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023화 (23/112)



〈 23화 〉023화

“그래 줄 수 있어? 혼자서 데리고 가기  힘든데.”

효주는 그런 현수를 보며 얼굴색이 밝아지며 호의를 받아들였다.

현수와 효주는 택시를 잡았고, 그때까지 한석은 정신을차리지 못하고 계속 길거리에 드러누우려고 했다.

“혼자 집에 데리고  수 있겠어?”

“어쩌겠어. 정신 좀 차릴 때까지 같이 있어 줘야지.”

효주는 말은 괜찮다고 하면서도 은근하게 도움을 바라는 어투였고, 현수는 그런 효주를 가소롭게 생각하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음. 그냥 내가 같이 가줄게. 그게 나을 거 같은데?”

“아 정말? 그럼 진짜 고맙지! 다음에 우리가 꼭 밥 살게. 맛있는 걸로!”

현수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고 생각한 효주가 신나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낚였다고는 생각 절대 못 하겠지.’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효주에게 말했다.

“나 정도 고급인력이면 비싸게 먹여야 되는  알지?”

“아이 그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얘가 다 사줄 거야.”

둘은 농담 따먹기를 하며 같이 택시를 잡았다.

축 늘어진 한석을 택시에 간신히 구겨 넣고서 두 사람은 한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 . .

“감사합니다.”

효주가 택시요금을 결제하며 현수에게 미안한 눈빛으로 부탁해왔다.

“현수야 얘 집이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

“응 알겠어, 가자.”

현수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며, 한석을 업었다.

그리곤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

‘아 이런 씨….’

등이 축축해지는  느끼고 잠깐 멈춰서자 효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헐! 혀, 현수야….”

현수는 이를 꽉 문 채로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빨리 올라가자.”

뒤에서 굉장히 미안해하는 효주를 무시하고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한석의 집에 도착한 현수는 한석을 던져두고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후…. 참자. 오히려 잘 됐어. 나한테 사소한 감정이라도 심어두는게 어디야.’

현수는 옷을 씻어내고 감정을 추스르며 나왔다.

현수가 화장실을 나왔을 때 보인 풍경은 효주가 한석을 정성껏 닦아주는 장면이었다.

한석이 깨지 않도록 킨 무드등 특유의 주황 불빛아래 비친 효주의 모습은 정말 단아해보였다.

원래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새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 요즘은 보기드문 전형적으로 청순함이 물씬 풍겨나오는 외모가무드등의 조명아래 훨씬 부각되어 보였다.

 생머리를 질끈 묶고 순진한 눈망울로 어디  묻은 곳 없는지 찾아보는 그 모습은 정말 순수해보였다.

‘살짝 한석이가 왜 그렇게 빨아재꼈는지 알거같네.’

현수는 한석을 조금 이해하면서도 저렇게 순수해보이는 효주의 음란해진 모습을 상상하자 점점 욕망이차올랐다.

그때 한석을 바라보고 있던 효주가 현수를 눈치챘다.

“아 현수야. 다 씻었어? 진짜 미안해…. 세탁비도 다 챙겨서 줄게.”

현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챙겨주면 고맙게 받아야지. 한석이는 어때 자?”

“응. 몸도 대충 닦아줬어. 오늘 진짜 고마워.  보답할게.”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넌 여기서 자고 갈거야?”

현수의 질문에 효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우리 그런 사이 아냐, 나 그리고 통금있어서 집에 들어가봐야해.”

“그래? 그럼 같이 나가자.”

현수는 효주에게 슬며시 웃어주며 집을 나서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효주는 조심스레 일어나서 현수와 함께 한석의 자취방을 나섰다.

둘은 함께 계단을 내려가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도 한석이가 너 진짜 많이 챙기더라. 부럽던데?”

현수가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뒷담처럼 안 들리게 조심조심.’

“잘해주긴 하지, 한석이가. 근데 가끔씩 부담스럽기도하고, 오늘처럼 가끔 짜증날 때도 있어. 근데 다 날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니까 이해는 해.”

효주는 한석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녀의 미소는 한석을 진짜로 좋아해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현수는 효주의 말에 약간 뜸을 들이며 말했다.

