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018화 (18/112)



〈 18화 〉018화

관악구 근방의 모텔.

캄캄한 모텔방. 가윤은 침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죽은  미동조차 없이 누워있었다.

적막한 안에서 유일한 소음이라고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뿐이었다.

‘얼마나 된 거지.’

며칠이 흘렀는지, 오늘이 언제인지. 가윤은 어느새 시간 감각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서서히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느낌이었다.

가윤은  침대가 호수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서서히 이 속에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 이대로 사라져버려도 나쁘지 않겠다.’

가족들을 위해서는 충분히 노력한 것 같았다.

‘이젠 나도 편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마치 늪에 빠진 것과도 같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녀를 점점 더 집어삼켰다.

그렇게 늪에 빠져들어 갈수록, 가윤은 자꾸 지난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절망감이 짙어져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유일하게 그녀에게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게 만들어주는 기억또한 존재했다.

지난 육 년 사이, 유일하게 진짜 행복이 뭔지 느낄  있었던 시간.

유일하게 진짜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어쩌면 진짜 사랑을  수 있을 뻔했었던 사람.

우웅. 우우웅.

침대 구석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시선을 살짝 돌려서 발신자를 본 가윤은 무시하고서 멍하니 두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울리던 스마트폰이 이내 침묵했다.

진동이 멎은 것을 느낀 가윤은몸의긴장을 풀었다.

우웅. 우우웅.

스마트폰이 다시 진동했다.

가윤은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스마트폰의 진동을 무시했다.

진동이 멎자, 가윤은 스마트폰을 쥐었다.

[부재중 전화 78통]

[김교수]
[김교수]
[김교수]
...

가윤은 부재중 전화 목록을 훑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 했다.

우웅. 우우웅.

[김 교수]

가윤은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를 받고서 귓가로 가져갔다.

그러자 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가윤아!

다급해진 목소리가 가윤의 대답을 재촉했다.

“무슨 일이에요….”

-어디야? 어디길래 그렇게 연락이  돼?

“이제 알  없잖아요.”

가윤의 매몰찬 목소리에 당황한 듯  교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현수랑 같이 있는 거냐.

“뭐요…?”

-어떻게 네가 이럴 수가 있어!

김 교수는 울분을 토하듯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네가 원하는 건  해줬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이해했다! 모든 걸 다 인내했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를 치듯 팍팍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비록 돈으로 시작된 사이였지만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내가 너한테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만으로 행복할수 있는 사랑을 했던 거다!

김 교수는 진심으로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듯 노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서가윤은 속으로 현수가 떠올랐다.

‘너도 날 이렇게 사랑했을까?’

-대답해 서가윤!!!

가윤은 수화기가 터져라 고함을 지르는 김 교수의 목소리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더러운년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이렇게 집착하시는 거예요.”

-그건 내가 실수를….

“저 더러운 년 맞아요. 돈을 주면 몸을 줬으니까. 그런데 교수님,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저 한 사람한테만 마음 준  맞아요. 단지 그게 교수님이 아닐 뿐이지.”

가윤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무언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서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전화번호부로 들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진즉에 연락하고 싶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거절당할까에 대한 걱정. 양심적인 죄책감 등으로 인해 차마 번호를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가윤은 미안하다는 사과만큼은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

‘제발….’

통화 연결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가윤의 초조함은 점점 더해져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걸까.

고작  통의 전화 연결음만으로이렇게 긴장되기는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수십통의 전화를 걸던 김 교수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연결이 실패했다는 안내 문구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때.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가윤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잘못을 빌어야 할까, 변명을 늘어놓을까.

자신을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가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말이었다.

“보고 싶어….”

. . .

그날 이후 이틀동안일부러 잠을 자지 않아 피곤한 상태로 터벅터벅 집 앞에 도착하자, 현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며칠 더 걸릴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

현수는 바로 받지 않고 잠시 뜸 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고싶어….“

“하…. 어디야?”

. . .

가윤이 말한 장소에 도착한 현수는 그곳에서 만난 가윤이 생각보다 훨씬  수척해진 것을 느꼈다. 화장을 지우면 20대 초반까지도 보이던 그녀였는데, 지금 모습은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현수는 가윤에게 아무말도 하지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가윤은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수척해져있는 현수를 보자 동공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가윤은 현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현수야….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없는  알지만 제발 나랑 얘기  해줘.”

“무슨 얘기?”

“그냥 다. 전부 다 설명할테니까 제발 듣기만 해줘.”

가윤은 애처롭게 현수에게 매달렸다.

“하….”

현수는 긴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돌렸고, 근처 카페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카운터에 현수는 가윤에게 물었다.

“뭐 마실래?”

“나, 난 괜찮아…. 아무거나 마실게.”

현수는 아무 대꾸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 뒤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항상 존댓말을 해오던 현수가 계속해서 차갑게 반말을 하며 말하자, 가윤의 표정은 갈수록 하얗게 질려갔다.

“그니까…. 정말 미안해.  사람이랑 엮여서 결혼할려던건 맞아. 근데. 진짜 정말로 난 너 좋아하고 사랑했건 진심이었어.”

“그니까 넌 나보다 돈이었잖아. 버스가 떠나니까 왜 나를 찾아오는건데?”

