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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후회할 거라고. (83/100)


83. 후회할 거라고.
2023.05.17.


강원도로 떠나기 전, 세경은 심 원장의 병원에 들러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앙꼬를 가지고 떠나는 첫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괜히 불안해진 탓이었다.

심 원장은 여행하는 데 무리는 없으나, 지금부터는 급격히 체중이 불어나는 시기니 식단을 조절하라고 했다.

세경은 그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석주 선배가 수육에 대게찜, 그리고 대게 라면까지 맛있는 걸 많이 해주겠다고 했는데, 먹는 걸 줄이라니.

나름 조절을 하겠다고 말한 세경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밴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훈은 세경이 걸어오자 그녀가 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누나, 의사 쌤이 뭐라세요? 여행하는 데 문제는 없대요?”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소를 찍어 넣은 제훈이 세경에게 물었다.


“응. 괜찮대. 먹는 건 좀 조절하랬지만.”

“오늘 먹는 건 괜찮을 거예요. 대게 같은 건 살도 안 찌잖아요.”

너스레를 떤 제훈이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에 따라 차를 몰았다. 가볍게 숨을 몰아쉰 세경은 시트에 몸을 기댔다.


“도착까지 2시간이 좀 넘으니까 피곤하시면 한숨 주무세요.”

룸미러로 눈을 맞춘 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저 병원 갔다가 지금 출발해요.]

태조에게 문자를 보내자 답은 금방 돌아왔다. 세경은 대략적인 출발시간을 보내온 태조의 문자를 확인하고 제훈에게 말했다.


“제훈이 너는 오늘 어떻게 할 거야? 근처에 숙소 하나 잡아줄 테니 하룻밤 묵고 갈래?”

“대표님은 언제 오시는데요?”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출발하신대.”

“아, 여섯 시에 출발하시면 차가 많이 막힐 텐데. 저는 상황 보고 결정할게요. 거기에 다른 매니저 형들도 있으니까 한번 이야기해 보고요.”

“그래. 결정하면 말해주고.”

다시 핸드폰을 든 세경은 강원도 맛집과 명소들을 검색해 보았다.

태조는 호텔 대신 사촌이 소유한 세컨드 하우스 하나를 빌렸다고 했다. 그래서 장소는 구애받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찾으라고.

세경은 손가락을 놀려 맛집과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았다. 유명하다는 사찰과 해수욕장도 몇 군데 추려놓고 잠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햇빛에 산란하는 한강의 물결이 눈부셨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을 떠나, 차는 이내 양양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창밖의 풍경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 대신 녹음으로 물든 산중으로 변하자, 세경이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몇 가지 뉴스를 훑어본 뒤 그녀는 연예면으로 화면을 넘겼다.

일부러 흘린 건지, 어디서 새어나간 건지 석주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세경이 나온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빠르게 훑어본 그녀는 다른 기사들도 클릭했다. 그러다 헤드라인에 적힌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손을 멈칫거렸다.

- 오여리, 찐 재벌가의 럭셔리 라이프는 이런 것?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오여리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방송을 탄 모양이었다.

세경은 기사를 클릭해 내용을 읽어보았다.

오여리가 출연한 프로그램은 성공한 여성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의 삶과 사랑 우정 등의 이야기를 다룬 리얼 라이프 관찰 예능이었다.

프로그램엔 4명의 일반인이 출연하는데 그 중 오여리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이었다.

다른 출연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을 한 사람인 데 반해 오여리는 그 결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부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거였다. 그러다 보니 자기 분야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다른 출연자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송 관계자들도, 오여리도 그런 비난을 감수하는 듯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으니까.

세경은 사진 속 오여리의 사진을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떠들썩하니 태조도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터.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세경은 저를 보던 오여리의 눈빛을 떠올리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태블릿으로 기사를 훑던 우현이 인상을 썼다. 보고 싶지 않은데 오여리에 대한 기사가 징글징글하게 연예면에 올라오고 있었다.


“봤냐, 이거?”

우현은 오여리가 나온 프로그램을 가리키며 태조에게 물었다.


“아니.”

“난 아까 나오길래 잠깐 봤는데, 욕먹을 만하더라. 다른 출연자들은 자기 일을 하는 모습도 보여주거든. 근데 오여리는 그런 게 없어. 하루 종일 쇼핑하고, 마사지 받고, 골프치는 모습만 보여주더라.”

그러다 보니 돈을 물 쓰듯 쓰는 오여리를 보며, 프로그램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냐, 피디가 돈을 받았냐 하는 등의 말이 돌고 있었다.

반면 오여리를 옹호하는 쪽은 자기 돈을 쓰는데 무슨 말이 많냐며, 오히려 돈 걱정 없이 쇼핑하는 것이 부럽다고, 대리 만족을 한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너네 어머니는 아시냐? 오여리 들어온 거. 너 다쳤을 때 마 여사님이 엄청 화내셨잖아.”