“음…. 내가 뭐라고 할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게 다 받아주고 참아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뭐든 과하지 않을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사고가 안나는 법인데.”

효주는 현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했다.

‘틈이 보인다.’

효주는 ‘아무렴 어때’라는 표정을 지으며 현수에게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그런 거 말곤 다른 문제가 없어서…. 애초에 내 생각을 해서 하는 행동인데 뭘.”

현수는 효주가 약간 흔들리는 게 보였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파고들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현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에이, 그럼 너는 계속 불편해도 되는 거야?”

“그건아니지만….”

“효주야. 남자는 표현을 안하면 몰라.”

현수는 집요하게 효주의 감정을 끌어올리려했다.

뒷담인  뒷담이 아닌 조언처럼 들리게하며 계속해서 효주를 찌르자 결국 반응이 나왔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것같아?”
“음. 내 생각엔 일단 너무 사실대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네 심정을 얘기하는게 나을 것 같아.”

“그러면 싸우지 않을까?”

효주는 결국 싸워서 무결점인 둘의 사이에 점이 찍힐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현수는 효주의 고요한 마음에 돌멩이를 하나 던졌다.

파동이 어디까지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일단 작은 파도라도 쳤다는 것이다.

현수는 효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효주야. 말하지 않고도 모든  맞출 수 있다면 그게 천생연분이라고 불릴걸? 이미 네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최대한 안 싸우는 쪽이 난 좋은데….”

“참는것도 좋지. 근데 그렇게 참아서 감정이 쌓여서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때가서 고이고 썩은 감정이 해결이 될  있을까?”

현수는 싸우지않는다고 그 사이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며 말했다.

효주는 고민에 빠진  보였다.

“그리고 고작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우겠어? 그냥 가끔 부답스럽다는  정도는  수있는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안 싸울지도 모르는 일로 고민하지 말라는식으로 말을 던졌다.

“네 말이 맞는거 같아. 내일 내가 한  얘기 해봐야겠어.”

결국 효주는 걸려들었다.

현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한석은 소유욕이 강하고, 보상심리도 크게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한석이라면 사소한 일이라도 효주가 불만을 얘기하는걸 못 참을걸?’

분명 한석은 효주에게 한마디 해올거다.

하지만 단 한번도 아쉬운 소리를 한 적 없는 한석이 효주에게 그런말을 하는 순간 효주의 마음에 점이 하나 찍힐거다.

아주 새하얗고 깔끔한 도화지는 지킬 가치가 있지만, 거기에 점이 하나 찍히는 순간 가치는 순식간에 떨어진다.

“그래. 오늘 처음 보긴 했지만, 한석이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거같아.”

“응. 고마워 아! 택시비랑 세탁비 줄테니까 일단 연락처좀 줄래?”

“여기. 그럼 다음에 연락해.”

현수는 효주와 번호를 교환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효주의 마음에 점이 찍힌  연락오길 기다리며.

다음날 오전.

“오전 수업 갈 시간이에…요….”

현수는 가윤의부끄러워하는 목소리에 잠이 깼다.

‘끄음…. 아직 자기를 못 놨네.’

현수는 가윤과의 일이 있고  뒤 둘만의 작은 규칙을 정했다.

먼저 현수에게 존댓말을 쓰기.

그리고 현수의 눈을 3초이상 쳐다봐서는 안 된다.

‘둘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는데 도움이 될거야.’

현수는 SM플레이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실행하려 했다.

그 첫걸음이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현수보다 아래라는 것을 인정하고 인지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현수는 가윤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느껴지는 축축한 물기.

어쩌면 아침이라 그냥 분비물이 조금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존댓말 하는 거에 축축하게 젖었네?”

현수는 가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고작 존댓말 하는 수준으로도 흥분을 느낀다는  스스로 인정하게 하려고 했다.

“….”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는 가윤을 보며 피식 웃은 현수는 채비를 마친 뒤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다.

교수가 하는 강의를 한참을 멍때리며 듣던 중, 문득 현수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우웅.

[30,000원을 받으세요.]
[현수야! 이거 택시비랑 세탁비야! 어제 진짜 고마웠어 (대충 고마워하는 이모티콘)]

‘흠. 아직 한석이랑 얘기를 안해봤나? 그냥 넘어갈 애가 아닐텐데.’