“내가 이기적이고 쓰레기란거 잘 알아. 그니까 제발…. 이렇게 빌게. 이제 나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

현수는 자기 때문에 가윤이 이렇게  줄도 모르고 그에게 비는 가윤을 보면서 너무나 즐거웠다.

‘진짜 웃기네. 얘는 내가 그랬다는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현수는 속으로 웃으면서 가윤에게 말했다.

“내가 받아주면? 우리 관계가 전처럼 될 수는 있고?”

“현수야….”

“누나. 내가 지금 이상황에서 제일 열받는게 뭔지 알아?”

“….”

가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런 상황인데도 누나를 만나려고 여기 와있다는 거야.”

현수의 말에 가윤이 충격을 받은 듯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현수야. 우리 진짜 좋았잖아. 응? 내가 진짜 다신 이런 일 안 생기게 할게. 나 진짜 너한테 잘  자신있어.”

‘와. 사람이 극한으로 몰리면 진짜 드라마처럼 진부한 대사가 나오네. 창의력이 부족하구만.’

현수는 가윤의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수가 아무 대꾸도 하지않자 가윤이 현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현수야. 제발 나 이렇게 빌게. 이제 나한테 남은 게  뿐이야. 한 번만 기회를 줘. 절대 실망 안 시킬게. 응?”

“그럼 나한테 왜 헤어지자고 한건데? 나 좋다며.”

“그건 내 생계 때문에 그랬어. 빚 다 갚고나면 다시 연락할 생각이었어…. 현수야. 제발 나 좀 봐줘.”

현수는 계속해서 종잡을  없는 표정을 이어갔다.

‘캬~  맛이지. 전생에 그렇게 날 그렇게 괴롭히던 애가 이제  없이 못 살겠다네.

하지만 속마음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저 표정.

전생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그 모습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현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고, 계속해서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대학생연기를 이어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누나가 너무 미워. 가증스럽고 증오해. 근데, 그래도 누나가 자꾸 생각이 나서 잠이 안오더라.”

“현수야….”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가윤을 바라봤다.

그의 고뇌하는 듯한 얼굴에 가윤은 긴장한 채로 현수의 입술만을 바라봤다.

이윽고, 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이 화가 풀릴지는 모르겠는데, 누나가 날 따라다니는건 뭐라고  할게. 그런데 이번엔 누나가 다칠수도 있어.”

순간 가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뒤에 말은 들리지도 않은 듯했다.

“알겠어. 현수야 나 진짜 뭐든 다 할 수 있어. 뭐든지 할테니까 네 화가 풀릴때까지 옆에 붙어 있을게.”

가윤은 자신의 대답을 들은 현수의 눈빛에순간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현수가 옆에 있어준다는 기쁨에 두려움을 무시하기로했다.

“배는 안 고파요?”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가윤의 모습은 너무나도 수척해보였다.

“하…. 저는 배고프니까 밥먹으러 가요.”

“응… 알겠어.”

’아….  먹이지?‘

그러다 문득 현수는 한 가지 메뉴가 떠올랐다.

’아 이거라면 나도 맛있게 먹겠는데?‘

현수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가윤이 이걸 먹고있는다면 절로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현수는 곧바로 근처의  식당으로 찾아갔다.

도착한 곳의 간판을 보고서 가윤은 순간 당황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봤다.

24시 순대국밥.

평소 가윤이 싫어하던 메뉴인 국밥.

그 중에서도 순대국밥은 가윤이 가장 싫어하는 메뉴였다.

가윤은 순간 당황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먼저 앞장서서 들어가는 현수의 뒤를 따라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수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그림을 볼 수가 없었다.

가윤은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으로 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런데 잠시 후, 숟가락의 움직임이 스스럼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싫어한다던 순대국밥을 한그릇 뚝딱 다 비워버렸다.

’와… 진짜 힘들긴 힘들었나보네. 이걸 다 먹네. 평소에 잘 먹지도 못하던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평소에 이거 반만큼 먹던 사람이 이걸 다 비웠어요.”

현수의 말에 가윤이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

현수는 계산을 마치고 가윤에게 말했다.

“지금 상태를 보니까 일단 집에 들어가서 좀 쉬어야 될거 같아요.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현수는 말을 마치고 가윤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가윤이 따라오지 않는걸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고 가윤을 바라보았다.

가윤은 물끄러미 쳐다보는 현수의 시선에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는 거기서 대강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와 진도 빠르네. 벌써 집도 절도 없어진거야?‘

“하…. 고작 이렇게 되려고 저한테 헤어지자고 하신거에요?”

가윤은그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가윤의 우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닦아주려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가게안으로 들어가 휴지를 떼온 뒤 가윤에게 건냈다.

“훌쩍, 고마워….”

“갈  없으면 일단 우리집이라도 가요.”

눈물을 닦던 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끼익.

가윤과 현수는 오래된 문의 경첩소리를 울리며 집에 들어왔다.

“제 집에서 사는건 좋은데 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현수는 가윤에게 조금 냉정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응…. 거슬리는  없도록 할게. 미안해.”

현수는 무심하게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가윤은 이도저도 못한 채 현수의 샤워가 끝날 때까지 우물쭈물하며 서 있었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인 상태로 쭈뼛거리고 있는 그녀를 본 현수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씻어요. 꼴이 그게 뭐에요.”

현수의 말에 가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미안해. 금방 씻고 나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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