음을 터트렸다. 종방연은 드라마를 촬영할 때만큼이나 유쾌하고 웃음이 넘쳤다.

우웅-.

그렇게 종방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테이블에 엎어 놓았던 핸드폰이 잘게 몸을 떨었다.

세경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직도 종방연 중?]

태조에게서 온 문자였다. 세경은 곧장 키패드를 눌러 답장을 썼다.


[네. 고깃집이에요. 대표님은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세경이 좌측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자신을 보며 히죽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후, 애인이랑 연락하나 봐. 감독님 우리 슬슬 자리 옮겨요. 보내줄 사람은 보내주고요.”

“그럴까? 다들 배부르게 먹었나? 고기 더 먹을 사람?”

차 피디가 테이블을 쭉 둘러보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마지막 테이블에 남아 있던 불판의 고기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다 먹은 거 같으니 슬슬 일어납시다.”

제작팀의 막내 스태프가 2차 장소를 물색해 오자, 차 피다가 손뼉을 치며 자리를 정리했다.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짐을 챙겨 움직였다. 1층으로 내려가자 자연스럽게 2차를 갈 사람들과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나누어졌다.


“세경 씨는 집으로 가지?”

“네.”

차 피디의 말에 세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술을 마시지도 못하니 2차를 간다 해도 멀뚱히 자리만 지키고 있을 터였다.

그때 먼저 나가 바깥의 상황을 살피고 온 신 매니저가 세경에게 다가왔다.


“누나, 여기 앞에 기자들이 몇 분 남아 계셔서요. 제가 이 앞으로 차 가지고 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차 가지고 올 거면 요 앞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보내야겠네. 어떻게, 공 작가가 사람들 데리고 2차 장소로 가 있을래?”

차 피디의 말에 공 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세경 씨 가는 거 보고 움직일게. 조감독한테 이야기해서 먼저 이동하라고 해. 세경 씨도 가기 전에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그럴게요.”

세경이 공 작가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2차 장소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주차장으로 간 제훈이 식당 앞으로 차를 끌고 왔다.


“들어가요, 세경 씨.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볼지 모르겠네.”

“따로 날 잡아서 식사 한번 해요. 아니면 새 작품 쓰실 때 보여주셔도 되고요.”

아쉬워하는 공 작가를 향해 세경이 웃었다.


“그래요. 내가 다음에 연락할게요.”

“나도. 새 작품 하면 세경 씨한테 한번 연락할게. 다음에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고.”

“네.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공 작가와 차 피디에게 인사를 한 세경이 밴에 올랐다. 차창을 내린 제훈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누나, 어디 따로 들르실 데 없죠?”

제훈이 룸미러를 통해 세경과 눈을 마주쳤다.


“응. 바로 집으로 가면 돼.”

세경의 대답에 제훈이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녀는 태조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곤 앞 좌석을 힐끔거렸다.

분명 제훈도 기사를 보고 고깃집에서 제 연애 상대를 묻던 동료 배우의 말을 들었을 텐데. 그는 궁금한 게 따로 없는지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뭘 알고 있는 건가?’

송 실장이 무슨 언질이라도 해준 걸까? 아니면 그 총무팀 직원에게 두 사람이 사귄다는 말을 들었다거나.


“누나.”

“어?”

몇 가지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있는 사이, 차는 어느새 세경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가방을 챙겨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가 제훈을 마주 보았다.


“오늘 고생했어.”

“누나도요.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여상하게 인사를 건넨 제훈이 다시 핸들을 잡았다. 세경은 차가 출발하기 전 그를 다시 불렀다.


“제훈아.”

“네?”

“너는 안 궁금해? 나랑 사귀는 사람.”

세경의 직구에 오히려 제훈이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어, 궁금하긴 한데…….”

“…….”

“누군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안다고?”

세경이 되묻자 제훈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세경에게 속닥거렸다.


“누나랑 사귀는 분, 진 대표님 아니에요?”

제훈의 입에서 단박에 정답이 나오자 세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걸 어떻게……. 누구한테 들었어?”

“누구한테 들은 건 아니구요. 누나 커플링 기사 나오고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최근 누나랑 대표님 동선이 자주 겹치는 거 같더라고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누나 어머니 오셨을 때? 제주도로 내려가시는 날 대표님이 공항까지 바래다주신다며 일부러 오셨잖아요.”

“그때부터 눈치챘다고?”

“아뇨.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어요.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어머니를 공항까지 모셔다드리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누나 드라마 제작 발표회 때도 찾아 오시고.”