우현이 태조의 이마를 힐끗거렸다.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는 태조를 떠올릴 때면 그는 지금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배우를 하고 싶다며,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찾아왔던 여리는 윤조에게 사정사정해 계약까지 마쳤지만, 실상 연예계 활동엔 큰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관심은 연기보단 윤조나 태조에게 쏠려 있었다.

특히나 태조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간혹 비이성적이다 싶을 만큼 과해 보일 때가 있었다.

간혹 태조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괜히 시비를 걸거나 못살게 굴기도 했고, 다른 배우들을 케어하느라 태조가 본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때면 꼭 사고를 쳐서 태조가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촬영을 앞둔 오여리가 새벽까지 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않자, 매니저의 연락을 받고 태조가 움직인 거였다.

그러다 술에 취한 미친놈한테 걸려 머리가 깨진 거였고.

뒤늦게 연락을 받고 오여리가 있다는 술집에 도착했을 때, 우현은 머리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는 태조를 보고 저 녀석이 죽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에 찾아온 마 여사도 셔츠 한쪽이 피로 물든 태조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오여리는 제 잘못이 없다는 듯 뻔뻔하게 굴었다.


“글쎄. 어머니가 즐겨보실 만한 프로그램은 아니라서. 기사를 보신다면 알게 되겠지.”

“방송에 나오는 거 보니 그렇게 변한 것 같지도 않더라. 그나마 다행이지 않냐? 세경 씨가 요즘 활동이 적은 게. 혹시라도 오여리랑 방송국에서 마주쳤어 봐. 걔가 가만있진 않았을 거 같은데.”

태조가 별다른 대꾸 없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석주에게 세경이 강원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던 터였다. 곰 같은 녀석이 옆에 있어 든든하긴 한데, 왜 이렇게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건지.


“우현아, 나 오늘은 좀 일찍 퇴근을…….”

태조가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강 상무가 들어오라 하자, 난감한 얼굴을 한 송 실장이 문틈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저…… 죄송하지만 강 상무님이나 대표님이 잠깐 나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제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영 말이 안 통해서요.”

“응?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네. 1층에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다음에 약속을 잡고 오시라고 해도, 대표님을 보기 전까진 가지 않겠다고 해서…….”

그 불청객에게 한참을 시달린 듯, 송 실장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도대체 어떤 진상이 와서 저러나 싶어 강 상무가 몸을 일으켰다.


“누가 왔는데요?”

“그게…….”

질문은 우현이 했지만, 송 실장은 태조를 보며 대답했다.


“오여리 씨가 찾아왔습니다.”

 

***

미친 망아지가 빨간색 말을 타고 왔다.

우현은 차 보닛에 붙은 말 엠블럼을 보며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염치 따위가 있을 리 없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그는 과거의 자신을 비웃었다.

염치가 있으면 오지 않을 거라고? 잠시나마 오여리에게 그런 게 있을 거라 생각한 자신이 아주 등신이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뻔뻔함을 가진 인간인데. 부끄러운 마음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오빠.”

바깥에서 보안 요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오여리가 태조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러곤 말릴 새도 없이 이쪽으로 달려와 태조의 팔에 매달렸다.


“어? 이게 누구야? 강 실장도 오랜만에 보네요.”

생긋 웃은 오여리가 아는 척을 해왔다. 우현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정정했다.


“강 실장이 아니라 강 상무.”

“…….”

물론 오여리는 들은 체도 안 했지만.


“여긴 무슨 일이야?”

태조가 제 팔에 매달린 오여리의 손을 떼어냈다. 그가 저를 밀어내자 오여리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무슨 일이겠어. 귀국했으니 오빠도 보고, 인사도 하러 온 거지. 근데 계속 저 사람이 안 들여 보내주잖아.”

오여리가 자신의 출입을 막은 보안 요원과 송 실장을 노려보았다. 태조는 제 눈치를 보는 보안 요원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건 당연한 거지. 네가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니고. 사전에 약속을 잡고 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들여보내 주겠어.”

“진짜 섭섭하게 이럴 거야? 내가 남도 아니고.”

“누가 봐도 남 맞는데.”

강 상무가 옆에서 얄밉게 쏘아붙였다. 인상을 쓴 여리가 못마땅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보다 나 계속 이렇게 세워둘 거야? 나 오빠한테 할 말도 있는데.”

여리가 욱하는 마음을 눌러 삼키며 태조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다면 여기서 하라는 듯, 태조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말하긴 좀 그래. 나 오늘 이대로 돌려보내면 내일 또 올 거야.”

오여리의 말에 우현이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우, 그냥 좀 빨리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말로 오여리를 쫓아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우현은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보곤 태조에게 속삭였다.


“야, 일단 자리는 옮기는 게 좋겠다.”

우현이 저길 보라는 듯 길 건너편을 턱짓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엔 오여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따라와.”

