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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022화 (22/112)



〈 22화 〉022화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날 막대할거야…?”

가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요 며칠 고민 많이 하고 내린 결론이야. 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 이해해달라고는 안 할게. 누나를 사랑하는 만큼 원망하고, 괴롭히고 싶어.”

현수는 이제 직설적으로 나가기로했다.

“난 누나가  옆에 꼭 붙어서 괴로웠으면 좋겠어. 근데 확실한건 누나를 사랑하는 만큼 괴롭게 만들거야.”
“그럼….   괴롭히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지…?”

현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면서 봤던 가윤의 눈에는 아직도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여있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윤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 같았다.

애초에 말도 되는 제안이다. 고민한다는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내가 막 대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처럼 보이진 않는데?’

현수는 가윤을 외통수로 몰았다.

사랑하지만 원망한다. 원망하지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

현수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괴롭힘 당하는게 싫다면 떠나야한다.

현수는 가윤이 주저하고 고민할줄 알았지만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않았다.

강한 직감이 왔다.

가윤은현수에게 거칠게 다뤄지는 것에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려움의 정체도 알  같았다.

“현수야…. 난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네 곁에 있을게.”

가윤은 끝내 자신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직 스스로를  모르는 것 같았다.

현수는 가윤이 스스로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했다.

“누나 빚. 내가 해결해줄게.”
“…?”

가윤이 ‘어떻게?’라는 눈빛으로 현수를 쳐다보았다.

“우리집에 들어오고 나서 연락  적 한 번이라도 있었어?”
“….”
“더 이상 찾아오는 일도 없을거고.   안에 해결해놓을 거야. 이제누나 제일  위기는 사라졌어. 이래도 내가 주는 사랑과 괴롭힘을 받아줄 수 있어?”

현수의말을 들은 가윤의 눈에서 기쁨, 안도감과 함께 기대감, 두려움도 동시에 떠올랐다.

기대감. 두려움.

“날 얼마나 사랑해…?”

가윤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누나가 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누나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누나를 사랑할  있을 것 같아.”

현수의 속삭이는 말은 마치 악마가 속삭이는 듯 했다.

가윤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현수는 가윤의 두려움의정체를 이미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누나도 기대하고 있잖아. 내가 주는 사랑을.”

“인정하면 편해지더라.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걸.”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

“누나도 나를 상상하는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같아.”

가윤의 눈동자가 떨림을 서서히 멈추고 현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해. 현수야.”


* * *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현수는 가윤을 구속하는 과정을 떠올렸다.

원래는 그저 작은 복수만  생각이었는데, 본능적으로 했던 행동이 그녀를 정복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많이 따라줬다. 하지만 그래서  짜릿했던 것 같다.

‘또 하고 싶다.’

현수는 고작 한 명으로 멈출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처럼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동아리나 들어가 볼까?’

현수는 생각과 함께 즉시 행동으로 나섰다.

“모집 기간이  지났어요.”

‘흠. 이건 생각 못했는데?’

현수가 지희와 가윤에게 시간을 쓰는 동안 이미 동아리 모집 기간이 대부분 지나있었다.

현수가 들어가려던 여초 동아리는 물 건너 간듯했다.

진한 아쉬움을 느끼며 학과사무실에 들어섰다.

‘어? 봉사동아리….’

현수는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봉사동아리.

현수와 인연이 깊은 동아리였다.

전생에서도 현수는 이곳에서 활동했었다.

‘흠…. 근데 여기 애들 중에 꼬실만한 애가 있었나?’

현수는 여기라도 들어갈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긴, 가윤이도 이런  줄 알았나. 여자는 다 내가 어떻게 요리하기 나름이지.’

현수는 고민하기를 그만두고 그냥 봉사동아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현수는 신청서를 금세 작성하고 동아리사무실로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동아리 가입하려고찾아왔습니다.”

“아, 네. 신청서는 여기 주시고, 신입생이세요?”
“네.”

