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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외전 (3) - 기쁜 소식 (99/100)


99. 외전 (3) - 기쁜 소식
2023.07.12.


촬영장 한편,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간식 차에서 받은 커피와 와플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근처에 있는 작은 아이와 남자를 힐끔거렸다.

몸에 착 밀착된 슈트를 입은 남자의 품에는 하얀색 호랑이 인형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아이가 꼼지락거릴 때마다 옷에 달린 꼬리가 흔들거렸다. 남자는 심통이 난 듯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아이의 말랑한 뺨을 손으로 꾹 눌러댔다.


“아! 어마아아!”

세트장에서 나오는 세경을 발견한 규원이 몸을 들썩였다. 아들의 목소리에 손을 흔든 세경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달려왔다.


“오래 기다렸어요?”

“조금. 규원이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조금 심통이 나긴 했지만.”

“아구, 그랬어요?”

혀를 똑똑 굴린 세경이 규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뚱해 있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세경을 보자 활짝 웃고 있었다.


“이야, 진 대표. 외조 톡톡히 하네?”

세경과 함께 나온 지 감독이 너스레를 떨었다. 태조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번이 열 번째인가? 세경 씨 촬영장에 간식 차 보낸 게?”

“열 번 넘을걸요? 와아, 우리 규원이 아빠랑 같이 엄마 보러 왔어? 잠깐 삼촌한테 와볼까?”

지 감독의 말에 대꾸하던 석주가 태조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규원에게 팔을 뻗었다.

촬영장에 올 때마다 얼굴을 봐서 그런지 규원이 스스럼없이 석주에게 안겼다.

아빠만큼 커다란 삼촌이 하늘 위로 번쩍 올려주는 게 재밌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꺄아앙!”

곰과 아기 호랑이가 같이 노는 것을 지켜보던 태조가 지 감독을 돌아보았다.


“감독님, 정말 섬 하나를 빌려서 촬영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음? 하하. 아니, 뭐 좀 욕심을 내다보니.”

태조의 지적에 지 감독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결혼식 후, 세경이 복귀작으로 선택한 건 지제혁 감독의 <헌트>였다.

촬영 일정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처음엔 세경이 배역을 고사했지만, 세트 제작과 나머지 배우 캐스팅에 긴 시간을 할애하자 감독은 다시 한번 세경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육아를 하느라 거절할 것도 예상했으나, 세경은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자신이 그 역할을 맡아도 되겠냐며 지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다.

원하는 배우들로 캐스팅을 마친 지 감독은 미리 짜놓은 콘티들과 동선들을 정리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촬영을 하려 애썼다.

물론 조금 욕심을 내, 야외 촬영 땐 무인도 하나를 빌려 촬영하기도 했다. 장난으로 흘렸던 말이 현실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배정된 제작비를 초과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때요? 촬영은 수월합니까?”

“음. 좋아. 제작비도 넉넉하겠다. 무리 없이 촬영하니 스태프랑 배우들 다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야. 석주랑 세경 씨도 NG 없이 쭉쭉 가니 편하기도 하고. 게다가 진 대표가 이렇게 간식 차도 보내주잖아?”

덕분에 비용도 절감된다며 지 감독이 껄껄 웃었다. 태조와 지 감독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세경과 함께 간식 차에 갔다온 신 매니저가 커피를 들고 왔다.


“대표님, 커피 드세요. 감독님도요.”

“아, 땡큐.”

지 감독이 고맙다며 잔 하나를 집어 들었다. 태조는 규원을 데리고 오는 석주에게 커피나 마시라며 아이를 받아들었다.


“음? 규원이도 이거 먹고 싶은가 본데?”

규원이 동그란 눈을 끔뻑거리자 석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리처럼 입을 삐죽 내민 규원은 어느새 쟁반에 담긴 와플을 탐내듯 보고 있었다.


“아, 지금 저걸 먹기엔 좀 자극적일 텐데.”

곤란한 듯 미간을 좁힌 세경이 태조를 바라보았다.


“당신 규원이 간식 안 가져왔어요?”

“차에 두고 왔는데.”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

제훈이 차에 갔다 오겠다 나섰지만, 태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갔다 올게. 어차피 규원이 여기 있으면 와플에 눈이 가서 계속 달라고 칭얼거릴 거야.”

“그럼 나랑 같이 가요. 감독님 아직 촬영까지 시간 조금 남았죠?”

“응. 여긴 걱정 말고 천천히 갔다 와. 세경 씨 없으면 다른 사람 먼저 촬영하고 있을 테니까.”

“금방 올게요. 먼저 들어가 계세요. 선배두요.”