태조가 마지못해 돌아서자 여리가 그의 뒤를 쫓아갔다. 1층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간 그는 아무 데나 앉으라며 빈 자리를 가리켰다.


“손님한테 차도 안 주고. 접대가 좀 소홀하네?”

여리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뭐라도 좀 사 오라는 무언의 눈빛에, 인상을 쓴 강 상무가 회의실에 굴러다니던 주스 하나를 밀어주었다.


“용건만 빨리 말해. 시간 없으니까.”

유리 벽에 기댄 태조가 시계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느긋하게 병을 딴 여리가 태조를 응시했다.


“왜? 급한 약속이라도 있어?”

“용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듯, 한숨을 쉰 태조가 짧게 말했다. 입을 삐죽거린 그녀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나오는 방송 봤어? 첫 방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사도 많이 나고, 화제성도 꽤 높아. 덕분에 여러 곳에서 전화도 오고 있고. 협찬해 줄 테니 자기네 브랜드 상품도 홍보해 달라는 둥,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둥.”

“…….”

“그래서 날 서포트 해줄 소속사가 필요하거든.”

손등 위로 턱을 괸 여리가 생긋 웃었다. 태조는 무표정했고 강 상무는 뻔뻔한 오여리의 낯짝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

“응.”

“여기가 무슨 동네 구멍가게인 줄 알아? 들어오고 싶다고 막 들어오게?”

“강 실장에게 물은 거 아니니까, 좀 조용히 하지?”

“실장 아니고 상무라고!”

욱한 우현이 한마디 더 쏘아붙이려는 찰나, 태조가 그를 막았다.


“소속사는.”

한참 만에 입을 연 태조가 오여리를 직시했다.


“다른 곳을 찾는 게 좋겠는데. 그 정도는 굳이 우리 회사가 아니라도 다 해줄 테니.”

당연히 그가 저를 받아줄 거라 생각했을까.

태조의 거절에 여리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나는 여기가 좋아. 오빠도 있고…….”

“네가 원한다고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냐. 예능 프로 하나 출연해서 인지도 좀 올랐다고 계약하는 것도 아니고.”

“…….”

“너 정도의 화제성, 인지도 가진 사람은 우리 회사에도 차고 넘쳐. 그러니 스케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 거면 개인 비서를 찾든, 다른 회사를 찾도록 해.”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신을 냉정히 내치는 말에 여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가 자리를 뜨려 하자, 다급히 일어난 여리가 태조의 앞을 가로막았다.


 


“예전 일 때문에 그래?”

“…….”

“나 그때랑 달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오여리가 아니라고.”

지금의 자신을 보라며 오여리가 두 팔을 뻗었다. 태조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상관없어. 그저 네가 우리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정말 그것뿐이야? 내가 윤세경 씨랑 만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건 아니고?”

오여리의 입에서 세경의 이름이 나오자 태조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조 오빠 결혼한다면서? 기사도 시끄럽게 났던데. 근데 그 사람도 한 성격 하는 거 알아? 내가 태조 오빠랑 결혼하냐고 물었더니 관심 끄라고 쏘아붙이더라?”

“너…… 세경 씨를 만났어?”

당황한 우현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오여리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태조만 바라보았다.


“윤세경 씨가 날 만났단 소린 안 했나보지? 그 사람 임신도 했던데. 배도 좀 나오고. 내가 오빠한테 사귀자고 결혼하자고 할 땐 다 싫다며 거절하더니. 그런 사람이 취향이었어?”

“오여리.”

그만하라는 듯, 화가 난 태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면 그 여자가 임신해서 결혼하는 거야? 그 사람이 오빠한테 책임지라고 했어?”

“그건 네가 상관할 바 아냐.”

태조가 지끈대는 이마를 짚었다. 그날이었나. 제게 갑자기 태조 오빠라고 불렀던. 어쩐지 그날따라 표정도 안 좋아 보이더니.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태조가 오여리를 노려보았다.


“잘 들어.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이제 너랑 다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게 사적이든 공적이든 간에. 어릴 땐 혼자 남은 네가 안쓰러워 챙겨줬다지만, 이젠 남의 돌봄이 필요할 나이도 아니잖아?”

“…….”

“그러니 앞으로 회사에 찾아오지도 말고 윤세경 씨를 만날 생각도 하지 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가 아니라 네 부친을 찾아가 말하고.”

우현을 쳐다본 태조가 자신의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강원도로 바로 출발하겠다는 뜻을 알아챈 우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오여리를 지나친 태조가 막 회의실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오빠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오여리의 입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천천히 고개를 든 그녀가 태조를 쳐다보았다.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엔 그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나 보내면 후회할 거라고.”

여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다시 태조에게 다가가려 하자, 우현이 여리의 팔을 붙잡았다.

얼른 가.

입을 벙긋 거린 우현이 손을 내저었다.

고개를 끄덕인 태조는 자신을 쳐다보는 여리를 뒤로한 채 회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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