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 아들의 여자 (71/100)


71. 아들의 여자
2023.04.05.


마 여사의 손이 소파 팔걸이를 두드렸다. 다른 손에는 JK 그룹의 홍보 팀장이 보내온 서류가 들려 있었다.


“하아, 정말…….”

한숨을 쉰 그녀는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오전부터 핸드폰이 불이 난 듯 울리더니 전화를 하는 이들마다 다들 제게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태조가 곧 결혼을 하느냐는 둥, 정말 그 여배우가 태조의 아이를 가진 게 맞느냐는 둥.

한가로이 차를 마시다 전화를 받았던 마 여사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뭘 잘못 먹었나.

어디서 이상한 지라시라도 본 듯했다. 가뜩이나 태조 녀석이 선 자리도 마다하고 있는데 사람 속을 긁기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마 여사가 그 모든 걸 헛소문으로 치부하려는 순간이었다.


- 아직 기사 못 봤어? 윤세경의 결혼 상대가 J 그룹의 차남이라며. 엔터 사업도 겸한다고 하던데. 그거 네 아들 아니야?

 
소문의 진원지가 기사라는 말에 전화를 끊은 마 여사는 제일 먼저 윤세경의 이름부터 검색했다.

윤세경에 대한 기사는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헤드라인엔 주로 윤세경 결혼 임박, 임신이란 단어가 따라붙었고, 기사 말미엔 그녀의 결혼 상대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J 그룹의 차남이라는 정보가 덧붙여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J 그룹의 차남.

딱 태조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여태 제게 결혼은커녕 만나고 있는 여자가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보가 아닐까 싶어 마 여사는 기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

얼굴이 선명히 나오진 않았지만, 33년을 키운 아들의 모습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사진 속 남자는 태조가 맞았다. 게다가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재작년 마 여사가 아들의 생일 선물로 직접 주문한 것이기도 했다.


“세상에.”

윤세경과 같이 찍힌 사람이 태조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JK 그룹의 홍보 책임자이자 오너가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 팀장에게 연락했다.

그도 세경의 결혼 상대가 태조라는 기사를 접하곤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 사모님, 안 그래도 지금 막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윤세경 씨가 결혼한다는 그 상대가 정말…… 진태조 대표가 맞습니까?

그거야말로 자신이 묻고 싶은 거였다.

박 팀장은 그 기사가 난 뒤 홍보팀에 쉴 새 없이 전화가 온다며, 회장님과 진윤조 사장에게 물어봐도 확실히 나오는 답이 없어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고 했다.


- 사모님, 진태조 대표하고 연락은 해보셨습니까?

“전화는 해봤는데, 통화가 안 돼. 태조 핸드폰도 회사도 다 통화 중이야. 일단 언론 쪽엔 태조가 지금 JK 그룹 소속이 아니라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요. 오너가의 사생활이라 나중에 그쪽의 입장을 전달하게 된다면, 그때 보도 자료를 보내주겠다 하고.”

-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세경 씨에 대한 정보도 나한테 보내줬으면 하는데.”

- 예. 지금 추리고 있으니 정리되는 대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박 팀장에게 요청한 자료가 지금 제 손에 있었다.

마 여사는 서류를 넘기다 윤세경의 드라마 출연작과 함께 근래 난 커플링 기사를 발견했다. 그 반지가 로젤에서 구입한 거라는 말이 돈다는 것도.


“로젤?”

마 여사의 눈이 작게 들썩였다.

저번에 로젤에 방문했을 때 그 앞에 기자들이 깔려 있었다. 성 매니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물었더니 윤세경이란 배우가 로젤의 상품을 착용해서 저런 거라고.


“분명 그때 반지를 사 간 사람이…….”

남자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의아한 얼굴로 제게 뭔가를 물으려고 했었지.


“여사님, 혹시 아드님이…….”

 
태조가 준 선물을 잘 받았냐고 했던가?

그 말을 하기 전, 잠시 뜸을 들이며 화제를 돌리는 듯한 느낌도 받았는데.

확인도 할 겸 핸드폰을 든 마 여사가 성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안녕하세요, 마 여사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응. 거긴 요즘 별일 없어? 저번엔 숍 앞에 기자들이 깔려 있었잖아.”

- 아, 요즘은 안 그래요.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저희 숍에 방문하시려고요?

“아니. 오늘은 성 매니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 제게요? 어떤 걸…….