신청서를 받은 여학생이 현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와. 진짜 잘 생기셨네요. 근데 의예과…시네요?”

여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봤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은 의과대학 내부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별종이라서요.”

“오늘 오티있는데 참가하실 건가요?”

“아,네.시간 맞춰서 참석할게요.”

“네네.  오셔야 되요. 다들 좋아할 것 같아요.”

현수는 여학생에게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오후수업 듣고 오티까지 시간이 좀 남네.’

현수는 교수가 떠드는 걸 한귀로 흘리며 생각에 빠졌다.

전생에 봉사동아리에 들어갔을 당시, 오티때 가까이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우연찮게 잠깐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한 명 떠올랐다.

남한석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여자.

아마 지금도 만나고 있겠지만 여자친구에게 미친 듯이 목매여 산다.

자신에게 시비걸고 욕하는 건 그냥 웃으며 넘어가도 여자친구에게 그냥 인사만 해도 기분이 언짢아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모습에 남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주변 여자들에게 부러움을 자주 사는 커플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수가 그를 떠올리는 것 또한 그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정효주.’

남한석은 아주 악착같이 아끼고 원하는  다 들어줘서 대학졸업 후 바로 그녀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애를 낳고나서는 항상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 놓는 처지가 되었다.

‘하…. 결혼 전에는 어떻게든  번 해볼려고  짓을 다했는데, 요즘엔 애 재우고 하자고 할 때 마다 진짜 너무 무서워….’

‘원래  되게 조신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결혼전엔 이런앤줄 진짜 몰랐지. 과거로 돌아갈  있다면 진짜 무조건  뜯어말릴거야.’

현수는 과거 한석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음…. 재밌겠는데?’

현수는 욕망을 채워줄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오후수업이 끝나고 현수는 아까 본 여학생이 보내준 장소에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가게  편을 빌린 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끼리 모여앉은 자리도 있었고, 서로 어색해서 분위기가 얼어붙어있는 자리도 있었다.

현수는 눈대중으로 대충 스캔하며 자리를 찾았고, 한석과 그의 여자친구가 앉아있는 자리를 찾아 그 맞은편에 앉았다.

현수가 앉은 테이블은 총 세 명이 앉아있었는데, 한석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남자가 자리하고있었다.

“안녕하세요.”

현수가 인사하자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현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와 진짜 잘생기셨네요. 무슨  다니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 의대 다니고 있어요.”

“오! 의대면 엄청 바쁘시겠어요.”

“아직 1학년이라서 그나마 괜찮아요. 다른 분들은 다 어디 과 다니세요?”

현수는 테이블에 앉아 의례적인 말들을 나눴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저 둘은 이미 커플인 상태였고, 처음 보는 남자는 현수보다 한 학번이 높은 선배였다.

“나도 재수해서 들어왔는데, 그럼 지금 21살이겠네?”
“아, 네. 선배님.”

“아 무슨 선배님이야. 그냥 형이라고 불러 과도 다른데.”

‘내가 너보다 살아도 몇 년을 살았는데. 형은 무슨.’

현수는 순간 노가다할 때 만나던 청년들보다 어린 애한테 비위맞추는게 아니꼬왔지만,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저희 아직 이름도 모르는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실까요?저는 김현수라고해요.”

“나는 백성민이야.”

“남한석입니다.”

“저는 정효주라고 해요.”

통성명을 마친 그들은 슬슬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여자친구가 의예과 다니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네 이야기 좀 하더라. 엄청 잘생긴애 있다고.”

“아 진짜요? 여자친구 이름이 뭐에요?”

“주해인인데 아마 모를걸? 엄청 조용히 다니는 애라.”

주해인.

애초에 레지 2년차까지 했던 현수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잘 기억에 없었는데,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1학기만  채로 1년정도 휴학을 해서 접점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았다.

‘흠. 갑자기 휴학을 했던거 같은데, 얘랑 헤어지거나 군대를 갔거나 둘  하나였겠네.’