“근데 왜 안 물어봤어? 확인차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때가 되면 알아서 말해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냥 기다린 거죠, 뭐.”

제훈이 세경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제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니.

믿음직한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쩐지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다 알면서도 말없이 저를 챙겨준 게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제야 그에게 말해준 게 미안하기도 했다.


“눈치도 빠르긴. 고마워.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줘서.”

“에이, 누나 매니저로 당연한 거죠. 아직 날 추워요, 들어가세요, 누나.”

“너도 운전 조심하고.”

고개를 끄덕인 제훈이 차를 돌려 나갔다. 그녀는 밴이 정문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언제 왔어요?”

세경이 빌라동 출입구 앞에 서 있는 태조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조금 전에. 매니저랑은 무슨 이야길 한 거야?”

“내 애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냐고요. 종방연에서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그런데도 제훈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제가 먼저 선수 쳤어요.”

“그래서 나라고 말했어?”

태조의 말에 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신 매니저가 뭐래?”

“예상하고 있었대요. 대표님이 너무 나랑 자주 있어서.”

세경에게 다가온 태조가 그녀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음?”

딱딱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에서 부딪치자 그녀가 맞잡은 손을 들어 보였다.

태조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 찾았어요?”

“어. 그런데 이건 어디서 긁힌 거야?”

태조가 세경의 손등에 난 붉은 흔적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 것처럼 꼬리가 긴 상처는 아까 식당 앞에서 기자에게 잡힌 손을 빼냈을 때 생긴 거였다.


“별거 아니에요. 기자한테 잡힌 손을 빼내다가 손톱에 긁힌 거예요.”

상처가 난 손등을 툭툭 턴 세경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바쁘세요? 바로 집으로 갈 건 아니죠?”

“잠깐 얼굴만 보러 온 거긴 한데.”

태조가 세경의 손등 위로 살짝 입술을 눌렀다.


 


“내일 아침에 갈까?”

“그러면 좋구요.”

태조의 맘이 바뀔세라, 세경이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

오전에 인터뷰 하나를 마치고, 소속사에 들렀던 세경은 송 실장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쫑긋 묶고 식탁에 올려놓은 택배 상자를 뜯었다. 감귤즙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손이 큰 정란은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사서 챙겨 보냈다.


“뭘 또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

감귤 팩 두 개를 잘라 컵에 따른 세경은 스티로폼 상자를 열었다. 거기엔 먹기 좋게 소분해 놓은 구이용 흑돼지와 그에 곁들어 먹으라는 듯 명이나물 같은 밑반찬들이 담겨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훈이한테 와서 좀 가지고 가라고 할걸.”

세경은 반찬과 고기를 따로 챙겨두고 제훈에게 연락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와서 고기를 가져가라고 했더니, 그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퇴근 후에 가겠다 대답했다.


“정리는 이쯤이면 된 거 같고.”

냉장고에 음식을 차곡차곡 정리한 뒤, 세경은 감귤즙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테이블에 종이를 올려두고 펜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뭐라고 써야 하지?”

입술을 뾰족하게 내민 세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송 실장은 세경의 열애 사실은 보도 자료로 대체할 테지만, 결혼이나 임신 소식은 손글씨로 써서 팬들에게 직접 알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펜을 들긴 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 하니 당최 어디서부터 운을 떼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백지가 그냥 제 머릿속 같기도 하고.


“일단 인사말부터 써야겠지? 그리고 드라마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단 말도 쓰고.”

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다 쓰기로 했다. 세경은 동글동글한 글씨로 빈 종이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하며 썼다 지우길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세경의 핸드폰이 울리며 심 원장의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네, 원장님.”

- 뭐 해요, 세경 씨? 지금 밖이에요?

“아뇨. 집이에요.”

- 아, 오늘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 2차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할 시기가 와서. 시간 나면 채혈도 하고 앙꼬 성별도 한번 확인할까 하고요.

“음, 잠깐만요. 내일은 안 될 것 같고. 모레는 어때요? 시간은 3시쯤이 좋을 것 같은데.”

- 그래요. 내가 그날 시간 비워둘게요. 중간에 일정 바뀌면 연락주고요.

“네. 그럼 그때 봬요.”

전화를 끊은 세경이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앙꼬의 성별이라. 태몽이 호랑이라서 남자아이일 것 같긴 한데.


“우리 앙꼬는 딸일까 아들일까?”

둘 중 무엇이든 예쁘겠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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