“혹시 우리 태조가 거기서 커플링을 사 갔어?”

- 네?

성 매니저의 목소리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윤세경 씨가 꼈다는 그 커플링 말이야. 그거 우리 태조가 사 갔냐고.”

- 아, 윤세경 씨 커플링 말이죠.

“…….”

- ……네, 맞아요. 둘째 아드님이 사 가셨어요.

마 여사의 침묵에 성 매니저가 순순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근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 어휴, 저도 사모님이 모르시는 건가 싶어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뭔가 말하기 곤란한 듯 성 매니저가 머뭇거리자, 마 여사가 선수를 쳤다.


“혹시 예령이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어?”

정답인지 반대편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 예. 작은 사모님이 잠시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어요.

예령이 이 녀석이 진짜!


“일단 알았어.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할게.”

마 여사는 전화를 끊고 세경의 서류를 살폈다. 결혼이니 뭐니 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임신이라는 단어가 유독 더 눈에 밟혔다.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태조의 번호를 찾았다. 이번엔 통화 중이라는 안내 음성 대신 연결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태조가 전화를 받았을 때.


- 네, 어머니.

“너 집으로 좀 와. 할 말이 있으니까.”

냉랭하게 쏘아붙인 마 여사가 태조와 세경이 함께 찍힌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

세경이 불안한 듯 집 안을 서성거렸다. 핸드폰을 들었다 놓기를 수십 번.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했다.

연예면에는 세경의 결혼설과 임신설, 그리고 SNS에 올린 세경의 손 편지에 관한 기사들이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과 관련된 기사들이 연예면에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세경의 결혼설 상대가 JK 그룹의 차남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경제면에도 그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JK 그룹 홍보팀에 사실 여부를 문의해 봤으나,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세경은 조금씩 화면을 내려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 얘들 결혼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 이런 거까지 기사로 봐야 함? 그리고 이게 왜 경제면에 있냐! 연예면으로 가야지!

┗ 우왕, 축하해요! 예쁘게 사세요!

┗ 드라마에서 흥수 버리고 떠나더니, 딴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있어서였네. ㅋㅋ

┗ 윗분 드라마에 너무 과몰입 하신 듯. 근데 윤세경이 좀 아깝지 않나? 요즘 드라마도 떠서 잘 나가고 있는데. 임신했으면 당장 차기작도 못 하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는데. 애 때문에 황금 노를 놓치게 생겼네.

┗ JK 그룹 둘째 며느리 되면 연옌 활동 때려치워도 됨. 근데 이거 냄새가 나지 않음? 윤세경이 임신했다고 남자 발목 잡은 거 같은데. 순진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행동이라……. 결국 얘도 돈 보고 남자 고른 거.

비수 같은 단어들이 심장에 박혔다. 가벼운 현기증에 몸을 비틀거린 세경이 중심을 다잡으며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댓글 창을 확인했다.

세경의 임신 소식에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요즘 같은 때 누가 혼전임신으로 뭐라 하냐며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세경과 태조의 행실을 조롱하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진 게 이렇게나 비난받을 일이었나?

모든 사람이 제 임신을 축하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가시 돋친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태조도 앙꼬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일 뿐인데.

왜 자신과 엮였다는 것만으로 저들에게 저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하는 거지?


“…….”

울컥한 마음에 목구멍이 꽉 메여왔다. 뜨거워진 눈시울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세경은 손부채질을 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말려보려 애를 썼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아 눈물을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걸로 속상해하면 안 돼. 나는 이제 엄마고 지켜야 할 아이도 있으니까. 저런 말에 괜히 휘둘려서 주눅 들고 울면 안 된다고.”

마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인 양, 마음을 다잡은 세경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린 세경이 경계를 선 미어캣처럼 목을 쭉 뺐다.

혹시 기자가 집 앞까지 들어온 건가 싶어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인터폰 앞으로 걸어갔다.


“어? 송 실장님이랑 제훈이잖아?”

모니터에 뜬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세경이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주자 활짝 웃은 송 실장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세경 씨! 나 세경 씨 집은 처음 와 봐요. 누구 있어요? 우리 들어가도 돼요?”

“아, 네. 들어오세요.”

세경이 옆으로 물러서자 두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송 실장은 세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한쪽 눈썹을 들썩거렸다.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있었어요.”