“아뇨. 잘 알고 있어요. 그 안경끼고 항상 구석자리에 앉아서 수업 집중해서 듣던  말하는거 같은데. 다음에 수업들어가면 아는  해봐야겠네요.”

성민은 현수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아는 척까지는 괜찮은데, 너 가서 꼬시면 안된다? 네가 대쉬하면 나도 넘어가겠다.”

하하하하.

늘어가는 술병과 함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고, 점점 다른 테이블에서 현수에게 다가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현수의 외모는 어딜가도 압도적이었고,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고 현수와 친해지려는 이들이 많았다.

자꾸 한 명씩 와서  잔씩 하고 가다보니 주당인 현수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같은 테이블에 있는 이들도 덩달아 많이 마시게 됐다는 것.

의외로 해인은 멀쩡해보였고, 한석과 성민이 거의 맛이   보였다.

현수는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서 정효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남한석의 옆에 앉아서 근처의 여자 아이들과 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짜 누가 아냐고.’

지금 즈음이라면 법학과 신입생일 그녀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히 무던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남자친구인 남한석까지도.

‘대법관까지 배출한 집안일줄이야.’

정효주의 집안은 뼛속부터 법조인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었다.

고등법원장, 검사장 등등 발에 채이는 게 고위 법조인이었다.

무엇보다도 효주의 집안은 검찰총장까지 지내고 나온 할아버지가 세운 로펌이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 무슨 복이냐 쟤는.’

한석은 효주의 정체를 조금도 알지 못한 채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후, 그는 졸지에 돈벼락을 맞은 데릴 사위가 되어버린다.

물론 효주의 남편감으로써 인정받기 위해 뒤늦게 로스쿨에 들어가고, 이후 효주 집안의 로펌에 들어가 수련을 해야 했어서 만날 때마다 그는 힘들다고 푸념하기 바빴으나, 현수가 보기에 그건 배부른 투정에 불과했다.

‘그 배부른 투정, 오늘은 이번 생엔 안 하게 해주고 싶은데.’

현수는 사악한 생각을 하면서 슬쩍 효주에게서 시선을  뒤, 자신의 물잔을 채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곧 기회가 올 거 같은데.’

동아리 오티 이전까지 비는 시간동안, 현수는 나름의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열쇠는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한석의 버릇.’

효주와 남자가 사소하게만 엮여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그 부분을 자극하면, 둘 사이를 충분히 이간질해낼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과거의 너를 뜯어말리고 싶어했잖아. 내가 대신 뜯어줄게.’

그렇게 현수는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술을 가볍게 마셔주며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왔다.

“효주도 한 잔 해야지?”

자리가 슬슬 마무리 될 무렵 동아리 고학번 선배가 우리 테이블에서 잔을 돌리려고 왔다.

선배는 누가 봐도 후배들과 안면을 트려고 인사정도 하려고 온 듯했다.

하지만, 술이 많이 들어간 상태였던 한석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선배님 그만하시죠?”

“뭐? 나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지금 선배말고 누가있나요. 요즘같은 세상에 여자한테 그렇게 술잔 권하는거 성희롱입니다.”

한석의 말이 계속될수록 분위기가 급격히 식어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뭐라고? 미쳤나 이게, 내가 억지로 먹였어? X같이 말하네 이게?”

선배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고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이 험악해졌다.

술자리가 마무리될 즈음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고,별것아닌 일에 한석이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저 새끼 말하는 거 들었지? 성희롱이란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야야 그만해. 쟤도 술 마시고 실수한 거야. 참아 네가 아직 신입생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야!   눈에 띄기만 해라 진짜 죽여버린다.”

결국 동아리 선배들이 둘을 뜯어말리고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택시를 태워 보내려 했다.

“효주야, 네 남자친구 좀 집에다 데려다줘라.”
“네 알겠습니다….”

효주는 한석이 창피한지 빨리 그를 데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현수는 효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효주야 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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