세경이 살가운 말을 건네고 태조의 팔을 잡아끌었다. 규원은 미련이 뚝뚝 남은 얼굴로 와플만 쳐다보았다.


“마아, 쩌거…….”

단풍잎 같은 손가락이 제훈이 들고 있는 와플을 가리켰다. 세경은 규원의 자그마한 손을 붙잡고 쪽, 입을 맞췄다.


“규원이 먹을 건 차에 있는데. 아빠랑 같이 차에 가서 간식 먹을까?”

“간찌?”

규원이 멀어지는 와플과 세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빠 차에 있는 간식도 먹고 싶지만, 저것도 먹고 싶고…….


“히잉.”

인생 24개월 차, 고민에 빠진 규원의 입술이 한껏 튀어나오고 있었다.


 

***

오랜만에 맞는 한가로운 휴일이었다. 소파에 앉아 규원을 보고 있던 세경은 초인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규원아, 이모 왔나 보다.”

“이몽?”

인터폰을 확인한 세경이 규원을 안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 주자 유나가 선물로 사 온 규원의 장난감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규원이 안녕.”

“헤에.”

규원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나는 깜찍한 미소에 홀려 작게 비명을 질렀다.


“요 귀염둥이, 이모보다 선물이 더 반가운 건 아니겠지?”

“너보다 선물이 더 반가울걸? 들어와. 마실 건 뭐 줄까? 커피?”

“응. 시원한 걸로 부탁할게.”

규원을 내려준 세경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유나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놀이 공간 안에 들어간 규원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자 유나도 제가 사 온 자동차 장난감을 그 안에 넣어주었다.


“어휴, 못 본 새 우리 규원이는 더 큰 거 같네? 걸음마도 잘하고.”

“너도 규원이 석 달 만에 보는 거지?”

“아마 그럴걸? 어휴, 집도 가까운데 어떻게 보기가 더 힘들어지냐고.”

유나가 찹쌀떡 같은 규원의 뺨을 콕 찔렀다.

세경이 출산하고 일 년쯤 지났을까. 급하게 집을 구하던 유나에게 세경은 비어 있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집이 가까워져 유나는 태조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세경의 집에 와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세경이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고, 유나도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근래엔 서로 만나 차 한잔도 마시지 못했던 터였다.


“넌 요즘 어때? 드라마 촬영하느라 힘들지?”

“오랜만에 촬영하니까 재밌던데? 방송 시간에 쫓기지도 않아서 촬영이 급박하게 돌아가지도 않고. 대본도 거의 다 나와서 큰 무리는 없는 거 같아.”

유나가 세경이 주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규원은 매트 위를 기어가며 자동차 장난감을 굴리고 있었다.


“너야말로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냐? 강 상무님한테 듣기론 드라마 OST 제안도 많이 들어온다던데.”

“안 그래도 내일 녹음 하나 잡혔어.”

반년 전, 유나가 불렀던 모 드라마의 주제곡이 히트를 치며 그녀에게 꾸준히 드라마 OST 제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그룹 활동으로 가려져 있던 유나의 노래 실력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그로 인해 음악 관련 예능에도 출연해 경연을 하기도 했고.


“잘됐네. 이참에 앨범도 한번 내보지.”

“아직 거기까지는.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 더 욕심부리면 안 될 것 같고. 그치, 규원아?”

“아앙?”

유나의 말에 규원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요런 건 또 한 장 찍어놔야 한다며 핸드폰을 꺼낸 유나가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참, 어제 애들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아, 만났지. 너도 촬영만 없었으면 같이 가는 건데. 다음엔 같이 가자. 규원이도 데리고. 애들이 규원이 보고 싶다고 난리더라.”

“규원이 데리고 가면 얘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사람이 몇인데, 아이 하나 보지 못하겠니? 결혼식 때 애들이 규원이 보고서 너무 귀엽다고 또 보고 싶댄다.”

“그랬어? 아, 근데 주희는…….”

세경이 말끝을 흐렸다. 친구들과 모임 자리에서 주희를 본 이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그 뒤 몇 번 방송에 나오는 걸 보긴 했었다.

재작년쯤 기사로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는 것만 보았는데, 그 이후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전 소속사 계약 만료되고 따로 들어간 데는 없나 봐. 가끔 오디션 나오면 보는 정도고. 요즘은 친구랑 쇼핑몰 사업 준비한다고 들었어.”

“그래? 모임에는 나오지 않고?”

“몇 번 얼굴 비추긴 했는데, 올해부터는 아예 연락도 잘 안 받는 편이래. 채팅창에 말을 걸어도 답이 없고.”