현수가 잠시 의아하게 생각할 무렵.

[아 그리고 내가 밥도 사주기로했는데 오늘 점심때 시간 괜찮아?  얘기도 있고 해서.]

‘그럼 그렇지.’

현수는 잠깐 자신을 의심한 것을 스스로 사과하며 답장했다.

[응  사준다는데 당연히 만나야지. 그럼 이따 도서관 앞에서 1시에 보자.]


잠시 후, 현수는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도서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효주를 발견한 현수는 뛰는 시늉을 하며 효주에게 다가갔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나도 금방 왔어. 왜 뛰어왔어.”

효주는 현수가 자신과 만나는 것을 반가워한다고 느낀 듯 했다.

“아니 뭐…. 밥 사준다는데 빨리 뛰어와야지.”

현수는 슬쩍 민망하다는 표정을 보여주며 말했다.

효주는 그런 현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먹고싶은거 있어?”

“음…. 스테이크나 썰러 갈까?”

“오! 좋다 가자가자.”

현수는 효주를 연인들이 올법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데리고갔다.

“와. 뭐야? 여기 진짜 장난 아니다….”

효주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가격표를 보았고  번  감탄한 듯 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했다.

“여기가 진짜 맛있는 곳이야. 아마 10년 안에 미슐랭스타도 받을만한 곳이야.”

현수는 가격은 전혀신경쓰지않는다는  가게에대한 얘기만 했다.

효주는 약간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하고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도 음식이 들어가자 씻은 듯 사라졌다.

“자 먹어봐.”

현수는 스테이크를 먹음직스럽게 입 크기로 잘라 효주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곧장 파스타를 숟가락에 돌돌 말아 그녀의 접시에 올려주고 식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뭐였어?”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 사실 남자친구  때문에….”

현수의 속에서 묘한 쾌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수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의문을 표시했다.

“응? 왜? 무슨 일 있었어?”

효주는 현수의 물음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얘기했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손을 쉬지않고 뻗어댔다.

‘사람은 참 단순해.’

현수가 이곳을 데려온 이유는 다양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효주가 지금 하는 걱정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하기 위해서였다.

효주입장에서는 남자친구와 난생 처음 싸워서 심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들어오는 순간부터 비싸 보이는 인테리어에 압도당하고, 실제로 메뉴판을 보는 순간부터 얼어붙었다.

 순간 이미 효주의 머릿속에서 한석은 어느정도 지워질  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렇게 시킨 음식이 맛까지 있어버리고, 현수가 계속해서 잘라주는 음식을 계속 받아먹고 있었다.

효주는 지금 남자친구와 다툰 일로 식욕도 기운도 한껏 떨어져 있어야 될 자신이 그렇게 되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임을 깨달을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 자신이 지금까지 이렇게 심각했었는지 모르겠다고.

“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이긴 한 데, 한석이랑 약간 다퉜거든.”

원하는 반응이 나오자 현수는 입고리가 순간 씰룩일 뻔 했으나, 필사적으로 참으며 놀란  연기를 시작했다.

“엥? 왜? 어쩌다가?”

효주는 그날 밤, 현수에게 들은 조언을 받아들여 한석에게 자신의 불만을 말하던 때를 떠올렸다.

* * * *

효주는 안색이 약간 퀭해보이는 한석을 보자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한석아,  잤어?”

가까이서 본 한석은 생각보다 많이 초췌해보였다.

“응…. 혹시  어제 실수했어?”

한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물어왔다.

“했지. 어제 동아리 선배랑 말싸움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한석의 얼굴에 걱정이 차오르는게 눈에 보였다.

“하... 돌겠네...”

항상 이런일은 잘 해결해오던 사람이라 효주는 별 걱정하지 않고 어제 현수와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한석에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한석아 나  말이 있어.”

”응? 뭔데?“

”어제처럼 괜히 나 때문에 사람들이랑  싸웠으면 좋겠어.“

하지만 한석의 표정이 순간굳어지는 것을 보고 효주는 약간 서운함을 느꼈다.

”하…. 효주야 그냥 난  생각해서 한 거잖아.  그래도 머리 아픈데 너까지 왜 그래?“

 

1