“기사 검색해서 댓글 보고 그런 건 아니고요?”

“…….”

아니라고 부정도 못 한 세경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휴, 거짓말도 못 하네.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찾아온 거지. 세경 씨 밥 먹었어요? 오면서 덮밥 좀 포장해 왔는데.”

“아니요. 근데 갑자기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회사 바쁜 거 아니었어요?”

“바쁘긴 한데 그건 강 상무님이랑 대표님이 뒤처리하신다고 했구. 우린 대표님이 보내서 온 거예요. 세경 씨 걱정된다고. 또 분명 기사 보면서 우울해하고 있을 거라면서 집에 가서 정신없게 해달라던데요?”

주방으로 들어간 송 실장이 식탁 위에 포장해 온 음식들을 꺼내놓았다.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세경의 음식만 따로 덜어 준 송 실장이 어서 먹으라며 손을 까닥거렸다.

고기와 밥을 비벼 한 수저 뜬 세경이 맞은편에 앉은 제훈과 눈이 마주쳤다. 밥과 고기를 꼭꼭 씹어 목구멍에 넘긴 그녀가 제훈에게 물었다.


“놀랐어? 나 임신했다는 말 듣고?”

태조와 사귄다는 걸 알려주긴 했지만, 임신한 사실까지 털어놓진 않았던 터다. 또르륵 눈을 굴린 제훈이 고개를 한번 주억거렸다.


“네. 조금요.”

“나랑 대표님 사귀는 건 눈치챘으면서? 나 커피도 안 마시고, 음식도 잘 못 먹었잖아.”

“그거야 누나 입맛이 좀 변한 거라 생각했지, 그게 아이를 가져서 그런 거라곤…….”

“신 매니저가 그쪽으로 쉽게 연결을 시키진 못했겠지. 아직 애인도 없는 거 같은데.”

“아잇, 송 실장님!”

왜 아픈 곳을 건드리시냐며 제훈이 우는 척을 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송 실장이 옆에 앉은 세경을 돌아보았다.


“참, 나 세경 씨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떤 거요?”

“오전에 나한테 손 편지 보냈던 거 있잖아요. 이번에 다시 쓴 거. 거기 내용 진짜예요?”

“아, 그거…….”

세경의 볼이 부끄러움에 살짝 붉어졌다.

기사가 터지고 나서, 송 실장은 이전에 써놓은 세경의 손 편지를 바로 그녀의 공식 SNS에 올리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전에 쓴 편지는 이번 기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기엔 조금 부족해 보였다.

그때는 태조의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그에 대한 언급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할 생각이 있으며, 이르게 아이가 찾아왔다는 건조한 내용만 담겼을 뿐이지.

그래서 세경은 이번에 다시 편지를 쓸 때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다 털어놓았다.

태조를 언제 어디서 만났으며, 처음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를 쭈욱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문 배우님을 중간에 껴놓는다고 해서 그냥 지어낸 건 줄 알았는데. 정말 우리 대표님을 문 배우님하고 같이 촬영할 때 만난 거예요?”

“네.”

“그때부터 첫눈에 반한 거고?”

세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그 내용 어디서 들었는데. 혹시 대표님이 그분이에요? 유나 누님이 말했던 그 첫사랑?”

“뭐? 첫사랑?”

이건 또 무슨 로맨틱한 소리냐며 송 실장이 옆에서 돌고래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그렇게 오래 좋아했으면서 왜 고백을 일찌감치 안 했어요?”

“대표님한테 고백한 여배우들은 다 차였다면서요.”

세경의 대답에 송 실장이 뒤늦게 기억났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내리쳤다.


“아. 그랬네. 세경 씨랑 사귀고 있으니까 그 사실을 깜빡했어.”

송 실장이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거리자 세경이 웃었다.


“그런데요.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요? 저 임신한 거 말이에요.”

시무룩하게 입을 연 세경이 앞에 있는 제훈을 바라보았다. 그가 몸을 움찔하더니 세경의 시선을 피해 송 실장을 돌아보았다.


“……?”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세경이 송 실장을 쳐다보았다.


“뭐예요? 두 사람 뭐 알고 있는 거 있어요?”

눈을 감은 송 실장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대표님이 말하지 말라고 단속한 건 아니었지만, 이걸 말해도 되는 건지.


“그게…….”

한숨을 쉰 송 실장이 신 매니저를 힐끗거리다 입을 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