세경이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희와 관계가 틀어졌다 해도 한때 같이 활동했던 만큼 어디서든 잘 지내길 바랐다.


“어? 세경아, 너 전화.”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유나가 세경의 팔을 툭 건드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경이 아일랜드 식탁에 둔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어머니.”

전화를 건 이는 시모인 마 여사였다.


- 지금 집이니? 통화는 할 수 있고?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어머니.”

세경이 핸드폰을 들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 음, 다른 게 아니라 별일 없으면 오늘 좀 집에 올 수 있을까 해서. 예령이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가족 모두 같이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는구나.

“형님이요?”

세경이 제게 팔을 뻗는 아들의 손을 잡아 쥐었다. 유나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럴까요? 나쁜 일은 아니겠죠?”

- 글쎄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안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애가 묘하게 기운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마 여사의 목소리에서 근심이 느껴졌다. 항상 활발한 예령이 기운이 없다는 말에 걱정이 되는 건 세경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저도 규원이 아빠랑 통화해 보고 바로 출발할게요.”

- 저녁 먹기 전까지 와. 윤조랑 그이도 오는 거 생각하면 일곱 시 전까지만 오면 될 거 같구나.

“그럴게요. 네. 그럼 출발 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세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규원의 손을 잡고 흔들던 유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시댁에 무슨 일 있어?”

“자세히는 모르겠고, 형님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이따 시댁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시댁에 가기 전에 예령에게 한번 전화를 해야 하나.

세경은 잠시 규원을 봐달라 하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

태조에게 규원을 맡기고 세경은 마 여사와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 큰 며느리가 걱정됐는지, 그녀는 예령이 좋아하는 삼계탕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세경이 넌 예령이한테 뭐 들은 거 있니?”

“아뇨. 그냥 이따 와서 이야기하겠다고…….”

세경도 답답함에 말끝을 흐렸다. 마 여사와 통화를 마친 뒤 곧장 예령에게 전화를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듣지는 못했다.

딩동!


“아, 오셨나 봐요.”

벨소리에 반응한 세경이 마 여사와 현관으로 나갔다. 진 회장과 함께 윤조와 예령이 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왔어요? 너희도 어서 오고.”

마 여사는 큰 며느리의 얼굴을 살피곤 진 회장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뭐 아는 거 있냐는 눈빛이었으나, 진 회장도 무슨 말을 듣진 못했는지 고개만 저었다.


“손부터 씻고 와요. 우리 음식 다 준비했으니까. 예령이 너도 조금 이따 들어오고.”

“네, 어머니.”

예령이 고개를 끄덕이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경은 주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태조에게 속삭였다.


“아주버님께 물어봐요. 형님한테 무슨 일 있는지.”

“금방 알게 될 텐데. 이제 와 말해주겠어?”

“그래도요.”

세경이 다시 한번 남편을 채근하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 여사가 준비한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어머나, 이게 다 뭐예요?”

“너 좋아하는 삼계탕이지. 오랜만에 가족들 몸보신 좀 하라고.”

마 여사가 어서 앉으라 손짓했다. 식구들이 식탁에 앉자 세경도 규원을 사이에 두고 태조와 나란히 앉았다.


“물어봤어요?”

세경이 태조의 옷깃을 쭉 잡아당기며 물었다. 하지만 그도 별반 소득이 없었는지 어깨만 으쓱거렸다.


“규원인 이리 보내렴. 내가 먹일 테니.”

“아니에요. 어머니도 식사하세요. 규원인 저희가 먹일게요.”

세경이 홍 여사에게 닭고기가 들어간 이유식을 받아들었다. 규원은 제가 먹겠다는 듯 앙증맞은 손으로 작은 수저를 움켜쥐고 있었다.


“규원이가 직접 먹으려고?”

“앙!”

예령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규원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막 식사를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뒤늦게 수저를 든 예령이 맑은 닭국물을 떠먹다 멈칫한 것은.


“욱.”

난데없이 들려온 헛구역질 소리에 식탁에 앉은 가족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세경도 놀라 둥그레진 눈으로 예령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음식이 뭐가 이상한…….”

걱정스럽게 묻던 마 여사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끝을 삼켰다. 헛구역질을 한 예령의 입가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형님, 설마…….”

마치 과거의 일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세경의 입이 기대감으로 벌어지자, 헛기침을 한 예령이 쑥스러운 듯 입술을 말아 물었다.


“실은 식사 다하고 나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예령이 운을 떼자, 가족들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다들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섣불리 입을 떼다 실수라도 할까 모두 예령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 오늘 낮에 병원에 갔다 왔는데.”

그리고 그런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예령이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임신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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